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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정로 禪門正路

작성자
busong
작성일
2018-02-06 20:33
조회
298

禪 門 正 路



1見性卽佛 2衆生佛性 3煩惱妄想 4無上正覺 5無生法忍
6無念正宗 7保任無心 8寤寐一如 9死中得活 10大圓鏡智
11內外明徹 12 常寂常照 13 解悟漸修 14分破分證 15多聞知解
16 豁然漏盡 17正眼宗師 18玄要正偏 19消滅佛種
退翁 性徹 著
緖言

靈鷲山頂에서 世尊이 拈花함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이요,
少林岩窟에서 二祖가 三拜함은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음이니,
古今 善知識들의 玄言妙句는 모두 눈속에 모래를 뿌림이다.
熱喝과 痛棒도 衲僧의 본분이 아니거늘 어찌 다시 눈 뜨고 꿈꾸
는 客談이 있으리오마는, 진흙과 물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性命을
不顧함은 古人의 落草慈悲이다.
正法相傳이 歲久年深하여 種種 異說이 橫行하여 祖庭을 황폐케
하므로 老拙이 감히 落草慈悲를 云謂할 수는없으나, 萬世正法을 위
하여 眉毛를 아끼지 않고 正眼祖師들의 垂示法門을 採集하여 禪門
의 正路를 指示코자 한다.

禪門은 見性이 근본이니 見性은 眞如自性을 徹見함이다. 自性은
그를 엄폐한 根本無明 즉 第八阿賴耶의 微細妄念이 永絶하지 않으
면 徹見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禪門正傳의 見性은 阿賴耶의 微細가
滅盡한 究竟妙覺 圓證佛果이며 無餘涅槃 大圓鏡智이다.
이 見性이 즉 頓悟이니, 寤寐一如·內外明徹·無心無念·常寂常
照를 내용으로 하여 十地等覺도 禪門의 見性과 頓悟가 아니다. 따
라서 悟後保任은 究竟佛果인 涅槃妙心을 護持하는 無碍自在의 不思
議 大解脫을 말한다.
見性 방법은 佛祖 公案을 參究함이 가장 첩경이다. 佛祖 公案은
極深難解하여 自在菩薩도 茫然不知하고 오직 大圓鏡智로써만 了知
하나니 公案을 明了하면 自性을 徹見한다. 그러므로 圓證佛果인 見
性을 할 때까지는 公案 參究에만 盡力하여야 하나니, 圓悟가 항상
公案을 參究하지 않음이 大病이라고 苛責함은 이를 말함이다.

公案을 타파하여 自性을 徹見하면 三身四智를 圓滿證得하고 全機
大用이 일시에 現前한다. 이것이 殺活自在하고 縱橫無盡한 正眼宗
師이니 正眼이 아니면 佛祖의 慧命을 계승하지 못한다. 馬祖 제자
八十名 中에 正眼은 數三人이라고 黃檗이 지적함과 같이 正眼은 極
難하다. 그러나 箇箇가 본래 毘盧頂上人이라 自輕自屈하지 않고 끝
까지 노력하면 正眼을 豁開하여 出格大丈夫가 되나니 참으로 妙法
中 妙法이다.
무릇 異說 中의 一例는 頓悟漸修이다. 禪門의 頓悟漸修 元祖는
荷澤이며 圭峯이 계승하고 普照가 力說한 바이다. 그러나 頓悟漸修
의 大宗인 普照도 頓悟漸修를 詳述한 그의 [節要]벽두에서 荷澤은
是知解宗師니 非曹溪嫡子라고 斷言하였다. 이는 普照의 독단이 아
니요 六祖가 授記하고 叢林이 공인한 바이다. 따라서 頓悟漸修思想
을 信奉하는 者는 전부 知解宗徒이다.

원래 知解는 正法을 장애하는 최대 禁忌이므로 禪門의 正眼祖師
들은 이를 통렬히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禪門에서 知解宗徒라 하면
이는 衲僧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니 頓悟漸修 思想은 이렇게 可恐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듯 異說들의 피해가 막심하여 正法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나
니, 參禪高流는 이 책에 수록된 正傳의 法言을 指針 삼아 異說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勇猛精進 廓徹大悟하여 古佛도 未到하는 超
群正眼을 圓證하여 荷澤·圭峯과 같은 知解宗徒가 되지 말고 馬祖
·百丈과 같은 本分祖師가 되어, 曹溪嫡子로서 佛祖의 慧命을 계승
하여 永劫 不滅의 無上正法을 宣揚하기를 祈願하는 바이다.

허허, 구구한 잠꼬대가 어찌 이렇게 많은고!
억!

둥근 달 밝게 비친 맑은 물결에
뱃놀이 장단 맞춰 금잉어 춤을 춘다.

辛酉 仲秋佳節 伽倻山 白蓮庵에서
退翁 性徹 識



一. 見性卽佛

재得見性하면 當下에 無心하야 乃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느니라(宗鏡
錄 一 標宗章)
見性을 하면 卽時에 究竟無心境이 現前하여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敎와
觀을 다 休息하느니라.
* 眞如慧日의 無限光明은 항상 法界를 照耀하고 있지마는, 三細六楸의 無明
暗雲이 掩蔽하여 衆生이 이를 보지 못한다. 雲消長空하면 靑天이 現露하여
白日을 보는 것과 같이, 三細의 極微妄念까지 滅盡無餘하면 廓徹大悟하여
眞如本性을 洞見한다. 이에 一切妄念이 斷無하므로 이를 無念 또는 無心이
라 부르나니, 이것이 無餘涅槃인 妙覺이다.
그러므로 起信論에서 見性은 遠離微細한 究竟覺이라 하였으며, 元曉 賢首

도 그들의 起信論疏에서 金剛已還의 一切衆生은 未離無明之念이라 하고 또
한 佛地는 無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金剛 즉 等覺 以下의 一切衆生은 有
念有心이니 等覺도 佛陀의 聖敎와 法藥이 필요하며,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
을 咸息한 無念無心은 無明이 永滅하여 自性을 徹見한 妙覺뿐이다.
古人이 말하기를 [佛說一切法은 爲度一切心이라 我無一切心커니 何須一切
法이리오]하였으니, 과연 그렇다. 諸佛의 一切法門은 群生의 衆病을 치유
하기 위한 處方施藥이다. 無病健康한 者에게는 起死回生하는 神方妙藥도 필
요없는 것과 같이, 凡夫心 外道心 賢聖心 菩薩心等 無量衆生의 本病인 一切
心念을 斷然 超脫한 究竟無心地의 大解脫人에게는 아무리 深玄奧妙한 佛祖
의 言敎와 觀行이라도 소용없다.
그리하여 法藥과 衆病이 俱消하고 聖敎와 妙觀을 咸息한 究竟無心地만이
見性이니, 이것이 無上大道를 徹證한 絶學無爲閑道人의 心境이다.

如楞伽經偈에 云하되 諸天及梵乘과 聲聞緣覺乘과 諸佛如來乘에 我說此諸乘은
乃至 有心轉이니 諸乘은 非究竟이라 若彼心滅盡하면 無乘及乘者하야 無有乘建
立이니라 我說爲一乘이나 引導衆生故로 分別說諸乘이니라(宗鏡錄 一 標宗章)
楞伽經 偈頌에 이렇게 말했다. 諸天 및 梵衆乘과 聲聞 緣覺과 諸佛如來乘
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諸乘들은 有心中의 轉變이므로 諸乘은 究竟無心이 아
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그 各種의 有心이 滅盡하면 諸乘과 그 乘을 依止할 乘
者도 없어 乘이라 하는 名稱조차 建立할 수 없는 大無心地이다. 이는 諸乘을
초월한 最上唯一乘이나 衆生을 引導하기 위하여 方便으로 分別하여 諸乘을 說
한다.
* 諸天梵衆과 聲聞緣覺의 諸乘은 말할 것도 없고 諸佛如來乘도 有心轉이어
서 究竟이 아니니, 諸佛如來乘까지 滅盡한 無餘涅槃인 究竟無心이 즉 見性
이다.
이것은 方便으로 一乘이라 呼稱하나 이 一乘은 三乘相對의 一乘이 아니요

諸佛如來乘까지 초월하여 無乘及乘者인 最上乘을 표현한 假名이니 이는 最
終究竟의 深深玄境인 大無心地를 말한 것이다.

故로 先德이 云하되 一예在眼하니 千華亂墜하고 一妄이 在心에 恒沙生滅이
라 예除華盡하고 妄滅證眞하니 病差藥除하고 氷融水在로다 神丹이 九轉하니
點鐵成金이요 至理一言은 轉凡成聖이라 狂心이 不歇타가 歇卽菩提요 鏡淨心明
하니 本來是佛이니라(宗鏡錄 一 標宗章)
그러므로 先德이 말했다. 一點障예가 眼膜을 덮으니 千種幻華가 擾亂하게 墜
落하고, 一陣妄念이 心中에 일어나니 恒河沙數의 生滅이 發動한다. 眼예를 除
去하니 幻華가 消盡하고, 妄念이 永滅하여 眞性을 證得하니 千病이 快差하여
萬藥을 除却하고, 妄念의 氷塊가 消融하여 眞性의 湛水가 流通한다. 神靈한
丹藥을 九番轉단하니 生鐵을 點下하여 眞金으로 變成하고, 至極한 妙理는 一
言片句로 凡夫를 轉換하여 聖者로 成就한다. 狂奔하는 妄心을 休歇치 못하다
가 休歇하니 즉 無上菩提요, 玄鏡이 淸淨하여 本心이 明徹하니 本來로 大覺世
尊이니라(以上 三段의 原文은 계속된 것임).
* 三細六楸의 一切妄念이 頓然 消滅되고 常住不變하는 眞如本性을 豁然證得
하니, 이것이 곧 妄滅證眞한 究竟無心인 見性이다. 病差藥除하여 無事無爲
한 大解脫人으로서 氷消水淨한 眞性의 大海에서 游泳自在하니, 天上人間에
獨尊無比한 大覺如來며 西天此土에 燈燈相續한 正眼宗師이다.
이로써 見性은 妄滅證眞하니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여 諸佛如來
乘까지 滅盡한 無餘涅槃인 究竟大無心地임이 了然明白하다.
宗鏡錄의 著者 永明은 佛祖正傳인 大法眼의 三世嫡孫이다. 臨濟正脈인 中
峯이 [古今을 通한 天下의 師表는 永明을 두고 누구겠는가(古今天下之師는
捨永明하고 其誰歟아--中峯 山房夜話 上)]라고 讚歎하였다.
宗鏡錄 百卷은 宗門의 指針으로 龍樹 이래의 最大著述로서 讚仰된다. 晦
堂은 역시 臨濟正傳인 黃龍派의 開祖 南禪師의 上首弟子로서 佛祖의 正脈으
로 天下가 推仰한 바이다. 항상 宗鏡錄을 愛重하여, 寶覺(晦堂)禪師가 年臘

이 많으나 오히려 宗鏡錄을 手中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冊을 늦
게 봄을 恨한다]라 하고 其中에 要處를 撮約하여 三卷을 만들어 冥樞會要라
고 이름하니 世上에서 盛히 流傳하다(寶覺禪師가 年臘이 雖高나 手不釋卷曰
吾恨見此書晩矣로다 其中에 因撮其要處하야 爲三卷하고 謂之冥樞會要라 하
니 世盛傳焉하니라--人天寶鑑 下).
이렇게 宗鏡錄中의 所論은 古今을 통하여 그 누구도 異議할 수 없는 宗門
의 定論으로 되어 있다.

如菩薩地盡하면 滿足方便하야 一念相應하야 覺心初起하야 念無初相이라 以遠
離微細 念故로 得見心性하야 心卽常住일새 名究竟覺이니라(起信論)
菩薩의 終點인 十地가 了盡하면 修道의 方便이 圓滿具足하여 無間道인 一念
에 相應한다. 妄心의 初起生相을 覺知하여 心地에 初相이 全無한지라 初起生
相의 極微細妄念을 遠離하므로 自心의 本性을 徹見하여 心性이 湛然常住할새
究竟覺이라 부른다.
* 等覺의 金剛喩定에서 根本無明인 極微細妄念을 斷盡하면 豁然大悟하여 眞
如本性을 洞見하나니 이것이 究竟覺인 成佛이다. 이는 大乘佛敎의 總論인
起信에서 見性 즉 究竟覺이며 成佛임을 明證한 것이다.

業相動念이 念中에 最細일새 名微細念이니라 此相이 都盡하야 永無所餘故로
言永離니 永離之時에 正在佛地니라 前來三位는 未至心源일새 生相이 未盡하야
心猶無常이라가 今至此位하야는 無明이 永盡하야 歸一心源하야 更無起動故로
言得見心性이니 心卽常住하야 更無所進일새 名究竟覺이니라(元曉 起信論疏)
無明業相이 動念하는 것이 妄念中에서 가장 微微하므로 微細妄念이라 呼稱
한다. 이 微細妄念이 전부 滅盡하여 영원히 그 餘跡이 없으므로 영원히 離脫
한다고 한다. 이 微細妄念을 永永 離脫한 때에는 正確히 佛地에 머물게 된다.
前來의 三位는 心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生相이 滅盡하지 않아서 心中이

아직 生滅無常하다가, 此位에 이르러서는 永永 滅盡하여 一心의 本源에 歸還
하여 다시는 起滅動搖함이 全無하므로 見性이라 稱言한다. 見性을 하면 眞心
이 廓然常住하여 다시는 前進할 곳이 없으므로 최후인 究竟覺이라 呼名한다.

業識動念이 念中에 最細일새 名微細念이니 謂生相也라 此相이 都盡하야 永無
所餘故로 言遠離요 遠離虛相故로 眞性이 顯現하나니 故로 云 見心性也라 前三
位中에는 相不盡故로 不見性也라(賢首義記 卷中末)
業識이 動念하는 것이 가장 微細하므로 微細妄念이라 呼名하나니 生相을 말
함이다. 이 最初生相이 전부 滅盡하여 永永 그 殘餘가 없는 故로 遠離라 하
며, 虛妄幻相을 遠離한 故로 眞如自性이 곧 顯現하나니 故로 見性이라고 한
다. 前三位中에는 最初生相이 滅盡하지 않았으므로 見性이라 하지 않는다.
佛地는 無念이니라(元曉疏 賢首義記)

佛地는 微細念까지 永盡한 無念이다.
* 元曉와 賢首는 敎宗의 權威이다. 微細無明인 第八阿賴耶識이 滅盡하면 無
餘涅槃인 佛地 즉 究竟覺이어서 이것이 無念 즉 無心이며 見性임은 佛敎의
根本原理이므로, 元曉 賢首도 異議가 있을 수 없으며 宗鏡의 所論과 완전
一致함은 당연한 歸結이다.
그리고 前三位라 함은 不覺의 十信, 相似覺의 三賢, 隨分覺의 十地를 말
함이니, 三賢 十地가 전부 無明業識의 幻夢中에 있으므로 見性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起信論中의 證發心도 無分別智를 얻어서 眞如라고 假
名하나 業識心이 微細起滅하여 無明이 未盡하였으므로 見性이 아니다.

十地諸賢(聖人)이 說法은 如雲如雨하여도 見性은 如隔羅곡이니라(汾州--傳燈
錄二十八 雲門--傳燈錄十九)
十地의 諸賢(聖人)들이 說法하기는 如雲如雨하여도 見性은 羅곡을 障隔함과
같느니라.
* 汾州와 雲門은 三學에 該通한 絶世의 正眼이다.
汾州 雲門뿐 아니라 十地未見性은 宗門正傳의 通則이니 究竟覺 즉 如來地
만이 見性인 緣故이며, 宗門에서 말하는 十地는 權敎十地가 아니요 一乘十
地이다. 十地 以後에 賴耶의 微細를 永斷하여야 見性이라 하니 일반적으로
는 不可能한 것 같으나, 夢中一如가 되면 華嚴七地요 熟眠一如가 되면 賴耶
微細의 自在菩薩位이다. 禪門 正眼宗師 中에 熟眠一如位를 透過하지 않고
見性이라 呼稱한 者는 없다. 이는 究竟覺을 成就한 所以이니 寤寐一如編에
서 詳述한다.


如明眼人이 隔於輕곡하고 覩衆色像하야 究竟地菩薩도 於一切境에 亦爾하며 如
明眼人이 無所障隔하고 覩衆色像하야 如來도 於一切境에 亦爾니라 如明眼人이
於微闇中에 覩見衆色하야 究竟地菩薩도 亦爾하며 如明眼人이 離一切闇하고 覩
見衆色하야 如來도 亦爾니라(瑜伽論 五十)

明眼人이 輕곡을 障隔하고 모든 色像을 보는 것과 같아서 究竟地菩薩도 一
切境界에 이와 같으며 明眼人이 障隔이 없이 모든 色像을 보는 것과 같아서
如來도 一切境界에 이와 같느니라. 明眼人이 微闇中에서 衆色을 보는 것과 같
아서 究竟地菩薩도 이와 같으며 明眼人이 一切昏闇을 떠나서 衆色을 보는 것
과 같아서 如來도 이와 같느니라.
* 究竟地菩薩인 等覺은 阿賴耶의 微細妄念이 殘餘하여 이것이 自性을 障蔽
하여 一切境界에 了然明白하지 못하여 如隔輕곡하며 如闇中覩色이라 하였으
며, 따라서 佛性境界도 이와 같이 明了하지 못하므로 佛祖는 十地菩薩도 見
性은 如隔羅곡 如闇中見色이라고 呵責하였다. 이 微細妄念이 滅盡하여 心眼
이 洞開하면 輕곡과 微闇을 永離한 一乘佛果를 成就하여 一切境界에 了然明
白하므로 涅槃經에서 如來見性은 如晝見色이라고 하였다. 이는 菩薩地盡하
여 永離微細하면 得見心性이니 名究竟覺이라고한 起信所論과 同一內容이다.

如隔輕곡 如闇見色은 正見이 아니므로 佛祖正傳은 見性을 不許하였을 뿐 아니
라 第八魔界라 하여 極力排擊한 것이다. 이와 같이 究竟地菩薩도 見性이 아니
니 其餘는 擧論할 필요도 없으므로 佛敎 萬代의 標準인 起信과 瑜伽의 究竟地
菩薩未見性의 原則下에 一乘佛果 以外의 見性說은 斷然코 容認할 수 없다.


以不生煩惱故로 則見佛性이요 以見佛性故로 則得安住大涅槃이니 是名不生이니
라(大涅槃經 十八)
煩惱가 不生하는 故로 곧 佛性을 正見하며 佛性을 正見한 故로 大涅槃에 安
住하나니, 이를 不生이라 하느니라.
* 不生은 즉 無生이니 微細의 煩惱妄想까지 滅盡한 大無心地요, 大涅槃은
無心地인 無餘涅槃이니 즉 究竟覺이다. 그리하여 見性은 즉 無心이요 究竟
覺이며 大涅槃인 것이다.

第一義建立者는 謂無餘依涅槃界中이 是無心位니 何以故오 於此界中에 阿賴耶
識이 亦永滅故니라 所餘諸位는 轉識이 滅故로 名無心地나 阿賴耶識이 未滅盡
故로 於第一義에는 非無心地니라(瑜伽論 十三)
第一義에서 建立한 正義는 無餘依涅槃界中이 眞正한 無心位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境界中에는 阿賴耶識이 또한 영원히 消滅한 緣故이다. 이 無餘依涅槃
以外의 諸位는 轉識이 消滅한 故로 無心地라고 假名하나 阿賴耶識이 永滅치
못한 故로 第一義에서는 無心地가 아니다.
* 眞無心은 微細無明인 第八阿賴耶識이 永滅한 無餘涅槃 즉 佛地만이다.
六七轉識이 滅한 第八阿賴耶의 無記를 無心이라 假稱하는 수도 있으나, 第
八識의 無記에는 六七轉識의 楸中妄念은 止息되었으나 第八의 微細動念이
殘餘하여 있으므로 眞正한 無心이 아니다. 往往에 賴耶無記를 無心으로 錯
認하는 例가 있으나, 見性은 究竟覺 즉 佛地이므로 無餘涅槃의 眞如無心이
다.

唯無餘依涅槃界中에 諸心이 皆滅하니 名無心地요 餘位는 由無轉識故로 假名無
心이나 由第八識이 未滅盡故로 名有心地니라(瑜伽釋)
오직 無餘依涅槃界 中에서만 모든 妄心이 다 消滅하니 無心地라 부른다. 餘
他의 諸位는 모든 轉識이 斷無한 故로 無心이라 假名하나 第八阿賴耶識이 아
직 滅盡치 못하였으므로 有心地라고 이름한다.
* 六七轉識 즉 六楸가 永滅한 滅盡定도 無心이 아니요 有心이며 十地 等覺
도 有心이다. 得見性하면 當下에 無心이라고 한 無心은 諸佛如來乘도 滅
盡한 無餘涅槃의 佛地無心이니 究竟覺이 見性인 緣故이다.
이에 佛敎 萬世의 標準인 宗鏡 起信 涅槃 瑜伽等의 正論으로써, 見性은
妄滅證眞한 無心, 遠離微細한 究竟覺, 不生煩惱한 大涅槃이니 이로써 見性
이 如來地 즉 成佛임이 確然明白하다.


五祖謂六祖曰 若識自心하고 見自本性하면 卽名天人師佛이니라(壇經--中國版
日本版)
五祖가 六祖에게 말하였다. 만약 自心을 洞識하고 自性을 明見하면 곧 天人師
佛이라 이름하느니라.
* 이는 五祖가 六祖를 印可付法할 때의 말이니, 究竟佛果를 成就하지 않으
면 見性이 아님은 宗門의 鐵則이다.
見性하면 卽成如來니라(宗鏡錄 四十四)
見佛性故로 卽住大涅槃이니라(宗鏡錄 三十六)
若頓見佛性하면 一念에 成佛하느니라(宗鏡錄 十七)
見性하면 卽是에 如來가 되느니라.
佛性을 明見한 故로 卽刻에 大涅槃에 現住하느니라.
萬若에 佛性을 頓見하면 一念에 成佛하느니라.
* 見性이 卽是 如來며 大涅槃이며 成佛이니, 이는 見性이 佛敎의 最後極果
임을 證言한 것이다.

若能諦觀心性하면 卽是見佛性이며 住大涅槃이니 卽同如來니라(宗鏡錄 十一)
만약에 心性을 諦觀하면, 卽是 佛性을 徹見한 것이며 大涅槃에 現住한 것이
니 如來와 同一하니라.
* 心性을 諦觀함은 見性과 同一한 內容이다.


見佛性하야 住大涅槃하면 卽是住不思議解脫也니라(宗鏡錄 二十四)
佛性을 明見하여 大涅槃에 現住하면 卽是 不思議解脫에 常住하느니라.
* 見性을 하면 一切의 業結을 超脫하므로 不思議解脫이 아닐 수 없다.

但見法性하면 住大涅槃이니라(宗鏡錄 八十四)
於一切法에 見心自性하면 卽是如實究竟之覺이니 卽是頓成佛義니라(宗鏡錄 三
十六)
다만 法性을 明見하면 大涅槃에 住하느니라.
一切萬法에 眞心의 自性을 明見하면 卽時 如實한 究竟覺이며 卽是 頓然히
成佛함이니라.
*佛性은 萬法의 自性이므로 또한 法性이라 하나니 見法性은 즉 見佛性이다.

諸佛境界는 廣大無邊하야 非情識知요 唯見性하야사 能了니라(宗鏡錄 十八)
諸佛의 境界는 廣大無邊하여 三細六楸의 情識으로서는 不知하고, 오직 見性
하여야만 能히 了達하느니라.
* 廣大無邊한 諸佛의 境界는 十地 等覺도 茫然不知요 廓徹大悟하여 洞見本
性하여야 도달하나니 成佛은 오직 見性에만 있다.

親到諸法無疑之處는 悟心方知요 頓照萬境無相之門은 見性方了니 斯乃如來行處
요 大覺所知니라(宗鏡錄 九十六)
諸法에 疑惑이 없는 深玄處에 親히 到達함은 自心을 徹悟하여야 바야흐로
明知요, 萬境에 形相이 없는 絶妙門을 頓然 鑑照함은 本性을 洞見하여야 바야

흐로 了達하나니 이는 如來의 行處요 大覺의 所知니라.
* 悟心은 즉 見性이니 이는 大覺如來의 行履이며 證知이다.
上述한 宗鏡의 所論은 見性이 즉 究竟이니 즉 成佛이며 즉 大涅槃이며 不
思議解脫임을 加一層 立證하였다.

二十八祖內에는 無一祖도 不見性成祖니라(宗鏡錄 十九)
西天의 二十八代 祖師 中에는 一人도 見性하지 않고 祖師됨이 없느니라.
* 如來의 涅槃妙心과 正法眼藏을 傳持하여야 祖師라 하나니 어찌 見性을 하
지 않고 祖師가 되리오. 二十八祖뿐만 아니라 達磨直下의 正傳宗師들도 全
部 見性達道人이니, 見性하지 않으면 達磨正傳의 本分兒孫이 아니다.

得旨하면 卽入祖位라 誰論頓漸之門이며 見性하면 現證圓通이라 豈標前後之位
리오(宗鏡錄 一 標宗章)

究竟玄旨를 悟得하면 卽是에 祖師의 寶位에 登入하는지라 그 누가 頓과 漸의
路門을 論議하며, 眞如本性을 正見하면 現前에 大覺圓通을 徹證하는지라 어찌
前과 後의 地位를 標的하리오.
* 得旨는 見性과 同一內容이다.
現證圓通은 永明이 明言한 바 種種性相의 本義는 大覺에 있어서 圓通한다
(種種性相之義는 在大覺而圓通이라--宗鏡錄序)고 한 圓通이니 大覺世尊이
現證한 바이다.
見性하면 大覺圓通을 現證하여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였으므로
頓漸等의 各門과 賢聖等의 位階는 全然 필요없다. 만약 修行에 位階와 頓漸
이 필요하다면 이는 有病要藥으로 妄滅證眞하여 病差藥除한 究竟無心이 아
니니 절대로 見性이라 할 수 없다.

若直下에 無心하면 量出虛空之外어니 又何用更歷階梯리오(宗鏡錄 二十三)

만약 直下에 無心하면 허공 밖에 超出하거니 또한 어찌 階梯를 修歷하리오.
* 見性하면 當下에 無心하므로 一切의 地位 漸次를 超脫한다.

諸聖은 分證이요 諸佛은 圓證이니라(宗鏡錄 一)
無明을 若除하면 一時에 頓證이니라(宗鏡錄 二十五)
祖佛은 圓證法界니라(宗鏡錄 七十八)
利根上智는 須圓證이니 十聖三賢을 一念起로다(圓悟錄 十)
諸聖은 分分證得이요 諸佛은 圓滿徹證이니라.
根本無明을 만약 斷除하면 一時에 頓證하느니라.
祖師와 佛陀는 眞如法界를 圓證하니라.
利根과 上智는 모름지기 圓證할지니, 十聖과 三賢을 一念에 超越하느니라.
* 見性은 無明이 永盡한 究竟佛地이므로 圓證이며 頓證이요 分證이 아니다.
그러므로 宗門의 證悟見性은 반드시 諸聖의 分證이 아닌 佛地의 圓證을 내
용으로 한다.

若明悟相하면 不出二種이니 一者는 解悟니 謂明了性相이요 二者는 證悟니 謂
心造玄極이니라 若言頓悟漸修하면 此約解悟니 謂豁了心性하고 後漸修學하야
令其契合이니라(行願淸凉疏 二辨修證淺深)
豁然了知하니 卽爲始悟요 修行契證이 目爲終入이니라(淸凉疏 二十)
悟有解悟證悟하니 謂初因解悟하야 依悟修行하야 行圓功滿하면 卽得證悟니라
(圭峯圓覺疏 三下)
만약에 悟相을 설명하면 二種을 不出한다. 一은 解悟니 性理와 法相을 明白
히 了知함이요 二는 證悟니 悟心深玄하여 窮極에 到達함을 말함이다. 만약 頓
悟漸修를 말하면 이는 解悟이니 心性을 豁然了知하고 後에 漸漸修學하여 契合
하게 함이다.
豁然히 性相을 了知하니 곧 解悟인 始悟가 되고, 修行하여서 玄極에 契合實
證함은 證悟인 終入이다.

悟門에 解悟와 證悟가 있다. 始初에 解悟를 얻어 그 解悟를 依持修行하여
修行이 圓成되고 功果가 滿了하면 卽時에 證悟를 얻는다.
* 徹見心性하여 當下에 無心하면 涅槃心과 如來心도 求覓할 수 없거니 어찌
解悟와 證悟를 論하리오마는, 衆生의 根性이 各異하여 往往히 邪路에 誤入
하여 認賊爲子하는 實例가 數多하므로 方便上 解悟와 證悟를 假借하여 悟證
의 深淺 邪正을 試論코자 한다.
大抵 解와 證은 相反된 立場에 있으니 解는 始初요 證은 終極이다. 思量
分別의 妄識中에서 性相을 明白히 了解하는 佛法知見을 解悟라 하고, 妄識
이 永滅하여 知見이 蕩盡되어 究竟의 玄極處에 도달함을 證悟라 한다. 이證
悟를 敎家에서는 各種으로 分類하나 禪門의 證悟는 圓證뿐이다.
敎家에서는 信·解·修·證의 原則下에 解悟에서 始發하여 三賢 十聖의
諸位를 經歷修行하여 終極인 證悟 즉 妙覺에 漸入한다. 그러나 禪門의 悟인
見性은 現證圓通한 究竟覺이므로, 分證과 解悟를 부정하고 三賢 十聖을 초

월하여 無餘涅槃의 無心地인 證悟에 直入함을 鐵則으로 하니 이것이 禪門에
서 高唱하는 一超直入如來地이다.
따라서 諸聖의 分證도 微細知解에 屬하여 見性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秋毫의 知解가 殘留하여도 證悟치 못하고 一切의 知見解會가 徹底 蕩盡되어
야 見性케 되므로 分證과 解悟를 修道上의 一大障碍 즉 解碍라 하여 절대
排除하는 바이다. 이것이 禪敎의 相反된 입장이며 禪門의 특징인 동시에 命
脈이니, 玉石을 혼동하여 後學을 疑惑케 하면 佛祖의 慧命을 斷絶하는 重大
過誤를 범하게 된다. 佛祖正傳의 見性은, 遠離微細하여 永斷無明한 眞如無
心 無餘涅槃과 究竟覺 如來地를 내용으로 하는 圓證頓證의 證悟임은 上述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正傳의 大宗匠들은 妙覺後果인 圓證이 아니면 見性과
悟心을 허락하지 않고 分證과 解悟는 邪知惡解 妄識情見으로 極力痛斥하는
바이다. 그러나 禪門의 害毒이며 病弊인 分證과 解悟를 見性이라고 주장하
는 類屬이 往往히 있으니 如斯한 異說에 眩惑되지 말고 現證圓通하여 廓然

見性하여 究竟無心地에서 佛祖의 正傳을 闡揚하여 群迷를 開導하여야 할 것
이니 이것이 圓證見性의 正眼宗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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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碧嚴錄) 원문 해제 1칙~100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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