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수능엄경 正本首楞嚴經

正本首楞嚴經 卷 1

[1] 법회에 모인 대중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시라벌성의 기환정사(祇桓精舍)에 계실
적에 큰 비구들 1천 2백 50명과 함께 계셨으니 이는 모두 정기가 밖으로 샘이 없는 큰 아
라한들이니 부처님의 제자로 불법을 잘 보호해 나가면서 모든 유(有)에서 훌륭하게 초월하
였으며 국토에서 위의(威儀)를 갖추었으며 부처님을 따라 법륜(法輪)을 굴리어 부처님이
유촉하신 것을 충분히 감당할 만하며 계율을 엄숙하고 청정하게 지켜서 삼계의 큰 모범이
되었고, 응신(應身)이 한량 없어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하게 하며, 미래의 모든 중생까지
고난에서 구제하여 진루(塵累)에서 벗어나게 하는 분들이다.

그 이름은 큰 지혜를 지닌 사리불과 마하 목건련과 마하 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 등이 우두머리가 되어 이 세계와 또 다른 세계에 한량 없는 벽지불
과 무학(無學)과 아울러 처음 발심한 사람(初心)들까지 여름 결제(夏安居)를 마치고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와서 공손하게 이마를 대어 절하고, 그동안에 잘못이 있는 사람은 모든
대중에게 알리고 참회하였으며, 의심이 있으면 부처님께 여쭈어 의심을 풀고, 자비로우면
서도 엄숙하신 부처님을 흠모하여 비밀한 이치를 들으려고 하였는데 그 때에 여래께서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시어 거기 모인 여러 대중을 위하여 깊고 오묘한 진리를
말씀해 주시니, 설법하는 자리에 참석한 청정한 대중들이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듣게 되
었으며 가릉빈가(迦陵頻伽)의 소리와 같은 선음(仙音)이 시방세계에 가득하였다.

항하강 모래(恒河沙)수와 같이 많은 보살들이 도량에 모여 들었는데 문수사리가 우두
머리가 되었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그의 부왕을 위하여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 재(齋)를 열 고
부처님을 궁중으로 초청하여 자신이 직접 여래를 영접하며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
려놓고 아울러 여러 큰 보살들도 직접 맞이하였다. 성중에서는 또 다시 장자(長者)와 거
사(居士)가 같은 때에 스님들을 공양하게 되었는데 부처님께서 오셔서 공양에 응해 주기를
바라는 이가 있으므로 부처님께서 문수에게 명하시어 보살과 아라한들을 나누어 거느리고
가서 여러 재주(齋主)들의 공양에 응하게 하셨다.

오직 아난만은 이보다 앞서 따로 초청을 받고 멀리 갔다가 미처 돌아오지 못해서 승
차(僧次)에 참여할 겨를이 없었더니 이미 상좌(上座)와 아사리도 없이 혼자 돌아오는 길
이었다. 그 날 따라 공양이 없었으므로 그때 아난은 바리대를 들고 지나오던 성안에서 차
례로 밥을 빌게 되었는데 마음 속으로는 최후의 단월(檀越)을 구하여 재주를 삼으리라 생
각하고 깨끗함과 더러움을 묻지 않고 존성(尊姓:귀족)인 찰제리(刹帝利)와 전다라(최하층
계급)에게도 평등한 자비를 베풀어 미천함을 가리지 않았으니, 그 뜻은 일체 중생에게
한량 없는 공덕을 원만히 이루게 하려 함이었다.

[2] 악한 인연을 만나게 된 아난

아난이 이미 세존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을 꾸중하실 적에 “아라한이 되고서도 마음이 평
등하지 못하다”고 하신 것을 알았으며, 여래께서는 마음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거절함이
없으므로 의심과 비방에서 벗어났음을 흠앙(欽仰)하였다. 그래서 성을 지나 성곽의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위의(威儀)를 엄숙하고 단정하게 하여 재법(齋法)을 공경하고 신중하
게 지키었다.

그때에 아난이 걸식을 하기 위하여 음란한 집을 지나가다가 큰 환술을 하는 마등가라
는 여자를 만났는데 그는 사비가라(娑毘迦羅)의 선범천주(先梵天呪)를 외우면서 아난을 음
란한 집안으로 끌어들여서 음란한 몸으로 비비고 만지면서 계행을 지키는 아난의 몸을
훼손(毁損)하려 하였다.

여래께서 아난이 음란한 마술에 걸려든 것을 아시고 공양을 마치고는 즉시 돌아오니,
왕과 대신 그리고 장자와 거사가 모두 부처님을 따라와서 법문 듣기를 원하였는데 그 때
에 세존께서 정수리에서 백 가지 보배롭고 두려움 없는 광명을 뿜어 내시고, 광명 속에서
는 천 개의 잎새로 된 보배로운 연꽃이 생기면서 부처님의 화신(化身)이 가부좌를 하고서
신주(神呪)를 설하셨다.

그리고 문수사리에게 명하여 그 신주를 가지로 가서 아난을 구호하게 하시니 악주(惡
呪)가 소멸하므로 아난과 마등가를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난이 부
처님을 뵈옵고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며 슬피울면서 무시(無始)이후로 한결같이 많
이 듣는 것만 일삼았고 아직 도력이 온전하지 못한 것이 안스러웠던 것이다.
은근하게 시방의 여래께서 보리를 이루신 오묘한 사마타와 삼마바리, 그리고 선나(禪
那)의 최초 방편을 간절히 청하였다. 그때에 또 다시 항하강 모래와 같이 많은 보살과 시
방(十方)의 큰 아라한과 벽지불 들이 다 즐겨 듣기를 원하여 물러가 앉아서 묵묵히 거룩한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세존이 대중 가운데에 계시다가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삼마지(三摩地)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
(大佛頂首楞嚴王)이니 만행(萬行)이 다 갖추어졌나니라. 시방의 여래가 이 유일한 문으로
초출(超出)하신 오묘하고 장엄(莊嚴)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으라.”

아난과 대중들이 공경하게 이미를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땅에 엎드린 채 자비로운
가르침을 받자옵드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너와 나는 동기(同氣)이니 정이 같
은 천륜이다. 네가 처음 발심할 적에 나의 법 가운데에서 어떤 거룩한 모양을 보았기에
세상의 깊고 중한 은애를 미련없이 버렸는가?”

[3] 마음이 있는 곳을 말씀드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相)이 뛰어나게 미묘함은
아주 특이하며 형체가 마치 맑은 유리처럼 밝게 비침을 보고서 늘 스스로 이러한 모양
은 욕애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사오니 왜냐하면 욕기는 더럽고 흐려서 비린내 누
린내가 풍겨나고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그와 같이 뛰어나게 깨끗하고 미묘하게 밝은 자
금광(紫金光)의 덩어리를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목마른 때에 물
을 찾듯이 우러러보고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깍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아주 오
래전부터 나고 죽음이 서로 계속됨은 다 항상 머무르는 참 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만 작용한 탓이니, 이 허망한 생각이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세계
에 윤회하나니라.”

네가 지금 더할 수 없는 보리(菩提)의 참되고 밝은 성품을 연구하려거든 마땅히 정직
한 마음으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가 동일한 도로 생사(生死)에서 벗어
난 것이니 이는 모두 정직한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곧았으므 로 이와 같이 처
음부터 끝까지 어느 지위든 중간에 모든 왜곡된 형상이 영원히 없었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땅히 네가 발심한 것이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
호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니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으며 누가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제 마음과 눈
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보옵고 마음에 좋아함이 생겼기 때문에 제
가 발심하여 나고 죽는 세계를 버리고자 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아서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니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번뇌를 항복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국왕이 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討
伐)할 적에 그 군대가 마땅히 적병이 있는 곳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너
로 하여금 생사의 세계를 윤전케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
겠는데 마음과 눈이 어느 곳에 있는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에 열 가지 다른 중생들이 다같이 식
별하는 마음을 지녔사온데 그것이 몸 속에 있습니다. 비록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지금 부근(浮根)과 네 가지 대상 물질을 관찰해 보
아도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인식하는 마음은 실로 몸 속에 있다고 여깁
니다.”

[4]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금 여래의 강당에 앉아서 기타림(祇陀林)을 보고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여러 층으로 된 전각 중에 청정한 큰 강당은 급고독원(給孤獨園)에 있
고 기타림은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네가 지금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이 보이느
냐?” “세존이시여! 제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여래를 보옵고 다음에 대중을 보오며,
이와 같이 밖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숲과 동산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몸은 강당 안에 있으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수풀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떤 중생이 이 강
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바깥만 보는 자가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이시여! 강당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동산만
을 본다고 함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이와 같나니라. 너의 신령스런 마음
이 일체를 분명하게 아나니, 만약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사실 몸안에 있다면 그
때에 먼저 마땅히 몸 속의 것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중생이 먼저 몸 속을
보고난 다음에 밖의 물건을 본다더냐? 비록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을 볼 수 없으나 오장 육부(五臟六腑)쯤은 진실로 밝게 알아야 된텐데 어찌
하여 알지 못하느냐? 반드시 몸 속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밖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
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제가 여래의 이러한 법음(法音)을 듣자
옵고 제 마음이 실로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오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등불이 반드시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
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일체의 중생들이 몸 속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이 방 밖에 있어서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치가 너무도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어 부처님의 뚜렷한 이치와 같으리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이 모든 비구들이 마침 나를 따라 시라벌성에서 단식
(團食)을 차례로 빌어 가지고 기타림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공양을 마쳤지만[宿劑] 너
는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을 때에 여러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오면 이 모든 비구들이 비록 아라
한이오나 몸과 생명이 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한 사람이 여럿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
까?”

[5] 밖에 있지 않음을 깨뜨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고 하는 마음이 정말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서 자연히 서로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
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음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
다. 내가 지금 도라면같은 손을 너에게 보이노니 너의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
냐 못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분별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
를 “만약 안다면 어떻게 몸 밖에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
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아서 안을 보지 못하기 때
문에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서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
에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지금 생각해 보건대 숨어있는 한 곳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한 곳이라는 것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또렷하게
아는 마음이 이미 안은 알지 못하고 능히 밖은 볼 수 있으니 저의 생각 같아서는 눈 속
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 그릇을 가져다가 눈에 댄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에 가리워 졌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고 그 눈이 보는대로 따라서 곧 분별하나니
그렇다면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눈 속에 있기 때
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는데도 장애가 없는 것은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
를 댄것과 같다면 저 유리를 눈에 댄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산과 강
을 볼 적에 유리를 보느냐 못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진실로 유리가 보일 것
입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마땅히 산과 강을 볼 적에 어찌하여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곧 대상
이 되는 물체와 같아서 눈이 보는 대를 따라서 분별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고, 만약 눈
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있는 것이 마치 유리
를 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음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6] 깨뜨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중생들
의 몸이 장부(臟腑)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으니 장부는 어둡고 구멍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대하여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밖을 본다고 하고, 눈을 감고
어두움을 보는것은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경
계가 눈과 서로 대하였느냐 눈과 대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눈과 대하였다면 어두움이
눈 앞에 있는데 어떻게 안이 된다고 하겠느냐? 만약 안이 된다고 한다면 어두운 방 안에
있을 적에 해나 달이나 등불이 없으면 그 어두운 방 속에 전부 너의 삼초(三焦)나 육부
(六腑)일 것이며, 만일 어두운 세계가 눈과 대하지 않는다면 본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성
립되겠느냐?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고 안으로 대하는 것이 성립된다 하여 눈을 감고
본 어두움을 몸 속이라고 한다면 눈을 뜨고 밝음을 볼 적에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
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대한다는 것도 성립되지 않으리라.

얼굴을 보는 것이 만약 성립된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곧 허공에 있어
야 하리니 어떻게 안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몸이 아니
므로 그럴경우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까지도 너의 몸이라고 하겠구나. 그러
니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인데 너는 굳이 고집하여 말하기
를 몸과 눈이 다같이 안다고 한다면 이는 마땅이 두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
면 곧 너의 한 몸이 응당 두 보처를 이루겠구나.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을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늘 부처님께서 사부대중(四
衆)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
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심을 들었습니다. 제가 지금 생각하니 곧 생각하는 그 실
체가 바로 저의 심성(心性)입니다.

어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
닌가 여겨집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
음이 생겨나서 어울리는 곳에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
서 어울릴 곳도 없을 것이다. 만약 본체가 없으면서도 어울릴 수 있다면 이는 십구계(十
九界)가 칠진(七塵)으로 인하여 어울리는 것이니 그럴 이치가 없나니라. 만약 본체가 있
다면 가령 네가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너의 아는 마음이 다시 안에서 나오느냐 밖에
서 들어오느냐? 만약 안에서 나온다면 몸 속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 온다면 먼저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다.”

[7] 합하는 곳에 마음이 있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보는 것은 눈이고 마음은 아는 것이지 눈이 아니거늘 본다
고 하심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만약 눈이 볼 수 있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적에 문이 볼 수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은 있는 터이니 마땅히 물건을 본다고 해야
되겠구나.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말하겠느냐?”

아난아! 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 몸이냐 여러 몸이냐? 지금 네 몸에 있어서 온 몸에 가득하냐 온 몸에 가득하지 아니
하냐? 만약 한 개의 몸이라면 네가 손으로 한 활개를 찌를 적에 네 활개가 다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모두가 함께 깨닫는다면 찌를 데가 따로 없어야 하거늘 만약 찌를 데가
따로 있다면 너의 몸이 하나라는 것은 자연 성립될 수 없느니라.

만약 온 몸에 두루하다면 앞에서 찌르는 경우와 같을 것이다. 만약 온 몸에 가득한 것
이 아니라면 네 머리를 부딛히고 다시 발을 부딛혔을 적에 머리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어
울리는 곳에 따라서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도 들었사온데 부처님께서 문수 등 여러 법
왕자(法王子)와 더불어 실상에 대해 말씀하실 적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생각엔 안이라고 하자니
안을 보는 것이 없고 밖이라고 하면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안에 것을 알지 못하는 것
으로 보아서는 안에 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밖에 있는 것도 옳지 않으니 이는 서로 알기 때문이며, 그렇다고 안으로 보는 것도 아니
니 마땅히 중간에 있는 것인 듯 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중간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간이 반드시 희미한 것이
아니어서 있는 데가 없지 아니할 것이다. 지금 네가 중간을 추구하여 보아라. 중간이 어디
에 있느냐? 따로 장소가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약 몸에 있을 경우 변두리에 있다면 중간이 아니요 중간에 있다면 안과 같나니라. 만
약 어떤 장소가 있다면 표시할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시 할 곳이 없다면 이는 없는 것
과 같고 표시할 곳이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못하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사람이 표시할
수 있는것을 가지고 중간이라고 표시했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도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표시한 그 자체가 이미 혼란하니 마음도 따라서 혼란해지리라.”

[8] 집착함이 없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말씀드린 중간이란 것은 그러한 두 가지 종류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눈과 색진(色塵)이 인연이 되어 안식(眼識)이 생
긴다’고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분별이 있고 색진은 느낌이 없는 것인데 의식이
그 중간에서 생기니 그렇다면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이 만약 눈과 물질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이 마음
자체가 두 가지를 겸하셨느냐 아니하였느냐?

만약 두 가지를 겸한 것이라면 눈과 물질이 섞여서 혼란하리니 물질은 눈처럼 앎이 없
으므로 적이 되어 둘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중간이라고 하겠느냐? 두 가지를 겸하지
아니하였다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자체에 성품이 없는 것이거
니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하시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대목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의 네 분 제자들과 함께 법륜(法輪)을 굴리실 적에 늘 말씀하시기를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이미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
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일체의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
라고 한다’고 하셨으니 지금 제가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
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깨닫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어느 곳에도
있는 곳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과 허공이나 물 속 또는 육지에서 날아다니거나 걸어
다니는 모든 물상(物像)을 이름하여 ‘일체(一切)’라고 하니,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
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나니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느냐? 모든 것이 있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없
다고 해서는 안 된다.

형상이 없으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곧 형상이다. 형상이 있으면 존재
하는 것인데 어떻게 집착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집착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9] 혼미한 이유를 전체적으로 밝힘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여 공경을 다하여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는 본래 여래의 가장 어
린 아우로서 부처님의 사랑을 받자와 비록 지금 출가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귀여워 해주
시는 것만 믿고서 많이 듣기만 하였고 샘이 없는 도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비가라
의 주문을 꺽어 항복시키지 못하고 저들에게 홀린 바가 되어 음실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는 참다운 마음이 있는 데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데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가엾게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의 길을 열어 보
이시어 모든 천제(闡提)로 하여금 추악한 소견을 깨뜨리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듯이 엎드려서 여러 대중들과 목마를 때에 물을 찾
듯이 정성을 다하여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그 얼굴에서 갖가지의 광명을 발하시니 그 빛의 찬란하기가 마치 百
千개의 해와 같았다. 넓은 부처의 세계가 여섯 가지 진동이 생기고 이와 같이 새방의 티
끌 같이 많은 국토가 일시에 나타나더니 부처님의 위신(威神)이 모든 세계로 하여금 한
세계가 되게 하시니 그 세계 가운데 있는 여러 큰 보살들이 모두 제 나라에 있으면서 합
장하고 공경스레 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중생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갖가지로 뒤바
뀌어서 그 업의 씨앗이 자연 악차의 열매(惡叉)와 같이 한데 모여 있으며,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위 없는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이에 별도로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이루
며, 외도와 하늘과 마왕과 마구니의 권속이 되기도 하니 이 모두가 두 가지의 근본을 알
지 못하고 뒤섞여 어지럽게 닦아 익혀왔기 때문인데,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좋은 음식
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서 비록 티끌 같이 많은 겁(塵劫)의 세월을 지낸다 하더라도 마
침내 이룰 수 없나니라.

그 두 가지 근본이란 무엇인가? 아난아! 하나는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의 근본이니 네
가 지금 모든 중생들과 더불어 반연(攀緣)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요, 둘째는 시작이 없는 보리와 열반의 원래 청정한 본체이니 이는 지금 너의
원래부터 밝은 식정(識精)이 모든 인연을 만드는데 그 인연으로 인하여 본래의 참다운 마
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 중생을 이렇게 본래부터 밝았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
에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잘못 여러 갈래의 중생 세계로 빠져
들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지금 사마타의 길을 알아서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지금 다시 너에게
묻겠노라.”

[10] 주먹을 들어 질문을 하심

그렇게 말씀하시고 즉시 여래께서 황금색깔의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 아난
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것이 보이느냐 안 보이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보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저의 마음과 눈에 비추임을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슴하시기를 “네가 무엇으로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와 대중들은
다같이 눈으로 보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지금 나에게 대답하기를 ‘여래가 손가락을 구
부려 빛나는 주먹을 만들어서 네 마음과 눈에 비춘다’고 하니 네 눈은 보겠다마는 무엇
을 마음이라 하여 나의 주먹이 비추임을 받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지금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므로 제가 마음을 미루어
찾아 보았사오니 이렇게 추궁하는 놈을 저는 마음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아난아! 그것은 네 마음이 아니니라.” 아난이 흠칫
놀라면서 자리를 비키고 합장하며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
니라면 무엇이라 해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앞에
나타난 허망한 모양의 생각이다. 너의 참다운 성품을 현혹시키는 것이니 이는 네가 시작
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아들로 인정하고 있어서 너의 본래 떳떳
한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나고 죽고 세계를 윤회하고 있나니라.”

[11] 허망한 집착을 분별하여 물리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아우입니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사랑하였으므로 저를 출가하게 하였으나 저의 마음이 어찌 여래만을 공양하오릿
까?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국토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훌륭하신 스승님
을 섬기는 것과 큰 용맹을 발해서 모든 행하기 어려운 일들을 행하는 것도 모두가 이 마
음으로 할 것이며, 비록 법을 비방하고 훌륭한 근기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역시
이 마음일 따름인데 만약 이렇게 발생하는 분명한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마음이 없음이 마치 토목(土木)과 같을 것입니다.

이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을 여의면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으리니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저의 마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저는 사실 놀랐사오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혹하지 않을수 없사오니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우
쳐 주시옵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열어 보여서 그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무생법인
(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하여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며 말씀하시길 ”
여래가 항상 말씀하시되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에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원
인과 결과와 세계의 작은 티끌이 마음으로 인하여 실체를 이룬다’고 하나니,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의 온갖 것 가운데 풀잎이나 실오라기까지라도 그 근원을 따져보면 모두 본체
의 성질이 있으며, 비록 허공까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거 더구나 청정하고 오묘한 밝은
마음은 모든 마음에 본성(本性)이 되거니 어찌 실체가 없겠느냐?

만약 네가 분별하고 깨닫고 관찰하여 분명하게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반드시 마음이
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마땅히 온갖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의 접촉과 법 등 모든 상대
되는 대상을 여의고서도 따로히 온전한 성품이 있겠느냐?

마치 네가 지금 나의 법문을 듣는 것도 이것이 소리로 인하여 분별함이 있는 것이니
비록 일체의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을 없애고 안으로 그윽히 한가함을 지키더라도 오
히려 법진(法塵)을 상대로 한 분별하는 그림자가 되나니라.

내가 네게 명령하여 마음이 아니라고 고집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마음에 대하
여 세밀하고 자세하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만약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여의고도 분별
하는 심성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의 마음이겠지만, 만약 분별하는 심성이 앞에 나타난
대상을 여의고서는 실체가 없다면 이는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분별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런데 앞에 나타나는 대상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만약 변하여 없어질 때에
는 이 마음이 곧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니 곧 너의 법신도 함께 끊어져
없어지는 것과 같으리니 그러면 그 무엇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그때 아난이 대중들과 더불어 묵묵히 넋이 나간 듯 하였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세간에서 모든 수학(修學)하는 사람들이 현재 눈앞에
서 비록 아홉 차례나 결정을 하였다 하더라도 정기가 새어나가는 것을 다 끊어 아라한이
되지 못한 것은 모두 저 나고 죽고 하는 허망한 생각에 집착해서 진실한 것인 양 오인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금 비록 많이 듣기는 하였으나 성인의 과업을 성취하지
못했나니라.”

[12] 묻고 대답하여 의의를 정립함

아난이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온몸을 땅에 던지고 꿇어 앉
아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부처님을 따라 발심하여 출가하였사오나 부처님
의 위엄있고 신령한 것만 믿고서 늘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애써 닦지 아니하여도 여
래께서 나에게 삼매(三昧)를 얻게 해 주실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마음은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저의 본심을 잃었으니 몸은 비록 출가하였으
나 마음은 도에 들어가지 못함이 비유하면 마치 가난한 아이가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아무리 많이 들었더라도 수행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듣지 아니한 것
과 같음을 알았사오니 이는 마치 사람이 음식을 말로만 이야기해서는 결코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두 가지 장애에 얽매인 것은 진실로 고요하고 항상한[寂常]
심성(心性)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궁하고 외로운 것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오묘하고 밝은 마음을 발하여 저의 도안(道眼))을 열어 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가슴의 만(卍)자에서 보배의 빛을 뿜어 내시니 백천의 색깔이 어울렸
으며, 시방의 티끌 같이 많고 많은 넓은 부처님의 세계에 일시에 두루 퍼져서 시방에 있
는 보배로운 사찰의 모든 부처님의 정수리에 닿게 하셨다가 다시 되돌려서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이르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의 깃발을 세우며 시
방의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오묘하고 은미하고 비밀스런 깨끗하고 밝은 성품을 얻어 청
정한 눈을 뜨게 하리라.

아난아! 네가 아까 내게 대답하기를 ‘빛나는 주먹을 봅니다’ 하였는데 이 주먹의 광명은
무엇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어떻게 주먹이 되었으며 네가 무엇으로 보았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부처님의 온 몸이 염부단금(閻浮壇金)으로써 보배의 산처럼 빛나사
청정하게 생긴 것이므로 광명이 있는 것이고 제가 이것을 눈으로 보았으며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구부려 쥐고서 사람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주먹이 되었더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여래가 오늘날 진실한 말로 네게 말해 주리니 지혜
가 있는 모든 사람은 비유로써 깨닫게 할 수 있나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그 주먹을 만약
내 손이 없으면 내 주먹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만약 네 눈이 없으면 네가 보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니 네 눈을 내 주먹과 같은 이치에 비유하면 그 의미가 서로 비슷하
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미 저의 눈이 없으면 제가 보는 것이 이
루어질 수 없으리니 여래의 주먹에 비유하면 사실과 이치가 서로 비슷할 듯 하옵니다.”

[13] 참되게 보는 놈을 바로 선택함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였으나 그 이치가 그렇지
않나니라. 왜냐하면 만약 내 손이 없으면 주먹이 반드시 없겠지마는 저 눈이 없는 사람에
게는 보이는 것이 전여 없지 아니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네가 시험삼아 길에 나
아가서 소경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면 그 소경이 대답하기를 ‘지금 내 눈에는 오
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이
치로 보건댄 앞에 대상이 어두울지언정 보는 것이야 무슨 결함이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모든 소경들이 눈 앞에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을 어
떻게 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모든 소경들이 눈이
멀어서 오직 꺼멓게 어두운 것만 보이는 것과 저 눈을 가진 사람이 깜깜한 방에 있는
것과 그 두 가지 깜깜한 현상이 다르냐 다르지 않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깜깜한 방에 있는 사람과 저 소경들과의 두가지 캄캄함을 비교하면 조
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눈이 없는 사람이 대상이 컴컴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눈의 광명을 되찾게
되면 도리어 그 대상의 갖가지 빛깔을 보게 되리니 이것을 눈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 어두운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대상이 캄캄한 것만 보다가 홀연히 등불을 켜면 역시 대
상의 갖가지 빛깔을 볼 것이니 이것은 응당 등불이 보는 것이라고 하겠구나. 만약 등
불이 보는 것일진대 이는 등불이 볼 수 있는 것이므로 등불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며
또 등불이 보는 것인데 네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등
불은 빛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것은 눈이지 등불이 아니며 눈은 빛깔을
나타낼 수 있을지언정 이렇게 보는 성품은 마음이지 눈이 아니다.”

아난이 비록 다시 이 말을 듣고서 여러 대중들과 함께 아무 말이 없이 잠자코 있었으
나 마음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여래께서 자비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시기를 원하
며 합장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ㅤ

[14] 경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맺음

그때 세존께서 도라면처럼 부드러운 그물 모양의 빛나는 손을 들어 수레바퀴 같은 무
늬가 있는 다섯 손가락을 펴고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도를
이루고 녹야원(鹿野園)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와 거의 사부대중을 위하여 말하기를 ‘일
체 중생이 보리와 아라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모두 객진번뇌(客塵煩惱)로 인하여 그르치
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너희들은 그때에 무엇을 깨달아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느
냐?”
그때 교진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장로(長老)로서 대중 가운데에
서 유독 저만이 ‘알았다’는 이름을 얻은 것은 객진(客塵)이란 두 글자를 깨닫고 부처님의
과업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여정에 들어 잠
을 자거나 밥을 먹다가 밥먹고 잠 자는 일을 마치고는 행장을 꾸려서 머물 여가가 없이
길을 떠나지만 만약 참다운 주인이라면 갈 곳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머
물지 않는 것은 나그네이고 머무는 것은 주인이니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고
이름하겠습니다. 또 비가 개이고 맑은 태양이 하늘에 떠 올라서 햇빛이 틈으로 들어와 밝
게 비치면 허공에 있는 모든 먼지가 보이는데 티끌은 요동하지만 허공은 고요한 것과 같
습니다. 이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고 요동하는 것은 티끌이니 요동
하는 것을 ‘티끌’이라고 정의를 내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에서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간 펴고 폈다간 다시 구부리시
며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무엇을 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여래께서 백 가지 보배로운 수레바퀴 같은 손바닥을 대중 앞
에서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내 손이 대중 앞에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보았다고
하니 그것은 내 손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한 것이
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존께서 대중 앞에서 보배의 손을 폈다 쥐었다 하시므로 제
가 여래의 손이 스스로 폈다 주었다 하심을 본 것이지 저의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어느 것이 움직였고 어느 것이 가만히 있었느냐?” 아난이 대답
하기를 “부처님의 손도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습니다만 제가 보는 것도 오히려 고요하다고
할 것이 없는데 어느 것을 가만히 있지 않았다고 고집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께서 말씀하시되 “그러하니라.” 여래가 손바닥으로부터 한 줄기 보배의 광명을 날려 아
난의 오른쪽에 있게 하니 그때에 아난이 머리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다. 또 한 줄기 빛을
내어 아난의 왼쪽에 있게 하니 아난이 또 머리를 돌려 왼쪽을 보거늘 부처님께서 아난에
게 이르시기를 “네 머리가 지금 무엇 때문에 움직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여래께서 보배의 빛을 내시어 저의 왼쪽, 오른쪽에 보내셨기
때문에 왼쪽과 오른쪽을 차례로 보느라고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님 보배의 빛을 보느라고 머리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고 하니
그것은 네 머리가 움직인 것이냐 아니면 보는 것이 움직인 것이냐?” “세존이시여! 저의 머
리가 저절로 움직인 것이지 저의 보는 성품은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조차 없으니 어찌
움직였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그때에 여래께서 널리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
만약 중생들이 동요하는 것을 대상 물질[塵]이라 하고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을 나그네라 한
다면 너희들이 아난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 뿐 보는 것은 움직이지 않았음을 관찰
하고, 또 너희가 나의 손은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였으되 보는 것은 폈다 쥐었다 함이 없
는 것임을 깨달으라. 어찌하여 지금 너희는 동요하는 것을 몸으로 여기고 동요하는 것으
로 대상인 물질이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생각마다 생겼다 없어졌다 하면서 참
다운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짓을 하느냐? 성품에 참 마음은 잃어버리고 물건을 몸인
줄 알고 있으면서 그 속을 돌고 돌아 스스로 끌려 다님을 취하느냐?”

正本首楞嚴經 卷 2

[1]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함

그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생
각하기를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을 잃어버리고 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
는 그림자같은 일들을 헛되게 인정해오다가 오늘에야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
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아서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실한 것을 나타낸 현재 눈앞에
일어나는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하지도 멸하지도 않는 것의 두 가지 성품에 대하
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 때에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
지 못하였을 적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 주셔야 이
마음의 나고 멸함이 없는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 정기가
새는 자 있어서 그들도 모두 정기가 새는 것을 끊지 못한 자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
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몸이 현재 살아 있으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이 육신이 금강(金剛)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으리라
고 여기느냐?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기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지금 이 육신은 마침내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시기를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느
냐? “세존이시여! 저의 이 무상하게 변하여 없어지는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
니오나 제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 재가 되는 것과 같아서 점점 쉬지 않고 늙어져가고 있으므로 결단코 이 몸
이 언젠가는 다 없어질 것임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대왕아! 그대의 나이는 지금 이미 늙었는데도
얼굴 모습은 동자때와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
결이 윤택하였었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먹어 쇠모
함이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며 머리털을 희어지고 얼굴은 쭈그러
져서 오래가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
겠습니까?”

[2] 참된 것이 있음을 밝힘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니리라.” 대왕이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화해 가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
합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저의 나이 20세 적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10세 때보다 늙
었고, 30세에는 또 20세 때보다 늙었으며, 지금 60에 또 둘을 더 하고 보니 50세 때를
돌이켜 보면 지금보다 훨씬 강장(强壯)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점차로 변해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저락함에 있어 그 사이에 세월이 흘러 변함을 10년씩 한정하
여 말하였습니다만, 만약 다시 저로 하여금 자세히 생각하게 하오면 그 변해감이 어찌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어찌 해마다 변하
였을 뿐이겠습니까? 역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히 생각하면 찰나(刹那)마다 생각마다 머물러 있지 않았
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대왕에게 이르기를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그대가 줄
어 없어질 것을 알았다고 하는데 또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 속에 없어지지 않
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바사닉왕이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사실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부
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리라!
대왕아!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황하강 물을 보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제가 난
지 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갈 적에 그 강을 건넜는
데 그 때에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까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적에 보던 그 물과 열 세 살 때 보던 그 물이 어
떠하더냐?”

대왕이 말하기를 “세살 때와 같아서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 두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달라짐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
파하나니, 그 얼굴은 반드시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
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이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
까? 없습니까?” 대왕이 말하기를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아!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 보는 정기
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 쭈그러진 것이 아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겠지만 쭈그
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
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의 나고 죽음을 받았는데
오히려 저 말가리(末伽梨)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하는고.”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
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기뻐 날뛰면서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
다고 하였다.

[3]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심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에게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기를 “세
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놈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
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 주시옵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나의 모타라(母陀羅)손을 보아라. 바로 되었느
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떤 것을 바로라고 하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여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
면 바로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
꾸로 보는구나.” “그러나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여래의 청정한 법신과 비슷한
종류로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偏知]’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성품이 뒤바뀜[性顚倒]’이라 부른다.

따라서 너는 자세히 살펴 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하
는 것은 어느 곳을 이름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그 때에 아난이 모든 대중들과 더불어 눈을 크게 뜨고 부처님을 보면서 눈을 깜박
거리지도 않은 채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4] 반연하는 것은 성품이 없음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사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바다 조수
와 같은 음성[海潮音]을 내시어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이르시기를 “선남
자들아! 내가 항상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다니는 것과 반
연되는 모든 현상들이 오직 마음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은 참되고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물건인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본래
부터 오묘한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리고 깨달음
속에 혼미한 것만을 인정하는구나?

어두워서 허공이 되어서는 그 허공과 어두움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나니
그 물질이 허망한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은 몸이 되고, 연(緣)이 모여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心性)이라고 하니,
일단 혼미한 것을 마음이라고 생각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으로 거기에 현혹되어 그것이
이 몸둥이 속에 있다고 여기고 그 색신과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大地)에 이
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百千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
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라 하며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너희
들은 곧 미혹한 속에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
이 없다. 그래서 여래께서 가엾은 사람 이라고 말씀하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
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마음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현재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
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 자리라고 인
정하지 못하겠사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가엾게 여기시와 원만한 법음을 베푸시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위없는 최고의 도에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
을 듣나니 그 법도 역시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法性)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가령 어
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
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리
요? 또한 밝은 것과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어째서 그런가 하면 곧 손가락을 달
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에서 깨달을 것이 없기 때문이니 너
또한 그러하니라.

만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
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여정(旅亭)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
버리면 이는 마침내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여정을 맡은 사람은 갈 곳이 없으
므로 여정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
리요?

이것이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 뿐이리요.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
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연 없는 데
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므로 구사리(拘舍離)등이 이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 하나리라. 법의 반연을 떠나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
(心性)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5]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여
래께 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또 네가 나를 보는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은 이 보
는 놈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 二의
달인지라 달 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
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틔여서 둥근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곧 밝게 빛
나고, 달도 없는 한 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져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 틈으로 다
시 통함을 보고 담장 사이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
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라고 맑게 개여 우내가 걷히
면 또 다시 맑음을 보게 되나니라. 아난아! 네가 이 여러가지 변화하는 모양을 살펴
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
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
아가나니, 왜냐하면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니 밝은 것의 근본을 해에 속한다. 그러므
로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
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고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
가며,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고 맑음은 개인 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
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나니라. 그런데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
은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무슨 까닭인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음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것은 차
별이 없나니라. 모든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자연 네가 아니거니와 네게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느냐?

그러니 깨달을 지어다.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
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여래가 가련
하다고 한 것이다.”

[6] 물질에 나아가 결정 선택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겠습
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노니, 지금 네가 정기가
새는 것이 없어진 청정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初禪天)을 보는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閻孚提)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百, 千의 세계를 보며, 시
방의 여래는 티끌처럼 많은 천정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
이 보는 것은 푼촌(分寸)에 지나지 않나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적에 중간에 물과 육지
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보겠는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
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을 가리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
서 나와 남을 분별하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 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것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
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七金山)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
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에 점점 다시 관
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
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똑같
이 너의 청정하게 보는 정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
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으니,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음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만약 보는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네가 또한 나의 보는 성품을 보아야 하리라. 만
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내가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할진대 내가 보지 못할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는 보지 못하느냐?

만약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너를
보아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
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이 네가 보는 것이지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골고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이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7] 결론지어 나타냄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저이지 남이
아닐진대 제가 여래와 함께 사천왕의 수승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日月宮)
을 볼 적에는 그 보는 것이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娑婆國)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
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伽藍)만 보이고 청심호당(淸心戶堂)에서는 다만 처마만 보입
니다. 세존이시여! 그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
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는 그 보
는 것이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
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
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일체의 세상과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
고 여러 가지 사업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것이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을 보는 것과 같나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이는 모난 하늘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
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이 둥근 그릇 속
에서도 그 하늘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 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
난 그릇 속에서 모난 하늘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으니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
지언정 하늘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허공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찌 보는 것을 늘려서 해에 닿게 한 것이겠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것이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어찌 이은 흔
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게 아니니라.

일체의 중생이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로 생각해서 본
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는 바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여래와 같아서 곧 마음이 원만 하
게 밝아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한 개의 털 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이다.”

[8] 꾸짖으셔서 깨닫게 함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현재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것이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함이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것은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
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정한 나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여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
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지금 네가 말한 ‘보는 것이 내 앞에 있습니다’라
고 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나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정기가 이미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
(祇陀林)데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전당(殿堂)을 두루 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고 앞
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
은 허공이니, 이렇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으니, 만일 그 보는
것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는 것이라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
라. 어느 것이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것이라면 이미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느 것
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미세하게 온갖 물상을 구분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
게 보는 근원을 가려내어 나에게 지적하여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여 보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황
하강에까지 이르며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에 있어서 가리키는 것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정기가 새는 것을 끊어버리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聲聞)이거니와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 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말한 것처럼 정밀하게 보는 놈을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것이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네가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숲과
동산, 그리고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
만 반드시 보는 정기가 네가 가리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너는 다시 밝혀 보
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것이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
는 것이 아닌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
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
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
는 것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제가 또 생각하니 이 온갖 물상 중에
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 그러하니라.”

[9] 본체는 하나라는 것을 밝힘

그때에 대중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지 아니한 자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자옵고
멍청하게 이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하며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
직하고 있던 것을 잃은 듯하였다.

여래께서 그들의 정신이 변하여 어리둥절함을 아시고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시기를 “모든 선남자들아! 위없는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
(如如)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 말가리(末伽梨)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의와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
히 생각하여 애모(哀慕)함을 욕되게 하지 말아라.”

그때에 문수사리 법왕자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사 대중 가운데 계시다
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여래께서 밝혀주신 두
가지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이것인지 이것이 아닌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허공과 물질의 형상이 보는 것이라면
응당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것이 아니라면 응당 볼 것도 없어야 할 터
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 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이것
이 옛날보다 선근(善根)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정기가 본래 무엇이길래 그 중
간에 이것과 이것이 아님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이르시기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
스로 머무는 삼마지 가운데 보는 것과 보이는 대상과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것과 그 대상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저것이다’ 할 것이 있겠
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문수인 것과 같아서 또 다른 문수가 문수이
냐? 문수가 아니냐?” 문수가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
수이므로 그러한 또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이
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두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보는 성품의 오묘하고 밝은 것과 허공과 물질도 역시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은 위없는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 마음이거늘 이것
이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것이라 여겨서 마치 제二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보는 것과 그 대상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
혀냄을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하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
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하겠다.”

[10] 거듭 떨쳐버리고 곧바로 보이심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각연(覺緣)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여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
어짐이 아닐진대 선범지(先梵志)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찌기 능가산에서 대혜보살(大慧菩薩)등을 위하여 이 이치를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나니 내가 말한 인연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
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댄 깨닫는 성품이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일체의 허망하게 뒤바뀐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
닌 것 같고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하셔야만
우리들로 하여금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
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자연이
라고 기필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서 자연의 본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것 가운데 무엇을 자(自)라고 하
겠느냐? 이 보는 놈은 밝음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自)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自)라고 한다면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응당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으로 자연이라 생각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질 것
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
가 지금 이것은 인연의 성품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만 마음에 아직까지 분명하
지 못하여 여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
다. 네가 지금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놈은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
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허공
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밝음이나 어두움과 같을 것이다.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
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 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힘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을 보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밝음으로 인해서와 어두움으로
인해서도 허공이나 막힘과 같나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음이 인(因)도 아니며 연
(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으며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
나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가지길래 모든 세간에서 장난삼아 논란하는 명
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야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11] 모양을 여의어야 함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 하시기를 보는 성품
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 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
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을 뜻함입
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는 것을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
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음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움도 보지 못해
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움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음이 없는 것이지
어떻게 봄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
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또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
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이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
는 것은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
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음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음
이 아니며, 어두움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움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
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은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취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놈을 볼 적에 보는
놈은 보는 것이 아니니라.

보는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벗어나서 보는 것으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
희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청정한 실상(實相)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지금 너에게 가르쳐 주겠으니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지치거
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오직 부처님께서 저
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된 현상과 어울려 조화되지 못함을 설
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아니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는 놈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서 큰 지혜의 눈을베푸시어 저희들에게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음을 보여주
소서.”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
려고 하였다.

[12] 허망한 모양을 따로따로 풀이함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엽게 여기시사 큰 총지문(總持門)과 모든
삼매의 오묘한 수행 방법[길]을 다시 말씀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만 힘썼고 사마타의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
어 봄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하나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
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정기가 새는 것이
있는 자들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분별하여
보는 것이 허망하여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
다. 무엇을 두 가지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첫째는 중생의 별업(別業)
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同分)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
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별업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세상 사
람들이 눈이 붉어지는 눈병이 생기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
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보이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
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것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것을 보
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것
의 빛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빛을 이루었거니 저 눈병이 있는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
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것을 떠나서도 또다른 것이 있다면 응당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이 있
는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것의 병으로
인하여 그림자가 되었나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모두가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보는 것은 병이 아니다. 그러니 이것을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
고 할 것이 못되며, 또 그 가운데에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라
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二의 달은 본체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제二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들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
한다거나, 보는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나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것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것의 탓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13] 매듭지어 말씀하심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중간의 육지에 三千개의 섬이 있으니 한 복판에 있
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보면 큰 나라가 二千 三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 두 나라에서 三十, 四十, 五十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서 사는 중생은 일체의 상서롭지 못한 세계를
봄에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暈適], 해의 귀걸이, 혜성[彗], 패성, 흐르는 별똥[飛流], 부이(負珥),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의 사람들만 볼지언정 저쪽
나라의 중생들은 본래 보지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등불주위에 둥근 그
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자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것의 피로로 생긴 것이지 빛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자는 마침내 보는 잘못은 없나니라.

예컨댄 네가 오늘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놈이 병들므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놈과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 앞의 대상처럼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고 분별하는 것으로 대상
인 물체를 보는 눈병이다. 그러니 깨닫고 보는 것은 눈병이겠지만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눈병이 아니리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각[性覺]의 밝은 근본은 눈병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는 사실 보는 놈을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상의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놈의 눈병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놈이 정밀하고 참된 이
유는 성품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놈이라고 이름하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것으로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로 들어 비유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으며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가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은 부분의 허망하게 보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 보는 것이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
부터 보는 놈이 허망함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閻浮提) 三千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정기
가 새는 것이 있는 모든 나라들[有漏國]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깨닫
고 분별하는 새는 것이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여 허망한 병
으로 인하여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나니라.

[14] 요체를 들어 결론지어 대답함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여러 가지 나고 죽
는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원만한 보리의 나고 죽지 아니하는 성품을 이루어 청정한
본래의 마음에 본래의 깨달음이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本覺)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닌 것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서 네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모든 인연의 성품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혹하
기를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만약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것이 섞였느냐? 보는 것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
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놈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놈이라면 어떻게 보는
놈을 본다고 하겠느냐? 보는 놈은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이었다면 저 성품
이 밝다는 이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조
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나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네가 지금 오묘하고 청정하게 보는 정기는 밝은 것과 어울린 것이냐, 어두
운 것과 어울린 것이냐, 통한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막힌 것과 어울린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맑은 모양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저 보
는 놈이 어두움과는 어울리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
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
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한 것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도 역시 이러하니라.

[15] 다른 것들도 같음을 밝힘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저희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이 모든 상대되는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으로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이 화합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하게 보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조
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조화를 이룬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음과 조화를 이룬 것이라면 보는 놈과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놈이냐? 보는
놈과 밝은 것이 어디로부터 경계가 되는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놈이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또 오묘하게 보
는 정기가 화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놈과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닿지 않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가지 막힘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너는
아직도 일체의 부질없는 물질인 모든 허깨비 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곳을 따라 생기
며 곳을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망한 허깨비 같은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
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
(六入)과 십이처(什二處)와 십팔계(十八界)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
며 인연이 흩어져서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
이 본래는 여래장(如來藏)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
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오묘하고 참다웁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
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나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五陰)이 본래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
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맑은 하늘을 볼 적엔 오직 하나
의 맑은 하늘일 뿐이어서 멀리 아무 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없이 눈동자를 움직이
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가 생기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광화(狂華)가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모양이 없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그러
하니라.

[16] 허망한 것인 줄 깨달으면 곧 참됨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
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쫓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
이니 이 헛보이는 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인데, 만
약 보는 것이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 마땅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것이 없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을 가리웠으므로 돌아
올 적에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 꽃을 볼 적에 눈이 응당 가리움이 없
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이라야 청정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
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
닭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그럽거나 미끄
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가지 모양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아라. 수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 여러가지 허깨비같은 허망한 접촉이 허공에서 부터 온 것도 아니며 손바
닥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
닥에 접촉 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아니하였느냐? 응당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하기를 기다
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
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응당 들어갈 때의 자취를 느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
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 것인데 어
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수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매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
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지는 듯하니 마땅히 알아라. 상(想
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신 이야기가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뉨 입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
니라.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
야 할 것이어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쫓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기다리겠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이 침이
어째서 귀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상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허공에 끝
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
는 것이라면 이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
와 소유(所有)의 모양이 지금 마땅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
이라면 맑은 때에는 응당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행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
득히 채워가지고 천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알
아라. 식음(識陰)도 역시 그러하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오는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
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
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식음이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
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正本首楞嚴經 卷 3

[1] 육입에 나아가 여래장을 밝힘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육입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
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다른 헛보이는 꽃이 보일 것이니 그 눈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허망한 경계로 인하여 보는 것이 생겨 그 중간에 있으면서
이 물질의 현상[色像]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보고 깨닫는 성품[見覺性]’이라고 하니 그
보는 놈의 밝음과 어두움의 두 가지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본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
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보아 깨닫는 성품은 밝고 어두운 데에서 온 것이 아
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밝은
데로부터 왔다면 어두워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어두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어두운 데로부터 왔다면 밝아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만약 눈에서 생긴 것일진댄 반드시 밝음과 어두움이 없으면 이렇게 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다. 또 허공이 스스로 볼 것이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眼入]은 허망한 것
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갑자기 귀를 막아서 그것이 오래되어 피로해
지면 머리 속에서 또다른 허망한 소리가 들릴 것이니 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
로 보다가 피로해져 생긴 현상이니라.

움직이는 것과 고요한 것, 이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듣는 것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소리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들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듣는 놈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듣는다는 그 자체가 없을 것
이다.

[2] 허망한 것은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들어 깨닫은 성품은 움직임과 고요함에서 온 것이 아니
며 귀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움직임에
서 왔다면 고요해지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고요함을 듣지 할 것이고, 만약 고
요한 데서 왔다면 움직이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움직임을 듣지 못할 것이고, 만
약 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움직임과 고요함이 없으면 이러한 듣는 정기가 본래 자
성이 없을 것이고, 만약 허공을 좇아 나온 것이라면 듣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거든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인데 너희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
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로 들어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耳入]은 허망한 것이
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코로 숨을 급하게 들이쉬어서 오래 들이쉬고 있으면 피로
가 생겨서 코 속에 찬 촉감이 있음을 느낄 것이니, 그 촉감으로 인하여 트이고 막힘과 허
하고 실한 것을 분별하며, 그와 같이 모든 향기와 구린내까지도 맡는 것이니 코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트인 것과 막힌 것, 이 두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냄새 맡음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
서 모든 냄새를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맡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냄새를 맡는 놈
이 트이고 막힘의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냄새라는 그 자체가 없을 것이
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맡아 깨닫는 성품은 트이고 막힌데서 온 것이 아니며
코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만약 트인데서 왔
을진대 막히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막힘을 느끼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
데서 왔을진대 트이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응당 트임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만약
코에서 생긴 것일진대 반드시 트임과 막힘이 없으면 그와같이 맡는 정기가 본래자성이 없
을 것이고,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일진댄 냄새를 맡는 놈이 있으면 자성을 이루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핥아서 오래오래 핥다가 피로가 생기면 그 사
람이 만약 병이 있으면 쓴 맛을 느낄 것이고, 병이 없는 사람이면 약간 단 촉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달고 쓴 것으로 인하여 저 혀의 의식이 드러날 것이고, 핥지 않을 적에는 담
담한 성품이 항상 있으리니 혀와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의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맛을 봄이 생겨
그것이 중간에 있으면서 이 맛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맛보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
니, 그 맛을 보는 놈이 달거나 쓴 맛과 담담한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 맛이
라는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3] 참된 것에 의해 허망함을 일으킴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맛보아 깨닫는 성품은 달고 쓴데서 온 것이 아니며 담
담한 맛에서 온 것도 아니며 혀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왜 그
런가 하면 만약 달고 쓴데서 왔을진대 담담하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담담한
맛을 알 것이며, 만약 담담한데서 왔을진대 달거나 쓰면 곧 따라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
게 그 달고 쓴 맛을 알 것이며, 만약 혀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달거나 쓰거나 담담함
이 없으면 이렇게 맛보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이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맛을 보는 놈이 있으면 자성이 이루어지리니 곧 허공이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
로 맛볼 것이니 그것이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로 맛보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舌入]은 허망한 것
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찬 손으로 뜨거운 손을 잡았을 적에 만약 찬 기운이 많으면
뜨거운 손이 차가워질 것이고 만약 더운 기운이 많으면 찬 손이 뜨거워지리니, 이와 같이
합했을 때 깨닫는 촉감은 서로 떨어져도 느낌이 남아 있나니 교섭하는 세력이 만일 이루
어진다면 접촉으로 인한 피로 때문일 것이니 몸과 피로는 다같은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
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떨어지고 합하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촉감이 생겨 중간에 있으면서 이 촉
감을 흡수하여 들이는 것을 ‘느껴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느낌이 떨어지고 합하는
것과 배반하고 따르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여의면 마침내는 느끼는 그 자체가 없으
리나.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느껴 깨닫는 성품은 본래 떨어지거나 합해진데서 온
것이 아니고 어긋나거나 따르는데서 온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긴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떨어지는 데서 온 것이라면 합하면 곧 따라서 없
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합하는 것을 느끼며, 만약 합하는 데서 온 것이라면 떨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떨어짐을 느끼겠느냐? 어긋남과 따르는 두 가지 현상도
역시 그러한 것이며, 만약 몸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떨어짐과 합함과 어긋남과 따르
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느끼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
라면 느낌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느
끼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의 접촉으로 인식하는 것[身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4] 십이처에 나가 여래장을 나타냄

아난아! 가령 어떤 사람이 피로하면 잠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 대상을 보면 기
억하며, 그 기억이 사라지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뒤바뀐 생겨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
어지는 것이니, 습관을 흡수하여 들여서 그것이 가운데로 돌아가되 서로 뛰어넘지 아니함
을 ‘생각으로 인식하는 근원’이라고 하나니 생각과 피로는 모두다 보리로서 똑바로 보다
가 피로해져서 생긴 현상이니라.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
(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
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
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알아 깨닫는 성품은 생기거나 없어지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깨거나 잠자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몸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나오
는 것도 아니니 왜 그런가 하면 만약 생기는데서 온 것이라면 없어지면 곧 따라서 없어져
야 하리니 누구로 하여금 없어짐을 알게 하며, 만약 없어지는데서 온 것이라면 생기면
곧 따라서 없어져야 하리니 어떻게 생기는 것을 알겠느냐? 깨고 잠자고 하는 두 가지 형
상도 역시 그러하다. 만약 생각에서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생기고 없어지고 깨고 잠자는
것이 없으면 이와 같이 아는 정기가 본래 자성이 없으며, 만약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지각이 있으면 자성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도 아닐 것이려든 또 허공이 스스로 지각하
는 것이거니 너의 입(入)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으로 생각하여 인식하는 것[意入]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또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眞如)의 성품
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네가 다시 기타림 숲과 모든 샘물과 못들을 보아라.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런
것들은 물질의 모양이 눈으로 보는 작용을 생기게 한다고 여기느냐 눈이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고 여기느냐?

아난아! 만약 눈이 색질의 모양을 생기게 하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색질의 모
양이 아니므로 색질의 성품이 응당 사라질 것이다. 색질의 성품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모든 것이 없어진다. 색질의 모양이 이미 없어지면 누가 허공의 본질(本質)을 밝히겠느
냐? 허공도 역시 그러하니라.

[5] 감각기관에 의거하여 밝힘

만약 물질이 눈으로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라면 허공을 볼 적에는 물질의 모양이 아
니므로 눈으로 보는 것이 곧 사라져 버리리니 사라져 없어지면 모두가 없어질 것인데
무엇이 허공인지 물질인지 밝히겠느냐?

아난아! 너는 다시 이 기타원 가운데서 밥이 마련되면 북을 치고 대중을 모을 적엔 종
을 쳐서 그 북과 종소리가 앞뒤로 서로 연속됨을 들어 보아라.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런 것들은 소리가 귀가에 온다고 생각되느냐? 아니면 귀가 소리 있는 곳으로 간다고 생
각되느냐?

아난아! 만약 그 소리가 귀 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내가 시라벌성에서 걸식을 할 적에
기타림에는 내가 없는 것처럼 그 소리가 반드시 아난의 귀 가에 온 것이라면 목련과 가
섭은 응당 함께 듣지 못해야 할 것이어늘 어찌 그 가운데 千二백 五十명의 사문들이
한꺼번에 종소리를 듣고 밥 먹는 곳으로 모두 모이느냐?

만약 네 귀가 소리나는 곳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왔을 적에는 시라벌성엔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북소리를 들을 적엔 그 귀가 이미 북치는 곳으로 갔으면 종소리
가 함께 나더라도 응당 모두 듣지 못할 것이거든 더구나 어떻게 그 가운데 코끼리, 말,
소, 염소 등 갖가지 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더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듣는 것과 소리는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듣는 곳과 소
리나는 곳의 두 처소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이 향로에서 나는 전단향 냄새를 맡아 보아라. 그 향을 만약 한 수
(銖)만 태우면 시라벌성 四十리 안에서 동시에 그 향기를 맡을 것이다. 네 생각엔 어떠하
냐? 그 향기는 전단향 나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코에서 생겼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허공에서 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그 향기가 너의 코에서 생긴 것이라서 코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마땅히 코에
서 나와야 할 것인데 코가 전단이 아니거늘 어떻게 코 속에 전단의 향기가 있다고 하겠느
냐? 네가 향기를 맡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코 속에서 향기가
나온다면 냄새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허공의 성
품은 항상한 것이므로 향기도 항상 있어야 할 것인데 어째서 향로에다 이 나무를 태워야
만 향기가 생긴다더냐?

만약 나무에서 생긴 것이라면 그 향기의 본질은 태우므로 인하여 연기가 되었으므로 코
가 냄새를 맡을 적에는 응당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그 연기가 공중으로 올라가
멀리 퍼지기도 전에 四十리 안에서 어떻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향기와 코와 냄새를 맡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냄새
맡는 곳과 향기나는 곳의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
품이니라.

[6] 처소는 실제가 없음을 밝힘

아난아! 네가 매일 두 때씩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가지고서 이따금 유병(油餠)이나 밀
반(蜜飯)을 만나게 되면 최고의 맛이라고 하나니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 맛은 허공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음식에서 생긴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온 것이라면 너의 입 속에는 혀가 하나 뿐이니
그 혀는 조금전에 이미 단 맛이 되었으므로 흑석밀(黑石蜜)을 먹게 되더라도 응당 달라짐
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달라지지 않는다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약 달라
진다면 혀가 여러 개가 아닌데 어떻게 여러가지 맛을 한 개의 혀로서 알겠느냐?

만약 음식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음식은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스스로 알겠느
냐? 또 음식이 스스로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을 것이니 너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맛을 안다고 하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보아라. 무슨 맛이더냐? 만약 허공이
짠 맛이라면 이미 너의 혀를 짜게 하였으므로 네 얼굴도 짜야 하리니 그렇다면 이 세계
의 사람들은 바다의 고기와 같아서 늘 짠 것을 받아왔으므로 담담함을 알지 못할 것이
다. 만약 담담함을 알지 못한다면 역시 짠 것도 느끼지 못해서 반드시 아는 것이 없을 것
이니 어떻게 맛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이 알아야 한다. 맛과 혀와 맛을 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 맛보는 것과
맛,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새벽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만져서 느
끼는 것은 어느 것이 감촉을 느낀다고 생각하느냐? 느끼는 것이 손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머리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만약 손에 있는 것이라면 머리는 느낌이 없어야 하리니 어떻게 감촉을 느낀다더냐?

만약 머리에 있을 것 같으면 손은 쓸모가 없으리니 어떻게 접촉한다고 하겠느냐? 만
약 각각 있는 것이라면 너 아난은 응당 두 몸둥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머리와 손
이 한 번의 접촉으로 생기는 것이라면 곧 손과 머리가 한 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만약 한
몸 이라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만약 두 몸이라면 감촉이 어디에 있단 말이
냐? 손에 있다면 머리는 느끼지 못해야 할 것이고, 머리에 있다면 손은 몰라야 할 것이니
허공이 너와 더불어 감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촉감을 느끼는 것과 몸은 모두가 처소가 없어서 몸과 감
촉, 이 두 가지는 허망한 것이라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7] 십팔계에 의하여 여래장을 밝힘

아난아! 네가 항상 생각속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 그리고 무기성(無記性)
의 세 가지 성품이 법칙(法則)을 생성(生成)하나니, 이 법칙은 마음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냐 아니면 마음을 떠나서 별도로 처소가 있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마음에 의한 것이라면 법(法)은 대상이 아니므로 마음의 반연하는 바가 아
니거니 어떻게 처소를 이루겠느냐?

만약 마음을 떠나서 따로이 방소가 있는篤“�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
가 없다고 하나이다.”

[7] 항상하다는 것을 징험함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
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 저랬다 했다
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
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
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
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
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
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
에게 말하기를 ‘조금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사람은 잠결에 어
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
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
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돌
아 보아 아는 경계를 생기게 한다고 하는 그 세 가지가 모두 없는 것이어서, 눈과 빛
그리고 빛의 경계, 이 세가지가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8] 귀와 소리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이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로 들어 아는 것이 생긴
다’고 하나 그 의식은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
냐? 아니면 소리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소리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현상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귀가 앎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안다는 것
도 오히려 성립됨이 없을 터이니 인식이 어떤 모양이겠느냐? 만약 귀로 듣는 것을 취한
다면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듣는 것이 성립될 수 없으리니 어떻게 귀와 형상이 물
질과 감촉이 섞인 것을 가지고 인식의 경계라고 하겠느냐? 귀로 인식하는 경계가 다시
어디를 따라 성립되겠느냐?

만약 소리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귀가 인식하는 것은 소리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듣
는 것과는 직접 연관이 없을 것이니 듣는 그 자체가 없다면 소리의 소재가 없을 것이다.
저 인식하는 것이 소리를 좇아 생기고 소리는 듣는 것으로 인하여 소리의 모양이 생긴다
고 인정한다면 들을 적에 응당 그 인식하는 것을 들어야 하며 듣지 못한다면 귀가 인식
하는 경계가 아니리라.

듣는 것은 소리와 같아서 의식이 이미 들음을 당하였거니, 또다시 무엇이 의식을 듣는
것인 줄 알겠느냐? 만약 앎이 없다면 마침내 풀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이어서 중간의 경계를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니 귀가 인식하는 경
계가 중간 위치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어디로부터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서 귀가 인식하는 경계를 생기
게 한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귀와 소리 그리고 소리의 경계, 이 세 가
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9] 코와 향기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
는데 그 의식은 코로 인하여 생긴 것 이므로 코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
니면 향기로 인하여 생긴 것이므로 향기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코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마음 속에 그 무엇을 코라고 하겠느냐?
살로 된 한 쌍의 오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느냐? 냄새를 맡아 아는 움직이는 성품이라고 생
각하느냐? 만약 살로된 모양이라고 여긴다면 살로 된 바탕은 곧 몸이고 몸이 느끼는 것
은 곧 감촉이니 몸이라고 하면 코는 아니고 감촉이라고 하면 이는 곧 감촉의 대상이다.
코도 오히려 이름할 수 없거니 어떻게 경계를 이루겠느냐?

만약 냄새를 맡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진댄 또 네 마음 속에 무엇으로 안다고 생각하
느냐? 살이 안다고 한다면 살이 아는 것은 본래가 감촉이지 코가 아니며 허공이 안다
고 한다면 허공은 스스로 아는 것이라서 살은 응당 깨닫지 못할 것이니 그렇다면 이는
허공이 곧 너이고 네 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아난은 응당 존재할 수 없을 것
이다. 향기가 안다고 생각한다면 아는 그 자체가 향기에 속하는데 너와 무슨 상관이 있
겠느냐? 만약 향기와 구린 냄새가 반드시 네 코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그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 냄새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오지 않을 적에 네가 네 코를 맡아 보아라. 향기로우냐 구리냐?

구린 냄새는 향기가 아니며 향기는 응당 구리지 않으리니 만약 향기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 한 사람이 응당 두 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도 물을 적에도 두 아난이 있으리니 어느 것이 너의 몸이더냐?

만약 코가 하나라면 향기와 구린내 두 가지가 아니라 구린내가 이미 향기가 되며 향기
가 다시 구린내가 되어서 두 성분이 있지 아니하리니 경계가 무엇으로 인하여 성립되겠느
냐? 만약 향기에 인하여 생긴다면 그 인식은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니 이는 마치 눈이
다른 것은 볼 수 있으면서도 눈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향기로 인하여 있는 것이므로
응당 향기를 알지 못하리니 안다면 향기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한다면 이는 코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향기가 앎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며 향기의 경계가 성립되지 못하고 인식하는 것이
향기를 느끼지 못하면 인식하는 경계가 향기로 해서 이루어짐이 아니리라.

이미 중간이 없으면 안팎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저 냄새맡는 성품이 마침내 허망한 것
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서 코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므로 코와 향기 그리고 향기의 경계, 이 세 가
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0] 혀와 맛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바와 같아서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
니 그 혀의 인식은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혀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서 맛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혀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모든 세간의 감자와 오매와 황연과 소금과
세신과 생강, 계피가 모두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네 혀를 맛보아라. 달더냐 쓰더냐?

만약 혀의 성품이 쓰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겠느냐? 혀가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이
어니 무엇이 알아 깨닫겠느냐? 혀의 성품이 쓴 것이 아니라면 맛이 저절로 생기지 않
을 터이니 어떻게 경계가 이루어지겠느냐?

만약 맛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인식하는 걋 스스로 맛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는 곧 혀와 같아서 응당 스스로 맛보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맛인지 맛이 아닌지를 알겠
느냐? 또 온갖 맛이 한 물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맛이 여러 가지에서 생기므로 그 인
식하는 것도 응당 여러 개의 몸이 될 것이며, 인식하는 본체가 만약 하나이고 그 체는 반
드시 맛에서 생기는 것이라면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맛의 화합된 것이거나 함께 생기
는 것과 여러 가지로 변하여 달라진 것이 함께 동일 맛이 되어서 응당 분별이 없을 것이
다. 분별이 이미 없으면 인식한다고 할 수 없거니 어떻게 혀가 맛보아서 인식하는 경계라
고 하겠느냐? 허공이 너의 마음에 인식을 생기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혀와 맛이 화합하면 곧 그 가운데는 본래 자성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경계가 생기겠느
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서 혀가 인식하는 경계가 생
긴다고 하는 세 가지 처소는 모두 없어서 혀와 맛 그리고 혀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1] 몸과 접촉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이 ‘몸과 접촉이 인연이 되어서 몸의 인식이 생긴다’고 하
나니 그 인식은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몸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
냐? 아니면 접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접촉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느
냐?

아난아! 만약 몸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합해지고 나눠지는 두 가지를 깨
닫게[覺觀]할 인연이 없으리니 몸이 무엇을 알겠느냐?

만약 접촉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반드시 너의 몸이 없어야 하리니 어찌 몸도 아닌
것이 합하고 나뉘어짐을 알겠느냐?

아난아! 물질이 접촉하여도 알지 못하고 몸이라야 접촉이 있음을 아나니 몸을 안다면
곧 그것은 접촉하는 놈이고 접촉함을 안다면 곧 그것이 몸이니, 그렇다면 곧 접촉하는 놈
이라면 몸이 아니고 몸이라면 접촉하는 놈은 아니다. 몸과 접촉하는 놈이 두 가지는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이다.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의 성품이 되고 몸에서 떠나면 곧 허공과
같은 모양이므로 안과 밖이 이루어지지 않거니 중간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중간이 성립
되지 아니하면 안과 밖의 성격이 빌 것인데 너에게 인식하는 것이 생긴다고 한들 어
데를 좇아 경계가 성립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과 접촉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서 몸과 인식의 경계
가 생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는 것이어서 몸과 접촉하는 것 그리고 몸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2] 생각과 법의 경계

아난아! 네가 밝힌 것과 같아서 ‘뜻과 법진(法塵)이 인연이 되어서 의식(意識)이 생긴다
‘고 하는데, 그 의식은 뜻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뜻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생
각하느냐? 아니면 법진(法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서 법진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
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뜻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네 의중(意中)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너의 뜻을 나타나게 하리니 만약 앞의 법진(法塵)이 없으면 뜻이 생길 곳이 없을
것이다. 대상을 여의고서는 형상이 없는 것이거니 의식을 어디다 쓰겠느냐?

또 너는 의식하는 마음과 모든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과 겸하여 분명하게 분별하는 성품
이 같다고 생각하느냐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뜻과 같으면 그것이 곧 뜻일 터이니 어떻게
생긴 것이며 뜻과 다르면 같지 아니하므로 응당 인식하는 것이 없어야 하리니, 만약 인
식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뜻이 생긴다고 하겠으며, 만약 인식할 것이 있다면 어떻게 의식
(意識)이라고 하겠느냐? 같거나 다르거나 한 두 성품이 성립됨이 없으니 경계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법진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가지 대상을 벗어나지
못하나니 너는 빛, 소리, 향기, 맛, 접촉을 살펴 보아라. 모양이 분명하여 다섯 가지 감
각기관을 상대할지언정 뜻의 간섭을 받는 것은 아니니 너의 의식이 결정코 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너는 지금 자세히 보아라. ‘법진’이라는 그 법은 어떤 모양이더냐?
만약 밝고 어둡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통하고 막혔거니 그대로 있고 변하거나 합하
고 떠나거나 함을 벗어나면 이 여러 가지 모양을 뛰어 넘고서는 마침내 얻을 것이 없으
리니 생긴다면 물질이나 허공 등의 모든 법(法)이 생겨날 것이고 없어진다면 물질이나 허
공 등의 모든 법이 없어지느니라.

인연하는 것이 이미 없거니 인연으로 해서 의식이 생기는 것이 어떤 형상이 되겠느냐?
모양이 없으면 경계가 어떻게 생기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과 법진이 인연이 되어서 뜻이 인식하는 경계가 생
긴다고 하는 세 가지는 모두 없어서 뜻과 법진 그리고 뜻의 경계, 이 세 가지는 본래
인연이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13] 아난이 발하여 일으키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늘 화합과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
를 ‘일체 세간에 갖가지 변화가 모두 네 가지 원소의 화합으로 인하여 드러난다’고 하셨는
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 두 가지 다 아니라고 배척하셨습니까? 제가 지금 그
뜻이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시어 중생들에게 중도의
또렷한 이치를 보이시와 장난같은 논리에 빠짐이 없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에 세존이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앞에서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모든
소승법(小乘法)을 싫어해서 발심하여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성실하게 탐구하므로 내가 지
금 너에게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세간의 장난같은 논리인
망상의 인연에 스스로 얽매이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다고는 하나 마치 약을 말하는 하
는 사람이 참다운 약이 앞에 있는데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여래가 진실
로 너를 가련하다고 하신 것이니라.”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내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해서 열어 보이며 또한 장래에
대승을 닦을 자들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겠다.

아난이 잠자코 부처님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들었다. 아난아! 네 말과 같아서 ‘네 가지
원소[四大]가 화합하여 세간의 갖가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니, 아난아! 만약 저 원소
[大]의 성품 자체가 화합이 아니라면 모든 원소와 섞일 수 없음이 마치 허공의 모든 물질
이 화합할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약 화합할 수 있다면 변화함과 같아서 처음과 끝이 서
로 이루어지며 나고 없어짐이 서로 이어져서 났다가는 죽고 죽었다가는 나며 나고 죽고
죽음이 마치 화륜(火輪)이 도는 것과 같아서 쉼이 없으리라.

아난아! 마치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얼음이 다시 물이 되는 것과 같나니라.

[14] 흙이라는 원소

네가 땅의 성품을 살펴 보아라. 큰 것은 큰 땅덩이가 되고 작은 것은 미세한 먼지가
되나니, 인허진(隣虛塵)에 이르러서는 아주 지극히 작은 색변제상(色邊際相 : 지금의 분
자)을 일곱 등분으로 쪼개어서 이루어진 것이니 다시 인허진을 쪼갠다고 한들 어찌 참다
운 허공의 성품이야 되겠느냐? 아난아! 만약 저 지극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
다면 허공도 물질의 모양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네가 지금 ‘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에 모든 변화하는 현상이 생기지 않느냐’고 물었으니
너는 우선 이 하나의 지극히 작은 먼지를 보아라. 몇 개의 허공이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
이냐?

응당 지극히 작은 먼지가 합해져서 지극히 작은 먼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지극
히 작은 먼지를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얼마나 되는 물질이 합해서 허공이 되었겠느냐?

만약 물질이 합해졌을 경우 물질이 합해진 것이지 허공은 아니며 만약 허공이 합해졌을
경우 허공이 합해진 것이지 물질은 아니니, 물질은 오히려 쪼갤 수가 있지만 허공이야 어
떻게 합할 수가 있겠느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
공인 참다운 물좇 청정하고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이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 정도에 응하여 업보대로 나타나거늘 세간 사람들은 지식이 없어서 인연과
자연의 성품이라고 픽ㅗ構 있으니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므로
다만 말이 있을 뿐이지 실제 이치는 전연 없는 것이니라.

[15] 불이라는 원소

아난아! 불이라는 원소[火大]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붙어야만 하나니 너
는 이 성 안에 밥을 먹지 아니한 집을 보아라. 밥을 지으려고 할 적에 손에 양수(陽燧)를
들고 햇볕 앞에서 불을 구하나니 아난아! 화합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내가 너희들
一千二百 五十비구들과 지금 한 무리가 된 것과 마찬가지니 그 무리는 비록 하나이나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다르며 모두 태어난 씨족과 그 이름이 따로 있으니 사리불은
바라문 종족이고 우루빈나는 가섭바(迦葉波)종족이고 그리고 아난은 구담(瞿曇)의 종성인
것과 같나니라.

아난아! 만약 불의 성품이 화합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저 손이 거울을 잡고 햇
빛에서 불을 구할 적에 그 불은 거울 속에서 나오는 것이냐 쑥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니
면 해에서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해에서 나왔다면 자연 네 손에 있는 쑥을 태울
적에 거쳐 오는 곳의 숲과 나무가 모두 타야 할 것이며, 만약 거울에서 나온 것이라면
거울에서 나와 쑥을 태울 수 있는 것인데 거울은 어찌하여 녹지 않느냐? 네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뜨겁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녹겠느냐? 만약 쑥에서 생긴 것이라면 어
째서 해와 거울의 빛이 서로 닿은 다음에야 불이 생기느냐?

너는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들려 있고 해는 하늘에서 오며 쑥은 땅에서 난 것
인데 불은 어느 곳으로부터 여기에 온 것이냐? 해와 거울이 거리가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그렇다고 불꽃이 나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불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
인 참다운 불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 퍼져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
을 따라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
들이 한 곳에서 거울을 들면 한 곳에 불이 생기고 우주에 골고루 들고 있으면 온 세상
에 가득하게 일어날 것이다. 온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
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생각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6] 물이라는 원소

아난아! 물의 성품은 일정하지 않아서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함이 없나니라. 시라
벌성에 가비라(迦毘羅)신선과 작가라(斫迦羅)신선과 발두마(鉢頭摩)와 하살다(訶薩多)등의
환술사 들이 달[太陰]의 정기를 구하여 그것으로 환술의 약을 화합할 적에 그 환술사들
의 달밝은 밤중에 손에 방저(方諸)를 들고 달 속의 물을 받는데 그 물은 구슬 속에서 나
온 것이냐 공중에서 저절로 생긴 것이냐 아니면 달에서 온 것이냐?

아난아! 만약 달에서 온 것이라면 오히려 먼 곳에 구슬로 하여금 물이 생기게 할 수 있
는 것이거니 그렇다면 경과하는 곳의 숲과 나무가 다 물이 흘러야 하리니 물이 흐른다
면 어찌하여 방저(方諸)에서 생기기를 기다릴 것이며 흐르지 않는다면 물이 달에서 오
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약 구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 구슬 속에 항상 물이 흐르리니 어찌하여 밤중에
밝은 달빛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의 성품이 변두리가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한계가 없어서 인간으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다함께 물에 잠길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물과 육지와 허공의 구별이 있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떠 있고 구슬은 손에 들려 있고 구슬의 물을 받
는 쟁반은 본래 사람이 설치해 놓은 것이니 물은 어디로부터 여기에 흐르느냐? 달과 구
슬은 거리가 서로 멀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오는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기
지는 아니할 것이다.

너는 아직도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물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
공인 참다운 물이 청정한 본래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한 곳에서 구슬을 잡으면 한 곳에 물이 나오고 온
우주에서 두루 잡으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긴다. 세상에 가득하게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고 있으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
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7] 바람이라는 원소

아난아! 바람의 성품은 실체가 없어서 움직이고 고요함이 일정하지 아니하다. 네가 옷
깃을 여미고 대중에게 들어갈 적에 가사 자락이 펄럭여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미치면
곧 가벼운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 스치리니 그 바람은 가사에서 나오느냐 허공에서 생
겼느냐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겼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네 옷이 펄럭이지 아니
하였을 적에는 어떤 연고로 바람이 스치지 않느냐?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이므로 바
람도 마땅히 항상 있어야 할 것이며 바람이 없을 적에는 허공이 마땅히 없어져야 할 것
이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것은 알 수가 있지만 허공이 없어지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만약 생기거나 없어짐이 있다면 허공이라고 이름하지 못할 것이고 허공이라고 이름한다면
어찌하여 바람이 나오겠느냐?

만약 바람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마땅히 네게로 불어와야 할 것인데 네가 옷을 여밀적에 어찌하여 바람이 꺼꾸
로 부느냐?

너는 자세히 보아라. 옷을 여미는 것은 너에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 속해 있으며 허
공은 고요하여 요동하지 않는데 바람은 어느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것이냐? 바람과 허공
은 성품이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화합이 아니니 바람이 어디서부터 온 데가 없는데
저절로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니라.

너는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속에 성품이 바람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
공인 참다운 바람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해서 중생들의 마음으
로부터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아난아! 만일 너 한 사람이 의복을 약간 펄럭이
면 가벼운 바람이 나오고 우주에 골고루 펄럭거리면 우주에 가득하게 생기나니 세상에
골고루 생기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 나타나거늘 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또는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克건
構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는 것이다.

[18] 보는 원소

아난아! 보고 깨닫는 것이 앎이 없어서 물질과 허공으로 인하여 생기나니 네가 지금
기타림에 있을 적에 아침에는 밝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적에 환하고 그믐에는 어두운데 그 밝고 어두운 것들을 보는 것으로 인하여 분석하나니,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형상과 아울러 큰 허공과 똑같이 한 덩어리이냐 한 덩어리가 아니
냐?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아난아! 그 보는 것이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큰 허공으로 더불어 본래 한 덩어리라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실체가 서로 없어서 어두울 적엔 밝음이 없어지고 밝을 적엔 어두움
이 없어지리라.

만약 어둠과 한 덩어리라면 밝은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며 반드시 밝
음과 한 덩어리라면 어두울 적에는 마땅히 보는 놈이 없어질 것이다. 없어지면 어떻게 밝
음과 어두움을 보겠느냐? 만약 밝음과 어두움은 다르다고 할지언정 보는 놈은 생기고 없
어짐이 없을 것인데 한 덩어리가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이와 같이 보는 정기가 밝음과 어둠으로 한 덩어리가 아니라면 너는 밝음과 어
둠 그리고 큰 허공을 여의고서 보는 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어떤 모양이겠느냐?
밝음을 여의고 어두움을 여의며 그리고 허공을 여의면 보는 놈은 본래 거북의 털이나 토
끼 뿔과 같을 것이니 밝음과 어두움 그리고 허공, 이 세 가지가 다 다르다면 무엇으로
인하여 보는 놈이 성립되겠느냐?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배치되는데 어떻게 같다고 하겠으며 세 가지를 다 여의면 본래
없는데 원래 없는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하겠으며, 허공을 보는 놈을 나눈다면 본래 한계
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하겠으며, 어두움도 보고 밝음도 보아서 보는 성품이 변하
여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시 자세하게 살펴 보아라. 밝음은 태양으로부터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
며 통함은 허공에 속하고 막힘은 대지(大地)로 돌아간다. 이와 같아서 보는 정기는 어디로
인하여 생기느냐?

보는 것은 깨달음이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어서 화합이 아니니 보는 정기가 어디서부터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니라. 오묘하게 보고 듣고 아는 것이 그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
하여 본래 동요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변두리가 없고 동요하지 않는 허공
과 동요하는 흙, 물, 불, 바람을 아울러 여섯 가지 원소라고 이름하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성품이 잠겨 빠져서 네가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생기더냐
없어지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기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냐 같음도 다름도 아니냐?

너는 전혀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봄이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 정도에 따라 응하나니, 이는 마치 하나의 보는 놈이 우주를 두루보는 것
처럼 듣는 놈, 냄새맡는 놈, 맛보는 놈, 접촉하는 놈, 그리고 깨달아 아는 놈이 오묘한
덕이 밝아서 우주에 두루하고 시방에 원만하거니 어찌 장소가 있겠느냐? 업보를 따라나
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
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별하고 헤아리는 것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19] 의식이라는 원소

아난아! 의식의 성품은 근원이 없어서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그 대상으로 인하여 허
망하게 생기나니라.

네가 지금 이 모임의 성스러운 대중들을 두루 살필 적에 눈으로써 차례로 둘러보는데
그 눈이 둘러보는 것은 다만 맑은 거울과 같아서 별달리 분석할 것이 없겠지만 너의 의
식은 속에서 차례로 지목하기를 이는 문수이고 부루나이며, 이는 목건련이고 수보리이며,
이는 사리불이라고 할 것이니라.

그렇게 아는 의식이 보는 놈에서 생기는 것이냐 대상에서 생기는 것이냐 허공에서 생기
는 것이냐 까닭없이 돌연히 나오는 것이냐?

아난아! 만약 너의 의식의 성품이 보는 가운데에서 생긴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물질과
허공은 없을 것이다. 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따라서 너의 보는 것도 없어지리니 보
는 성품도 오히려 없거니 무엇으로부터 의식이 발생하느냐? 만약 너의 의식하는 성품이
대상 속에서 생기고 보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밝음도 보지 못하며 어
두움도 보지 못해서 밝고 어두움을 보지 못하면 곧 허공과 물질이 없으리니 그 대상도
오히려 없거니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발생하겠느냐?

만약 허공에서 생겼다면 대상도 아니고 보는 놈도 아닐지니 보는 놈이 아니라면 분별
함이 없어서 자연 밝음도 어두움도 허공도 물질도 알지 못할 것이며, 대상이 아니라면 인
연이 없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편안하게 성립할 곳이 없을 것이다. 대
상도 아니고 보는 것도 아닌 데에 있다고 한다면 허공은 없는 것과 같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질의 형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니 비록 너의 의식이 발생한다한들 무엇을 분별
하겠느냐?

만약 원인도 없이 돌연히 나온 것이라면 어찌하여 한낮에는 밝은 달을 인식하지 못하
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보는 놈은 네 눈에 의지하였고
대상은 앞에 나타나는 대상을 미루어 말하는 것이니, 형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형상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 되나니 이와 같은 의식의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
느냐? 의식은 움직이고 보는 놈은 맑아서 화(和)도 아니고 합(合)도 아니며 듣고 냄새
맡고 깨닫고 아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의식의 인연이 좇아서 온 데가 없이 스스
로 생기지는 아니하니라.

만약 이 의식하는 마음이 본래 좇아온 데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확실하게 분
별하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만하고 고요하고 맑아서 그 성품이 좇아온
데가 없는 것이니, 저 허공과 흙, 물, 불, 바람을 겸하여 균등하게 일곱가지 원소라고 하
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기거나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네 마음이 거칠고 허망해서 보고 듣고 밝음을 발하여 확실하게 아는 것이 본
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너는 마땅히 이 여섯 가지 처소에서 의식하는 마음을 관찰
하여 보아라. 같으냐 다르냐 빈 것이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더냐 빈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더냐?

너는 일찌기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의식인 참다운 허공과 성품이 허공
인 참다운 의식은 오묘한 깨달음이 맑고 고요하여 우주에 두루해서 시방세계를 삼켰다
뱉었다 하는데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
은 지혜가 없어서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으로 의혹하나니 이는 다 의식하는 마음으
로 분별하고 헤아림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는 전연 없나니라.

[20] 허공이라는 원소

아난아! 허공의 성품은 형상이 없으므로 색깔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이는 마치 시라벌성
처럼 강이 먼 곳에 모든 찰제리 종족과 그리고 바라문과 비사와 수타와 또는 바라타와
전다라 등이 편안히 살 곳을 새로 세우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할 적에 흙을 한 자[尺]쯤
파내면 그 속에 한 자의 허공이 생기고 이와 같이 흙을 한 길[丈]쯤 파내면 그 속에 다시
한 길의 허공이 생기게 되어 허공의 얕고 깊음이 흙을 많이 파내고 적게 파내는 것에 따
라 생기나니 허공은 흙으로 인하여 생기느냐 파내는 도구로 인하여 생기느냐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느냐?

아난아! 만약 또 혀공이 까닭도 없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내기 전에는 어
찌하여 걸림이 없지 아니해서 오직 아득한 대지(大地)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더냐?
만약 흙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흙을 파낼 적에 응당 허공이 줄어들어감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약 흙이 먼저 나오는데도 허공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생긴다고 하겠느냐? 만약 나오거나 줄어들어감이 없다면 허공과 흙이 본래 다른
원인이 없을 것이니 다른 원인이 없으면 같은 것이거늘 그렇다면 흙이 나올 적에 허공은
어찌하여 나오지 않느냐?

만약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허공이 생긴다면 마땅히 파내는 데에 따라 허공이 생기는
것이므로 흙은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며 파내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파냄으로해서 흙이 나오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허공을 보게 되느냐?

너는 다시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피고 관찰하라. 파내는 도구는 사람의 손으로부터 방향
을 따라 움직이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겨지니 이와 같이 허공이 무엇으로 인하여 생기
느냐? 파내서 허공이 되게 함은 허(虛)와 실(實)이 서로 작용하지 못해서 화합함이 아니
니 응당 허공도 어느 곳으로부터 온 데가 없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니라.

만약 이 허공의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요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앞에서 밝힌 흙, 물, 불, 바람과 보는 것, 의식, 그리고 허공과 함께 균등하게 일곱
가지 원소[七大]라고 하니 그 성품은 참되고 원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므로 본래 나고
없어짐이 없나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해서 네 가지 원소가 본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허
공을 살펴 보아라. 나오느냐 들어 가느냐 나오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너는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허공인 참다운 깨달음과 성품이 깨
달음인 참다운 허공은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여서 우주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아는 바의 정도에 따라 응하느니라. 아난아! 만약 하나의 우물을 파서 공간이 생기
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생기는 것과 같아서 시방의 허공도 그와 같이 시방에 원만한 것
이거니 어찌 방향과 장소가 있겠느냐? 업장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어늘 세상 사람들은 알
지 못하여 인연과 그리고 자연의 성품인양 의혹하나니 이는 모두가 의식하는 마음으로 분
별하고 헤아리기 때문이니 다만 말로만 있을 뿐이지 실제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니라.

[21] 아난이 게송으로 찬탄함

그때에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치심을 받고서 몸과 마음이 환하게 열려
서 걸림이 없어지고 모든 대중들이 각각 스스로 마음이 시방에 가득함을 깨달아서 시방의
허공 보기를 마치 손에 가지고 있는 나뭇잎을 보듯하며, 모든 세상의 사물들이 모두 보리
의 오묘하고 밝은 원래의 마음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음의 정기가 두루하고 원만해서 시방을 둘러싸고 있어 부모가 낳아준 몸을
돌이켜 보되 이는 마치 저 시방의 허공 속에 나부끼는 한 작은 먼지가 있는 듯 없는 듯한
것과 같고, 마치 큰 바다에 떠가는 한조각 물거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좇아 온 데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겨 분명히 스스로 깨달아서 본래 오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없
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증득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합장하여 일찍기 없었던
초유의 일을 얻고서는 여래의 앞에서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미묘하고 청정한 덕을 모두 지니신 흔들림이 없으신 세존께서는 수능엄왕으로서 세상
에 드문 존재이십니다. 저의 억겁 동안 뒤바뀌었던 허망한 생각을 없애 주셔서 아승지겁
을 거치지 않고서도 법신을 얻게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들도 성과(聖果)를 얻어 보왕(寶
王)이 되어서 이렇게 항하사 같이 많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깊은 마음으
로 티끌 같은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 것이오니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라고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증명하여 주소서. 맹세코 오탁(五濁)의 악세에 먼
저 들어가서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열반에 들지 않겠습
니다. 큰 자비와 큰 힘을 지니신 거룩하신 분이시여 다시금 저희들의 미세한 의혹을 없
애게 하사 저로 하여금 하루 바삐 위 없는 깨달음에 올라 시방 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여
주소서.

허공[舜若多]의 성품은 없앨 수 있을지언정 굳고 굳은 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正本首楞嚴經 卷 四

[1] 의심스러운 점을 질문함

그 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벗어 메
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위엄있고 덕 높으신
세존께서 중생을 위하여 여래의 제일의 제(第一義諦)를 잘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항상 추천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래의 미묘한 법음을 듣자오니 마치 귀먹은 사람이 백 걸음 밖에서 모기 소리를 듣는 것
과 같으니 본래 볼 수도 없거든 더구나 어떻게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비록
분명하게 말씀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의혹 을 덜게 하였사오나 저는 아직도 그 뜻을 끝까
지 추구하여 의혹이 없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같은 무리들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나 익혀온 습기와 번뇌가 아직
다 없어지지 못하였거니와 저희들은 모임 가운데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없는데까지
이른 자들이므로 비록 모든 새는 것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지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음을 듣고서는 오히려 의혹과 회의에 얽혔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세간에 일체의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등이 다 여래장
이어서 청정하고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과 강, 그리고 땅덩어
리의 모든 물질들이 생겨나서 차례로 변천하여 끝마쳤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입
니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은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
퍼져서 맑고 고요히 늘 머문다’고 하셨나니 세존이시여! 만약 흙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어떻게 물을 용납하며 물의 성품이 두루 퍼진다면 불은 생기지 못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물과 불의 두 성분이 허공에 가득하여 서로 능멸(凌滅)하지 아니하는지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흙의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고 허공의 성질은 텅텅 빈 것이
거니 어찌하여 두 가지가 다같이 법계에 두루 퍼진다고 하십니까? 저는 그 이치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어두운 구름을 벗겨 주소서.”
모든 대중들과 이렇게 말하고서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 여래의 더없이 높은 자비로
운 가르침을 흠모하여 목마르게 기다렸다.

[2] 여래께서 의혹을 풀어줌

그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임 가운데에서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무
학(無學)인 모든 아라한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여래가 오늘 널리 이 모임을 위해서 수
승한 이치 속에서도 참되고 수승한 이치의 성품을 설명하여 너희 모임 중에서 소승인 성
문들과 일체의 두 가지 빈 것을 얻지 못한 이들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 등으
로 하여금 모두 일승의 열반의 자리[寂滅場地]인 참된 아련야(阿練惹)의 올바르게 수행
할 방법을 얻게 하고자 하노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
라.”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법음을 흠모하여 잠자코 듣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루나야! 네가 말한 바와 같이 ‘청정한 본래 자연 그대로라면 어떻게 홀연히 산과 강과
대지가 생기겠느냐?’고 하는데 너는 여래가 늘 말하는 ‘성각(性覺)은 오묘하고 밝으며 본
각(本覺)은 밝고 오묘하다’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
을 제가 늘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말한 깨달음이니 밝음이니 하는 것은 성품이 밝은 것
을 깨달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냐 아니면 깨달음이 밝지 못한 것을 밝은 깨달음이라고 이름
한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밝지 못한 것을 이름하여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밝
힐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밝힐 것이 없다면 밝혀야 할 깨달음이 없으리라. 밝힐
것이 있으면 깨달음이 아니고 밝힐 것이 없으면 밝은 것이 아니며 밝음이 없으면 깨달
음의 맑고 밝은 성품이 아니리라.

성품의 깨달음이 반드시 밝은 것이어서 허망하게 밝혀야 할 깨달음이라고 하나니라.
깨달음은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건만 밝힘으로 인하여 밝혀야 할 것이 이루어졌으니 그
밝혀야 할 것 이미 망령되게 이루어지면 너의 허망한 작용의 능력을 생기게 해서 같고 다
름이 없는 가운데서 불꽃처럼 성하게 다름을 이루었나니라.

[3] 세계의 시초

저 다른 것을 다르다고 여겨서 그 다른 것으로 인해 같음이 성립되었고 같음과 다름을
분명히 구분하고 그로 인해 다시 같음도 없고 다름도 없음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어지러운 것이 서로 작용하면 피로가 생기고 그 피로가 오래되면 번뇌가 생겨서 자연 서
로 혼탁하게 되나니라.

이로 말미암아 오염과 번뇌[塵勞煩惱]가 일어나나니라. 움직여 일어나면 세계가 되고 고
요하게 있는 것은 허공이 되나니 허공은 같으나 세계는 다르니 그 같고 다름이 없는 것
이 참다운 현상계[有爲法]이니라.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어두운 것이 서로 작용하여 동요하기 때문에 바람바퀴[風輪]가
있어 세계를 잡아 지탱[熱持]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공에 크게 소리쳐서 흔들림이 생겨나
고 밝은 것을 굳혀서 막힘이 이루어지니 저 금은 보배는 밝은 깨달음이 굳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금륜(金輪)이 국토를 보전하여 지탱하는 것이며, 깨달음이 굳어져서 금은 보배
가 되고 밝음이 흔들려서 바람이 일어나니 바람과 금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 빛이 생겨 변
화하는 바퀴가 되었으며, 금보의 밝음이 윤택한 기운을 생기게 하고 불 빛은 위로 치솟기
때문에 물바퀴[水輪]가 생겨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불은 위로 오르고 물은
흘러 내려서 서로 발하여 굳어져서 젖은 곳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곳은 육지와 섬이 되
었으니 이러한 이치로써 저 바다 가운데서는 불 빛이 늘 일어나고 육지와 섬 가운데서
는 강물과 냇물이 늘 흐른다. 물의 힘은 불보다 열세이면 맺혀서 높은 산이된다. 이면 돋
아나서 풀이나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숲과 늪이 타버리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된다.
서로 엉켜서 허망함이 발생하여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서로
계속되나니라.

[4] 중생의 시초

또다시 부루나야 밝은 것이 허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깨달음의 밝은 것이 허물이
되니 허망한 것이 이미 성립되면 밝은 이치가 이를 앞지르지 못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이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이 색깔을 벗어나지 못하여 빛과 향기, 맛과
촉감 등 여섯 가지 허망함이 이루어지나니 그로 말미암아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
이 나뉘어져서 같은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어울리고 떠나는 것이 변화를 이루나니라.

보는 것이 밝아서 빛이 발하고 밝게 봄으로 해서 생각이 이루어지나니 다르게 보면 미
움이 생기고 같은 생각은 사랑이 생겨서 그 사랑이 흘러 종자가 되고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서 서로 어우러짐이 발생하고 같은 업장끼리 끌어들인다. 그러므로 그 인
연으로 해서 갈라람과 알포담등이 생기나니라. 태로 생하는 것과 알로 생하는 것, 습기
에서 생하는 것과 화생으로 생하는 것이 제각기 응할 바를 따라서 알로 생하는 것은 오
직 생각으로서만 생겨나고 태로 생하는 것은 (情)으로 인해 생겨나며, 습기로 생하는 것
은 합하여 느낌으로서 생기고 화생은 떠나서 응함으로 생기니, 정, 생, 각, 합, 떠남으로 생
기는 것들이 다시 서로 변하고 바뀌어서 업을 받는데 그 업장을 따라 혹은 날고 혹은
잠기고 하니 그러한 인연으로 중생이 서로 계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여러가지 욕심으로 말미암아서 그것이 애욕의 성품이 생김을 돕는데 그 애
욕을 여읠 수가 없어서 갖가지 업장을 짓게 되나니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가 계속하
게 되나니라.

모든 세간의 부부가 혼인하여 교합해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
한 것들은 음욕을 탐냄으로 업장이 된 것이고, 또 모든 세간에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이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서 번갈아가며 서로 잡아 먹나니 이러한 것들은 살생을 탐하는
것으로 업장이 된 것이며, 또 다시 모든 세간에 다른 사람이 가진 재물과 돈을 크고 작은
요망한 도적들이 억지로 빼앗거나 몰래 가져가나니 이러한 것들은 도적질을 탐함으로 업
장이 된 것이니 가령 세상에서 사람이 양을 잡아 먹었을 경우 그 양은 죽어서 사람이 되
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되어 이러한 열 가지 생명을 지닌 무리들에 이르기까지 죽고 나
고 나고 죽고하여 번갈아 와서 서로 잡아 먹으면서 악업이 함께 생겨 미래의 세계가
다하도록 계속되나니 나머지도 이와 같나니라.

네가 나의 목숨을 저버리면 나는 너의 빚을 갚고 내가 너의 목숨을 저버리면 네가 나
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보응(報應)하게 되며, 너는 나
의 마음을 사랑하거든 나는 너의 얼굴을 어여삐 여기고 내가 너의 마음을 사랑하면 너는
나의 얼굴을 어여삐 여겨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매이게 되나니라.

오직 음욕과 살생 그리고 도적질, 이 세 가지가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 그러한 인연
으로 업장과 과보가 서로 연속되나니라.

부루나야! 이러한 세가지의 뒤바뀜이 서로 계속되는 것은 모두 밝은 깨달음인 밝고
또렷한 의식이 분별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인하여 허망함을 따라 보는 것이 생기나니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 차례로 변하여 흘러도 이 허망으
로 인하여 끝나면 다시 시작하곤 하느니라.”

[5] 오묘한 공은 습기가 없다

부루나가 말하기를 “만약 이 오묘한 깨달음과 본래 오묘한 각명(覺明)은 여래의 마음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것이거늘 까닭없이 산과 강이 땅덩어리의 모든 작용이 있는 현
상들이 생기는데 여래께서는 지금 오묘하고 빈 명각(明覺)을 얻었사온데 산과 강, 그리
고 땅덩어리의 작용이 있는 익혀온 번뇌가 언제 다시 생기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혼미한 사람이 어떤 취락(聚落)
에서 남쪽을 북으로 의혹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 미혹은 미혹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이렇게 혼미한 사람은 미혹으로 인한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음으
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미혹은 본래 뿌리가 없는 것인데 어떻게
미혹으로 인했다고 하겠으며 깨달음이 미혹으로 생긴 것이 아닌데 어떻게 깨달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미혹한 사람이 정히 미혹하여 있을 때에 어떤 깨달은 사
람이 옳게 지시하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사람이 비록
미혹하였으나 그 마을 시장에서 다시 미혹이 생기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
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역시 그러하니라. 그 미혹은 근본이 없어서 성품이 필경
에는 빈 것이니 옛날에는 본래 미혹함이 없었으나 미혹이 있는 듯 한데서 깨닫나니 미혹
을 깨달아 미혹이 없어지면 깨달음이 있어 미혹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눈병이 난 사람이 허공의 꽃을 보는 것과 같아서 눈병이 없어질 것 같으면 그 꽃
은 허공에서 없어지나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의 꽃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그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너는 그러한 사람을 볼 적에 어리석다고 하겠느냐 지혜
롭다고 하겠느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거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기고 없어짐을 보는
것이니 그 꽃이 허공에서 없어짐을 보는 것도 이미 뒤 바뀐 것이거늘 명령하여 다시 나
오기를 기다리게 한다면 이는 실로 미친 바보짓입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미친 바보짓하는
사람을 이름하여 어리석다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다면 어찌하여 모든 부처님의 오
묘한 깨달음의 밝은 허공에서 어느 때에 다시 산과 강, 그리고 이 땅덩어리가 나옵니까하
고 묻느냐?” 또 마치 금광에 순금이 섞여 있다가 그 금이 완전하게 순금이 되고나면
다시는 섞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치 나무가 불에 타서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보리와 열반도 역시 그와 같나니라.

[6] 네 가지 원소는 서로서로 용납함

부루나야! 또 네가 묻기를 “흙과 물, 불과 바람의 본래 성품이 원융하여 우주에 두루하
였다면 어째서 물의 성품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않습니까?”하였고, 또 묻기를 “허
공과 땅덩어리가 다 함께 우주에 두루하였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니 부
루나야! 비유하면 허공의 본체가 여러가지 모양이 아니지만 그러나 저 여러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막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면 부루나야! 저 커다란 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우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개이면 맑으며, 기운이 엉키면 탁하고 흙먼
지가 쌓이면 흙비가 되며, 물이 맑으면 밝게 비치나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들이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느냐 허공을 따라 있는 것이냐? 만약 저것들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
장차 해가 비칠 적에는 이미 그것은 해의 밝음이므로 시방세계가 다같은 햇빛이어야 하
거늘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생긴 밝음이
라면 허공이 응당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이나 구름이 끼었을 적에는 빛을 내
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 밝음은 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허공이
나 해와 다른 것도 아니니라. 그 현상을 살펴보건대 본래가 허망해서 가리켜서 말할 수
가 없음이 마치 허공의 꽃에서 헛된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어떻
게 서로 능멸하는 이치를 따지겠느냐? 성품을 살펴보건대 본래 참된 것이라서 오직 오묘
하고 밝은 깨달음일 뿐이다.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의 마음이 본래 물이나 불도 아니거
늘 어찌하여 또다시 서로 용납하지 못하느냐고 묻느냐?

참되고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도 역시 그러하니라. 네가 허공으로서 밝히면 허공이 나타
나고 흙과 물, 불과 바람으로 각각 밝히면 곧 그것들도 각각 나타나며 만약 다 함께 밝
히면 곧 다 함께 나타나나니라.

어떤 것을 함께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부루나야! 마치 물 속에 해의 그림
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다가 동쪽과 서쪽으로
제각기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가
서 본래부터 표준한 곳이 없으니 따져 말하기를 “저 해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제각기 가느
냐?”고 하며 “각자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느냐?”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완연히 허망하여 의지할 수가 없나니라.

[7] 허망한 것을 좇아 나타남

부루나야! 너는 물질과 허공으로서 여래장에서 서로 밀어내고 서로 빼앗으므로 여래장
도 따라서 물질과 허공이 되어 우주에 두루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 바람은 움직
이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두운 것인데 중생들은 어리석고 미련해서 깨달음
을 저바리고 허망한 티끌과 어울리므로 번뇌가 일어나서 세간의 현상이 있게 되나니라.

나는 오묘하고 밝은 것이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것으로서 여래장과 합하였는데
여래장이 오직 오묘하고 밝은 깨달음이므로 우주에 원만하게 비춘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
서 하나가 한량없는 것이 되고 한량없는 것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 큰 것을 나타내고
큰 가운데 적은 것을 나타내며, 도량에서 움직이지 않고 시방의 세계에 두루 퍼지며, 몸
으로 시방의 끝 없는 허공을 머금으며, 한 털끝에서 보왕(寶王)의 세계를 나타내며, 작은
먼지 속에 앉아서 큰 법륜(法輪)을 굴리나니라.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에 합하므로 진여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을 발하니 여래
장의 본래 오묘하고 원만한 마음은 마음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흙도 아니요 물도 아니
며, 바람도 아니요 불도 아니며, 눈도 아니요 귀, 코, 혀, 몸, 생각도 아니며, 빛도 아니요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도 아니요 이렇게 의식계(意識界)도 아
닌데까지 이르며, 밝음도 밝음이 없음도 아니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마져 다함도 아니
며, 이와같이 늙음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며, 늙음과 죽음이 다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며, 괴
로움도 아니요 괴로움의 원인도 아니며, 괴로움을 없는 자리도 아니요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요 증득함도 아니며, 보시도 아니요 계율도 아니며, 인욕도 아
니요 정진도 아니며, 선정도 아니요 반야도 아니며, 바라밀다도 아니니라.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요 응공도 아니며, 정변지도 아니요 대열반도 아니며, 항상함
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요 청정함도 아닌데까지 이르나니 이렇게 세간
과 출세간도 모두 아니기 때문이요.

곧 여래장의 원래 밝은 마음인 오묘함은 곧 마음이요 허공이며, 흙, 물, 바람, 불이요
곧 눈, 코, 혀, 몸, 생각이며, 곧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法)이요 곧 눈으로 보아 의식
하는 경계이며, 이렇게 뜻으로 생각하여 의식하는 경계에까지 이르며, 곧 밝음과 밝음이
없음이요 밝음과 밝음이 없는 것까지 다 끊음이며 이렇게 곧 늙음이요 죽음이며, 곧 늙
음과 죽음이 다함이요 곧 괴로움(苦),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을 없애는 자리[滅], 괴로
움을 없애는 길[道], 지혜, 증득함이며, 곧 보시, 계율,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바라밀다이
고 이렇게 곧 여래, 응공, 정변지이며, 곧 대열반이요, 곧 항상함(常), 즐거움(樂), 주체
(我), 청정(淨)이니 이것이 모두가 곧 세간법과 출세간법이므로 곧 여래장인 오묘하고 밝
은 마음의 근본은 그런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아니함도 아니며,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
도 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세간의 삼유(三有)의 중생들과 출세간의 성문 연각들이 알고 있는 마음으로 여
래의 위없는 보리를 추측하여 헤아려서 세간의 언어로써 부처님의 지견에 들어갈 수 있겠
느냐? 비유하면 마치 거문고, 비파. 공후가 비록 묘한 소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손가락이 없으면 끝끝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으니 너와 중생들도 역시 이와같아서
보배로운 깨달음의 참 마음이 각각 원만하건만 만일 내가 손가락을 놀리면 해인(海印)이
빛을 발하거늘 너는 잠시만 마음을 움직이면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 이는 위없는 깨달
음의 길을 부지런히 구하지 않고 소승을 좋아하여 적은 것을 얻고 만족하게 여기는 탓
이니라.”

[8] 허망함이 일어나는 원인

부루나가 말하기를 “저와 여래는 보배의 깨달음이 원만하게 밝아서 진실하고 오묘하고
청정한 마음이 다를 것이 없이 원만한 것입니다만 저는 옛날 시작도 없는 과거로부터 허
망한 생각을 내어서 오랫동안 윤회 속에 있었으므로 지금 성인의 과업을 이루었으나 아
직도 완전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모든 허망함이 모두 다 없어져서 홀로 오
묘하게 참되고 항상하시니 감히 여래께 묻습니다만 일체 중생들은 무슨 원인으로 허망한
생각이 있어서 스스로 오묘하게 밝은 것을 가리우고 이렇게 윤회에 빠져 허덕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비록 의심은 없앴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
없어지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상에서 현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지고 지금 다시
네게 묻겠다.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시라벌성 안에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새벽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어 보다가 거울 속의 머리에 있는 눈썹과 눈은 볼만하다고 좋
아하고 자기 머리의 얼굴과 눈은 보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면서 그것을 도깨비라고 여겨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다하니 너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슨 원인으로
까닭없이 미쳐 달아났겠냐?”

부루나가 말하기를 “그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일 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 부처님께
서 말씀하시기를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은 본래 원만하고 밝고 오묘한 것이니 이
미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였던들 어떻게 원인이 있다고 하겠으며 만약 원인이 있으면 어
떻게 허망한 생각이라고 하겠느냐? 스스로 일으킨 모든 망상들이 전전하며 서로 원인이
되어 미혹을 좇아 미혹이 쌓여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왔으므로 비록 부처님께서 발명해주
었어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나니라.

이와 같이 미혹한 원인은 미혹으로 인하여 저절로 생긴 것이니 미혹함이 원인이 없다는
것을 알면 허망한 생각이 의지할 데가 없나니 오히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무엇을 없
애려느냐?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 속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
음에는 비록 꿈 속의 일이 분명하지만 무슨 수로 꿈 속에 물건들을 취할 수 있겠느냐? 더
구나 원인이 없어서 본래 있지도 않은 것이랴.

저 시라벌성의 연야달다와 같은 경우는 어찌 인연이 있어서 자기의 머리를 무서워하면
서 달아났겠느냐? 홀연히 미친 증세가 없어지면 그 머리는 밖에서 얻어진 것이 이니며
비록 미친 중세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어찌 잃어버린 것이겠느냐? 부루나야! 허망한
성품이 이러하니 원인이 어찌 있다고 하겠느냐?

너는 다만 세간의 업장과 과보 그리고 중생, 이 세 종류가 서로 연속되는 것을 따라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기 때문에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곧 너의 마음 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은 자연 없어질 것이다.

무명이 없어지면 곧 보리의 뛰어나게 청정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우주에 두루퍼져서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니 어찌하여 애써가며 수고롭게 닦아서 증득하겠느냐?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알지
못해서 타향에서 곤궁하게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것과 같아서 비록 실제는 빈궁하지만
여의주는 잃은 것이 아니니 홀연히 지혜있는 사람이 그 여의주를 가르켜주면 원하던 것이
마음을 따라서 큰 부자가 되리니 그때에야 바야흐로 그 신비로운 여의주가 밖에서 얻어
진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9] 자연으로 인연을 깨뜨림

그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일어나
서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음욕, 살생, 도적질의 세 가지 업
연이 끊어지므로해서 세 가지 원인이 생기지 아니하면 마음속에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지리니 미친 성품이 없어지면 이는 곧 보리인지라 사람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
니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완전히 버렸습니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리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이치는 어찌 나이 어린 저희들 유학인 성문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있는 대목견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도 늙은 범지(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
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여 깨달아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끊어지는 도를 이
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리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
의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라야 제일의(第一義)가 되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베푸
시어 혼미하고 답답한 것을 열어 밝혀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치 성 가운데 있는 연야달다가 만약 미친 성품의
인연을 제거하여 없앨 수만 있다면 미친 성품이 아닌 것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
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끝나나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 그대로인진댄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거늘 무슨 인연 때문에 머리를 두려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약 자연의 머리가 인연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이 인연 때문에 잃어지지 않
는냐? 본래의 머리는 잃은 것이 아니거늘, 미쳐 두려워함이 허망하게 생겼다면 이는 조금
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느냐?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미친 두려움이 본래부터 있는 것이겠지만 미치지 않았을 적
에는 미친 증상이 어디에 숨었었으며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미쳐
날뜀이 없을 것이어늘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느냐?

만일 본래의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나서 미쳐서 달아났던 것을 알면 인연과 자연이 모
두 장난같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연(緣)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다’고 한 것이다.

[10] 잘못을 경책하고 수행을 권유함

보리의 마음이 생기고 나서 없어지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이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
라. 나고 없어짐이 모두 다하여 공부의 작용이 없는 길에 만약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그
러한 것은 자연의 마음이 생기며 나고 없어지고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분명하니 이
것도 나고 없어지는 것이니라.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이름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현상이 섞여서 한 몸이 되는 것을 화합의 성품이라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
을 본연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본래 자연과 본래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자연과 합해진 것을 모두 여의며 따라서 벗어나고 화합함이 모두 아니라
야 이 구절이 바야흐로 장난같은 논란이 없는 진리라고 할 수 있나니라.

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아득하고 멀어서 네가 여러 겁동안 애써서 닦는 것으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비록 다시 시방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청정하고 오묘한 이치
를 기억해 가짐이 항하의 모래와 같더라도 장난같은 논리만 더할 뿐이다.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결정코 분명하고 또렷하므로 사람들
이 너를 일컬어 많이 들은 것으로는 제일이라고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겁을 많이 들음을
쌓아 익혔건만 마등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거늘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
呪)를 기다려서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꽃이 다 없어지게 하고 아나함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의 강을 말려서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여래의 비밀스럽고 오묘하고 장엄한 것을 기억해
가졌다고 하더라도 단 하루를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도를 닦아서 세간에서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하나니라.

마등가와 같은 경우는 전세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의 힘으로 인하여 그 애욕을
소멸하고 지금은 나의 법 가운데 들어와서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나
후라의 어미인 야수다라와 함께 과거세의 인연을 깨달아 많은 세상을 지내오면서 맺어온
인연이 탐욕과 애욕으로 괴로움이 된 것임을 깨닫고서 일념으로 정기가 몸 밖으로 새어
나감이 없는 선행을 닦았으므로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혹은 수기(授記)를 받기도 하
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데 머물러 있느냐?”

[11] 아난이 간청

아난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의혹이 사라져 없어지고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달아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일찌기 있기 않았던 것을 얻고는 다시 감격의 눈
물을 흘리며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부처님에게 아
뢰기를 “위없이 크고 자비하신 청정한 보배의 왕께서 저희들의 마음을 잘 열어주셔서 이
러한 여러가지 인연을 방편으로 이끌어주시고 권장해주시는 한편 캄캄한데 빠진 자를 인
도하여 괴로움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여래장인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 퍼져서 여래께서 시방국토의 청정한 보엄묘각왕찰(寶嚴竗
覺王刹)을 함유(含有)하였음을 알았습니다만 여래께서 다시 꾸짖으시기를 ‘많이 듣기만
하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히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시니 저는 지금 마치 나그네
생활을 하던 사람이 홀연히 천왕(天王)이 주신 호화로운 집을 받은 것과 같아서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을 찾아 들어감이 요긴한 것과 같사오니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 이 모임에 있는 여러 몽매(夢昧)한 자들을 깨우쳐 주시어 소승을 버리고
마침내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본디 발심했던 길을 얻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배울
것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지난날 반연하던 마음을 항복받고 다라니(陀羅尼)
를 얻어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고서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기다렸다.

[12] 뜻을 펴 종지를 표함

그때에 세존께서 모임 가운데 있는 연각과 성문들이 보리의 마음에 자재하지 못한 자
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앞으로 닥칠 부처님께서 멸도(滅度)하신 뒤 말법의 중생들이 보리
의 마음을 발할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오묘한 수행의 길을 열어주려고 하시어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의 마음을 내어 여래의 오묘한 삼마
지에 피로하고 게으름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응당 먼저 깨달음을 발하려는 첫 마음을 일
으킨 때에 두 가지 결정의 의미를 밝혀야 하나니라.

무엇을 ‘처음 발심한 때에 두 가지 결정의 뜻’이라고 하는가하면 아난아! 첫번째 뜻은
너희들이 만약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고
자 할진댄 응당 인지(因地)의 발심이 과지(果地)의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
펴야 한다. 아난아! 만약 인지에서 나고 없어지는 마음으로 본래 수행할 원인으로 삼아서
불승(佛乘)의 나고 없어짐이 없는 것을 구할진댄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나니라.

그러한 뜻으로 너는 마땅히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 수 있는 법을 비추어 밝혀 보
아라. 다 변하여 없어지나니라.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법을 보아라. 어
느 것이 무너지지 않더냐? 그러나 끝끝내 허공이 허물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을 터이
니 무엇 때문인가? 허공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물어져
없어지지 않나니라.

너의 몸 속에서 굳은 모양은 흙이 되고 축축한 것은 물이 되며, 따뜻한 촉감은 불이 되
고 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원소가 얽혀서 너의 맑고 원만하
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이 나뉘어져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피는 것이 되어 처음부
터 끝까지 다섯 겹의 혼탁함이 생기나니라.

[13] 다섯 가지 혼탁의 현상을 밝힘

어떤 것을 혼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맑은 물은 청결함이 본래
부터 그러한 것이고 저 흙과 뿌연 모래의 종류는 본 바탕이 엉키는 것이니 두 가지의
본체는 자연의 법칙이라서 그 성품이 서로 따르지 못하는 것이거늘 세상 사람들이 그
흙과 모래를 가져다가 맑은 물에 넣으면 흙은 엉키는 것을 잃어버리고 물은 맑음을 잃
어버려서 형태가 흐릿하게 되는 것을 혼탁[濁]이라고 이름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쌓인
혼탁한 것도 역시 이와 같나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을 볼 적에 허공과 보는 놈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고 실체는 없으며 보는 놈은 있고 깨달음은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첫번째 둘러싼 것으로 그 이름이 ‘겁탁’이니라.

네 몸이 현재 네 가지 원소가 뭉쳐서 몸이 되었으므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막혀서 장애가 되며 물과 불, 바람과 흙이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하여 서로 짜여 허망
함을 이루니 이는 두번 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견탁’이니라.

또 너의 마음 속에 기억하고 의식하고 외우고 익히고 하여 성품에서 깨닫고 보고 하
는 것을 발하고 모양은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을 나타내니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현상이
없고 깨달음을 여의면 성품이 없어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세번째로
둘러싼 것이니 그 이름이 ‘번뇌탁’이니라.

또 네가 아침 저녁으로 생기고 없어짐이 멈추지 아니하여 느끼고 보는 놈은 늘 세간에
머물고자 하며 업장을 지어 움직이는 힘은 언제나 항상 국토에 옳겨져서 이것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는 네 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중생탁’이니
라.

너희들의 보고 듣고 하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아니거늘 모든 대상 물질이 가로 막
아서 형상도 없이 다른 것이 생기나니라. 성품 가운데 서로 알고 작용 가운데 서로 배반
하여 같고 다름이 기준을 잃어 서로 짜여 허망함을 이루나니 이것은 다섯번째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그 이름이 ‘명탁’이다.

[14] 상근기가 유익함을 획득함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지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으로 하여금
멀리 여래의 상(常), 낙(樂),아(我),정(淨)과 계합하기를 바라거든 먼저 마땅히 나고 죽는
근본부터 골라 버리고, 나고 죽지 않는 맑고 원만한 성품에 의해서 이룩해야 하리니 맑
음으로써 허망하게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을 돌이켜서 이를 항복받아 본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명각(命覺)인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다음에야 과지(果地)를 닦아 증득함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마치 흐린 물을 맑게 할 적
에 고요한 그릇에 담아서 흔들리지 않게 오래 두면 모래와 흙은 저절로 가라앉고 맑은
물만이 앞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것은 처음으로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았다고 이름
할 것이요, 앙금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게 한 것과 같은 것은 근본무명(根本無明)을 영
원히 끊었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밝은 모양이 정밀하고 순수하면 일체가 변하여 나타나도
번뇌가 되지 않아서 모두가 열반의 청정하고 오묘한 덕과 부합하나니라.

또 다시 아난아! 너는 지금 알고 있느냐? 아미타불이 저기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니
너는 일어나 합장하고서 서쪽을 향해 이마로 예를 올려라. 아난이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는 동안에 아미타불이 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비추시니
수없이 많은 천지와 수없이 많은 해와 달이 모두 다 빛을 잃어버리고 오직 한줄기 부처
님의 광명만이 힘차고 환하게 빛나거늘 이 모임의 사부대중 가운데 모든 헤아릴 수 없
는 사람들은 저 아미타불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함을 통해 보고 공경히 이마로
예를 올리고서 곧 차등이 있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

正本首楞嚴經 券 五

[1] 업장의 근본을 살핌

아난아! 그 두번째 뜻은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의 마음을 일으켜 보살승(菩薩乘)에서 큰
용맹을 내어 결정코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응당 번뇌의 근본을 자세
히 살펴보되 이것이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업장을 짓고 삶을 불려왔으니 그 무엇이 업장
을 지었으며 그 무엇이 과보를 받는가 생각해 보아라.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는다면서도
만약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하면 허망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어느 곳
에서 뒤바뀐 것인지를 알 수 없으리니, 그 곳도 오히려 모르거든 어떻게 항복을 받을 것
이며 또한 여래의 지위를 얻을 수 있겠느냐?

아난아! 너는 세상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살펴 보아라. 맺힌 데를 알지 못한다면 어떻
게 푸는 방법을 알겠느냐? 허공이 너에게 찢겼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어째서 그런가하
면 허공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맺히고 풀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너의 앞에 나타난 눈, 귀, 코, 혀와 몸과 마음의 여섯 가지가 도적의 앞잡이가 되어 자
기집의 보배를 스스로 빼앗나니, 이로 말미암아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중생세계에 얽매이
게 하였기 때문에 기세간(器世間)을 초월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중생세계라고 하느냐? 세(世)는 옮겨 흐르는 것이고 계(界)는 방위를 말
함이니 지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과 동남, 서남과 동북, 서북
과 위, 아래가 계(界)가 되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세(世)가 되니, 방위는 열이고 흐르
는 숫자는 셋이다. 일체 중생이 허망함이 얽히어 서로 이루어져서 몸 속에서 바뀌고 옮겨
져서 세와 계가 서로 연관이 되나니라.

그 계(界)의 성질이 비록 열 방향으로 설정되었으나 정해진 위치는 밝힐 수 있으니, 세
상에서는 다만 동, 서, 남, 북만 지목하고 위와 아래는 위치가 없으며 중간은 정해진 방향
이 없나니라.

사방의 수가 반드시 분명해서 세(世)로 더불어 서로 연관이 되어, 三, 四와 四, 三이 완
연히 굴러 열 둘이 되어서 흘러 변하는 것이 세번 거듭하여 一, 十, 百, 千이 되니, 처음과
끝을 모두 묶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 가운데 공덕이 각각 一千 二百이 있나니라.

아난아! 너는 다시 그 가운데에서 우열을 정해 보아라. 눈은 보기는 하되 뒤는 어둡고
앞만 밝으니, 앞 방향은 완전하게 밝고 뒷 방향은 완전하게 어두우며 왼쪽과 오른쪽은
겉만 보는 것이라서 三분의 二니 그 작용을 통틀어 논하면 공덕이 완전하지 못하다. 三분
으로 공덕을 말하면 一분은 공덕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눈은 오직 八百의 공덕일
뿐이니라.

귀는 두루 들어서 시방에 남김이 없나니 움직임에 있어서는 가깝고 먼 것이 있는 듯하
나 고요한 상태에서는 한계가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귀는 원만하여 一千 二百 공덕
이니라.

코는 냄새를 맡음에 있어 내쉬고 들이쉼을 통해서 냄새를 맡게 되는데, 들이쉬고 내쉼
은 있으나 중간에 교체되는 동안엔 끊어지나니, 코에 대하여 증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
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코는 八百 공덕이 되나니라.

혀는 말을 함에 있어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나니 말은 방위와 나뉘어짐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혀는 一千 二百 공덕이 원만하니라.

몸은 접촉으로 인하여 느낌이 생기나니 거슬리고 순함을 알아서 합하였을 적에는 알고
떠나면 알지 못한다 떠나면 하나이고 합하면 둘이니 몸에 대하여 징험해 보건댄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빠졌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몸은 오직 八百 공덕뿐이니라.

뜻은 시방삼세의 일체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묵묵히 포용해서 성인과 범부를 포용하지
않음이 없어 그 끝닿은 데까지 다하였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뜻은 一千 二百 공덕이 원
만하니라.

[2] 원만한 감각기관을 살핌

아난아! 네가 지금 나고 죽는 애욕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 흐름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나
고 죽음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여섯 가지 느껴 작용하는 감각기관이
어느 것이 합하고 어느 것이 떠나며, 어느 것이 깊고 어느 것이 얕으며, 어느 것이 원만
하게 통하고 어느 것이 원만하게 통하지 못하는 것인지를 징험해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
한데에서 원만하게 통한 감각기관을 알아서 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허망함이 짜여서
된 업장의 흐름을 거슬러서 원만하게 통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원만하지 못한 감각기
관에 의지하여 닦는 것과는 시간의 흐름이 서로 배가 될 것이다.

내가 지금 여섯 가지 맑고 원만하게 밝은 본래 지니고 있는 공덕의 수량이 이러함을
갖추어 나타내었으니, 네가 자세히 선택함을 따라 그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내가 밝혀서 너
로 하여금 더 나아가게 하리라. 시방의 여래는 십팔계(十八界)에서 낱낱이 수행하여 모
두 원만한 위없는 보리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우열이 없거니와 다만 너는 근기가 하열
(下劣)하여 그 가운데 원만하게 자재한 지혜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를 선양해서
너로 하여금 다만 한 문으로만 깊이 들어가게 하겠으니, 한 문으로 들어가 허망함이 없어
지면 저 여섯 가지 느낌이 있는 감각기관이 일시에 청정하게 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일시에 청정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이미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하여 삼
계의 중생들이 세간에서 견도문(見道門)을 수행할 적에 끊어야 할 의혹을 없앴다. 그러
나 아직도 여섯 개의 감각기관 중에 오랫동안 쌓여서 생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의 허
망한 습관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습관은 모름지기 수도를 통하여 끊어야만 되는 것이어
든 더구나 그 가운데에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분제(分劑)와 두수(頭數)이겠느냐?

너는 또다시 살펴 보아라. 앞에 나타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하나이냐 여섯이냐? 아난
아! 만약 하나라면 귀로는 왜 보지못하고 눈으로는 왜 듣지 못하며, 머리로는 왜 다니지
못하고 발은 왜 말하지 못하느냐? 만약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결정코 여섯을 이룬다면
내가 지금 이 모임 중에서 너희에게 미묘한 법문을 말할 적에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어느 것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저는 귀로써 듣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귀가 저절로 듣는데 몸과 입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입으
로 질문할 적에 몸은 일어나서 공경하여 받드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하나이니, 마침내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과 그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원래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거늘 시작없는 과거로부터 뒤바뀐데 빠져왔으므로 원만한 맑음에서 一이니 六이니
하는 이치가 생겼느니라.

너는 수다원으로써 비록 여섯 가지는 소멸하였으나 아직 한가지는 없어지지 못하였느
니라.

마치 큰 허공을 여러가지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고
해서 허공도 다르다고 하다가 그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면 허공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
과 같다. 그러나 저 허공이야 어떻게 너를 위하여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겠느냐? 더
구나 또다시 어떻게 하나다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겠느냐? 네가 아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
의 수용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3]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근원

어두움과 밝음 등 두 가지가 서로 나타나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보는 것을 발생시키나니, 보는 정기가 빛을 비추어서 그 빛이 맺혀져서
눈이 되니 그 눈의 근원은 청정한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고, 그러므로 눈의 실체라 이름
하는 것이니 이는 마치 포도알과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
관이라서 빛을 따라서 흘러 달아나느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가 서로 부딛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듣는 것이 발생하나니 듣는 정기가 소리에 비치고 그 소리가 말려서
근(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그를 이름하여 이체(耳體)라 하니,
마치 새로 돋아나는 권이(券耳)의 잎새와 같다. 그것은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소리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통하고 막히는 두 가지가 서로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
요한 데에 붙어 냄새를 맡나니, 맡는 정기가 향기에 비쳐서 그 향기를 받아들여 근(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비체(鼻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두
개의 오이가 드리운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향기
를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그대로 있거나 변화하는 두 가지가 서로 섞여서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데에 붙어 맛을 보나니 맡보는 정기가 맛에 비쳐서 그 맛을 짜내어 근(根)이 되니, 그 근
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설체(舌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치 초생달과 같
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맛을 따라 흘러 치닫느니라.

떠나거나 합하는 두 가지가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고
고요한 것에 붙어 느낌이 생기나니, 느끼는 정기가 접촉에 비추고 그 접촉이 뭉쳐서 근
(根)이 되니,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신체(身體)라고도 하니, 이는 마
치 장구통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감촉을 따라 치닫
느니라. 나고 없어지는 두 가지가 서로 이어지므로 말미암아 미묘하고 원만한 가운데 맑
고 고요한 것에 붙어 깨닫게 되나니, 깨닫는 정기가 법에 비추어서 그 법을 잡아서 근
(根)이 된다. 그 근원은 청정한 사대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의사(意思)라고도 하니 마치 어
두운 방에서 보는 것과 같다. 네 가지 티끌로 이루어진 부질없는 감각기관이므로 법을 따
라 치닫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저 밝은 깨달음의 밝음이 있는 밝혀야 할 깨달
음으로 말미암아서 그 정밀하고 또렷함을 잃고 허망한데 붙어서 빛을 발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밝음과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실체가 없을 것이고, 움직임과 고요
함을 여의면 원래 듣는 바탕이 없을 것이며, 통하고 막힘이 없으면 맡는 성품이 생기지 않
을 것이며, 여의고 합함이 아니면 부딪쳐 느낌이 반드시 없을 것이며, 나고 죽음이 없으면
깨달음이 어디에 붙어 있겠느냐?

[4] 빛을 발함

네가 다만 밝고 어두움, 통하고 막힘, 그대로 있고 변함, 합하고 여윔, 나고 없어짐의 열
두 가지 모든 작용이 있는 현상을 따르지 아니하면 마음대로 한 감각기관을 골라서 거기
에 집착된 것을 벗겨내고 속으로 굴복시켜서 이를 본래의 참된 상태로 돌아가면 본래의
밝은 빛을 발하리니 밝은 성품이 환하게 밝아지면 나머지 다섯 가지 집착도 선택에 따라
서 원만하게 벗겨질 것이다.

앞에 나타난 대상이 일으킨 바 지견(知見)을 따르지 아니하여 밝음이 감각기관을 따르
지 않고, 그 감각기관에 의탁하여 밝음이 발생하면 그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서로 작용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어찌 알지 못하랴? 지금 이 모임 가운데 아나율타는 눈이 없이도 볼 수
있고 발난타룡은 귀가 없이도 들을수 있으며, 긍가신녀는 코가 없어도 냄새를 맡고 교
범바제는 혀가 다른데도 맛을 알며, 순야다신은 몸이 없이도 감촉을 느끼나니 여래의 광
명 중에 비치므로 잠깐 나타나기는 하지만 본래가 바람의 체질이므로 그 몸은 원래 없으
며,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고요함을 깨달아 성문이 된 이 모임 가운데에서 마하가섭 같
은 이는 오래전부터 의근(意根)이 없어졌어도 원만하고 밝게 깨달아 앎에 있어 마음을 쓰
지 아니하나니라.

아난아! 지금 네가 모든 감각기관에서 원만하게 벗어나면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
여 이러한 부질없는 대상인 물질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하는 현상들이 마치 끓는
물에 얼음이 녹는 듯해서 생각을 따라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난아! 마치 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힘을 눈에 집중시켰다가 만약 갑자기 눈을 감으
면 어두운 현상이 앞에 나타나서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캄캄하여 머리나 발과 같으리니,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더듬으면 그가 비록 보지는 못하더라도 머리인지 발인지는
한결같이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니, 대상을 보는 것은 밝음을 인해
야 하고 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 밝지 않더라도 스스로 발하면 모든 어두운 현상이 영
원히 어둡지 않으리니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이미 소멸되면 어찌하여 밝은 깨달음이 원
만하고 오묘함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5] 질문하여 논란함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처음 수행할 때의 깨
닫는 마음으로 늘 머무르기를 구하고자 하거든 과위(果位)의 명목과 서로 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과위 중에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암마라식과 공여래장, 대원경지등 일
곱 가지 명칭이 그 이름은 비록 각기 다르나 청정하고 원만해서 그 자체의 성품이 단단하
게 엉김은 마치 금강왕(金剛王)이 항상 머물러서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
보고 듣는 것이 밝고 어둡고 움직이고 고요하고 통하고 막힘을 여의면 마침내 실체가 없
음이 마치 생각하는 마음이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을 여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장차 끊어 버리는 것을 수행하는 원인으로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항상 머무는 과업을 얻을 수 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약 밝고 어두움을 여의면 보는 놈이 마침내 공(空)하게 되어 마치 앞에
나타나는 대상인 물질이 없는 것과 같으며, 생각의 자성이 없어진 것과 같아질진댄 이리
저리 순환하면서 미세하게 추구하여도 본래 나의 마음과 마음의 처소가 없을지니 장차
무엇으로 원인을 삼아 위없는 깨달음을 구하 겠습니까? 여래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맑
고 정밀한 것이 원만하고 항상하다’고 하시더니 그것이 진실한 말씀이 못되고 끝내는 농
담같은 말씀이 되었으니 어떻게 여래가 진실한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
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소서.”

[6] 미혹을 가려냄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많이 듣는 것만 즐겨 배우고 정기가 새는 것
을 모두다 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다만 뒤바뀐 원인만을 깨닫고 참으로 뒤바뀐 것이 앞
에 나타나는 것을 실제로 알지 못하나니, 네가 아직도 진실로 마음 속으로 믿어 복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지금 내가 시험삼아 티끌 세상의 모든 일들을 들어서 너의 의혹을 제거
시켜 주리라.

“그때에 여래께서 나후라에게 명하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희
들은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저희들이 듣고 있습니다.” 종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
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을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대답하
기를 “들리지 않습니다.”

그때에 나후라가 또 한 번 종을 치자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들리느
냐? 들리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대답하기를 “모두 듣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떤 것을 듣는다고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
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들이 듣
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져서 메아리까지 다 없어지면 들리지 않습니다.”

여래께서 또다시 나후라를 시켜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리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조금 있다가 소리가 없어지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은 소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대답하기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가 나후라가 다시 와서 종을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셨다. “네가 지금 소
리가 나느냐 안 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대답하기를 “소리가 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떤 것을 소리가 난다고 하고 어떤 것을 소리가
없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가 있다고 하고 종을 친 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
가 없다고 하나이다.”

[7] 항상하다는 것을 징험함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하는 말
이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저희들이 지금 무엇을 이랬다 저랬다 했다
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들리느냐고 물으니 너는 들린다고
말하였고, 또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으니 너는 소리가 난다고 말하여 듣고 소리가 나
는데 대한 대답이 일정하지 아니하니 그런 것이 어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겠
느냐?

아난아!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말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을진댄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 나무와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
들 네가 어떻게 들을 수 있겠느냐? 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은 그 들리는 대상인 소
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야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
냐? 듣는 것이 참으로 없다고 할진댄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듣는 가운데 소리가 저절로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언정 네가 듣는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라.

너는 아직도 뒤바뀌어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 착각하나니 어찌 혼미하여 항상한 것을
끊겼다고 여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느냐? 끝내는 모든 움직임, 고요함, 열림, 닫힘, 통함,
막힘을 여의고서 듣는 성품이 없노라고 말하지 못하리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을 적에 그 가족들이 다듬질이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잠결에 방망이 소리와 절구 소리를 듣고 그때에 갑자기 깨어나서 가족
에게 말하기를 ‘조금전 잠결에 이 소리를 들었다’고 하리니, 아난아! 그사람은 잠결에 어
떻게 움직이고 고요하며 열리고 닫히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하랴마는 그 형체는 비록 잠
자고 있었으나 듣는 성품은 혼미하지 않았나니, 가령 너의 형체가 없어져서 목숨이 바뀐
다고 하더라도 그 성품이야 어찌 너에게서 없어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빛과 소리를 따르면서 생각을 좇아 흘러돌
아서 일찌기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한 성품은 깨닫지 못하여 항상한 것은 따르지 않고
나고 없어지는 것만 좇아다니므로 이로 말미암아 세세생생에 잡념으로 흘러 돌게 되나니,
만약 나고 죽음을 버리고 항상 참되고 항상함을 지키면 항상한 빛이 앞에 나타나서 감각
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의식하는 마음이 때를 따라 없어질 것이다. 생각하는 현상이 허
망한 대상이고 의식하는 마음이 더러운 때가 된다. 두 가지 다 멀리 여의면 너의 법안
(法眼)이 때를 따라서 맑고 밝아지리니 어찌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8] 상서로운 빛을 발하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제이의(第二義)의 문을 말씀
하셨으나, 지금 관찰해 보건댄 세상에서 맺힌 것을 푸는 사람이 만약 그 맺히게 된 원인
을 알지 못하면 저는 이 사람은 끝끝내 풀 수 없다고 말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와 이
모임 가운데 있는 유학과 성문들도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모든 무명과 더
불어 함께 생기고 함께 없어지나니, 비록 이렇게 많이 듣는 하나의 훌륭한 근기를 지녀서
이름만 출가하였다고 할 뿐, 마치 하루씩 거르는 학질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댄 큰 자비로써 빠져서 헤어나지 못함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오늘 이 몸과 마
음이 어찌하여 이렇게 맺혀졌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푸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또한
미래의 고난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를 면해서 삼계(三有)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널리 대중들과 함께 온 몸을 땅에 던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
성을 다하여 여래의 위없는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임 가운데 모든 배울 것이 있는 자들을 가엾게 여기시며,
또한 미래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세간을 벗어나는 원인을 말씀하시어 장래의 법안(法眼)을
만들어 주려 하사 염부단자금광(閻浮檀紫金光)의 손으로 아난의 정수리를 어루만지시니
그때에 시방에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가지로 진동하며 그 세계에 계시는 모든 여래
가 각각 보배의 빛이 그 정수리로부터 나오니, 그 광명이 동시에 그 세계에서 기타림으로
와서 여래의 정수리에 닿거늘 여러 대중들이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보게 되었다.

[9] 진실로 참다운 요체

그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함께 들었는데, 시방의 모든 여래가 다른 입에서 같은
소리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훌륭하다! 아난아! 네가 나면서부터 함께 생긴 무명이 너
로 하여금 윤회하고 전전하게 하는 나고 죽는 것이 맺혀진 근원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은
오직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 때문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며, 네가 다시 위없는 보리가
너로 하여금 편안하고 즐겁게 해탈케 하는 고요하고 편안하고 오묘하고 항상함을 속히
증득하는 방법을 알고자 할진댄 그것도 역시 너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인함이지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

아난이 비록 이러한 진리의 말씀은 들었으나 마음에는 아직도 분명치가 못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어째서 저로 하여금 나고 죽음에 윤회하게 하며, 편안하
고 즐겁고 오묘하고 항상하게 함이 모두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요 다른 물건이 아니라
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르시되 “감각기관과 그 대상인 물질이 근원은 같으며 얽매임과
해탈도 둘이 아니며 의식하는 성품의 허망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대상인 물
질로 말미암아 앎을 발하며, 감각기관으로 인해서 현상이 있나니 현상과 보는 놈이 성품
이 없어서 허수아비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제 알고 보는 것이 앎을성 립하면 곧
무명의 근본이고, 알고 보는 것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는 곧 열반으로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긴 참되고 청정함이니 어떻게 그 가운데에 또다시 다른 물체를 용납하겠느
냐?”

[10] 응송(應頌)과 풍송(諷誦)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참다운 성품에는 작위
함이 없거늘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허깨비와 같다네. 작위도 없으며 생기거나 없어짐도
없어서 진실되지 못함이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거짓을 말하여 진실을 나타낸다면 거짓
과 진실이 둘 다 거짓이라네. 진실도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거니 어찌하여 보는 놈이다
보이는 물질이다 하겠느냐? 중간에 진실한 성품이 없나니 그러므로 허깨비와 같나니라.

맺히고 풀림이 원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아니라네. 너는 어우러진
마음 속의 성품을 보아라. 허공과 실체 이 두가지가 다 아니니, 혼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
명이요 밝게 열리면 곧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데는 차례를 지켜서, 六이 풀리면 一도 따라서 없어지리라. 감각기관
가운데 원만한 놈을 선택하면 흐름에 들어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리라.

아다나(阿陀那)의 미세한 의식은 습기가 사나운 흐름을 이루나니 진실과 진실 아님에
미혹할까 염려하여 내가 늘 말하지 않았노라.

제 마음에서 제 마음을 취하면 환망(幻妄)아닌 것이 환법(幻法)이 되나니 취하지 않으면
환망 아닌 것조차도 없으리라. 환망이 아닌 것도 오히려 생기지 않거든 환법이 어떻게 이
루어지랴?

이것을 이름하여 ‘묘연화’, ‘금강왕보각’, ‘여여불삼매’라 하나니 손가락을 퉁기는 사이
에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초월하리라. 오직 이 비유할 수 없는 법은 시방 바가범이 오
직 이 한 길이 열반에 이르는 문이니라.

[11] 맺어진 이유

이에 아난과 여러 대중이 부처님의 위없이 자비하신 가르침인 기야(祇夜)와 가타(伽陀)
가 섞여 엉겼으면서도 정밀하고 밝아 오묘한 이치가 맑게 통함을 듣자옵고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서 일찌기 없던 일임을 찬탄하더니, 아난이 합장하여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드
리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차별없는 큰 자비로 말씀하신 성품은
청정하고 오묘하고 항상하다는 진실한 법구를 들었사오나 마음에는 아직도 六이 풀리면
一이 없어진다는 매듭을 푸는 차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댄 큰 자비를 베푸시
와 여기에 모인 무리들과 장래의 중생들을 다시 가엾게 여기셔서 법음(法音)을 베풀어 속
에 밴 때까지 깨끗이 씻어주소서.” 그때에 여래께서 사자좌에서 열반증을 정돈하고 승가
리(僧伽梨)를 여미신 다음 칠보로 단장한 책상을 끌어당겨서 겁바라천(劫坡羅天)이 바친
화건(華巾)을 가져다가 대중앞에서 이를 매어 매듭을 만들어 아난에게 보이시면서 말씀하
시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께 아뢰기를 “그것은 매듭이라고 합니다.” 이에 여래께서
다시 첩화건(疊華巾)을 매어서 또 한 개의 매듭을 만들어 거듭 아난에게 물으시기를 “이것
을 무엇이라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들이 또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로 첩화건을 매어 모두 여섯 개의 매듭을 만들었는데 한 번씩 매듭을
만들 때마다 화건으로 만든 매듭을 들고서 아난에게 묻기를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느
냐?” 아난과 대중도 그와 같이 차례로 부처님에게 대답하기를 “그것도 매듭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 화건을 맺은 것을 네가 매듭이라고 하
였으니 이첩화건은 앞서의 실제는 한 가닥이었거늘 두 번째 세 번째에도 어찌하여 너희들
은 다시 매듭이라고 하는고?”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이 보첩화는 짜서 만든 수건으로서 비록 본래
는 하나이나 저의 생각으로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개의 매듭이라고 하고, 만약
백 번 맺으면 백 개의 매듭이라고 해야할 것이거든, 더구나 이 수건이 다만 여섯 개의 매
듭 뿐이어서 일곱은 되지 못하였으며 다섯에는 머물지 않았사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다만 처음 것만 인정하시고 두 번째 세 번째 것은 매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보화건은 네가 아다시피 이 수건이 원래는 하
나였으나 내가 여섯 번 매듭을 지었을 때에 여섯 개의 매듭이란 이름이에게 되었나니 너
는 자세히 관찰하여라. 수건 자체는 같은 것이지만 매듭으로 인하여 달라진 것이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처음 맺어서 매듭이 된 것을 첫 번째라고 말하니 그렇게 하여 여섯
번째 매듭까지 생겼으니, 내가 지금 여섯 번째 매듭을 가지고 첫 번째 매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번째 매듭이 만약 있으면 이는 여섯 번째 매
듭이지 결코 첫 번째 매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두고 끝까지 밝혀
본다고 한들 어떻게 이 여섯 번째 매듭의 이름을 바꿀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니라. 여섯 개의 매듭이 같지는 아니하나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하나의 수건으로 된 것인데 섞이게 한다는 것은 마침내 성립될 수 없나니라.
곧 너의 여섯 개의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필경에는 같은 가운데 마침내 다른 것
이 생기나니라.”

[12] 푸는 요령을 보이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굳이 이 여섯 개의 매듭이 하나로 이루어지
지 못함을 싫어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다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기를 “이 매듭을 만약 그대로 두면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서 그 가운데
자연 이 매듭은 저것이 아니고 저 매듭은 이것이 아니라고 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여
래께서 오늘날 만약 다 풀어서 매듭이 생기지 않게 하실 것 같으면 곧 이것이다 저것이
다 라고 하는 일이 없어져서 오히려 하나라고 이름할 것도 없을 것이거든 여섯이 어떻
게 성립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이 풀리면 하나가 없어지는 이치도 그와 같으니라. 네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마음의 성품이 어지러워짐을 따라서 깨닫고 보는 것이 허망하
게 생겨나고 그렇게 생긴 허망함이 쉬지 아니하여 보는 놈이 피로해져서 물질의 현상이
생기게 된 것이 마치 눈동자가 피로해 지면 곧 허공의 헛보이는 꽃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맑고 정밀하고 밝은 것에 원인 없이 일체 세간의 산과 강, 이 땅덩어리와 나고 죽음과 열
반이 어지럽게 일어나나니 이는 모두가 곧 어지럽고 혼란한 피로에서 생긴뒤 바뀐 헛꽃의
현상이니라.”

[13] 자세히 보이시다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 피로 때문에 생기는 현상은 매듭지어진 것과 같은 것
이니 어떻게 풀어 없애야 되겠습니까?”

여래께서 손으로 매듭이 생긴 수건을 잡고서 그 왼쪽을 당기며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
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다시 손을 돌려 그 오른쪽을 당기면서 또 아난에게
묻기를 “이렇게 하면 풀리겠느냐?”

아난이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가 지금 손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당겼으나 마침내 풀지 못하였으니 너는 방편을
베풀어 보아라. 어떻게 해야 풀리겠느냐?”

아난이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세존이시여! 마땅히 매듭 중심서부터 풀면 풀리겠습니
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나니라. 매듭을 풀려거든 매듭 중심에서부터
풀어야 하나니라. 아난아! 내가 말하기를 ‘불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나니 세
간과 화합하는 거친 현상들을 취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발명하
여 그 근본 원인이 인연한 바를 따라 나오는 것을 깨달으며, 이와 같이 항하사 처럼 많은
세계속에 한 방울의 비까지도 그 수효를 알며, 앞에 나타나는 갖가지 현상 가운데 소나무
는 곧고 가시나무는 굽었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것에 대하여 그 까닭을 모
두 알아야 하나니, 그러므로 아난아! 너의 마음 속을 따라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하
나를 선택하여라. 그 감각기관의 매듭이 만약 풀리면 대상인 현상도 저절로 없어질 것이
다. 모든 허망한 것이 사라져 없어지면 참되지 않음이 어찌 있겠느냐?

아난아! 내가 지금 네게 묻겠는데 이 겁파라수건의 여섯 개의 매듭이 앞에 나타났으니
동시에 매듭을 풀면 한꺼번에 풀릴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매듭이 본래 차례로 맺혀진 것이므로 지금도 마땅히 차례
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 개의 매듭이 본체는 같지만 그 매듭은 동시에 맺혀진 것이
아니므로 그 매듭을 푸는데 어떻게 한꺼번에 풀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으로 인하여 생기는 의혹을 풀어 버리
는 것도 이와 같나니라. 그 감각기관이 처음 풀어지면 먼저 인공(人空)을 얻고 허공의 성
품마져 원만하게 밝아져서 법의 해탈이 이루어지나니 법을 해탈하고 나서 모두가 공하다
는 것까지도 생기지 않아야 이것을 보살이 삼마지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
나니라.”

[14] 소리와 색과 향기

아난과 여러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받자옵고 지혜로운 깨달음이 원만하게 통
해서 의혹이 없어짐을 얻고는 일시에 합장하여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하고 아뢰
기를 “저희들이 오늘에야 몸과 마음이 밝아져서 걸림이 없음을 쾌히 얻었습니다. 비록 다
시 하나와 여섯이 없어지는 이치를 깨닫기는 하였사오나 아직도 원만하게 통한 본근(本根)
은 깨닫지 못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정처없이 헤매면서 여러겁을 외롭게 떠
돌다가 무슨 마음 무슨 생각이 부처님의 천륜(天倫)에 참여하게 되었습니까? 마치 어미
를 잃어버렸던 젖먹이가 그 어머니를 만난 듯합니다. 만약 다시 이 모임으로 인하여 도가
이루어진다면 얻어들은 비밀스런 말씀이 본래 깨달음과 같아서 듣지 못한 것과 다름이
없겠습니다. 바라옵건댄 오직 큰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에게 신비하고 존엄하신 은혜로서
말씀해 주셔서 여래의 최후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여주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지고서 물러나와 숨을 죽이고 앉아서 부처님의 은밀한
가르침을 기다렸다.

그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의 여러 큰 보살들과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어진
큰 아라한에게 널리 구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보살과 아라한이 나의 법 가운데에서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이루었나니 내
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최초의 발심하여 十八계(界)를 깨달았을 적에 어느 것이 원만하
게 통한 것이며 어떤 방편으로 삼마지에 들어갔느냐?”

교진여 다섯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녹야원과 계원에 있을 적에 여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고 부처
님의 음성에서 사제(四諦)를 깨달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물으시므로 제가 먼저
안다고 하였는데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야다(阿若多)’라고 하셨으니, 오묘한 음성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으므로 저는 그 음성으로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음성이 으뜸인가 하옵니다.”

우바니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도 부처님께서 최초로 도를 이루심을 보았더니 청정하지 못한 모양을 보게 하셨으므
로 크게 싫어 여의여야겠다는 생각을 내어 모든 물질의 성품을 깨달았나이다. 깨끗지 못
한 것과 백골(百骨)과 미세한 티끌을 따라 허공으로 돌아가서 허공과 물질이 둘다 없어
져서 더 배울 것이 없는 도를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나사타(尼沙陀)’라
고 하셨는데, 색이 라는 대상이 이미 다 없어져서 미묘한 물질이 은밀하고 원만하였사오매
저는 그 물질의 모양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
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색신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향엄동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여래께서 저에게 모든 작위가 있는 형상을 자세히 살피라고 하심을 듣고서 제가
그때 부처님에게 하직하고 깨끗한 방에서 편안히 생각에 잠겼다가 여러 비구가 침수향 태
우는 것을 보았더니 그 향기가 은연중에 코 속으로 들어오거늘 제가 그 향기는 나무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요 불도 아니어서 가도 닿는 데가 없으며 와도 좇아
온 데가 없음을 관하였나이다. 이로 인하여 뜻이 사라져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끊
어짐을 발명하였사오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향엄(香嚴)’이란 호를 주셨사온데 대
상인 향기가 문득 사라지고 오묘한 향기가 은밀하고 원만하거늘 저는 그 향엄으로부터
아라한을 얻었사오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향기가 으뜸인가 하나이다.”

[15] 맛과 감촉과 법

약왕과 약상 두 법왕자가 모임 가운데 있다가 오백의 범천(梵天)과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세상
의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입으로 이 사바세계의 풀, 나무, 쇠붙이, 돌을 맛본 그 가지 수
가 무릇 十만 八천이나 되니 이와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담담하고, 달고, 매운 것 등의 맛
과 아울러 화합해서 생긴 맛, 함께 생긴 맛, 변하여 생기는 맛과 찬 맛, 더운 맛, 그리고
독이 있고, 없고를 두루 맛보아 알 수 있었습니다만 여래를 받들어 모시면서 맛의 성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에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몸과 마음을 떠
나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으며, 맛의 원인을 분별하여 이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래께서 저희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 약상 두 보살로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와 지금 모
임 중에서 법왕자가 되어서 맛으로 인해 깨닫고서 보살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으로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
나이다.”

발타바라가 그 도반인 열 여섯 명의 개사(開士)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희들이 앞서 위음불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출가한 후 스님들과 목욕할 적에 차례를
따라 욕실에 들어갔었는데 홀연히 물로 인하여 깨닫고서 이미 때를 씻은 것도 아니며, 또
한 몸을 씻는 것도 아니며, 중간이 편안하여 지닌 것이 없음을 얻었습니다. 숙세의 습기
를 잊지 못해서 지금에 와서도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배울 것이 없는 경지를 얻었으니,
부처님께서 저를 ‘발타바라’라고 이름하여 주심을 받자옵고 오묘한 접촉으로 밝아져서 불
자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
서는 접촉으로 인하여 닦는 것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마하가섭과 자금광비구니 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
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지나간 세월에 이 세계 속에 있을 적에 세상에 나온 부처님이
계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日月燈)’이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모시면서 법을 듣고 닦아 익
혔더니 그 부처님이 멸도(滅度)하신 뒤에는 사리를 공양하면서 등을 켜 계속 밝혔사오
며, 자단금(紫檀金)으로 부처님의 형상에 도금하였더니 그후 부터는 세세생생에 몸에 항상
자금광 빛이 모여 원만하였나이다. 이 자금광 비구니 등은 곧 저의 권속이니 그때 다 함
께 발심하였나이다. 저는 세간의 여섯 가지 대상인 물질이 변하여 없어짐을 보고서 오직
비고 고요함으로써 멸진정(滅盡定)을 닦아서 몸과 마음이 百, 天 겁을 지내어도 마치 손가
락을 퉁기는 기간과 같이 짧았으므로 저는 공(空)한 법으로써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세존
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두타(頭陀)에 최고라고 하셨습니다. 오묘한 법이 밝게 열려서 정기
가 밖으로 새는 것을 모두 다 소멸시켰으니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
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법으로 인함이 으뜸인가 하나이다.”

[16] 눈과 코와 혀

아나율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 출가하여 늘 수면을 즐기더니 여래께서 저를 꾸짖되 축생의 무리가 된다고
하시므로 저는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자옵고 울면서 자책하여 七일을 잠자지 않았더니 두
눈이 멀었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낙견조명금강삼매(樂見照明金剛三昧)를 가르쳐 주셨으
므로 저는 눈으로는 시방세계를 보지 못하지만 참다운 정기가 환희 열려서 마치 손바닥
에 있는 과일을 보는 듯하였더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어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습
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보는 것을 돌
이켜 근본을 따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주리반특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
를 “저는 외울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많이 듣는 성품이 없었더니 처음 출가하여 부처님
을 만나 법을 듣고서 여래의 비밀하신 게송을 기억하려는데 百일 동안이나 앞에 것을 외
우면 뒤에 것을 잊고 뒤에 것을 외우면 앞에 것을 잊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
을 가엾게 여겨 저에게 편안히 있으면서 숨쉬는 것을 조절하라고 하시므로 제가 그때에
숨쉬는 것을 관하여 나고 머무르고 변하고 없어지는 모든 행동의 찰나를 미세한 것까지
다 연구하여 그 마음이 환해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없어지는 데까지 이르러 아라한을 이루어서 부처님의 자리 아래에 머물었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고 인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
가 증득한 바로서는 숨쉬는 것을 돌려 공(空)을 따름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교범바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리기를
“저는 입으로 죄를 지었으니 과거 겁에 스님을 조롱한 탓으로 세세생생에 소처럼 되새김
하는 병이 있었거늘 여래께서 저에게 일정한 맛의 청정한 마음의 법문을 가르쳐 주셨으
므로 저는 잡념이 없어질 수 있어서 삼마지에 들어가 맛을 아는 것이 실체도 아니고 물
질도 아님을 관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생각 동안에 세간에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해탈하고 밖으로는 세계를 버려서 삼계[三有]를 멀
리 벗어남이 마치 새가 새장에서 벗어난 것과 같아서 때와 먼지를 소멸하여 법안이 맑아
져서 아라한을 이루었으니, 여래께서 친히 인가하시어 배울 것이 없는 도에 올랐다고 하
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맛을 돌이
켜 지(知)로 돌아감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7] 몸과 뜻

필릉가바차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
를 “저는 처음으로 발심하고서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 자주 여래께서 세간에는 즐길
만한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옵고 성중에서 걸식한 적에 마음으로 법문을 생
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길에서 독한 가시에 발을 찔리고 온 몸이 매우 아팠습니다. 제가 느
낌이 있으므로 이렇게 아픔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록 깨달음이 있어 아픔을 느끼
지만 깨달음의 청정한 마음에는 아픔과 아픔을 느끼는 것이 없으므로 제가 또 생각하기
를 이 한 몸에 어찌 두 개의 깨달음이 있으랴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가다듬은
지 오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이 문득 공(空)해져서 三, 七일 동안에 모든 번뇌가 다 없어
져서 아라한을 이루고서 친히 인가하심을 받아 더 배울 것이 없음을 발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순수하게 깨달아
몸을 버리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
저는 오랜 겁(劫 이전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음을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이 많았음을 스스로 기억합니다. 처음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비고
고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니 이와 같이 시방에 이르기까지도 공(空)하여졌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공한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께서 깨닫는 성품이 참으로 공
한 것임을 밝혀 주셔서 공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아라한을 증득하고, 여래의 보명공
해(寶明空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아졌거늘 더 배울 것이 없음을 이루었다
고 인가하시어 해탈한 빈 성품에 저보다 더할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
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는 모든 현상이 아닌데에 들어가고
능히 아니라는 것과 아니라고 여겨 질 대상이 다하여 법을 돌리어 없는데로 들어가는 방
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8] 안식(眼識)과 이식(耳識)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
는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으로 보는 것이 청정하여 이렇게 세상에 태어난 것이 항하사와
같사오니, 세간과 출세간에 갖가지 변화를 한번 보면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을 얻었습니
다. 저는 길로 다니다가 가섭파 형제가 인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무한
함을 깨닫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보고 깨닫고 하는 것이 밝고 원만해서 큰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부처님의 장자가 되었으니, 부처님의 입을 좇아 났으며 법을 좇아 화생하였
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증득한 바로서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광명을 발하여 그 광명이 극에 달한 지견(知見)이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보현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
저는 이미 일찍부터 항하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의 법왕자가 되었사오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보살근기(菩薩根機)가 있는 제자들을 가르칠 적에 보현행을 닦으라고 하셨으니
이는 저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마음으로 듣는 방법으로써 중생들이
지니고 있는 지견(知見)을 분별해서 만약 다른 곳의 항하사 같이 많은 세계에 어떤 한 중
생이라도 마음으로 보현행을 발명하는 자가 있으면 저는 그때에 육아(六牙)의 코끼리를
타고 백억의 몸으로 분신하여 그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겠사오니, 비록 그 사람이 업장이
깊어서 저를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몰래 그 사람의 이마를 만지며 옹호하고 편
안하게 위로해서 그로 하여금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는 본래의 원인을 말하겠사오니 마음으로 듣는 것이 밝게 발하여 분별이
자제한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19] 비식(鼻識)과 설식(舌識)

손타라난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
를 “저는 처음에 출가하여 부처님을 따라 도에 들어가서 비록 계율은 갖추었으나 삼마
지에서 마음이 항상 흩어지고 움직여서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음을 얻지 못하였더니
세존께서 저와 구치라를 시켜서 코 끝의 흰 부분을 관하게 하시거늘 저는 처음부터 자세
히 관해서 三, 七일을 지나서야 코 속의 기운을 보게 되었는데 들고 나고 하는 것이 마
치 연기와 같다가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져서 세계에 원만하게 통하고 두루 비어서 청
정해진 것이 마치 유리처럼 맑으니, 연기와 모양이 차츰 사라지고 코의 숨이 희게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다 끊겨서 들고 나는 숨이 변하여 광명이 되어
서 시방세계를 비추어서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 보리를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오
래도록 숨이 사라져서 광명을 발하고, 광명이 원만하여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이 없어지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말 재주가 뛰어나서 괴로움과 허공에 대하여 말하고 실
상을 깊이 깨달았으며, 그처럼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여래의 비밀스러운 법문을 제
가 대중 가운데서 미묘하게 열어 보여 두려움이 없음을 증득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큰 말재주가 있음을 아시고 음성륜(音聲輪)으로써 저로 하여금 발양(發揚)하게 하셨는데
저는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도와 법륜을 굴리면서 사자후(獅子吼)로 인하여 아라한이
되었으니,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기를 설법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
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법음으로 악마와 원수를 항복받고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것을 소멸시키는 방법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0] 신식(身識)과 의식(意識)

우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
저는 친히 부처님을 따라 성을 넘어 출가하여 여래께서 六년동안 괴로움을 견디시며 모
든 마구니들을 항복받고 외도들을 제압하여 세간의 탐욕 따위외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는
서 해탈하심을 친히 보시고서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계율을 받들어 이렇게 三천 가지
행동과 八만 가지 미세한 성업(性業)과 차업(遮業)이 모두 청정해졌으며 몸과 마음이 고요
해져서 아라한이 되었사오니, 저는 여래의 대중 가운데 규율을 세우는 책임을 맡았으므로
부처님께서 저의 마음을 인가하여 계를 지키고 몸을 닦는데는 대중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
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을 단속하여
몸이 자재하게 되고, 다음에는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통달한 연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통하여 이롭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대목건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처음에 길에서 우루빈나와 가야, 나제인 세 가섭을 만나 여래의 인연법에 대한 깊
은 이치를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가 갑자기 발심하여 크게 통달하게 되었으니, 여래께서 저
에게 가사가 몸에 입혀지고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시방세계에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었으며 신통을 발휘함이 으뜸임을 미루어 아라한이 되
었사오니 어찌 세존뿐이겠습니까? 시방의 여래들께서도 저의 신통력이 원만하게 통한 원
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맑은 데로 돌아가 마음의 빛을 발함이 마치 흐린 물을
가라앉혀서 오래되면 맑고 깨끗하게 되는 듯함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1] 불(火大)과 흙(地大)

오추슬마(烏芻瑟摩)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항상 과거를 생각하니 오랜 겁전에 탐욕스러운 성품이 많았더니 부처님
께서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이 ‘공왕’이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리가 된다’고 하시며 저로 하여금 백해(百骸)와 사지의 따뜻한 기운
을 두루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비한 광명이 안에서 엉키면서 많은 음심이 변하여 지혜의
불을 성취하니, 그로부터 여러 부처님께서 저를 ‘화두(火頭)’라고 부르셨는데 저는 화광삼
매(火光三昧)의 힘으로 아라한이 되었으니, 마음에 큰 서원을 발하여 모든 부처님께서 도
를 성취하려 하시거든 제가 역사가 되어 마구니와 원수를 친히 항복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 몸과 마음의 따뜻한 감촉이
걸림이 없이 유통함을 자세히 관하여 모든 정기가 새는 것이 이미 소멸되어서 큰 보배의
불꽃이 생겨나서 위없는 깨달음에 오르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지지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저는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보광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는데 제가 그때 비구가 되어
서 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과 나루에서 산과 길이 험악하고 좁아서 여법(如法)하
지 아니하여 수레와 말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손상시켜서 제가 모두 메워서 평탄하게 하
며 혹은 다리를 놓기도 하고 흙과 모래를 져다 메우기도 하면서 이렇게 노력하기를
한량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할 때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중생이 복잡한 곳에서
삯군을 얻어 짐을 지우려고 하면 제가 먼저 짐을 지고 그 목적지까서 가서 짐을 내려 놓
고는 곧 돌아오고 삯은 받지 않았으며, 비사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여러 해 동
안 흉년이 들었는데 저는 그때에도 짐군이 되어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일전만 받았
으며, 또 수레를 멘 어떤 소가 흙구렁에 빠지게 되면 저의 신통력으로 그 바퀴를 밀어 주
어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국왕이 부처님을 맞아 재를 베풀었는데 제가
그때에 길을 평탄하게 닦아놓고 부처님을 기다렸더니 비사여래께서 정수리를 만지시며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평탄하게 가지면 온 세계의 땅이 다 평탄해질 것이라’고 하
시므로 제가 곧 마음이 열려서 몸에 있는 미세한 티끌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미세한 티
끌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아서 미세한 티끌과 자성이 서로 접촉되지 않았으며, 마
침내 도병(刀兵)까지도 접촉됨이 없어서 저는 법의 성품에서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아
라한이 되었나이다. 그리고 지금은 마음을 돌리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께서 묘
연화의 불지견지(佛知見地)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제가 먼저 증명하여 우두머리가 되었
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깨달은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몸과 세계의 두
미세한 티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어서 본래 여래장에서 허망하게 미세한 티끌이 생긴
것임을 자세하게 관찰하여서 그 미세한 티끌이 사라지고 지혜가 원만하게 되어 위없는
도를 이루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2] 물(水大)

월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 보니 지난 옛적 항하사 같이 많은 겁(劫)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 하
셨으니 그 이름이 ‘수천(水天)’이었습니다. 모든 보살들을 가르치셔서 물의 정밀한 성품을
닦고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되 몸 속에 있는 물의 성품이 서로 빼앗음이 없어서 처음
으로 눈물과 춤으로부터 진액, 정액, 피와 대변, 소변에 이르기까지 몸 속에 돌아다니는 모
든 물의 성품은 동일한 것임을 관하여 그 물이 몸 속에 있는 것과 세계밖에 부당왕찰
(浮幢王刹)의 향수해와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에
처음 그 관법을 이루어서 다만 물만 보았을 뿐 몸이 없어짐은 얻지 못하여 비구가 되었
으므로 방 안에서 편안히 참선을 하고 있었는데 저의 제자가 창문을 뚫고 방 안을 엿보더
니 맑은 물만 방에 가득할 뿐이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거늘 어린 것이 무지하여 자갈을
가져 다가 물 속에 던져 소리가 나게 하고는 힐끔힐끔 돌아보며 떠나갔습니다. 제가 선정
에서 나온 뒤에 갑자기 가슴이 아프기가 마치 사리불이 원한의 귀신을 만난 것과 같았으
므로 제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금 나는 이미 아라한의 도를 얻어서 오래전부터 병의 인
연을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오늘 갑자기 가슴이 이렇게 아픈가? 아마도 퇴보하여 잃게 되
는 것이 아니려나 하였는데 그때 동자가 제 앞에 와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을
말하였습니다. 저는 곧 말해주기를 ‘네가 다시 물을 보거든 즉시 문을 열고 그 물 속에 들
어가서 자갈을 건져내라’고 하였더니 동자가 시키는대로 하여 다음에 선정에 들어갔을 적
에 다시 물을 보니 자갈이 완연하거늘 문을 열고 건져 내었더니 제가 그 다음 선정에서
나오니 몸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그후 한량 없는 부처님을 만났으되 산해자재통왕여래 때
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몸이 없어져서 시방세계의 모든 향수해로 더불어 성품이 참다운
허공에 합하여 둘도 없고 차별도 없으므로 지금 여래에게 ‘동진’이란 이름을 얻어 보살의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물의 성품이 한결같이 흘러 통하여 무생인을 얻어서 보살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제일인
가 하나이다.”

[23] 바람(風大)과 허공(空大)

유리광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
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날 항하사 겁 이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그 이름
이 ‘무량성’이었습니다. 보살께서 본래 깨달으신 오묘한 마음을 열어 보이시되 이 세계
와 중생의 몸이 모두가 허망한 인연인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임을 관 하라고 하셨습
니다. 저는 그때에 경계가 편안히 성립된 것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몸의 움직이는 형
상과 마음이움직이는 생각을 관하였으되 모든 움직임이 둘이 아니어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때에 이 여러가지 움직이는 성품이 와도 좇아 온 데가 없고 가도
갈 곳이 없어서 시방의 미세한 티끌 같은 뒤바뀐 중생들이 다같이 허망해서 삼천 대천의
세계 속에 있는 중생들은 마치 한 그릇 속에 담아놓은 백 마리의 모기가 앵앵거리고 시
끄럽게 울면서 분촌만한 속에서 고동치고 발광하며 소란스럽게 구는 것과 같음을 깨달았
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을 만난지 오래지 아니하여 무생인을 얻었는데 그때에 마음이
열려서 동방의 부동불국(不動佛國)을 보고서 법왕자가 되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섬겼으
며 몸과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환하게 통해서 걸림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바람의 힘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관찰하여 보리
심을 깨닫고 삼마지에 들어가 시방의 부처님과 합해서 오묘한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허공장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여래와 함께 정광 부처님 처소에서 끝이 없는 몸을 얻었습니다. 그때에 손에는 네
개의 큰 보배구슬을 들고서 시방에 미세한 티끌 같이 많은 부처님 세계를 비추어 허공으
로 변화시켰으며, 또 스스로의 마음에 크고 둥근 거울을 나타내서 그 속에서 열 가지 미
묘한 보배 광명을 발하여 시방의 끝없는 허공의 모든 세계를 비쳐주고는 거울 속으로 들
어왔고 내 몸에 들어와서는 몸이 허공과 같아서 서로 방해하거나 걸림이 없으며 몸이 작
은 먼지 같이 많은 국토에 들어갈 수가 있어서 널리 불사를 행하여 크게 순하게 따름을
얻으니, 이 큰 신비한 힘은 네 가지 원소는 의지한 데가 없어서 허망한 생각으로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라서 허공과 다름이 없으며, 불국과 본래 같은 것임을 자세히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같은 데에서 발명하여 무생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허공이 끝이없음을 관찰하여 삼마지에 들어가서 오묘한 힘
이 원만하고 밝게 되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24] 의식(識大)와 의식(根大)

미륵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해보니 지나간 옛적에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겁 이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으니 그 이름이 ‘일월등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게 되어서
마음에는 세상의 명성을 소중하게 여겨 족성(族姓)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저로 하여금 유심식(唯心識) 선정을 닦아 익혀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
셨습니다. 여러 겁을 지나면서 이 삼매로써 항하사처럼 많은 부처님을 섬겼더니 세상의
명성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없어졌고, 연등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기에
이르러서는 제가 위없이 오묘하고 원만한 식심 삼매를 증득하여 허공에 가득한 여래와
국 토의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것까지가 모두 제 마음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러한 것이 오직 심식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의식의
성품이 한량없는 여래를 배출하나니 지금 수기를 얻어서 부처님 지위를 이어받게 되었습
니다. 부처님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시방이 오직 의식
으로 인하였음을 자세히 관하여 의식하는 마음이 원만하고 밝아져서 원만하게 성취한 진
실에 들어가 의타(依他)와 변계집을 멀리 벗어나서 무생인을 증득하는 것이 제일인가 하
나이다.”

대세지보살이 그의 동료 쉰 둘이나 되는 보살들로 더불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제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항하사
겁에 어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니 그 이름이 ‘무광량’이었으며, 열 두 분 여래가
일겁(一劫)동안 계속하여 나셨는데 그 마지막 부처님의 이름이 ‘초일월광’이었습니다. 그
부처님이 저에게 염불삼매를 가르치시기를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한 사람은 기억하
기를 전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잊어버리기를 전념하면 이러한 두 사람은 만약 서로 만났
더라도 만난 것이 아니며 보았더라도 본 것이 아니거니와 두 사람이 서로 기억해서 이렇
게 기억하는 두 생각이 깊으면 이와 같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형체에 그림자가 따
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리니, 시방 여래는 중생을 가엾게 생각하심이 마치 어미가 아
들을 생각하듯 하시나니 만약 아들이 도망하여 간다면 비록 생각한들 무엇하겠느냐? 아들
이 만약 어머니를 생각함이 마치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할 때처럼 한다면 어미와 아들이
여러 생을 지내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
님을 기억하면서 염불하면 지금이나 뒷 세상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게 되어 부처님과의 거
리가 멀지 않아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저절로 마음이 열려지는 것이 마치 향기를 물
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기가 밴 것과 같을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향광엄장(香光嚴蔣)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본래의 인지(因地)에서 염불하는 마음으로 무생인에 들어갔고,
지금 이 세계에서도 염불하는 사람을 이끌어다가 정토에 돌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께서 원만하게 통한 원인을 물으신다면 저의 생각으로는 특별한 것을 가림이 없어서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모두 단속하면서 깨끗한 생각이 서로 계속하여 삼마지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인가 하나이다.”

正本首楞嚴經 券 六~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