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능엄경朝鮮語楞嚴經

조선어능엄경朝鮮語楞嚴經
삼장역회三藏譯會 용성당龍城堂 백상규白相奎 연의역演義譯 정원*✽ 옮김

대불정수능엄경 첫째 권

이와 같음을 내가 듣사오니 한때에 부처님께서 실라벌성 기원정사에 계시사 대비구중大比丘衆 천이백오십 인으로 더불어 함께하시니 모두 샘이 없는 큰 아라한이었다. 불자로 (법왕法王의 집에) 머물러 (정법正法을) 가지사 모든 있는 것(諸有)1) 에서 잘 뛰어나며 능히 저 국토에 위의威儀를 성취하며 부처님을 따라 법륜을 굴리사 묘히 유촉 받음을 감당하였다. 비니毘尼를 엄정히 하사 널리 삼계에 모범이 되시며 응하는 몸이 한량이 없으사 중생을 도탈하며 미래를 빼어 건지사 모든 진루塵累를 건너게 하시었다.

그 이름을 말하면 대지사리불과 마하목건련과 마하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 등이 상수上首가 되시었다. 다시 한량없는 벽지불과 무학과 아울러 그 초심자初心者들2) 이 부처님 처소에 오시었다. 때마침 모든 비구의 여름 공부를 쉬어 스스로 자자自恣자자는 칠월 십오일하고 시방 보살이 의심된 것을 물어 결단하는 날이라 자엄慈嚴부처님을 공경히 받들어 장차 은밀한 뜻을 구하고자 하시었다.

바로 그때에(卽時) 여래께서 자리를 펴시고 편안히 하사 모든 회중을 위하여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시니용성연의 이 뜻은 보살이 은밀한 뜻을 물음에 대답하심이라.법의 자리에 모인 청정한 대중이 듣지 못한 바를 듣고 환희용약하여 미증유를 얻었다. 가릉선음이용성연의 가릉은 새 이름이니 그 소리가 청아하여 멀리 사무치니 부처님 소리도 이와 같음.3) 시방세계에 두루하시다 항사 보살이 와서 도량에 모이시니 문수사리가 상수가 되었다.

그때에때는 칠월 십육일 파사익왕이 그 부왕을 위하여 휘일諱日제사에 재를 경영하고 부처님을 내궁內宮에 청하려 하여 왕이 친히 여래를 영접하시고 널리 진수와 위없는 묘한 맛(無上妙味)을 베풀었다. 겸하여 다시 친히 모든 큰 보살을 맞으려 하며 성중에 다시 장자와 거사가 있어 동시에 스님들을 공양하려 하여 부처님께서 오셔서 응공하시기를 기다렸다. 부처님께서 문수를 친히 타이르시어 보살과 아라한을 나누어 거느려 모든 재주齋主를 응하여 주라 하시었다.

오직 아난만이 먼저 별도로 청을 받아 멀리 가서 놀아 돌아오지 못하여 대중 스님들의 공양하는 차서次序에 참석지 못하였다. 이미 상좌용성연의 상좌는 부처님 법에 출타할 때에 상좌 세 사람과 동행하는 법와 아사리용성연의 아사리는 남의 모범 되는 선생가 없고 도중에 홀로 돌아오더니 그날에 마침 공양이 없었다. 바로 그때에 아난이 응기應器발우鉢盂를 가지고 놀던 바 성에서 차제次第용성연의 차제로 부처님은 빈부귀천을 묻지 않고 칠가식七家食하는 법로 좇아 빌되 마음 가운데에 최후 단월檀越용성연의 단월은 보시하는 시주니 스님의 복전의 일을 일찍이 공양하지 못한 자라.을 구하여 재주를 삼으려 했다. 깨끗하고 더러움과 찰리刹利,찰리는 왕족 존성尊姓존성은 고문대가과 전다라전다라는 백정를 묻지 않고 평등한 자비용성연의 평등자비는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불쌍히 생각하여 평등하게 복을 짓게 하라 하신 까닭이라.를 바야흐로 행할 때 미천한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였다. 처음에 뜻을 내기는 일체중생에게 한량없는 공덕을 뚜렷이 이루고자 함이었다.

아난은 이미 여래 세존께서 수보리와 대가섭을 꾸짖으시되, “아라한용성연의 욕심에 새는 것과 있는 데 새는 마음과 무명에 새는 것이 다하고도 마음이 오직 청정함이라.이 되어서도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라고 하심을 알고, 여래께서 마음을 열어 밝히시니 막힘이 없으심을 희망하며 또 모든 의심하고 비방용성연의 부잣집에만 가면 한갓 탐욕을 위함이라 할 것이요 가난한 집에 가면 사람이 의심할 것함을 막으려 하였다. 저 성황城隍4) 을 지날 때에 성문에 천천히 걸어가며 위의를 엄정히 하여 재식 하는 법(齋法)을 엄숙히 하고 공손히 하려고 하였다.

이때에 아난이 걸식할 차례가 되어서 음실婬室을 지나갔다. 그때에 큰 환술(大幻術)을 하는 마등가녀용성연의 황발黃髮 외도의 환술하는 여자가 사비가라 선범천주진언 이름를 외워 음석婬席으로 붙들어 들여서 음란한 몸으로 어루만져 계체戒體를 장차 무너뜨릴 뻔하였다.

이때 여래께서 아난이 음술婬術에 붙들려 들어감을 아시고 재齋를 마치자 곧 돌아오시거늘 왕과 대신과 장자 거사 등이 함께 부처님을 따라와 법요法要를 듣기를 원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이마로 일백一百 가지 보배의 두려움이 없는 광명을 놓으시니 광명 가운데에서 천엽千葉의 보살 보련화가 출현하시었다. 부처님의 화신이 가부좌를 하시고 앉으시어 신주를 설하시어 문수사리에게 친히 타이르시되 주문을 가지고 가서 그를 보호하라 하시니 마등가의 악한 주문이 소멸하거늘 아난과 마등가를 문수사리가 이끌고 부처님 처소에 돌아오시었다.

아난이 부처님을 뵙고 이마로 예를 하고 슬피 울면서, “저는 예로부터 오직 (부처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 도력을 온전하게 닦지 못함을 한탄합니다. 은근히 시방 여래의 보리를 이루신 묘한 사마타奢摩陀용성연의 그쳐 관觀함이라.와 삼마三摩용성연의 환幻을 관觀함이라.와 선나禪那용성연의 중도를 관觀함이라.인 최초방편最初方便을 열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때에 다시 항사 보살과 시방 아라한과 벽지불용성연의 인연을 깨침이니 십이인연법 등이 있어 함께 즐겁게 듣기를 원하시니 물러가서 앉아서 묵연히 성인의 지취旨趣를 받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내가 동기同氣부처님의 종제從弟인데 정이 천륜天倫이니 당초에 마음을 발할 때 나의 법 가운데에 무슨 뛰어난 모양을 보았길래 갑자기 세간에 깊은 은애를 버리고 출가했는가?”

아난이 사뢰어 말하되, “제가 여래의 삽십이상이 승하고 묘하여 특수하사 형체가 비추어 사무침이 유리와 같음을 보고 항상 생각하기를, 이 상호는 애욕으로 난 바가 아니니 어째서인가? 욕기慾氣는 추탁麤濁하여 비린내 나며 농혈이 잡란하여 능히 뛰어나고 깨끗하고 묘히 밝고 붉은 금 무더기(金光聚)를 발생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해서 이를 흠모하여 부처님을 좇아 머리와 수염을 깎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착하도다 아난아!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일체중생이 예로부터 생사에 상속相續함이 모두 진심의 성품이 청정한 밝은 체體임을 알지 못하고 온갖 망상으로써 이 생각이 참되지 못한 고로 윤전輪轉이 있느니라. 네가 이제 무상보리 참 밝은 성품을 연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곧은 마음(直心)으로 나의 묻는 바를 대답하라. 시방 여래께서 동일한 도로 생사를 여의시었나니 곧은 마음을 다 쓴 연고니라. 마음과 말이 곧기 때문에 이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모든 잘못된 것이 영원히 없느니라. 아난아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니 마땅히 네가 발심할 때에 여래의 삼십이상을 인연하였다고 하니 무엇을 가지고 보았으며 누가 사랑하는가?”

아난이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사랑하고 즐거운 것은 저의 마음과 눈을 쓴 것입니다. 눈을 말미암아 여래의 수승한 상호를 보고 사랑하고 즐거움이 마음에서 나는 까닭에 제가 마음을 발하여 생사를 버리고자 원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너의 말과 같이 ‘참으로 애락하는 바가 마음과 눈으로 인함이라’고 하니, 만일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곧 능히 진로塵勞를 항복 받지 못하리라. 비유하면 국왕이 적이 침입하였을 때 군사를 보내 쳐서 제거하려거든 이 군사가 마땅히 도적이 있는 곳을 알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너로 하여금 생사에 윤전케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니 오직 마음과 눈이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일체 세간에 태胎로 나고, 알卵로 나고, 습기濕氣로 나고, 화化하여 나고, 빛이 있어 나고, 생각이 있는 것과 빛이 있지 아니하나 빛이 있는 것으로 나는 것과 빛이 없으나 빛이 없는 것이 아닌 것과 생각이 없으나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는 이 열 가지 중생이 한가지로 식심識心을 가져 몸 안에 머물러 있으니, 비록 여래의 청련화靑蓮華의 눈으로 보아도 또한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이제 이 뜬 뿌리(浮根)의 눈을 보아도 저의 얼굴에 있으니 이와 같은 식심이 진실로 몸 안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제 반드시 여래의 강당에 앉아 기타림 숲을 보나니 이제 다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이 굉장하고 청정한 강당은 급고독공원에 있고 이제 기타림은 강당 밖에 있나이다.”

“아난아, 네가 이제 강당 가운데에서 무엇을 먼저 보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강당 가운데 있어 먼저 여래를 뵈옵고, 그 다음에는 대중을 보고, 이와 같이 밖을 바라보아 바야흐로 동산의 숲을 보나이다.”

“아난아, 네가 동산의 숲을 봄에 무엇을 인하여 보는가?”

“세존이시여, 이 대강당의 문과 바라지창을 활짝 열어 제가 강당에 있어서 멀리 보나이다.”

이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에 계시어 금색의 팔을 펴서 아난의 이마를 어루만지시고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고하여 보이시되, “삼마제三摩提가 있으니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이라. 만행이 구족하여 시방 여래께서 한 문(一門)으로 나아가는 묘장엄 길이니 네가 이제 자세히 들어라.”

아난이 정례하옵고 엎드려서 자비스러운 지취를 받으시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너의 말과 같이 ‘몸이 강당에 있어 지게문과 바라지창이 널리 열리었으므로 숲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또한 중생이 이 강당 가운데 있어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밖을 보는 자가 있느냐?”

아난이 대답하여 말하되, “세존이시여, 강당에 있어 안에 계시는 여래를 보지 못하고 밖에 있는 수풀과 샘을 보는 것은 옳지 못하나이다.”

“아난아, 너도 또한 그러하여 너의 심령이 일체를 밝게 아나니 만일 네가 현전現前에 밝게 아는 마음이 진실로 몸 안에 있을진대 이때에 먼저 마땅히 몸 안을 알 것이니 자못 중생이 먼저 몸 안을 보고 뒤에 밖에 있는 물건을 보는 자가 있느냐? 비록 염통과 간과 비위脾胃는 깊어서 보지 못한다고 가정할지라도 손톱이 나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뛰어나오고 맥박이 뛰는 것은 분명히 알 것이거늘 알지 못하는 것은 어찌함인가? 반드시 안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밖을 알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네가 말하되 ‘깨달아 분명히 아는 마음이 몸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

아난이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여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저의 마음이 진실로 몸 밖에 머물러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째서인가 하면 비유컨대 등잔불을 집 안에 걸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이 등불이 반드시 능히 방 안을 비추고 그 문으로부터 나아가서 뜰을 비춥니다. 이와 같이 일체중생이 몸 가운데는 보지 못하고 홀로 몸 밖을 보는 것이 또한 등잔의 광명이 집 밖에 있어 능히 집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뜻이 반드시 밝아서 장차 의혹할 것이 없으니 부처님의 분명한 뜻과 같아서 망령됨이 없을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모든 비구가 방금 부처님을 좇아 실라벌성에서 한 덩이 밥을 빌어서 기타림에 돌아오니 나는 이미 일찍 재식齋食을 하였노라. 네가 모든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밥을 먹을 때에 여러 사람이 배가 부르더냐?”용성연의 아난이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하므로 비유하여 힐난한 것이라.

아난이 대답하여 말하되,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인가 하면 이 모든 비구가 비록 아라한일지라도 목숨이 각각 다르니 어찌 한 사람이 밥을 먹어서 능히 여러 사람을 배부르게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깨쳐 아는 마음이 진실로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등지어 상관이 없으리니 곧 마음이 아는 바를 몸이 능히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침이 몸 밖에 있을진대 마음이 능히 몸을 깨치지 못하리니 내가 이제 너에게 도라면수兜羅綿手도라면은 인도의 면화로 부처님의 손 부드럽기가 이 면화와 같다는 말를 보이시니 네 눈이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않느냐?”

아난이 대답하여 말하되,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만일 서로 안다면 어찌 밖에 있다고 말하겠느냐?용성연의 아난이 마음이 밖에 있다고 하므로 부처님이 손을 들어 증명하시되, ‘네가 보고 아느냐?’ 아난이 말하되, ‘압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마음이 밖에 있어 알진대 네가 눈으로 보고 안 마음에서 어찌 분별하여 도라면수를 아느냐?’ 이러한 연고로 마땅히 알라. 네가 깨달아 능히 아는 마음이 몸 밖에 머물러 있다 함이 옳지 못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안이 있다고 한다면 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 있다고 한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 여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이제 생각하여 한 곳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어느 곳에 있다고 하는 말인가?”

아난이 사뢰어 말하되, “이 아는 마음이 이미 안을 알지 못하고 능히 밖을 보오니 저의 생각 같아서는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나이다. 비유컨대 어떠한 사람이 유리 안경을 취하여 그 두 눈에 합한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이 합함이 있으나 걸리지 아니하여 저 뿌리가 보는 것을 따라 따르는 대로 곧 분별하오니 그러하나 제가 깨쳐서 능히 아는 마음이 안을 보지 못하는 것은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는 까닭이요, 분명히 밖을 보되 걸림이 없는 것은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는 까닭입니다.”용성연의 안경 쓴 사람이 자기 눈은 보지 못하고 밖을 봄과 같다는 비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말한 바와 같이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음으로 유리로 합한 것과 같으니 저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써 눈을 가두어 밖으로 산하를 볼 때 유리로 보느냐?”

“예.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써 눈을 가두어 진실로 유리를 보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너의 마음이 만일 유리로 합한 것과 같다면 마땅히 밖으로 산하를 보는데 어찌 자기의 눈은 보지 못하는가? 만일 눈을 볼 때 눈이 저 유리와 같이 경계가 되어서 따름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만일 능히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찌 말하되 ‘이 아는 마음이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는 것이 유리로 합한 것과 같다’고 하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네 말이 ‘깨달아 능히 아는 마음이 눈뿌리 속에 잠복하여 있는 것이 유리로 합한 것과 같다’고 함이 옳지 못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다시 이와 같이 생각하니 이 중생의 오장과 육부는 배 속 가운데 있고 육근의 구멍은 밖에 머물러 있으니 눈을 감으면 어둡고 눈을 뜨면 밝으니 이제 제가 부처님을 대하여 눈을 열어서 밝은 것을 보는 것은 이름이 밖을 본다고 할 것이요, 눈을 감아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은 이름이 안을 본다고 할 것이니 이 뜻이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마땅히 눈을 감아서 어두운 것을 볼 때에 이 어두운 경계가 눈으로 더불어 앞에 대한 것이냐? 대하지 아니한 것이냐? 만일 눈으로 더불어 대하였다면 어두운 것이 눈앞에 있는 것이니 어찌 어두운 것이 안을 이루겠느냐? 만일 눈앞에 대한 어두운 것이 안을 이루었다 한다면 어두운 곳에 앉아서 일월과 등잔이 없으면 방 안이 전부 어두울 것이니 이 집 안에 어두운 것이 다 너에게 삼초三焦와 육부六腑5) 가 될 것이다. 만일 어두운 것이 눈앞에 상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보는 것을 이루리오. 만일 밖으로 보는 것을 여의면 안으로 대하는 것을 이루리니 눈을 합하고 어두운 것을 보는 것으로 몸 가운데를 삼는다면 눈을 열어서 밝은 것을 볼 때에는 어찌 얼굴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으로 대하는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것은 능히 안도 보고 밖도 본다는 말이니 눈을 감아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을 눈 가운데라 한다면 눈을 떠서 밝은 것을 볼 때에는 어찌 얼굴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면 눈이 제가 안을 본다고 못할 것이다. 얼굴을 보는 것을 만일 이룬다면 아는 마음과 또 눈뿌리가 이에 허공에 있는 것이니 어찌 안에 있음을 이루겠는가? 만일 아는 마음과 눈뿌리가 허공에 있다면 스스로 너의 몸이 아니니 지금 여래가 너의 얼굴을 보는 것은 또한 너의 몸이다. 너의 눈은 허공에 있어 이미 알려니와 네 몸은 마땅히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을 것이다. 반드시 네가 국집한 소견으로 말하되 몸과 눈 둘이 다 깨닫는다면 너의 아는 것이 둘이 되지 아니하겠는가? 그러면 너의 한 몸에 마땅히 두 부처님을 이루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라. 네가 말하기를 ‘어두운 것을 보는 것으로 안을 본다’고 함이 옳지 못하니라.”

아난이 말하되, “제가 일찍이 부처님께 듣사오니 사부대중에게재가에는 남·녀 이중二衆이요, 출가에는 비구·비구니 이중二衆이다. 열어 보이시되, ‘마음이 남을 말미암은 까닭에 가지가지 법이 나며 법이 남을 말미암은 까닭에 가지가지 마음이 난다’고 하시니 제가 이제 이 말씀을 생각하니 곧 생각하는 당체(思惟體)가 진실로 저의 마음(心性)입니다. 어디든지 합한 곳을 따라 따르는 곳마다 마음이 있는 것이니 또한 안과 밖과 중간 삼처三處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제 말하기를 법이 남을 말미암은 까닭에 가지가지 마음이 나서 합하는 곳을 따라 따르는 곳마다 마음이 있다면 이 마음 자체가 없어 곧 합할 바가 없을 것이요, 만일 자체가 없이 능히 합한다면 곧 십구계十九界가 칠진七塵으로 인하여 합한 것이라. 이 뜻은 옳지 않다.용성연의 십팔계는 있고 십구계는 없는 것이며 육진은 있고 칠진은 없는 것이니 본래 없는 것으로 합한다는 것은 그 말이 허망된 것이라 옳지 못하니라. 만일 마음 자체가 있다면 네가 손으로써 네 몸을 스스로 찌르는 것과 같아서 그 찌를 때에 너의 아는 마음이 안에서 나오느냐? 밖으로부터 들어가느냐? 만일 안에서 나온다면 도리어 네 몸 가운데를 볼 것이요, 만일 밖으로부터 온다면 먼저 마땅히 너의 얼굴을 보고 들어올 것이다.”

아난이 말하되, “보는 것은 눈이 보는 것이고, 아는 마음은 눈이 아니니 본다고 하는 것이 이치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만일 눈이 능히 본다면 네가 집 가운데에 있을 때에 눈이 능히 보더냐? 이미 죽은 모든 사람도 오히려 눈이 있으니 마땅히 온갖 물건을 볼 것이 아니냐? 만일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은 사람이라고 하리오. 아난아, 또 네가 깨달아 능히 아는 마음이 만일 반드시 체體가 있다면 체가 하나인가? 체가 많은가? 이제 네 몸에 있어 체가 두루한가 두루하지 아니한가? 만일 체가 하나라면 곧 네가 손으로써 한 가닥을 자를 때에 사지가 마땅히 다 깨달을 것이니 만일 다 깨달았다면 찌르는 것이 마땅히 찌르는 곳이 없을 것이다. 만일 찌르는 것이 처소가 있다면 곧 네가 체가 하나라고 하는 말이 스스로 성립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체가 많다면 곧 여러 사람을 이루리니 너의 일신에 어떤 체가 네가 되는가. 만일 체가 두루하다면 앞에서 찌른바 체가 하나라고 한 말과 같다. 만일 체가 두루하지 아니하다면 마땅히 네가 머리는 기둥에 부딪치고 발은 돌부리를 차면 머리는 깨닫는 바가 있고 발은 아는 바가 없으리니 이제 네가 그러하지 아니하니 어째서인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따라 합한 곳마다 마음이 따르는 데가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제가 또 듣사오니 부처님께서 문수 등 모든 법왕자와 더불어 실상법을 말씀하실 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마음은 안에도 있지 아니하며 또한 밖에도 있지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하니 안을 보지 못하고 밖을 서로 알지 못하니 안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안에 있다 할 수 없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기 때문에 밖에 있다고 할 수 없으니, 이제 서로 아는 까닭이요, 또 안을 보지 못하므로 마땅히 중간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마음이 중간에 있다 하니 중간이 어디에 있느냐? 몸 밖에 처소가 따로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몸에 있느냐? 만일 몸에 있다고 한다면 가운데가 되지 않고, 가운데 있다 하면 그 전에 네 말과 같이 안에 있다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일 몸 밖에 따로 처소가 있다면 마음이 있는 곳을 표하여 둔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하여 둔 곳이 없다면 없는 것과 한가지요, 표하여 두었다면 정한 것이 없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사람이 물건으로 중앙을 표준하고 땅에 박은 뒤에 동쪽으로 가 본다면 그 표가 서쪽에 있고 남쪽으로 가 본다면 북쪽에 있어서 표의 체體를 정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응당 혼란할 것이니라.”

아난이 말하되, “제가 중간을 말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아닙니다. 예전에 세존께서 말씀하시되, ‘눈과 빛이 인연이 되어 아는 것이 그 가운데서 난다 하시었으니 눈은 분별이 있고 색 티끌(色塵)은 앎이 없는 것인데 눈뿌리와 경계가 서로 대하면 아는 것이 그 가운데서 생기니 그러므로 눈뿌리가 경계를 대한 그 중간에 마음이 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의 마음이 만일 눈뿌리와 색 티끌 두 가운데 있다면 이 마음의 체가 눈뿌리와 색 티끌 둘을 겸한 것인가? 둘을 겸하지 아니한 것인가? 만일 둘을 겸하였다면 물체가 혼란해서 물건은 심체心體에 아는 것이 없으므로 서로 상대적으로 둘이 각각 따로 있음을 이룰 것이니, 어찌 가운데가 되겠는가? 눈뿌리를 겸하지 아니한다면 무정한 목석은 알 수 없고, 밖으로 온갖 경계를 겸하지 아니하였다고 해도 모르는 것도 아니니 눈뿌리와 밖으로 모든 경계를 한가지로 겸한 것이 아니면 아는 마음의 체를 어디에도 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음의 체가 눈뿌리의 아는 것도 아니고, 또 밖으로 무정한 목석과 같은 경계도 아니니, 그 마음에 체성이 없다면 어느 곳에다 가운데를 정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중간에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제가 옛적에 부처님을 뵈오니 대목건련과 수보리와 부루나와 사리불 큰 제자와 함께 법륜을 굴리시어 항상 말씀하시되, ‘깨달아 아는 분별하는 심성(覺知分別心性)이 이미 내외內外 중간에 있지 아니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곳이 없어서 일체에 둘 곳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셨으니 제가 둘 곳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말하되, ‘깨달아 아는 분별하는 심성이 모두 있는 데가 없음이라’고 하니 세간허공과 수륙에 날아다니는 모든 물상物象을 일체라 한다. 네가 무착無着이라 하는 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없다면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과 같으니 본래 없는 것을 무착이라 할 것도 없고 착着하지 아니한 것이 있다면 가히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형상이 없다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면 곧 형상이 있는 것이다. 형상이 있다면 있는 것이니 어찌 무착無着이라 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일체 착着할 바 없는 것을 깨달아 아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때에 아난이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에 옷을 치우쳐 벗어 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여 합장공경하고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저는 이 여래의 가장 어린 아우로 부처님의 사랑을 받고 이제 비록 출가하였으나 오히려 어여삐 여기심을 믿어서 많이 듣기만 하고 샘이 없는 도(無漏道)를 얻지 못하여 능히 사비라 주문을 누르지 못하고 마등가의 술법에 걸려 음사婬舍에 빠지게 되었으니 마땅히 참 경계(眞際)에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오직 원하오니 세존께서 대자大慈로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들에게 사마타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모든 천제闡提로 하여금 악한 소견을 끊어 버리게 하소서.”

이 말을 마치고 오체五體를 땅에 던지사 모든 대중과 함께 목마른데 물 생각 하듯이, 새 새끼가 죽지를 벌리고 어미 새가 밥을 물어 오는 것을 바라듯이, 공경하여 깨우쳐 보이시기를 들으려 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면문面門(입)으로부터 가지가지 광명을 놓으시니 그 광명이 빛나 백천 개의 해와 같으며 널리 부처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이와 같이 시방의 미진국토微塵國土가 일시에 열리어 보이거늘, 불타의 위신력이 모든 세계로 하여금 합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하며 그 세계 가운데에 있는바 모든 큰 보살이 다 본국에 머무르사 합장하고 받들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일체중생이 아주 먼 과거로부터 오면서 가지가지 전도顚倒하는 것이 마치 업종자業種子가 자연히 도꼬마리(惡叉聚)6) 가 한 낱에 세 가지로 붙어 있어 서로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모든 수행하는 사람이 능히 무상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내지 별로 성문연각을 이루며 외도와 제천마왕諸天魔王과 모든 마군魔軍이 권속을 이루는 것이 다 두 가지 진眞과 망妄의 근본을 알지 못하여 착란하게 닦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치 모래를 쪄서 좋은 음식을 이루고자 하는 것과 같아서 비록 긴 겁(塵劫 : 무수한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얻지 못하리라.

아난아, 어떠한 것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비롯함이 없는 생사의 근본이니 곧 네가 이제 모든 중생과 더불어 반연攀緣하는 마음으로서 자성을 삼는 것이요, 둘째는 비롯함이 없는 보리와 열반이 원래 청정한 체體이니 곧 네가 이제 식정識精이 원래 밝음이 능히 모든 인연을 내거든 인연에서 미迷하여 유실된 것이라. 모든 중생이 본래 밝은 성품을 유실하여 비록 종일토록 행하여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여 그릇 제취諸趣에 들어가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사마타 길을 알아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이제 내가 다시 너에게 물으리라.”라고 하시고, 곧바로 여래께서 금색 팔을 들으시고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이제 이것을 보느냐?”

아난이 말하되, “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무엇을 보는가?”

아난이 말하되, “제가 여래께서 팔을 들어 손가락을 구부리시니 광명의 주먹이 되시어 저의 마음과 눈을 비치심을 보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무엇을 가지고 보는가?”

아난이 말하되, “저와 대중이 한가지 눈을 갖고 보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나에게 대답하되, ‘여래께서 손가락을 구부리사 광명의 주먹이 되어 저의 마음과 눈을 비친다’고 하니, 너의 눈은 가히 보려니와 무엇으로써 마음을 삼아 나의 주먹을 당하는가?”

아난이 말하되, “여래께서 현재의 마음이 있는 곳을 물으시니 제가 마음으로써 추구하여 찾아보니 곧 능히 추구하는 것을 제가 가져 마음으로 삼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애닯다. 아난아, 이것은 너의 본심이 아니니라.”

아난이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하여 합장하고 일어서서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이것이 저의 마음이 아니면 마땅히 무엇이라고 이름하오리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이것이 곧 앞의 티끌(前塵)에 대한 허망한 생각이어서 너의 진성을 미혹하게 함이니, 네가 무시로 금생에 이르도록 도적을 잘못 알아 자식을 삼아서 너의 원래 떳떳함을 잃은 까닭으로 생사에 윤회하나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총애하신 아우라 마음이 부처님을 사랑하는 고로 저로 하여금 출가하게 하시니 저의 마음이 어찌 홀로 여래께만 공양하겠나이까. 내지 항사의 국토를 두루 다니면서 모든 부처님과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며 대용맹을 발하여 일체 행하기 어려운 법을 행하는 것도 다 이 마음을 쓴 것이며, 비록 법을 비방하고 길이 선근에서 퇴전하여도 또한 이 마음으로 인한 것이니 만일 이 발명한 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제가 이에 마음이 없어 모든 토목과 같아서 각지覺知를 여의어 다시 있을 바가 없을 것이오니 어찌 여래께서 설하시되 ‘이것이 마음이 아니라’고 하시나이까? 제가 진실로 놀랍고 두려우며 겸하여 이 대중도 의혹하오니 오직 대비를 드리우사 깨치지 못한 자를 위하여 열어 보이소서.”

이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열어 보이사 마음으로 하여금 무생법인에 들어가게 하시었다. 저 사자좌에서 아난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며 고하여 말씀하시되, “여래가 항상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나는 바가 오직 마음에 나툰 바이며, 일체의 인과와 세계의 미진微塵이 마음으로 인하여 체를 이루었나니, 아난아, 만일 모든 세계에 일체 있는 바가 그 가운데 내지 풀 잎사귀와 실의 매듭만큼이라도 그 근원을 따져 보면 다 체성이 있으며 비록 허공이라도 또한 이름과 모양이 있거늘, 어찌 하물며 청정하고 묘정한 밝은 마음(淸淨妙淨明心)7) 이 일체의 중심에 성품이 되니 스스로 체성이 없겠느냐! 만일 네가 분별하여 깨치며 관하며 모든 아는 바 지각의 성품을 집착하여 반드시 마음을 삼는다면 이 마음이 곧 일체 색·성·향·미·촉·법 모든 티끌의 사업을 여의고 별도로 온전한 성품이 있느냐! 네가 이제 나의 법을 받아 듣는 것도 곧 소리로 인하여 분별이 있으니, 비록 일체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멸하고 안으로 깊숙하고 고요함을 지키더라도 오히려 법의 티끌(法塵)인 분별하는 그림자가 되느니라. 내가 너에게 친히 타일러 마음이 아닌 그림자인 분별식을 집착하라 함이 아니니 다만 네가 마음에 미세하게 헤아려 보아라. 만일 앞의 티끌을 여의고 분별하는 성품이 있다면 곧 참으로 너의 마음이라 하려니와 만일 분별하는 성품이 티끌을 여의어 체가 없다면 이것이 곧 앞의 티끌에 대한 분별하는 그림자니라. 티끌은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만일 변하고 멸할 때에는 이 마음이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과 같으니 곧 너의 법신이 똑같이 끊어져 멸할 것이다. 그 누가 닦아서 무생법인을 증득하겠는가?”라고 하시니, 즉시에 아난과 대중이 묵연히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잊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세간의 일체 모든 닦는 사람이 현전에 비록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이루었으나 누漏가 다한 아라한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다 이 생사의 망상에 집착하여 그릇 진실함을 삼은 것이니 이러한 연고로 네가 비록 많이 들음은 얻었으나 성과聖果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아난이 듣고 거듭 슬피 눈물을 흘리며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합장하고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부처님을 좇아 발심 출가하여 부처님의 위신만 믿고 스스로 생각하되, ‘제가 수고롭게 닦지 아니하여도 장차 여래께서 저에게 삼매를 얻게 해 주시리라’고 하고, 몸과 마음이 본래 서로 대신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여 저의 본심을 잃었으니 비록 몸은 출가하였으나 마음이 도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비유컨대 궁한 자식이 아비를 버리고 도망간 것과 같습니다. 금일에야 이에 비록 많이 들음이 있을지라도 자기가 수행하지 아니하면 듣지 아니한 것과 같아서 사람이 밥을 말함에 마침내 능히 배부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제 두 가지 장애에 얽힌 바는 진실로 고요하고 떳떳한 심성을 알지 못한 까닭입니다. 오직 원하오니 여래께서는 궁하고 외로운 자를 불쌍히 여기사 묘명심妙明心을 발하여 저희들의 도안道眼을 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때에 여래의 가슴에 만卍자로부터 보배 광명이 솟아나니, 그 광명이 빛나고 빛나 백천百千의 빛이 있으며 시방의 미진수의 부처님 세계에 일시에 두루하사 시방의 보배 세계에 모든 여래의 이마를 어루만지시고 되돌려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이르시었다. 그리고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큰 법당法幢을 세우며, 또한 시방에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미묘하고 은밀한 성품이 청정하고 밝은 마음을 얻게 하며, 청정한 눈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네가 먼저 나에게 대답하되, ‘광명 주먹을 본다’고 하였으니, 이 주먹의 광명이 무엇으로 인하여 있으며, 어찌 주먹을 이루었으며, 네가 무엇을 가져서 보는가?”

아난이 말하되, “부처님 온몸이 염부단금閻浮檀金8) 으로 시방에 붉게 빛나는 것이 보배 산과 같고 청정한 까닭에 광명이 있는 것인데 제가 실로 눈으로 보았으며, 다섯 바퀴 손가락 끝을 구부려서 잡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시므로 그런 까닭에 주먹의 모양이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여래가 금일에 진실한 말로 너에게 고하리니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비유로써 깨달음을 얻으리라. 아난아, 비유컨대 나의 주먹이 만일 나의 손이 없으면 나의 주먹이 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너의 눈이 없으면 네가 보지 못하리니 너의 눈뿌리로써 나의 주먹을 비례하건대 그 뜻이 같으냐?”

아난이 말하되, “오직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저의 눈이 없으면 저의 보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저의 눈뿌리로써 여래의 주먹과 비례한다면 일과 뜻이 서로 같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네가 주먹과 눈이 서로 같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째서인가? 손이 없는 사람은 주먹이 반드시 없지만 눈뿌리가 없는 사람은 보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니라. 어째서인가? 네가 저 길에 나아가 아무 것이나 모든 맹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하면, 저 모든 맹인이 반드시 와서 너에게 대답하되, ‘우리가 눈앞에 오직 어둠만을 보고 다시 다른 것은 보지 못한다’고 하니, 이 뜻으로 본다면 앞 티끌이 스스로 어두울지언정 그 보는 성품이야 어찌 손상이 있겠느냐?”

아난이 말하되, “모든 맹인의 눈앞에 오직 어둠만을 보거늘 어찌 본다고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모든 맹인이 눈이 없어서 오직 어둠을 보는 것이 눈이 있는 사람이 어두운 집에 있어 어둠을 보는 것으로 이 두 사람의 검은 것에 보는 것을 비교한다면 일찍이 다름이 있겠느냐.

아난아, 만일 눈이 없는 사람이 완전히 눈앞의 검은 것을 보다가 홀연히 눈에 광명을 얻으면 도리어 앞 티끌의 가지가지 빛을 보리니 이름을 눈이 본다고 할 것이다. 저 캄캄하고 어두운 가운데에 완전히 앞의 어둠을 보다가 홀연히 등불의 광명을 얻으면 앞 티끌의 가지가지 색을 보리니 마땅히 등불이 본다고 이름하겠구나. 만일 등불이 본다고 하면 등불이 능히 보는 것이다. 스스로 등불이라 이름할 것이 없으며 또 등이 보는 것이니 너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등잔은 능히 빛을 나툴지언정 이와 같이 보는 자는 이 눈이요 등잔이 아니며, 눈은 능히 빛만 나툴지언정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은 이 마음이요 눈이 아니니라.”

아난이 비록 다시 이 말씀을 들었으나 모든 대중과 더불어 잠잠하여 마음을 깨닫지 못하며 오히려 여래께서 자비한 음성을 보이심을 희망하여 합장하고 마음을 청정히 하여 부처님께서 대비로 깨우쳐 주시기를 기다렸다. 이때에 세존께서 도라면兜羅綿 광명 그물 손을 펴서 다섯 손가락을 펴시고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친히 타일러 말씀하시되, “내가 처음으로 도를 이루어 녹야원 동산에서 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와 너희 사부대중을 위하여 말하되, ‘일체중생이 보리와 아라한을 이루지 못한 것은 다 객진 번뇌에 그릇된 바이니, 너희들이 당시에 무엇으로 인하여 깨달아서 이제 성과聖果아라한과. 성과는 성인이 되었다는 말를 이루었느냐?’”

이때 교진여가 일어나서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이제 장로가 되어 저 대중 가운데 홀로 잘 알았다는 이름(解名)을 얻은 것은 객진客塵 두 글자를 깨달음으로 인하여 성과를 이루었나이다. 세존이시여, 비유컨대 나그네가 여관에 투숙함에 혹 잠을 자든지 혹 밥을 먹든지 하다가 먹고 자는 일을 마치고 행장을 정돈하여 길을 떠나 잠깐도 머무를 여가가 없지만 여관의 주인은 스스로 가는 바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건대 머물지 않고 가는 사람은 이름이 나그네이고 항상 머물러 있는 사람은 주인이니 머물지 아니하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하나이다. 또 날이 새로 개임에 맑은 햇빛이 하늘에 비추어 광선이 창틈으로 들어오면 허공에 모든 티끌이 있음을 보게 되니 티끌은 움직이지만 허공은 고요하니 이와 같이 생각하건대 맑고 고요한 것은 허공이요 움직이는 것은 티끌이니 움직이는 것이 객진客塵이 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으니라.”라고 하시고 즉시에 여래께서 대중 가운데 오륜지五輪指를 구부렸다 다시 펴시며 펴시었다가 다시 구부리시고 아난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네가 이제 무엇을 보는가?”

아난이 말하되, “제가 여래의 백보륜장百寶輪掌을 대중 가운데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보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나의 손이 대중 가운데서 폈다 쥐었다 함을 보니 나의 손이 폈다 쥐었다 함이냐? 너의 보는 것이 폈다 쥐었다 함이냐?”

아난이 말하되, “세존께서 보배 손을 대중 가운데 폈다 쥐었다 하시니, 제가 여래의 손이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함을 볼지언정 저의 모든 성품이 폈다 쥐었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누가 움직이고 누가 고요한가?”

아난이 말하되, “부처님의 손이 머물지 아니하고 저의 보는 성품도 오히려 고요하지 아니하니 누가 머문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으니라.”

여래께서 이에 윤장輪掌용성연의 부처님 손바닥에 천폭륜이 있는 고로 윤장이라 하니라.으로부터 한 보배 광명을 나투시어 아난의 오른쪽에 두셨는데 즉시에 아난이 머리를 돌이켜 오른편을 보니 또 광명을 놓으시어 아난의 왼편에 두셨다. 아난이 또 머리를 돌이켜 왼편을 보니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너의 머리가 무엇으로 인하여 움직이는가?”

아난이 말하되, “제가 여래께서 묘한 보배 광명을 내시어 저의 좌우로 오는 까닭에 제가 좌우로 보느라고 머리가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아난아, 네가 부처님의 광명을 보아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니 너의 머리가 움직이느냐 보는 성품이 움직이느냐.”

“세존이시여, 저의 머리가 스스로 움직이지만 저의 보는 성품은 오히려 그침이 없으니 누가 움직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으니라.”

여래께서 널리 대중에게 고하시되, “만일 중생이 움직이는 것으로써 티끌을 삼고 머물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객을 삼는다면 너희들은 아난을 보아라. 머리가 스스로 움직일지언정 보는 성품은 움직이지 않으며 나의 손을 보아라. 스스로 폈다 쥐었다 하지만 보는 성품은 펴고 거둠이 없느니라. 어찌하여 네가 이제 움직임으로써 몸을 삼고 움직임으로써 경계를 삼아 처음으로부터 마칠 때까지 생각생각이 생멸하여 참된 성품을 잃고 전도되게 일을 하느냐. 성품과 마음(性心)이 참된 것을 잃고 물건을 그릇 알아 자기를 삼아 이 가운데에 윤회하여 스스로 생사의 윤전함을 취하느니라.”

수능엄경 둘째 권

이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이 부처님께서 깨우쳐 보이심을 듣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무시이래로 본심을 잃어버리고 망령되이 연진緣塵반연하는 티끌에 분별 그림자를 잘못 알았다가 금일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젖을 먹지 못했던 아이가 홀연히 자애로운 어머니를 만난 것 같았다. 합장예불하며 여래께서 몸과 마음의 참되고 허망한 것과 헛되고 실다운 것과 현전의 생멸과 불생멸 두 가지로 성품을 발명하여 주심을 듣기 원하였다.

때에 바사익왕이 일어나서 부처님께 사뢰되, “제가 일찍이 부처님께서 깨우쳐 타일러 주심을 받지 못할 때에는 가전연9) 과 비라지자를 보니가전연과 비라지자는 외도라. 다 말하되 ‘이 몸이 죽은 후에는 다 멸한 것이 열반이 된다’고 하였사온데, 제가 이제 비록 부처님을 만나서도 오히려 의심이 있으니 어떻게 발명하여야 이 마음에 생멸이 없는 경지를 증득하여 알겠나이까. 이제 이 대중에 모든 샘이 있는 자들이 듣기를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고하시되, “나의 몸이 지금 번듯이 있으니 다시 대왕에게 묻겠습니다. 대왕의 육신이 금강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썩지 아니합니까? 또 변하여 무너집니까?”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이 몸이 마침내 변하여 멸하는 줄로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대왕이시여, 아직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 멸할 줄로 아십니까?”

“세존이시여, 제가 무상하게 변하여 무너질 몸이 비록 지금 멸하지 아니하였으나 제가 현전에 생각생각이 옮아가며 새록새록 머물지 아니한 것을 보니 나무가 불에 타면 필경에 재를 이루는 것 같아서 점점 쇠약衰弱하여 죽어 망함이 쉬지 아니하니 결단코 이 몸이 마땅히 멸하여 다할 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소이다. 대왕이시여, 대왕이 이제 나이가 이미 쇠하여 늙었으니 얼굴이 동자였을 때와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제가 옛적에 어린아이 때에는 살이 윤택하였고 나이가 장성해서는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늙음이 압박해 오니 얼굴빛이 말라서 초췌하며 정신이 혼미하며 터럭은 희고 얼굴은 쭈그러져 앞날이 멀지 않은 때가 다가오니 어찌 충실하고 장성할 때와 같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대왕이시여, 대왕의 용모가 응당 한꺼번에 낡고 썩어 못쓰게 되지는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되, “세존이시여, 변화하는 것이 은밀히 옮아감을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하나 세월(寒暑)이 흘러 점점 늙음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인가 하면 저의 나이 이십에는 비록 어리다 하였으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열 살 먹었을 때보다 이미 늙은 것이며, 삼십 살 때를 생각해 보면 이십 살 때보다 쇠衰하였으며, 지금 제가 나이가 육십이 세이니 오십 세 때에는 아주 건강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은밀히 변해 감을 보니 그 사이에 바뀜을 또한 십 년씩 한정하니 다시 저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변화하는 것이 어찌 오직 십 년, 이십 년뿐이겠습니까? 실로 해로 변하는 것인데 어찌 해로만 변하겠습니까? 또한 달로 변화하며 날로 변해 가는 것이니 가만히 생각하여 자세히 관찰해 보면 찰나찰나와 생각생각 사이에 머물지 아니하는 까닭에 저의 몸이 변하여 멸함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대왕이 변천變遷하여 머물지 아니함을 보고 대왕이 멸할 줄 아나니 멸할 때에 대왕의 몸 가운데에 멸하지 아니할 것을 아시는가?”

바사익왕이 합장하여 부처님께 사뢰되, “제가 진실로 알지 못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대왕에게 멸하지 아니하는 성품을 보이리라. 대왕이여, 왕의 나이가 얼마나 되어서 항하수를 보시었소.”

왕이 말하되, “제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저를 이끌고 기바천耆婆天10) 을 참배할 적에 이 항하수를 지나니 그때에 곧 이 항하수인 줄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대왕이여, 그대의 말과 같이 이십 세 적을 생각하면 십 세보다 쇠衰하며, 이에 육십에 이르기까지 일월세시日月歲時로 염념念念이 옮아가 변한 것이니 곧 그대가 삼세 적에 이 항하수를 볼 때와 열세 살에 이르러서 그 물을 볼 때 어떠하였소.”

왕이 말하되, “세 살이 되었을 때나 내지 육십이 세에 이르도록 항하수를 보는 것은 다름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대가 이제 터럭이 희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슬퍼하니 그 얼굴은 반드시 동자 때보다 쭈그러졌으려니와 그대가 지금 항하수를 보는 것과 옛적 동자 때에 항하수를 보는 것에 젊고 늙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왕이 말하되,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이 비록 쭈그러졌으나 이 견정見精(보는 정기)의 성품은 일찍이 쭈그러지지 아니하니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는 것을 좇으려니와 쭈그러지지 아니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멸함을 받지만 저 변하지 아니하는 것은 원래 생멸이 없거늘, 어찌하여 저 가운데에 그대가 생사를 받아서 오히려 저 말가리외도들이 말하는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심성까지라도 모두 다 멸하여 무정한 목석과 같다’고 하는데 이끌리는가?”

왕이 이 말을 듣고 몸을 버리고 다시 태어날 줄 알고 모든 대중과 함께 환희용약하여 일찍이 없던 것을 얻었다.

아난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예불하고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것이 반드시 생멸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 우리들 무리를 이름하되, ‘진성을 잃고 생사에 전도함이라’고 하시나이까. 원컨대 자비로써 저의 번뇌(塵垢)를 씻어 주소서.”라고 하였다.

즉시에 여래께서 금색 손을 드리우시어 손으로 아래를 가리키시며 아난에게 보여 말씀하시되, “네가 이제 나의 모다라수母陀羅手11) 를 보아라.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아난이 말하되, “세간의 중생들이 이것을 거꾸로라 하나 저는 어느 것이 바로가 되고 어느 것이 거꾸로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만일 세간 사람이 이것으로써 거꾸로라고 여긴다면 세간 사람은 무엇을 갖고 바르다고 여기느냐.”

아난이 말하되, “여래께서 손을 세우시어 도라면수가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곧 이름을 바로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만일 이것을 거꾸로 된 것이라 한다면 머리와 꼬리를 서로 바꾸니 모든 세간 사람이 한 번 잘못 보고 두 번 잘못 보는 것이니라. 곧 네 몸을 여래의 청정한 몸과 견주어 발명한다면 여래의 몸은 이름이 정변지正徧知요 너의 몸은 이름을 성품이 전도한 것이라. 따라서 네가 자세히 보라. 네 몸과 부처님 몸에서 전도되었다 일컫는 것은 어느 곳에 있어 이름을 전도라 하느냐.”

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이 눈이 몽롱하여 부처님을 보되 눈동자가 깜박이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에 전도한 곳을 알지 못하니 부처님께서 자비를 일으키시어 아난과 모든 대중을 불쌍히 여기사 해조음海潮音(파도 소리)을 발하여 두루 대중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선남자여, 내가 항상 말하되 ‘색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부린 바와 모든 반연한 바의 법이 오직 마음으로부터 난 것이라’고 하나니 네 몸과 마음이 다 이 묘명진정妙明眞精한 묘심妙心 가운데서 나타난 물건이거늘 어찌하여 너희들이 본래 묘하며 뚜렷이 묘한 밝은 마음(本妙圓妙明心)과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고 깨친 가운데 미迷함을 그릇되이 인정하느냐? 회매晦眛하여 허공이 되고 허공과 회매한 가운데서 어두움이 맺혀 색色이 되니, 색色이 망상과 섞이어 생각의 모양으로 몸이 되어 모인 인연이 안으로 흔들고 밖으로 나아가 분일奔逸하여 어두워 시끄럽고 시끄러운 상相으로써 심성心性을 삼으니, 한번 미하여 마음이라 여겨서 결정코 미혹하여 색신色身의 안이라고 여기고 색신과 밖으로 산하와 허공과 대지에 이르기까지 다 이 묘명진심 가운데의 물건인 줄 알지 못한다. 비유컨대 맑고 맑은 백천대해百千大海를 버리고 그 가운데에 오직 하나의 뜬 물거품을 체로 알아서 온전히 바다의 조수潮水라 여기며 큰 바다의 물을 밑바닥까지 다한 줄로 아나니, 너희들이 곧 미한 가운데 배나 더 미한 사람이다. 내가 손을 드리우는 것과 같아서 차별이 없으니 여래가 가히 불쌍한 자라고 말하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서 구원하심을 받아 깊이 뉘우쳐 눈물을 흘리고 손을 모아(叉手)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은 묘한 음성을 듣사와 묘명심이 원래로 원만히 항상 머물러 있는 마음으로 깨달았으나 제가 부처님의 현전에 법을 설하시는 음성을 깨달음도 현재의 반연하는 마음으로써 진실로 제가 우러러보는 바라 한갓 반연한 마음을 얻었을 뿐 감히 본원本元의 심지心地를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원만하신 말씀(圓音)을 베푸사 저의 의심의 뿌리를 뽑아내어 위없는 도에 돌아가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너희들이 오히려 반연하는 마음으로 법을 듣나니 이 법도 또한 반연이 된지라 법성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저 사람이 손으로써 달을 가리켜 사람에게 보이거든 저 사람이 손가락으로 인하여 마땅히 달을 볼 것이거늘,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月體)를 삼으면 이 사람은 어찌 달만 잃었으리오. 또한 그 손가락도 잃어버렸도다. 어째서인가? 가리킨 손가락으로 밝은 달을 삼는 연고라. 어찌 오직 손가락만 잃었으리오. 또한 다시 밝고 어두운 것을 알지 못함이니 어째서인가? 손가락으로써 밝은 달의 성품을 삼아 밝고 어두운 성품을 아는 바가 없는 연고니 너도 또한 이와 같도다.

만일 나의 법을 설하는 소리를 분별함으로써 너의 마음을 삼을진대 이 마음이 스스로 분별하는 소리를 여의고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한다. 비유컨대 손님이 여관에 기숙하여 잠깐 쉬었다가 문득 가는 것과 같아서 항상 머물지 아니하거든 여관을 맡은 주인은 가는 바 없기 때문에 여관 주인이라 한다. 이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일 참 너의 마음이라면 곧 가는 바 없을 것이거늘 어찌 소리를 여의고 분별하는 성품이 없는가? 이것이 어찌 오직 소리의 분별하는 마음뿐이리오. 나의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색상色相을 여의면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라. 이와 같이 내지 분별이 모두 없어 색과 공이 아닐새 구사리拘舍籬 등이 어리석어 명제冥諦12) 를 삼느니라. 모든 법에 반연을 여의고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이 각각 돌려보낼 곳이 있으니 어떤 것이 주인이 되는가?”

아난이 말하되, “만일 저의 심성이 각기 돌려보낼 바가 있다면 곧 여래께서 설하신 묘명원심妙明元心은 어찌 돌려보냄이 없습니까? 오직 불쌍히 여기사 저를 위하여 설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또한 네가 나를 보는 견정見精13) 의 밝은 근원이 비록 묘명원심은 아니나 둘째 달(第二月)과 같으니 이 달의 그림자가 아니니라.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어라. 너에게 돌려보내지 못할 경지를 보이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방이 훤칠히 열리어 해가 하늘에 떠오르면 밝게 빛남이 있고, 그믐 밤중에 구름과 안개가 덮이면 곧 다시 어둡고, 문 바라지 틈에서는 통하는 것을 보고, 담장 사이에서는 막힘을 보고, 분별하는 곳에서는 반연함을 보고, 텅 빈 허공 가운데서는 두루 빈 성품(空性)이요, 무성한 티끌 형상은 흙비 곧 어두운 티끌이요, 맑게 개어서 기운(雲氣)을 거두면 또 청정함을 본다.

아난아, 네가 이 모든 변화하는 상을 보아라. 내가 이제 각기 본래 처소로 돌려보내리라. 어떤 것이 본래의 인因이 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에 밝은 것은 해로 돌려보내니 어째서인가? 해가 없으면 밝지 아니하니 밝은 원인은 해에 속하기 때문에 해로 돌려보내야 한다. 어두운 것은 그믐밤으로 돌려보내고, 통한 것은 창문으로 돌려보내고, 막힌 것은 담장으로 돌려보내고, 반연은 분별로 돌려보내고, 텅 빈 것은 허공으로 돌려보내고, 완전히 어두운 것은 티끌로 돌려보내고, 청정한 것은 개인 곳으로 돌려보낼지니 곧 모든 세간의 일체 있는 것이 이 무리에서 벗어나지 아니하나니라. 네가 이 여덟 가지를 보는 견정見精의 밝은 성품은 마땅히 누구에게로 돌려보내고자 하느냐. 어째서인가? 만일 밝은 데로 돌려보내면 곧 어두운 데는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고 어두운 등이 가지가지 차별이 있으나 보는 것은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것을 가히 돌려보낼 자는 자연히 네가 아니거니와 너를 돌려보내지 못하는 자는 네가 아니고 누구인가? 곧 알라. 너의 마음이 본래 묘하여 밝고 맑거늘 네가 스스로 미하여 근본을 상실하고 윤회를 받아 저 생사 가운데에 항상 빠져 있으니 이런 까닭에 여래께서 가히 가련하고 불쌍하다 하니라.”

아난이 말하되, “제가 비록 이 보는 성품이 돌려보낼 수 없음을 알았으나 어떻게 저의 진성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라. 이제 네가 무루無漏 청정을 얻지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력을 받아 초선천初禪天을 보되 장애가 없으며, 아나율은 염부제를 보되 손바닥 가운데에 암마라庵摩羅 열매를 보며, 모든 보살은 백천 세계를 보며, 시방 여래는 미진수와 같은 청정한 국토를 다 보거늘 중생의 보는 바는 한 치(分寸)에 지나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또한 내가 너와 더불어 사천왕의 머무르는 궁전을 볼 때 중간에 두루 물과 육지와 허공을 보나니 비록 어둡고 밝으며 갖가지 형상을 보나 앞의 티끌에 분별로 유애留礙함이니 네가 마땅히 여기에서 자타를 분별하라. 이제 내가 너를 저 견정見精 가운데서 가릴 테니 어느 것이 나의 체며 어느 것이 물상이 되는가?

아난아, 너의 보는 근원을 다하라. 일월 궁전으로부터 이것이 물건이지 네가 아니다. 칠금산七金山에 이르기까지 두루 자세히 보라. 비록 가지가지로 빛날지라도 또한 물건이지 네가 아니다. 점점 다시 보라. 구름이 날고 새가 날며 바람이 동하고 티끌이 일어나며 산천수목과 풀과 사람, 축생이 다 물건이지 네가 아니다.

아난아, 이 모든 가깝고 먼 데 있는 물건의 성질이 비록 다시 차별이 있으나 너의 견정이 청정해서 보이는 것이니 곧 모든 물건의 무리가 스스로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다름이 없느니라. 이 견정의 묘하고 밝은 것이 진실로 너의 보는 성품이니라. 만일 보는 것이 이 물건이라면 곧 네가 또한 가히 나의 보는 것을 보리라. 만일 함께 보는 것으로 나를 본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아니할 때에는 어찌 내가 보지 아니한 곳을 보지 못하는가? 만일 보지 아니한 것을 본다고 한다면 자연히 저의 보지 아니한 모양이 되지 못하리라. 만일 나의 보지 아니한 경지를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건이 아니거니 어찌하여 네가 너의 성품이 아니리오. 또 네가 이제 물건을 볼 때에 네가 이미 물건을 보거든 물건도 또한 너를 본다고 하면 체성이 분잡하여 곧 너와 나 아울러 모든 세간이 안립安立함14) 을 이루지 못하리라.

아난아, 만일 네가 볼 때에 이것이 너요, 내가 아닐진대 보는 성품이 두루두루 하거니 네가 아니고 누구리오. 어찌하여 스스로 너의 참된 성품이 너의 성품인 것을 참되지 못하다고 의심하여 나에게 참다움을 구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이 보는 성품이 반드시 나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면 저와 여래와 사천왕의 승장보전勝藏寶殿이 일월궁日月宮에 있을새 이 보는 것이 둥글어 사바국토에 두루하다가 정사精舍(절)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만 보고 마음이 맑은 전당집에서는 다만 집의 처마만 보니, 세존이시여, 이 보는 것이 이와 같아서 곧 체가 본래 한 세계에 두루하다가 이제 집 가운데 있어서는 오직 한 집에 가득하니 이 보는 것이 큰 것을 줄여서 적음이 되옵니까? 담장에 당하면 보는 것이 좁아져서 끊어지게 합니까? 제가 이제 이 뜻을 알지 못하니 오직 원컨대 대자비를 드리우사 저를 위하여 연설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일체 세간의 크고 작음과 안과 밖의 모든 사업이 각기 눈앞의 티끌에 속함이니 마땅히 말하되 ‘보는 것에는 펴는 것이 있고 줄어짐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지니라. 비유컨대 모난 그릇 가운데서는 모난 허공을 보는 것과 같아서 내가 너에게 묻노라. 이 모난 그릇 가운데에 보는 바 모난 허공이 정한 것이 있느냐? 없느냐? 만일 모난 것이 정한 것이 있다 한다면 별도로 둥근 그릇에 담아 두면 허공이 마땅히 둥글지 못할 것이요, 만일 정함이 없다고 한다면 허공이 모난 그릇 가운데 있어도 마땅히 모나지 아니하리니 네가 말하되 ‘이 뜻에 있는 바를 알지 못함이라’고 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앞의 티끌이 크고 적을지언정 보는 성품은 펴고 줄어짐이 없으니 어찌 보는 성품이 있다고 하리오.

아난아, 만일 모나고 둥근 것이 없다고 한다면 다만 그릇에 모난 것만 제할지언정 허공의 체는 모난 것이 없으니, 마땅히 말하되 다시 허공에 모난 형상이 있는 곳을 제하여야 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네가 묻는 것과 같이 집 안에 들어올 때에는 보는 성품이 줄어져서 작게 하였다면, 해를 우러러볼 때에는 네가 어찌 보는 성품을 늘여서 해에 닿게 함이냐? 만일 담장을 쌓아서 능히 보는 성품을 좁게 해서 끊어지게 한다면 조그만 구멍을 뚫음에 어찌 보는 성품에 이은 자취가 없으리오. 이 뜻은 옳지 못하니라. 일체중생이 시작도 없는 옛적부터 자기를 미하여 물건을 삼아 본심을 잃어서 물건의 굴린 바를 입은 까닭에 대소를 보나니, 만일 능히 물건을 굴리면 곧 여래와 같아 몸과 마음이 뚜렷이 밝아 도량을 여의지 아니하고 한 터럭 끝에서 두루 시방 국토를 품을 수 있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는 정신이 반드시 나의 묘한 성품이라면 이제 이 묘한 성품이 나의 앞에 나타나 있으니, 보는 것이 반드시 나의 참됨이 될진대 저의 지금의 몸과 마음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이제 몸과 마음은 분별이 실로 있거니와 저의 보는(見) 것은 저의 몸을 분별함이 없나이다. (용성연의 능히 분별하는 자는 나에게 심히 친근한 것이요, 분별치 못하는 자는 심히 나에게 생소한 줄 아나이다.) 만일 진실로 저의 마음이어서 저로 하여금 이제 보게 한다면 보는 성품은 진실로 저이나 이 몸은 제가 아닙니다. 어찌 특별히 여래께서 먼저 힐난하여 말씀하시되 ‘물物이 능히 나를 본다’고 함과 다르겠습니까? 오직 대자大慈를 드리우사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개발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제 말한바 ‘보는 것이 네 앞에 있음이라’고 함이 이 뜻이 진실치 못하다. 만일 진실로 네 앞에 있는지라 네가 실로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것이 이미 방소方所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일 곳이 있어야 하리라. 이제 너와 더불어 기타림에 앉아 두루 수풀과 도랑과 전당을 보며 위로는 일월에 이르며 앞으로는 항하를 대하니 네가 이제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말하라. 이 가지가지 모양이 그늘진 것은 수풀이요, 밝은 것은 해요, 걸린 것은 장벽이요, 통한 것은 허공이요, 이와 같이 내지 풀과 나무와 크고 적은 것들이 비록 다르나 다만 가히 형상이 있는 것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다. 만일 반드시 그 보는 성품이 네 앞에 있다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써 확실히 가리켜라. 어떤 것이 이 보는 것인가?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만일 허공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허공이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떤 것이 허공이며, 만일 물건이 보는 것이라면 이미 물건이 보는 것이 되었거니 어떤 것이 물건인가? 네가 가히 미세히 만상을 드러내어 정밀히 밝고 청정히 묘하게 보는 근원을 분석해 내어 나에게 가리켜 말하되, 저 물건을 가리키듯 분명히 의혹함이 없게 하라.”

아난이 말하되, “제가 이제 이 중각重閣 강당에서 멀리 항하에 미치며 위로 일월을 보되 손을 들어 가리키며 눈을 놓아 보는 바에다 이 물건을 가리키니 보는 것이라 할 수 없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저는 샘이 있는 초학성문初學聲聞이거니와 내지 보살이라도 능히 만상 앞에서 정밀히 보는 것을 분석하되 일체의 물건을 여의고 따로 자성自性이 있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고 이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 말과 같이 정밀히 보는 것이 일체 물건을 여의고는 따로이 자성이 없다면 곧 네가 가리키는바 물건 가운데는 보는 자가 없으리라. 이제 다시 너에게 고하노니 네가 여래와 기타림에 앉아서 다시 동산과 숲과 내지 일월을 보라. 가지가지 형상은 다르되 반드시 보는 정신이 따로 있어 너의 가리킨 바를 받지 아니할진대 네가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건 가운데에 어떤 것이 보는 것이 아닌가?”

아난이 말하되, “제가 실로 이 기타림을 보되 이 가운데에 어떤 것이 보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나무가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나무를 본다고 하며, 만일 보는 것이 곧 나무라면 다시 어찌 나무라 하겠나이까. 이와 같이 내지 만일 허공이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허공을 본다 하며, 만일 허공이 곧 보는 것이라면 다시 어찌 허공이라 하겠나이까. 제가 또 생각하오니 이 만상 가운데 자세히 밝혀 본다면 보는 것 아님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고 이와 같으니라.”

이에 대중 유학有學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망연히 이 뜻에 시종始終을 알지 못하여 일시에 두려워하여 그 지킬 바를 잃어버렸다. 여래께서 그들의 두려워함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사 아난과 모든 대중을 편안히 위로하시되, “모든 선남자야, 위없는 법왕이 이 진실한 말을 하시며, 설한 바와 같이 말하시며, 속이거나 망령된 말을 하지 아니하시니, 말가리 외도의 네 가지 죽지 아니한다는 것으로 교란하게 하는 것15) 이 아니니 네가 자세히 생각하여 헛되이 슬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문수사리 법왕자가 사중四衆을 불쌍히 여기사 대중 가운데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사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합장공경하사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이 모든 대중이 여래께서 밝히신 두 가지에 정명精明히 보는 것과 색이 공한 것과 옳고 그른 뜻을 깨닫지 못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앞 인연에 형색形色과 허공 등 상象이 다 보는 것이라면 마땅히 가리킬 바가 있을 것이요, 만일 보는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보는 바가 없으리니 이제 이 뜻의 돌아간 바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놀래고 두려움이 있을지언정 옛적에 선근을 심음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원컨대 여래께서 대자비로 밝혀 주소서. 이 모든 물상物象과 더불어 견정見精용성연의 견정은 보는 것이 깨끗하고 맑다는 말이 원래 이 무슨 물건인데 그 중간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모든 대중에게 고하시되, “시방 여래와 큰 보살이 스스로 삼매 가운데 머물러 보는 것과 보는 인연과 생각하는 모양이 허공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바가 없으니, 이 보는 성품과 반연이 원래 이 보리묘정명체菩提妙淨明體거늘 어찌 저 가운데에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있겠는가?

문수야,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라. 네가 문수인데 다시 문수라고 하는 자가 있는가? 문수라고 하는 자가 없는가?”

“이와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참 문수인 까닭에 다른 문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옳은 것이 있다면 곧 문수가 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문수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저 가운데 실로 옳고 그른 두 가지 모양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보는 것이 묘하게 밝은 것과 모든 허공과 티끌이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본래 묘하게 밝은 위없는 보리의 청정하고 둥근 참마음이거늘 망령되이 형색과 허공과 보고 듣는 것이 되는 것이 둘째 달(第二月)과 같으니 어느 것이 옳은 달이 되며 또 어느 것이 그른 달이 되겠는가? 문수야, 다만 하나의 달만이 참 달이요 중간에는 본래 옳은 달과 그른 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네가 이제 보는 것과 티끌을 관하여 가지가지로 밝힘으로 망상이 되나니, 능히 저 가운데에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에서 뛰어나오지 못하려니와 이 진정묘각명성眞精妙覺明性을 말미암아 능히 너로 하여금 옳은 손가락과 그른 손가락에서 나오게 하니라.”용성연의 손가락과 손가락이 아니라는 것은 사람이 본래 손가락이 다섯인데 손가락 여섯 가진 사람이 말하되, 사람은 본래 여섯 손가락이 옳다. 한 사람은 말하되, 손가락이 다섯이 옳다 하나니 이것을 비유한 것이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의 말씀과 같이 각성覺性16) 의 인연이 시방에 두루하여 고요히 항상 머물러 성품이 생멸하는 것이 아니라 하셨으니 범지梵志인 사비가라 외도가 말한 명제冥諦와 몸을 재(灰)에 던지는 등 모든 외도가 말하되 참 나가 있어 시방에 편만遍滿하다는 말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세존께서 일찍이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의 무리를 위하여 이 뜻을 연설하시되 ‘저 외도들이 항상 자연을 설하였거니와 내가 인연을 설하는 것은 저들의 경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제 이것을 보니 각성은 자연히 생멸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일체 허망전도를 여의어서 인연과 자연이 아니니 어찌 열어 보여야 모든 사견邪見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진실한 마음과 묘히 깨친 밝은 성품을 얻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내가 이제 이와 같이 방편으로 열어 보여 진실로 너에게 말하였거늘 네가 아직 깨닫지 못하여 자연인가 의혹하는도다.

아난아, 만일 반드시 자연이라 한다면 스스로 명확히 분명해서 자연의 체가 있어야 하는데 너도 또한 이것을 보아라. 묘명妙明한 성품 가운데 무엇으로써 자연을 삼는가?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으로써 자연을 삼는가? 어두운 것으로써 자연을 삼는가? 공으로써 자연을 삼는가? 막힌 것으로써 자연을 삼는가?

아난아, 만일 밝은 것으로 자연을 삼을진대 마땅히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요, 만일 허공으로 자체를 삼는다면 마땅히 막힌 것을 보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모든 어두운 무리로 자연을 삼는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없어질 것이니 어찌 밝은 것을 보리오.”

아난이 말하되, “반드시 묘히 보는 것이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제가 이제 인연으로 나는 것을 밝히나 마음이 오히려 밝지 못하여 여래께 여쭈오니 이 뜻이 어떠해야 인연의 성품에 합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인연을 말하므로 내가 다시 너에게 묻노라. 네가 이제 보는 것으로 인하여 보는 성품이 나타나나니 보는 것이 밝은 것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냐? 어두운 것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냐? 막힌 것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냐?

아난아, 만일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이 있다면 마땅히 밝은 것을 보지 못하리니 이와 같이 허공과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다 하는 것도 밝고 어두운 것과 같으리라.

또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밝은 것을 반연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반연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반연하고 티끌을 반연해서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일 허공을 반연하여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마땅히 막힌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일 막힌 것을 반연하여 보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마땅히 공한 것을 보지 못하리니 이와 같이 밝고 어두운 것을 반연한 것이 공하고 막힌 것과 같으리라. 마땅히 알아라. 이와 같은 정밀히 깨쳐 묘하게 밝음이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며, 자연이 아님도 아니며, 인연이 아님도 아니니, 그름과 그름이 아님도 아니며, 옳은 것과 옳음이 아닌 것도 아니라서 일체의 상을 여의고 일체의 법에 즉卽하느니라. 네가 이제 어찌 저 가운데에 마음을 두어 모든 세간에 희롱하는 논리(戱論)와 이름과 모양(名相)으로써 분별하는가? 손바닥으로써 허공을 만지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피로함만 더할 따름이니 허공이 어찌 너에게 잡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인연이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 비구에게 말씀하시되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인연을 갖추었으니 이른바 허공과 밝은 것과 마음과 눈으로 인연한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아난아, 내가 세간의 모든 인연을 설할지언정 제일의 법(第一義)이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너에게 묻노라. 모든 세간 사람들이 말하되 ‘내가 능히 본다’고 하나니 어떤 것이 보는 것이 되며 어떤 것이 보지 못함이 되는가?”

아난이 말하되, “세상 사람이 일월과 등잔광명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형상을 보는 것을 본다고 이름하고 만일 이 세 가지 광명을 여의면 곧 능히 보지 못한다고 하나이다.”

“아난아, 만일 어두울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마땅히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리니 만일 어두운 것을 본다면 이는 다만 무명이니 어찌 보는 것이 없겠는가? 아난아, 만일 어두울 때에 밝은 것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제 밝은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두 형상을 다 보지 못하는 것이로다. 만일 다시 스스로 빼앗는다면 너의 보는 성품이 저 가운데에 잠깐도 없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함께 보는 것이니 어찌 보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아난아, 네가 이제 마땅히 알아라. 밝은 것을 볼 때에 보는 것은 밝은 것이 아니며, 어두운 것을 볼 때에 보는 것은 어두운 것이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 보는 것은 허공이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 보는 것은 막힌 것이 아니니라. 네 가지 뜻을 성취하였으니 네가 다시 마땅히 알아라. 참 보는 것을 볼 때에 참 보는 것은 망견妄見이 아니다. 참 보는 것은 망견을 여의어 반조하여 보더라도 능히 미치지 못하니 어찌 다시 인연과 자연과 화합상을 설하리오. 너희들 성문들이 편협하고 하열하여 앎이 없어서 능히 청정한 실상을 통달하지 못하니 내가 이제 너희에게 가르치노니 마땅히 잘 생각하여 묘한 보리의 길에 고달파하고 싫어하는 마음과 해태심을 내지 말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희들의 무리를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모든 화합상과 화합치 아니함을 설하시나 마음이 오히려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참 보는 것을 보는 것은 망견이 아니라 함을 듣고 거듭 미함을 더하였습니다. 원컨대 큰 자비로 큰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깨닫는 마음이 명정明淨함을 열어 보이소서.”

이 말을 마치고 슬피 울어 정례頂禮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모든 대중을 불쌍히 여기사 장차 큰 다라니와 모든 삼마제와 묘히 수행하는 길을 연설하시려고 아난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비록 기억력이 뛰어나지만 많이 듣기만 하고 저 사마타의 미세하고 은밀히 관조하는 데는 마음이 오히려 밝지 못하니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할 것이며 또한 장래에 모든 번뇌가 있는 자로 하여금 보리과를 얻게 하리라.

아난아, 일체중생이 세간에 윤회함이 두 가지 전도하는 분별망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발생하며 바로 그 업에서 윤회하나니 어떤 것이 두 가지 견해인가? 하나는 중생의 별업망견別業妄見이요, 둘째는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이니라. 어떤 것이 별업망견인가?

아난아, 세간 사람이 눈에 병이 있으면 밤에 등불광명을 보지만 따로 뚜렷한 그림자가 있어서 오색이 중첩重疊하나니 네 뜻은 어떠한가? 이 밤에 밝은 등불에 나타난 둥근 광명은 이것이 등불의 색인가? 보는 것의 색인가?

아난아, 이것이 만일 등불의 색이라면 눈병이 없는 자는 어찌 똑같이 보지 못하고 이 둥근 그림자를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만 보는가? 만일 이 보는 것의 색이라면 보는 것이 이미 색을 이루었으니 저 눈병 든 사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 하겠느냐.

다시 아난아, 만일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 따로 있는 것이면 곧 당연히 곁으로 병풍과 장막과 책상과 자리를 보더라도 둥근 그림자가 있을 것이다. 보는 것을 여의고 따로 있다면 마땅히 눈에 보임이 아니니 어찌 눈병이 난 사람이라야 둥근 그림자를 보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빛이 실로 등잔에 있거든 보는 것의 병이 그림자가 되었느니라. 그림자와 보는 것이 한가지로 병이언정 보는 것은 병이 아니니 마침내 마땅히 말하되 ‘등잔이다, 보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말 것이며, 저 가운데에 ‘등잔도 아니며 보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지 말지니 둘째 달(第二月)17) 이 체도 아니며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으니 어째서 인가? 둘째 달(第二月)을 보는 것은 눈을 비비어 생긴 것이니 모든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이 눈을 비빔의 근원根元이 형상과 형상이 아님과 보는 것과 보는 것 아님을 여의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것도 이와 같아서 눈병에서 생긴 것이니 이제 무엇을 이름하여 ‘이것은 등불이다, 이것은 보는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하물며 또 ‘등이 아니다, 보는 견정見精이 아니다’라고 분별하겠는가? 어떤 것이 동분망견同分妄見인가?

아난아, 이 염부제에 큰 바닷물을 빼고 중간의 평평한 육지에 삼천 개의 섬이 있는데 한복판의 큰 섬을 동서로 헤아리면 큰 나라가 이천삼백이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은 모든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사이에 혹 두세 나라도 있으며 내지 삼십, 사십, 오십 나라도 있느니라.

아난아, 다시 이 가운데에 한 작은 섬이 있는데 다만 두 나라만이 있거든 오직 한 나라 사람들만이 함께 악연을 받으므로 저 나라 중생은 일체 모든 상서롭지 못한 경계를 보되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며,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내지 해와 달의 악한 기운이 고리와 같이 무리(暈)를 둘렀으며, 요망한 기운이 해에 가까이 패옥貝玉을 찬 형상과 같으며, 살별(彗星)이 나며, 혹 해를 등진 것 같으며, 혹 해에 귀 달린 것 같으며, 밝은 무지개와 어두운 무지개 등 가지가지 악한 형상을 이 나라 중생의 동업同業으로 장래에 상서롭지 못한 징조를 미리 보되 저 동업으로 재앙을 당하지 아니할 나라는 본래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이 동업과 별업別業, 이 두 가지 일로써 나아가고 물러가면서 비유를 들어 밝히리라.

아난아, 저 중생의 별업망견으로 보는 등불 가운데에 나타난 뚜렷한 그림자가 비록 앞의 경계처럼 나타나지만 저 등불에 오색을 보는 이의 눈병에서 생긴 것이다. 눈병은 보는 것이 피로해서 생긴 것이니 등불의 빛이 오색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라. 그러나 눈병을 보는 것은 보는 것의 허물이 아니니라. 네가 금일에 눈으로 산하국토와 모든 중생을 보는데 비유컨대 모두 이 비롯함이 없는 보는 병으로 생긴 것이니 보는 것과 보이는 모든 인연이 앞의 경계를 나타내는 듯하나 원래 나의 깨침에 밝은 망령된 것과 보는 것에 반연한 눈병이니 망령되게 깨친 각병과 망령되게 몸에 반연하는 망견이 곧 병이다. 본래 깨달은 밝은 마음이 보는 것과 보는 경계에 반연하는 것을 깨달은 것은 병이 아니니라. 깨달은 근본은 원래 참된 것이요, 눈병은 망령된 것이니 병을 깨치지 못하면 깨친 성품이 항상 병 가운데에 떨어지는 것이요, 병이 되는 근원을 깨치면 무명혹업에서 뛰어나서 능히 깨칠 바가 되는 것도 병이니라. 참 깨친 성품은 무명혹업의 병이 아니니라. 이것이 바로 깨치고 깨칠 바 병이 됨을 깨달으면 능소能所18) 가 끊어진 곳에 몸을 한번 굴려 나의 성품이 드러나리니 눈병 가운데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참 깨침의 눈병과 보는 데 병이 되는 것이니 깨달은 것을 깨닫는 것은 눈병이나 깨닫는 본체는 눈병이 아니다. 이것이 실로 참으로 보는 것이니 어찌하여 다시 깨닫고 듣고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하리오. 이러한 까닭에 네가 이제 나와 너와 아울러 모든 세간에 열 가지 무리 중생들을 보는 것이니 다 보는 것의 눈병이 든 것이요, 보는 근본이 병든 것이 아니니라. 저 보는 참된 정신은 성품이 눈병 든 자와 같지 않기 때문에 망견이 아니니라.

아난아, 저 중생의 동분망견同分妄見으로 저 별업망견別業妄見의 한 사람을 예로 든다면 눈병 든 사람 하나가 등불의 둥근 그림자 오색을 보는 것과, 저 한낮의 태양에 모든 사람이 동업으로 한가지 천변天變이 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아서 그 보는 것은 둘이 아니니라. 저 등불의 뚜렷한 그림자는 눈병에서 나는 것이지만 이것으로 여러 사람의 한가지 업력으로 저 해에 상서롭지 못한 것을 보는 것으로 예를 들어 본다면 한가지 보는 업력 가운데에 모진 장기瘴氣19) 기운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한가지 무시망견에서 나는 것이니라. 염부제 삼천 개의 섬과 네 큰 바다(四大海)와 사바세계와 아울러 시방에 모든 샘이 있는 나라와 모든 중생에 예를 들어 보자면 한가지 묘각명성의 샘이 없는 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달아 일어나서 허망한 병의 인연에 화합하여 망령되이 나며 죽느니라. 만일 능히 모든 화합한 인연과 화합하지 못함을 여의면 곧 모든 생사의 인을 멸하고 보리에 생멸이 없는 성품의 청정한 본심을 원만히 하여 본각이 항상 머무느니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묘명한 성품이 인연과 자연성이 아님을 깨쳤으나 오히려 이와 같이 깨달은 근원이 화합하여 나는 것과 화합하지 아니함도 아님을 밝히지 못함이로다.

아난아, 내가 이제 다시 앞 티끌로써 너에게 묻노라. 네가 이제 오히려 일체 세간의 망상으로 화합한 모든 인연성因緣性으로 스스로 의혹하되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라 하는구나. 곧 너의 이제 묘하고 깨끗한 견정見精이 밝은 것과 화和한 것이냐? 어두운 것과 화한 것이냐? 통한 것과 화한 것이냐? 막힌 것과 화한 것이냐?

만일 밝은 것과 화한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보아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때에 어느 곳에 너의 보는 것이 섞여 있느냐? 보는 것과 형상은 가히 분별하겠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모양인가? 만일 보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밝은 것을 보며, 만일 곧 본다면 어떤 것이 참 보는 것을 보는 것이며, 반드시 보는 것이 원만하다면 어느 곳에서 밝은 곳에서 밝은 것과 화하며, 만일 밝은 것이 원만하다면 보는 것과 화하지 않으리라. 보는 것은 반드시 밝은 것과 다름으로 서로 섞여 화한즉 저 성품이 밝다는 이름을 잃어버리니, 섞여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렸다면 이 밝은 데 화하였다 하는 것은 옳은 뜻이 아니니라. 저 어두운 것과 통한 것과 모든 여러 막힌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또 너의 지금 묘하고 깨끗한 견정이 밝은 것과 합한 것인가?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인가? 막힌 것과 합한 것인가? 통한 것과 합한 것인가? 만일 밝은 것과 합한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것이 이미 멸한 것이므로 보는 것이 곧 모든 어두운 것과 합하지 못한 것이니 어찌 어두운 것을 보겠는가? 만일 어두운 것을 볼 때에 어두운 것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은 것과 합할 때도 밝은 것을 보지 못하여야 하리라. 이미 밝은 것을 보지 못했다면 어찌 밝은 것과 합하였다 하며, 밝은 것이 어두운 것이 아닌 줄 알았다면 저 어두운 것과 통한 것과 여러 가지 막힌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묘하게 깨치는 근원이 모든 연진緣塵과 마음(心)과 기억함(念)과 생각하는 것(慮)으로 화합하지 아니한 듯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이제 또 말하되 ‘깨친 성품이 화합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묻노라. 이 묘하게 보는 것이 화합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밝은 것과 화합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화합이 아니냐? 통한 것과 화합이 아니냐? 막힌 것과 화합이 아니냐? 만일 밝은 것과 화합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곧 보는 것과 밝은 것이 반드시 가장자리(邊畔)가 있어야 하리니, 너는 또한 자세히 보아라. 어느 곳이 밝은 가장자리며 어느 곳이 보는 가장자리인가? 마땅히 보는 데 있어서는 보는 가장자리가 있을 것이며, 밝은 데 있어서는 밝은 가장자리가 있으리라.

아난아, 밝은 가운데서는 반드시 보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미치지 못하며 스스로 그 밝은 것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리니 가장자리를 어찌 이루겠는가? 저 밝은 것과 통한 것과 모든 막힌 것도 그 예가 이와 같으리라. 묘한 견정이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밝은 것과 합하지 아니함이냐? 어두운 것과 합하지 아니함이냐? 통한 것과 합하지 아니함이냐? 막힌 것과 합하지 아니함이냐? 만일 밝은 것과 합하지 않는다면 곧 보는 것과 밝은 것의 성품과 상이 서로 어긴 것(乖角)은 귀와 밝은 것이 서로 상관이 없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명상明相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리니, 어찌 밝은 것에 합하고 합하지 아니하는 이치를 분별하겠는가? 어둠과 통한 것과 여러 막힌 것도 그 예가 이와 같으니라.용성연의 화和한다는 것은 두 물건이 섞인 것을 말함이요, 합한다는 것은 두 물건이 서로 붙었다는 것을 말함.

아난아, 네가 오히려 일체의 뜬 티끌인 모든 환화상幻化相20) 이 바로 그곳(當處)에서 생겼다가 바로 그곳을 따라(隨處) 멸함을 알지 못하나니, 환망幻妄21) 을 형상이라 하거니와 그의 성품은 참으로 묘각명체妙覺明體가 됨이니라.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육입六入과 십이처十二處와 십팔계十八界가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겨나고, 인연이 여의어 허망하게 멸하느니라. 특히 생멸거래生滅去來는 본래 여래장如來藏이라. 항상 머물며 묘하게 밝으며 동하지 아니하며 두루 뚜렷한 묘한 진여의 성품인 줄을 알지 못하는 구나. 성품이 참되어 떳떳한 가운데에서는 거래去來와 미오迷悟와 생사를 구하여도 얻을 바가 없느니라.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이 본래 여래장인 묘한 진여의 성품인가?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청정한 눈으로 개어 맑은 허공을 볼 때에는 오직 갠 허공뿐이어서 멀리 아무것도 없다가 그 사람이 공연히 눈동자를 깜박거리지 아니하고 보기를 오래 하면 눈이 피로해져서 허공에 미친 꽃(狂華)이 일어남을 보며, 다시 일체가 광란하여 그른 상이 있으리니, 마땅히 알아라. 색음色陰도 이와 같아서 아난아, 이 모든 미친 꽃은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며 눈에서 생긴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일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허공에서 왔기 때문에 허공으로 들어갈 것이요, 만일 출입이 있다면 곧 허공은 빈 것이 아니니라. 만일 허공이 아니라면 그 꽃이 나고 멸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함이 아난의 몸에서 다시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리라. 만일 눈에서 나왔다면 이미 눈에서 나온 것이어서 도리어 눈으로 들어가리니 이 (미친)꽃의 성품이 눈에서 나왔으므로 마땅히 봄이 있을 것이요, 만일 봄이 있다면 (미친)꽃은 이미 허공으로 간 것이므로 도리어 마땅히 눈을 볼 것이며, 만일 봄이 없다면 나아가서 이미 허공을 가렸으므로 돌아와서는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니라. 또 (미친)꽃을 볼 때에 눈에는 가림이 없거늘 어찌하여 개어 맑은 허공이라야 청명한 눈이라고 하는가? 이런 까닭에 알아라. 색음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수족이 편안하며 백골이 편안함에 홀연히 사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여 성품이 어기고 순한 것이 없다가 그 사람이 공연히 두 손바닥으로 저 허공을 만지려 하면 두 손 가운데서 망령되이 껄끄럽고 미끄럽고 차고 더운 모든 모양을 내나니 수음受陰도 이와 같은 줄 마땅히 알아라.

아난아, 이 모든 환으로 닿는 것(幻觸)이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라.

아난아, 만일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에 부딪쳤는데 어찌 몸에는 부딪치지 아니하는가? 마땅히 허공이 선택해서 닿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손바닥에서 나왔다면 마땅히 합함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요, 또 손바닥으로 나왔다면 합한 즉 곧 손바닥이 알 것이요, 여읜 즉 닿는 것이 들어가리니 팔과 골수도 마땅히 또한 들어갈 때에는 종적을 깨달을 것이니라. 만일 깨닫는 마음이 나아가고 들어감을 안다면 스스로 자유로이 몸 가운데를 왕래하거니 어찌 합함을 기다려서 아는 것으로 닿는 것이라고 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수음受陰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신 매실을 말하면 입안에서 신물이 나고, 만 길 절벽을 밟아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면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나니 마땅히 알아라. 상음相陰도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시다고 하는 것이 매실로부터 나는 것도 아니며, 입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니라. 만일 매실에서 났다고 한다면 매실이 스스로 말한 것이니 어찌 다른 사람의 말을 기다릴 것이며, 만일 입으로 들어간다고 한다면 스스로 입이 들을 것이니 어찌 귀가 들음을 기다리겠는가? 만일 홀로 귀가 듣는다면 이 물이 어찌 귀에서는 나지 않는가? 만 길 절벽을 밟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매실을 말하는 것이 서로 유사하니 이런 까닭에 알아라. 상음相陰22) 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폭포수가 흐름에 물결이 서로 이어져 앞과 뒤의 차례를 건너지 아니하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알아라. 행음行陰도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흘러가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나는 것도 아니며, 물을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여읜 것도 아니니라. 만일 허공으로 인하여 났다고 한다면 곧 시방 허공이 다함이 없는 물 흐름을 이루어 세계가 자연히 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만일 물로 인하여 있다고 한다면 이 폭포의 흘러가는 성품이 마땅히 물은 아니어서 있는 물과 흘러가는 바가 따로 그 자체가 있는 것이니 만일 물의 성품의 흘러가는 것이 일정하다 하면 곧 물이 흐르지 않고 맑고 맑은 때에는 마땅히 물의 체를 잃어버릴 것이다. 만일 허공과 물을 여의었다면 허공은 밖이 있는 것이 아니며 물의 밖에는 흐르는 것이 없는 것이니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행음도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빈가병頻伽甁23) 을 취하여 그 두 구멍을 막으면 그 병 가운데에 허공이 가득히 담겨 있도다. 이것을 받들고 천 리 밖으로 멀리 가서 다른 나라에 다 쏟으려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아라. 식음識陰도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이와 같은 허공은 저곳에서 와서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니라.

아난아, 만일 저곳에서 왔다면 본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 갔으므로 본래 허공을 담아 간 곳에서는 마땅히 허공이 줄어야 할 것이며, 만일 이곳에서 들어갔다면 병의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이면 마땅히 허공이 나옴을 보아야 하리라.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식음24) 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수능엄경 셋째 권

다음에 아난아 육입六入이 어찌하여 본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라 하는가?

아난아, 저 눈동자로 똑바로 오랫동안 보면 안력眼力이 피로해져서 허공에 꽃이 생기나니, 허공에서 꽃을 보는 것은 눈이 피로한 데서 생기거니와 눈과 그 눈의 피로한 것이 모두 보리의 성품에서 응시하다가 피로한 모양을 내는 것이니라. 눈이 밝고 어두운 두 가지 망령된 티끌로 인하여 보는 것이 발하여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티끌을 흡입하므로 보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이 보는 것이 저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두 가지 티끌을 떠나면 필경에는 체성이 없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 보는 것이 밝은 것과 어두운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눈뿌리(眼根)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저 허공에서 생기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밝은 것에서 나왔다면 어두우면 보는 것이 곧 따라서 없어지리니 마땅히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일 어둠에서 나왔다면 밝으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마땅히 밝은 것을 보지 못할 것이며, 만일 눈뿌리에서 보는 것이 나는 것이라면 반드시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떠나서 달리 보는 것이 있을 것인데 이제 그렇지 아니하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떠나서는 이와 같이 보는 성품에 본래 자성이 없으리라. 만일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앞으로 티끌 모양을 볼 것이니 돌아와서는 마땅히 눈뿌리를 볼 것이며, 또 허공이 스스로 보는 것이니 어찌 너의 눈뿌리에 들어옴을 상관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눈에 들임(眼入)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급히 두 귀를 막으면 귀뿌리(耳根)가 피로한 까닭에 머리에서 소리가 나나니 귀뿌리와 (그 귀의) 피로한 것이 모두 보리의 성품에서 응시하다가 피로한 모양을 내는 것이니라.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망령된 티끌로 인하여 듣는 것이 그 가운데에서 발하여 이 티끌을 흡입하는 것을 듣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이 듣는 것이 저 움직이고 고요한 두 가지 티끌을 떠나면 필경에는 체성이 없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 듣는 것은 움직이고 고요한 곳에서 오는 것도 아니며, 저 귀뿌리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고요한 곳에서 왔다면 움직이면 따라서 없어질 것이니 응당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며, 만일 움직이는 것에서 왔다면 고요하면 곧 따라 없어질 것이니 마땅히 고요함을 듣지 못하리라. 만일 귀뿌리에서 왔다면 반드시 움직이고 고요함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듣는 체성은 본래 자성이 없으리라. 만일 저 허공에서 나온 것이라면 듣는 것이 있으면 듣는 성품을 이룰 것이니 곧 허공이 아니며, 또 허공이 스스로 들을 것이니 어찌 너의 귀뿌리 속에 들임을 상관하리오.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귀에 들이는 것(耳入)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급히 그 코로 밖의 기운을 빨아들여서 오래 참으면 피로해져서 곧 코에 차갑게 닿는 기운을 맡으리니 그 닿는 것으로 인하여 통하고 막히고 비고 실함을 분별하여 이와 같이 모든 향냄새 기운을 분별하리니 코와 피로한 것이 모두 보리의 성품에서 응시하다가 피로한 모양을 내는 것이니라.

통하고 막힌 두 가지 망령된 티끌로 인하여 맡는 것을 그 가운데서 발하므로 이 티끌 모양을 빨아들이는 것을 냄새를 맡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이 냄새를 맡는 것이 통하고 막힌 두 가지 망령된 티끌을 여의고는 필경에 체성이 없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이 냄새를 맡는 것이 통하고 막힌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코 뿌리(鼻根)로 나는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통한 것에서 왔다면 막히면 곧 맡는 것이 없으리니 어찌 막힌 것을 알며, 막힌 것으로 인하여 맡는 성품이 있다면 통하면 맡는 것이 없어지리니 어찌 향기 냄새와 모든 무리에 닿는 것을 밝히겠는가? 만일 코 뿌리에서 나는 것이라면 반드시 통하고 막힌 것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냄새를 맡는 기틀은 본래 자성이 없으리라. 만일 허공에서 나온다면 이 맡는 성품이 스스로 마땅히 너의 코를 도로 맡을 것이며 또 허공이 스스로 냄새를 맡는 것이니, 너의 코에 들이는데(鼻入)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코로 들이는 것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혀로 입술을 빨되 오래도록 핥으면 피로해져서 그 사람이 병이 있으면 쓴맛이 있고, 병이 없는 사람은 조금 단맛이 있으니 달고 쓴 것은 혀뿌리에서 나타나는 것이니라. 혀가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담담한 성품이 항상 있나니 혀와 피로한 것이 모두 보리의 성품에서 응시하다가 피로한 모양을 내는 것이니라. 달고 쓴 것과 담담한 이 두 가지 망령된 티끌(二種妄塵)로 인하여 아는 것을 내어 그 가운데 있으면서 이 티끌 모양을 끌어들이는 것을 맛을 아는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이 맛을 아는 성품이 저 달고 쓴 것과 담담한 두 가지 티끌을 떠나면 필경에 체성이 없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라. 쓰고 담담한 것을 맛보는 것은 달고 쓴 것에서 온 것도 아니며, 담담함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 혀뿌리(舌根)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맛을 아는 성품이 달고 쓴 것에서 온다면 담담할 때에는 곧 아는 것이 없어질 것이니 어떻게 담담함을 알 것이며, 만일 담담함에서 나온다면 단것이 올 때에는 아는 것이 없어질 것이니 다시 어찌 달고 쓴 두 가지 상을 알겠는가? 만일 맛을 아는 것이 혀에서 온다면 반드시 달고 담담한 것과 쓴맛의 티끌이 없을 것이니 이 맛을 아는 혀뿌리가 본래 자성이 없으리라. 만일 허공에서 나온다면 허공이 스스로 맛을 볼 것이니 너의 입이 알 바가 아니며, 또 허공이 스스로 알 것이니 너의 혀에 들이는 것(舌入)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혀에 맛을 들이는 것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하나의 찬 손과 뜨거운 손이 서로 닿으면 만일 찬 형세가 많으면 뜨거운 것이 차게 되고, 뜨거운 것이 승하면 찬 것이 뜨거워질 것이다. 이와 같이 차고 뜨거운 것을 다 아는 것으로써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차고 뜨거운 것을 떠나면 떠난 것을 알 것이니, 만일 차고 더운 형세에 간섭함을 이룬다면 수고롭게 다음을 인한 것이니 몸과 수고로운 것이 모두 보리의 성품에서 응시하다가 피로한 모양을 내는 것이니라.

합하고 떠나는 두 가지 망령된 티끌로 인하여 깨치게 되어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이 티끌 모양을 들이는 것을 깨쳐서 아는 성품이라고 하니, 이 깨쳐 아는 체성이 저 떠나고 합하며 어기고 순하는 두 가지 티끌을 떠나 필경에는 체성이 없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 깨치는 것이 떠나고 합하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며, 어기고 순한 것으로 있는 것도 아니며, 몸 뿌리(身根)에서 나는 것도 아니며, 허공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 어째서인가? 만일 차고 더운 것이 합할 때에 오는 것이라면 떠나면 마땅히 소멸할 것이니 어찌 떠난 것을 깨치겠는가? 어기고 순한 두 가지 모양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만일 몸 뿌리에서 난다면 반드시 여의고 합하고 어기고 순한 네 가지 모양이 없어야 하리니 곧 너의 몸으로 아는 것(知覺)은 본래 자성이 없으리라. 반드시 허공에서 난다면 허공이 스스로 깨쳐 알 것이니 너의 몸에 들이는 데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몸에 들임(身入)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이 피곤하면 자고, 실컷 자고는 문득 깨어서는 (용성연의 밝은 것과 어두운 것과 청황적백흑靑黃赤白黑과 방원장단대소方圓長短大小와 모든 것의) 티끌을 보면 생각이 나고, 생각에 머물러 있다가는 갑자기 잊어서 아주 생각이 없어지나니 이것이 생각이 나고 생각이 머물고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아주 없어지는 데 전도하는 것이다. 그 습기를 들이켜 뜻 가운데로 돌아가서 서로서로 차례를 어기지 아니함을 뜻 알음알이 뿌리라 하나니, 뜻과 피로한 것이 모두 청정한 각성覺性에서 무단히 피로한 허망된 상相을 발함이니라. 생각이 나는 것은 생각이 머무는 것을 가져서 있고, 생각이 멸하는 것은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가져서 있는 것인데, 생각이 나고 생각이 멸하는 두 가지 망령된 티끌로 인하여 뜻 뿌리(意根) 알음알이가 모여 그 가운데 있으면서 안으로 법 티끌(法塵)에 생멸함을 흡수하여 들이거든 눈뿌리와 귀뿌리와 코 뿌리와 혀 뿌리와 몸 뿌리 이 다섯 가지 경계에 흘러가는 것을 거슬러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곳을 뜻 뿌리에 깨치는(覺知) 성품이라고 하느니라. 이 뜻 뿌리에서 깨쳐서 아는 성품이 잠을 깨고 잠자는 두 가지 생멸의 티끌을 떠나면 필경에는 아는 체성이 없으리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와 같이 깨쳐 아는 뿌리가 잠을 깨고 잠을 자는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며, 나고 멸하는 것으로 있는 것도 아니며, 뜻 뿌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또한 허공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만일 잠을 깨는 것에서 오는 것이라면 잠을 자면 곧 없어질 것인데 무엇으로 잠을 자며, 또 반드시 생각이 날 때에 있다면 생각이 멸하면 곧 없어지리니 누가 멸하는 것을 받겠는가? 만일 멸함으로 있다면 생하면 곧 없으리니 누가 생함을 알겠는가? 만일 뜻 뿌리에서 지각이 나온다면 깨고 자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깨고 자는 두 가지가 너의 몸 가운데의 육단심肉團心이 열리고 합함을 따라서 있는 것이니, 이 두 가지가 떠나면 이제 깨친 성품은 허공 꽃(空華)과 같아서 필경에 체성이 없으리라. 만일 허공에서 나는 것이라면 스스로 허공이 알 것이니라. 너희들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뜻에 들임(意入)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다시 아난아, 어찌하여 십이처十二處가 본래 여래장인 묘한 진여의 성품인가? 아난아, 네가 이 기타수림과 모든 샘과 못물을 보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용성연의 이 여러 가지가 모든 형색을 떠나면 보는 것을 표할 수 없으니 그러면) 모든 형색이 눈에 보는 것을 내는 것인가? (용성연의 또 보는 것을 떠나면 형색을 가히 얻을 수 없으니 그러면) 눈이 모든 색상色相을 내는 것인가? 아난아, 만일 다시 눈뿌리가 색상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눈뿌리가 형색이 있는 빛을 갖추어 있는 것이로다. 그러면 허공을 볼 때에는 모든 형색이 아니라 색성色性이 마땅히 없어질 것이다. 보는 성품과 형상이 서로 대하여 빛이 나는 것인데, 이제 생각이 없어지면 일체를 드러냄도 도무지 없으리니 색상도 없을 것이다. 색상이 이미 없다면 누가 허공의 바탕을 밝히겠는가? 허공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만일 눈이 허공에 모양을 낸다면 색을 보지 못할 것이니 색을 본다면 허공이 없을 것이다. 허공의 성품과 색의 형상이 없다면 누가 색신을 밝히겠는가? 만일 다시 색 티끌(色塵)이 눈에 보이는 것을 낸다면 허공을 볼 때에는 색이 아니어서 색과 허공을 떠나면 보는 것이 곧 없어지리니 누가 공과 색을 밝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보는 것과 색공色空 두 가지가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다시 이것을 들어라. 기타동산에서 밥이 준비되면 북을 치고, 여러 대중을 모을 때는 쇠북을 치니, 쇠북과 북의 소리가 앞과 뒤로 서로 이어지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것은 이 북소리가 귓가에 오는 것인가? 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가는 것인가? 아난아, 만일 북소리가 귓가에 온다고 한다면 내가 실라벌성에서 걸식할 때에는 기타림에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이 소리가 아난의 귓가에 왔다면 목련과 가섭도 같이 듣지 못할 것인데, 어찌 일천이백오십 사문이 쇠북소리를 일제히 듣고 밥을 먹는 곳에 함께 왔겠는가? 만일 다시 너의 귀가 저 소리 곁으로 갔다면 내가 기타림에 돌아와 머물 때에 실라벌성에는 곧 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네가 쇠북소리를 들을 때 귀가 이미 북을 치는 곳으로 갔으므로 쇠북소리와 북소리가 함께 날 때에는 마땅히 같이 듣지 못할 것인데 어찌 코끼리와 말과 소와 양과 여러 가지 종류의 소리를 일제히 듣겠느냐? 만일 왕래가 없다면 또한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듣는 것과 음성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곧 듣는 것과 소리 두 곳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또 화로 가운데의 전단향 기운을 맡아 보아라. 이 향을 만일 한 푼만 불에 태우더라도 실라벌성 사십 리 내에서 동시同時에 그 냄새를 맡게 되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향기가 전단나무에서 나는 것인가? 너의 코에서 나는 것인가? 허공에서 나는 것인가? 아난아, 만일 다시 이 향기가 너의 코에서 난다고 한다면 코에서 난 것이라고 하므로 마땅히 향기가 코에서 날 것이로다. 코는 전단향 나무가 아닌데, 어찌 코에 전단향기가 있겠는가? 네가 향기를 맡는다 한다면 그 향기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분명한데, 어찌 코에서 향기가 나겠는가? 코에서 난다 한다면 향기를 맡는다는 말은 옳지 못하니라. 만일 허공에서 나는 것이라 한다면 허공의 성품은 항상 있는 것인데 어찌 화로에 고목나무를 불태운 후에 향기가 있겠는가? 만일 나무에서 향냄새가 난 것이라면 어찌하여 이 향을 불태워 연기가 난 후에 향취가 나겠는가? 또 코가 향냄새를 맡으려면 연기가 코로 들어가야 할 것이고, 또 더군다나 그 연기가 허공에 날리어 멀리 가지 못하였는데 사십 리 안에서 향기가 벌써 나겠느냐? 그러므로 나무에서 향취가 나는 것이면 불에 태워 연기를 낼 것이 없고 연기에서 난다고 한다면 연기가 코로 들어간 후에 향취가 날 것이 아니겠는가? 또 연기가 미처 가지 못한 사십 리에서 향내를 벌써 맡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향과 코와 맡는 것이 세 가지가 처소가 없는 것이다. 냄새와 향기 이 두 곳이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아침과 점심 두 때에 대중 가운데서 발우를 들 때에 그동안 혹 수락제호酥酪醍醐25) 를 만나면 상미上味라 하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맛이 공중에서 나는 것인가? 혀에서 나는 것인가? 수락제호 음식에서 나는 것인가? 아난아, 만일 다시 이 맛이 너의 혀에서 나는 것이라면 너의 입에는 혀 하나만 있으니 그 혀가 이때에 이미 우유 맛(酥味)을 이루었다면 검은 석밀石蜜을 만나도 응당 달라지지 않아야 하리라. 만일 맛이 달라지지 아니하면 맛을 안다고 할 수 없고, 만일 혀가 맛을 이루고 단맛으로 변하여 옮아가지 않으면 맛을 알지 못할 것이다. 만일 혀가 이미 한 맛을 이루었다면 단맛으로 옮아갈 수 없고, 만일 여러 맛으로 옮아간다면 혀는 하나인데 어찌 여러 맛을 혀 하나가 다 알겠는가? 만일 음식에서 맛이 난다면 음식은 아는 것이 없는데 어찌 스스로 맛을 알겠는가? 또 저 음식이 스스로 맛을 안다면 곧 다른 사람이 먹는 것과 같으리니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서 맛을 안다 하겠는가? 만일 허공에서 나는 것이라면 네가 허공을 씹어 보아라. 무슨 맛이 있는가? 필경에 허공이 짠맛을 짓는다면 이미 너의 혀가 짜므로 또한 너의 얼굴이 짤 것이니 곧 세상 사람들이 바다의 고기와 같을 것이로다. 이미 항상 짜기만 하다면 마침내 담담한 맛을 알지 못하리라. 만일 담담한 맛을 알지 못한다면 또한 짠맛을 알지 못하리라. 반드시 아는 것이 없다면 어찌 맛을 안다 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맛과 혀와 맛보는 것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곧 맛보는 것과 맛 둘이 모두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이른 아침에 손으로 머리를 만지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머리를 만져서 아는 것은 어느 것이 능히 닿는 것이 되는가? 능히 아는 것이 손에 있다 할까? 머리에 있다 할까? 만일 능히 아는 것이 손에 있다면 머리는 아는 것이 없을 것이니 어찌 닿는 것을 알 것이며, 만일 머리에 있다면 손은 곧 쓸데없는 것이니 어찌 닿는 것을 안다고 하겠는가? 만일 각각 아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곧 아난의 몸에 응당 두 몸이 있어야 하리라. 만일 머리와 손이 한번 닿아서 나온 것이라면 머리까지 안다든지, 머리 하나가 닿는 것으로 손까지 안다면 손과 머리가 한 덩어리(體)가 될 것이다. 만일 손과 머리가 한 몸이라면 하나 된 몸이 스스로 저를 닿을 수 없고, 만일 손과 머리가 두 몸이라면 닿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능能에 있으면 소所가 아니 될 것이요, 소에 있으면 능이 아닐 것이니 응당 허공이 너와 더불어 닿는 것을 이루지 못하리라.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닿는 것을 깨치는 것과 몸 이 둘이 모두 처소가 없어서 몸과 닿는 것이 다 허망하여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항상 뜻 가운데에 반연하는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과 무기無記의 성품 이 세 가지 성질로 법칙을 이루나니 이 법의 티끌은 육식六識과 칠식七識의 마음에서 나는 것인가? 마땅히 이 마음을 여의고 따로 방소方所가 있는 것인가? 아난아, 이 선善·악惡·무기無記의 삼성三性이 이 마음에서 난 것이라면 물에 파도가 일어남에 파도가 곧 물이니, 이와 같아서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마음이므로 선·악·무기 삼성이 무정한 티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스스로 반연하는 것이 아니며 반연하는 경계도 아니니 어찌 선·악·무기 삼성에 법과 처소를 이루겠는가? 만일 선·악·무기 삼성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생기는 방소가 있다면 선·악·무기 법 티끌의 자성이 아는 것이냐? 알지 못하는 것이냐? 법 티끌이 아는 것이 있다면 마음이라고 할 것이지만 이 선·악·무기 삼성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방소가 있어서 법진이 따로 아는 것이 있으면 너와는 다르고, 또 법진이 아니어서 타인의 마음(心量)을 아는 것과 같으리라.

네가 곧 마음이라고 한다면 응당 상대相對가 없어서 두 모양이 없을 것인데 어찌 마음과 경계가 분명하게 상대하여 너의 마음이 다시 너에게 둘이 되겠는가?

만일 법진이 이미 마음을 떠나 아는 것이 없다면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색성향미촉 다섯 가지 티끌과 같을 것이다. 또 뜻 뿌리 아는 것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도 아니며, 뜻과 소리와 향기와 맛과 몸에 닿는 촉도 아니니 이 뜻의 티끌이 다 이것이 아니면 마땅히 어디에 있는가?

이제 세간에 오직 색과 공만 있을 뿐이니 이것을 모두 일체라 한다. 이것에 모두 표시된 것이 없으니 그런즉 필경에 없는 것이냐? 마땅히 인간의 의근은 색과 공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로다. 그러나 색은 형체가 있으므로 밖이 있다고 하겠지만 허공은 형상이 없는데 어찌 밖이 있겠는가? 마음이 반연할 곳이 없다면 처소는 누구에게서 성립되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법진과 마음이 모두 처소가 없으므로 곧 뜻과 법 티끌이 다 허망하여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다음에 다시 아난아, 어찌 십팔계十八界가 본래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라 하는가? 아난아, 네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안으로 눈뿌리의 반연과 밖으로 색 티끌의 반연이 서로 대하여 그 가운데서 아는 것(眼識)이 난다고 하니 이 아는 것이 눈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눈으로 경계를 삼는 것이냐? 색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색으로 경계를 삼는 것이냐?

아난아, 만일 눈으로 인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일체 색상과 허공은 없어서 가히 분별 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록 네가 아는 것이 있다고 한들 장차 어디에 쓰고자 하는가? 다만 안근에서만 나는 것이라면 이미 색과 허공은 상관이 없을 것이니 가히 분별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너의 보는 것이 본래 청황적백이 아니라 무형무체하여 오직 하나이므로 안과 밖을 표시할 것이 없으리니 무엇으로 중간을 삼아 아는 경계를 세우겠는가?

만일 형색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면 공하여 형색이 없을 때에는 너의 아는 것이 응당 멸하리니 어찌 허공의 성품을 알겠는가? 만일 모든 색상이 변한다면 이미 멸한 데로 돌아갈 것이며, 너의 아는 것이 또 그 색상이 변천하는 것을 알게 되면 너의 아는 것은 변천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무엇으로 경계를 세우겠는가? 비록 변치 않는다면 경계가 서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변함을 따르면 변할 것이니 경계의 모양이 자연히 없어질 것이며 변치 않으면 항상할 것이니 색을 따라 나므로 허공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야 하리라. 변함을 따를지라도 이미 변하는 데로 돌아갈 것이며 아울러 경계 모양(境界相)도 다 없으리니 무엇으로 경계가 이루어지겠는가? 다만 변멸變滅하여 능히 허공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충분히 변치 아니한다 할지라도 곧 항상 분별하는 성질이 될 것이니 이미 형색으로부터 난 것이라면 곧 형색만 알 것이며 다시 허공이 있음은 알지 못하리라.

만일 뿌리와 티끌을 함께 아는 것이 나온다면 뿌리와 티끌을 합하면 그 사이에 공간이 없어서 식識을 용납할 곳이 없으므로 가운데 경계에 있는 알음이 곁으로 밀려날 것이니 어찌 가운데 경계를 이루겠는가? 또 뿌리와 티끌을 여의면 두 곳으로 갈라질 것이니, 이 가운데 지경에 있는 알음의 반은 뿌리에 있을 것이고, 반은 티끌에 있을 것인데 어찌 가운데를 이루겠는가? 둘이 합한 즉 서로 섞인 것이고, 가운데를 떠난 즉 어지러울 것이니 체성은 어지러이 섞였는데 가운데 경계가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눈과 색이 연이 되어 눈에 아는 경계(眼識界)를 생한다 하나 세 곳이 모두 없어 곧 눈과 색과 색의 경계 이 세 가지가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또 네가 밝힌 귀와 소리 이 두 가지가 연이 되어 귀에 아는 것을 낸다 하니 이 아는 것이 다시 귀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귀로써 경계를 삼느냐? 소리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소리로써 경계를 삼느냐?

아난아, 만일 귀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면 동하고 고요한 두 모양이 이미 앞에 나타나지 아니할 때에는 귀뿌리가 알음(耳識)을 이루지 못하리니 반드시 알 것이 없을 것이다. 아는 것도 오히려 이루지 못하는데 식識이 무슨 형모형모는 얼굴겠는가?

만일 귀뿌리가 듣는다고 한다면 밖에서 움직여 소리가 나는 것과 소리가 없어서 다만 고요한 것 이 두 가지가 상관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듣는 것도 따로 이룰 것이 없을 것이다. 귀뿌리는 뜬 뿌리(浮根)와 네 가지 티끌인 지수화풍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밝은 소리와 티끌에 닿는 것일 뿐 원래 무정한 것이니, 어찌 식의 경계라고 하겠는가? 귀 모양(耳形)과 소리 티끌(聲塵)은 본래 무정한데 필경에 무엇으로 식의 아는 경계를 이루겠는가?

만일 소리가 능히 아는 것을 낸다면 어찌 듣는 뿌리를 의지(假藉)하겠는가? 만일 듣는 뿌리가 없으면 소리도 또한 없을 것이다. 설사 식이 소리로부터 난다고 하고, 혹은 듣는 뿌리로 인하여 소리 티끌 모양이 있다고 한다면 곧 소리를 들을 때에 이 알음을 들을 것이다. 만일 듣지 못한다면 아는 경계가 없을 것이며, 만일 식이 듣는다면 식은 소리와 같아서 아는 것(識)이 이미 들렸으니 무엇이 들어서 아는 것을 알겠는가? 만일 아는 것이 없다면 마침내 초목과 같으리라. 이미 능히 아는 식이 듣는 경계가 된다면 귀가 능히 알아서 이 듣는 식을 알 것이며, 만일 능히 듣는 식을 알아서 아는 자가 없다면 필경 초목과 같을 것이다. 소리와 듣는 것이 섞여서 가운데 경계를 이루지 못하리니, 경계라는 가운데 자리가 없으면 안과 밖의 모양이 다시 무엇으로부터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용성연의 식이 없으면 소리를 들을 것이요, 다만 듣는 뿌리만 말하든지 경계만 말하여도 되지 아니할 것이다. 응당 귀뿌리와 경계를 합하여서 식계를 이루어 가운데가 되지 못할 것이니 중앙 위치가 없으면 각 경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귀와 소리가 인연이 되어 귀의 아는 경계를 낸다고 하나 이 세 가지를 더욱더 자세히 보면 다 온전함이 없는 것이다. 곧 귀와 소리와 소리의 경계 셋이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또한 네가 밝힌 코와 향기가 인연이 되어 비식鼻識을 낸다고 하니 이 식은 다시 코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코로 경계를 삼느냐? 향기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향으로 경계를 삼느냐?

아난아, 만일 코로 인하여 난다고 한다면 너의 마음 가운데에 무엇을 가지고 코를 삼느냐? 고깃덩이가 (침통과 같아야) 조갑爪甲(손톱)이 드리운 모양을 취하는가? 냄새를 아는 요동하는 성질을 취하는가? 만일 고깃덩이를 취한다면 육질은 몸이 되는 것이고, 몸으로 아는 것은 곧 닿음이 되는 것이니 코라 할 것이 없다. 어째서 그러한가? 몸이라 하면 몸이지 어찌 코겠느냐? 닿는 것이라 하면 몸에 대한 티끌이라서 오히려 코라고 이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코와 알음과 경계가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냄새가 아는 것을 취한다면 또 너의 마음 가운데에서 생각하기를 어떤 것으로 아는 것을 삼느냐? 고깃덩이로 아는 것을 삼는다면 몸이 경계에 닿는 것은 원래 닿는 티끌이므로 신육身肉이 아니다. 공한 것으로 아는 것을 삼는다면 콧구멍 허공이 스스로 아는 것이므로 고기로 된 것은 깨닫지 못할 것이니 이와 같다면 콧구멍 허공과 모든 허공이 네가 될 것이니 어찌하여 그러한가? 너의 몸은 알지 못하고 콧구멍 허공은 아는 것이니 그러면 오늘날 아난은 응당 있는 곳이 없으리라. 향으로 아는 것을 삼는다면 향이 아는 것이니 어찌 너와 상관이 있겠는가?

만일 향내와 구린내가 반드시 너의 코에서 나는 것이라면 저 이란伊蘭이나 전단향 나무와는 도무지 상관이 없는 것이로다. 두 물건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네가 스스로 맡는 코가 향내가 된 것이냐? 구린내가 된 것이냐? 만일 나의 코가 오직 구리다면 맡는 것까지 겸하지는 못할 것이며, 코가 오직 향내라면 구린내까지 겸하지는 못하리라.

만일 향내와 구린내 이 두 가지를 다 맡는다면 곧 코가 둘이 있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도를 물을 때에 아난이 둘이 있을 것이니 누가 너의 몸이 되는가? 만일 향기도 코에서 난다 하고, 코도 오직 하나라고 한다면 향내와 구린내도 둘이 없어 나누지 못하리라. 구린내가 이미 향이 되었다면 구린내가 없을 것이며, 향이 이미 구린내가 되었다면 향이 없을 것이다. 두 가지 성질이 있지 못하리니 경계가 어디에서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향으로 인하여 났다고 한다면 곧 이 향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니, 보는 것은 눈으로 인하여 있지만 이미 눈을 본 사람이 없는 것과 같아서 아는 것이 향으로 인하여 났다면 응당 향을 보지 못할 것이 아니냐? 만일 향을 능히 안다면 향에서 나는 것이 아니면, 향을 알지 못한다면 식이 아니니 향이 아는 것을 인하지 않으면 곧 향의 경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는 것이 향을 알지 못하면 곧 식의 경계가 향으로부터 건립되지 못할 것이다. 이미 중간이 없으면 내외를 이루지 못하리니 모든 냄새 맡는 성품이 필경에 허망하리라.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코와 향이 인연이 되어 비식(鼻識界)을 생한다 하나 세 곳이 모두 없어서 코와 향과 향기(香界)의 이 세 가지가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또 네가 밝힌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 혀가 아는 것(舌識)을 낸다고 하니, 이 아는 것은 다시 혀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혀로써 경계를 삼느냐? 맛을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맛으로써 경계를 삼느냐?

아난아, 만일 혀로 인하여 아는 것을 낸다면 곧 모든 세간에 있는 사탕수수(甘蔗)는 달고, 매실(烏梅)26) 은 시고, 황련黃連27) 은 쓰고, 석염石鹽28) 은 짜고, 세신細辛29) 과 생강生薑과 계피桂皮는 매우니, 이 모든 것은 도무지 맛이 없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 혀를 맛보아라. 단 것인가? 쓴 것인가? 만일 혀의 성질이 본래 쓰다고 한다면 누가 와서 혀를 맛보아서 쓴 것을 알겠는가? 혀가 스스로 자신을 맛보지는 못하리니 누가 알겠는가? 혀가 본래 담담무미한 것이라면 담담할 뿐이어서 모든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니 알고 분별함이 없다면 식계識界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맛으로 인하여 식識이 난다면 식이 스스로 맛이 될 것이다. 위에서 혀뿌리를 말한 것과 같이 맛이 스스로 맛보지는 못하리라. 이미 맛보지 못했다면 맛이 있거니 맛이 없거니 하고 알겠는가? 또 일체의 맛이 한 물건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 맛이 여러 가지면 아는 식도 여러 가지가 될 것이다. 아는 것이 만일 하나여서 그 하나인 것이 맛을 낸다면 짠 것이든지, 담담한 것이든지, 단 것이든지, 매운 것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러 맛을 함께 화합하여 이룬 것이든지, 다섯 가지가 본래의 성질이 바뀌지 아니한 것이든지, 미곡으로 술을 짓든지, 엿을 만들든지 하여 본성이 바뀐 것이 모두 한 맛이 되어 분별이 없을 것이니 분별이 없으면 식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식이라 하는 것은 알음알이로 분별한다는 뜻이니 이것이 없다면 어찌 다시 혀다, 맛이다, 식계다 이름하겠는가? 응당 허공이 너의 식심識心을 내지 못하리라. 혀와 모든 맛이 화합한 것이면 이 가운데 성질과 맛의 성질은 원래 자성이 없는 것이니 어찌 경계가 나오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혀와 맛이 인연이 되어 혀와 식과 계(舌識界)가 성립된다고 하나 이 세 곳이 모두 없어서 혀와 맛과 혀의 경계(舌界)의 이 세 가지가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네가 밝힌 몸과 닿는 것이 인연이 되어 몸에 아는 것(身識)을 낸다고 하니, 이 식은 다시 몸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몸으로 경계를 삼느냐? 닿는 것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닿음으로 경계를 삼느냐?

아난아, 만일 몸을 인하여 난다면 경계가 닿고 여의는 것이 없어도 항상 알 것이다. 반드시 몸에 닿아서 합하는 것을 알고 여의는 경계를 아는 이 두 가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용성연의 이제 사실이 그렇지 아니하여 합하고 여의는 두 가지 경계를 여의면 아무것도 모를 것인데 몸이 어찌 하겠는가? 그런 까닭에 몸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라. 만일 밖으로 닿는 경계로 아는 식이 난다면 반드시 너의 몸은 묘석墓石과 같아서 몸이라 할 수 없으리니 누가 몸 아닌 것으로 밖의 경계가 와서 닿고 여의는 것을 알겠는가?)

아난아, 한 물건이 스스로 닿아서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몸과 닿아서 합해야 촉觸이 있는 것을 아느니라. 몸에 나아가는 것도 닿아 아는 것이고, 촉에 나아가는 것도 몸이 아는 것이다. 그 아는 것은 둘이 없는 것이니 그 아는 것과 나는 것이 몸과 촉 두 가지를 겸하여 나는 것이 아니니라. 몸과 닿음 두 가지 모양은 원래 처소가 없나니 몸에 합하면 곧 몸 자체이고, 몸을 떠나면 곧 허공이므로 내외도 이루지 못하는데 가운데가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가운데가 성립되지 못하면 나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곧 너의 식이 난다고 하더라도 어디에서 경계가 이루어지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몸과 촉이 인연이 되어 신식계身識界를 낸다고 하나 세 곳이 모두 없으니 곧 몸과 닿음과 신계身界의 세 가지가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아, 또 네가 밝힌 뜻과 법이 인연이 되어 뜻 알음(意識)을 낸다 하니 이 식이 다시 뜻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뜻으로 경계를 삼느냐? 법으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 하여 법으로 경계를 삼느냐?

아난아, 만일 뜻으로 인하여 난다면 너의 뜻 가운데 반드시 생각하는 법 티끌이 있어야 뜻 뿌리(意根) 모양이 나는 것이니 만일 법 티끌이 없으면 뜻 뿌리도 날 수가 없으리라. 법 티끌인 연을 여의면 뜻 뿌리도 형상이 없으리니 뜻을 가져 어디다가 쓰겠는가? 또 너의 의식과 사량하여 요별了別하는 의근意根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식이 뜻과 같다면 곧 뜻이어서 다를 것이 없으니 어떤 것이 이 뜻에서 나는 것인가? 아는 성질이 뜻 뿌리에 갖추어 있는데 식과 의근이 다르다면 무정지물과 같아서 마땅히 아는 것이 없으리라. 만일 아는 것이 없다면 어떻게 의근에서 난다 하며, 만일 아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 뜻을 알겠느냐? 오직 같은 것과 다른 것 이 두 성질을 이루지 못하는데 경계가 어찌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안으로 법 티끌로 인하여 나는 것이라면 세간의 모든 법이 다섯 티끌을 떠나지 못할 것이니 네가 모든 형색의 법과 모든 소리의 법과 모든 향기의 법과 모든 맛의 법과 모든 촉의 법을 보아라. 모양과 형상이 분명하여 다 안이비설신의 오근五根을 대한 것이므로 뜻으로 거둔 것이 아니니라. 너의 식이 결정코 법 티끌에 의지해서 난다면 너는 이제 자세히 보아라. 법과 법 티끌(法塵)은 무슨 형상인가? 만일 눈의 형색과 허공, 몸의 동하는 것과 고요한 것, 코의 통한 것과 막힌 것, 몸의 합하고 떠나는 것, 뜻의 나고 멸하는 것을 다 초월하면 마침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리라. 나면 곧 색과 공한 모든 법들이 나는 것이고, 멸하면 곧 색공色空 등 모든 법이 멸하는 것이니라. 의식에 인한 바가 이미 없다면 나는 것으로 인하여 식이 있음이 무슨 형상을 지었느냐? 모양이 없다면 경계가 어떻게 나겠느냐? 이런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뜻과 법이 인연이 되어 의식계意識界을 낸다 하나 세 곳이 모두 없어서 곧 뜻과 법과 의식의 경계가 본래 인연과 자연도 아닌 성품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항상 인연화합을 말씀하시되 ‘일체 세간의 가지가지 변화가 다 사대화합四大和合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시더니, 어찌 여래께서 인연과 자연을 함께 배척하시나이까? 제가 이제 이 뜻이 지닌 바를 헤아리지 못하오니 오직 애민히 여기사 중생에게 중도요의中道了義가 희론법戱論法이 아님을 열어 보이시옵소서.”

이때에 세존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먼저 성문과 연각의 모든 소승법을 싫어하고, 대승심을 발하여 무상보리를 부지런히 구하므로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열어 보였는데 어찌 다시 세간의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희론망상에 스스로를 얽어매느냐? 네가 비록 많이 들었으나 (용성연의 내가 그 희론망상을 배척하고 참 도(眞道)를 말하거늘 네가 오히려 의심하는 것이) 마치 약을 설명하는 사람이 참 약이 앞에 있지만 진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므로 여래가 ‘참으로 불쌍하도다’라고 말하느니라.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하여 분별하여 개시開示할 것이며 미래에 대승을 닦는 자로 하여금 실상을 통달하게 하리라.”

아난이 묵묵히 부처님의 성지聖旨를 받더라.

“아난아, 네 말과 같이 사대가 화합하여 세간의 가지가지 변화를 일으키나니라. 아난아, 만일 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와 사대의 근본이 되는 여래장의 묘한 진여의 성품이 그 체가 서로 화합하지 않는다면 능히 지대와 수대와 화대와 풍대와 보는 것이 큰 것과 앎이 큰 것과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허공이 모든 형색과 화합하지 못한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화합한 것이라 한다면 세상만물이 변화하는 것과 같아서 시작과 끝이 서로 이루고, 생과 멸이 서로 계속하여 허망한 생사에 서로 윤회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마치 내두르는 불바퀴(旋火輪)와 같아서 쉴 여가가 없으리라.

아난아, 물이 얼음이 되었다가 도로 물이 되는 것과 같으니, (용성연의 물이 얼음이 되는 것은 물이 본래 얼음이 아닌데 얼음을 이룬 것이니 본연한 성품도 화합이 아닌데 화합됨을 밝힌 것이다. 얼음이 도로 물이 되는 것은 얼음이 녹음에 얼음을 볼 수 없으니, 성품도 본래 화합하지 아니함을 밝힌 것이라.)

네가 땅(地大)의 성질을 보아라. 큰 덩어리는 대지가 되고, 지극히 가는 것은 티끌이 되니, 작아서 보기 어려운 허공(隣虛塵)과 같은 티끌을 쪼개어 칠분七分을 내고, 또 칠분 가운데에 일분一分을 쪼개면 무엇이 다시 있겠는가? 곧 실다운 성품이 없어 당처가 공한 것이니라.

아난아, 만일 이 극미진極微塵을 쪼개어 허공이 된다면 마땅히 알아라. 허공이 색상을 내는 것으로 알지어다. (용성연의 어째서 그런가?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 것을 안다면 물이 도로 얼음이 되는 것과 같을지로다. 참으로 애석하다. 꽃이 남에 다시 허공이 꽃을 낼 줄로 생각하느냐?) 네가 이제 묻되 ‘인연화합으로 말미암아 세간의 모든 변화상이 생긴다’고 하니 (용성연의 대저 물건은 여러 분자分子가 화합하여 있는 것이다.) 네가 인허진隣虛塵을 보아라. 이 하나의 인허진은 허공이 얼마나 합하여 인허진이 되었느냐? 응당 인허가 인허로 합하여 인허를 이루지는 못할지로다. 또 인허진을 쪼개어 허공에 넣는다면 얼마나 많은 색상을 써야 허공이 되겠느냐? 만일 빛(色)이 합할 때에는 색상이 합해서 색이 되는 것이지 허공은 아니다. 만일 허공을 합한다면 공이 되는 것이지 색이 아니다. 색은 오히려 쪼갤 수 있지만 허공은 어떻게 합하겠느냐? 네가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중에는 성품이 색色인 진공眞空과, 공이 성품인 진색眞色이 청정본연하며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양에 응하느니라. 업력을 따라 발현發現한 것이니, 세간 사람이 무지하여 인연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느니라. 그것은 다 식심분별識心分別로 헤아린 것이므로 다만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불(火大)의 성질은 따로 내가 없어서 모든 인연에 의지해 불이 일어나는 것이다. 네가 성중에서 밥을 짓지 못한 집을 보아라. 불을 피워 밥을 짓고자 할 때에 손으로 화경火鏡(볼록렌즈)을 가져와 태양에 비춰 불을 구하느니라. 아난아, 해와 거울이 화합함이라 한다면 나와 너와 일천오백30) 비구가 한 대중이 되었나니 한 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근본을 따지면 각각 몸이 있고, 다 태어난 씨족과 명자名字가 있어서 저 사리불은 바라문종이며, 우루빈라는 가섭파종이며, 아난은 구담종이니라.

아난아, 만일 이 불의 성질이 화합하여 생긴 것이라면 내가 손으로 거울을 잡아 태양 앞에서 불을 구할 때 이 불이 거울 가운데서 나느냐? 쑥에서 나느냐? 태양에서 오느냐? 아난아, 불이 태양에서 온다면 바로 네 손 가운데 있는 쑥이 불탈 것이니 거울이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그 불이 오는 곳마다 초목이 다 불타리라. 만일 거울 가운데서 불이 난다면 거울에서 불이 나서 쑥이 탈 때에 거울은 어찌 녹지 않는가? 네 손으로 거울을 잡아도 오히려 뜨겁지 않은데, 어찌 거울이 녹아 불이 되겠는가? 만일 쑥에서 불이 난다면 어찌 태양과 거울이 서로 의지하여 광명이 접촉한 후에 불이 나겠는가? 네가 또 자세히 보아라. 거울은 손에 있고, 태양은 하늘에 있고, 쑥은 본래 땅에서 나는 것인데 불이 어느 곳으로부터 이곳에 왔느냐? 태양과 손에 잡은 거울은 그 거리가 멀어 함께 섞어 놓은 것도 아니고, 한곳에 붙여 놓은 것도 아니니 불빛이 온 곳이 없이 저절로 있는 것도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에 성품이 불인 진공과 성품이 공한 진화眞火가 청정본연하여 법계에 두루하여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바의 양(所知量)에 응하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세상 사람이 한곳에서 화경을 들고 태양광선과 접촉하면 한곳에서만 불이 나고, 전 세계 사람이 화경을 들고 태양 광선과 접촉하면 전 세계에 불이 나는 것이니 어찌 불이 나는 방소方所가 따로 있겠는가? 이것들이 다 업을 따라 생기는 것이어서 세간 사람이 알지 못하고 모든 것이 다 인연이다 다 자연이다 의심하나니 이것들은 망령된 알음알이로 분별하여 헤아린 것이다. 다만 쓸데없는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물(水大)의 성질이 일정하지 못하여 흐르고 그치는 것이 항상하지 않느니라. 저 실라벌성의 가비라 신선과 작가라 신선과 발두마와 하살타 등 큰 환술하는 사람들이 태음大陰의 정기精氣를 구하여 환약을 섞되 모든 환술자들이 십오일망전十五日望前(한 달 중 앞의 보름)에 방저方諸(옥돌로 만든 술잔과 같이 생김) 구슬을 가지고 문질러서 전기가 났을 때에 달을 향하여 월광과 접촉하면 물이 흘러나오나니 이 물이 구슬에서 나오는 것인가? 공중에서 물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인가? 달에서 물이 나오는 것인가?

아난아, 만일 물이 달에서 온다면 저 높고 먼 거리에 있는 달이 인간 사람의 손에 있는 방저 구슬에서 능히 물이 나게 하니 그 달의 광명이 비추어 지나오는 모든 수풀에서도 응당 물이 흘러나와야 하리라. 만일 물이 흐른다면 어찌 방저 구슬에서 물이 흐르기를 기다리겠는가? 모든 수목에서 물이 흐르지 않고 방저에서만 물이 흐르면 달에서 물이 흐르지 아니하는 것이로다. 만일 방저에서 물이 나온다면 항상 구슬에서 물이 흐를 것이다. 어찌 십오일망전十五日望前에 밝은 달 광명을 접촉하여 구슬을 가진 뒤에야 물이 나기를 기다리겠는가? 만일 허공에서 물이 나온다면 허공은 끝이 없으므로 물도 마땅히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천지가 물속에 파묻혀 버리리니, 어찌 다시 물이니 허공이니 육지니 하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 네가 다시 자세히 보아라. 달은 하늘에 있고, 구슬은 사람의 손에 있고, 구슬의 물을 받는 소반은 본래 사람이 놓은 것이니 물이 어떤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흐르는 것인가? 달과 구슬이 서로 멀어 한데 섞인 것도 아니고, 한데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 물의 정기가 온 곳이 없이 저절로 온 것도 아니리라. 네가 오히려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중에 성품이 물인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空인 진수眞水가 청정본연하여 법계에 두루하여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양量에 응하느니라. 한곳에서 구슬을 가지면 한곳에서만 물이 나고, 온 법계에서 구슬을 가지면 법계에 물이 나서 법계에 가득하리니, 어찌 물이 나는 방소가 따로 있겠는가? 업을 따라 생긴 것이어서 세간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인연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니 다 이 식심분별로 망령되이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바람(風大)의 성품은 체가 없어 움직이고 고요함이 항상하지 않느니라. 네가 항상 의복을 가지런히 하고, 대중에 들어갈 때에 승가리승가리는 가사라. 자락이 펄럭여 사람에게 미치면 적은 바람이 나서 사람의 얼굴에 스치느니라. 이 바람은 가사의 자락에서 나는 것인가? 허공에서 나는 것인가? 저 사람의 얼굴에서 나는 것인가?

아난아, 이 바람이 가사의 자락에서 난다면 네가 바람을 입은 것이니, 그 옷이 날려서 너의 몸을 떠나야 할 것이로다. 내가 법을 설할 때에 회중에서 가사를 입었으니, 네가 나의 가사를 보아라. 바람이 어느 곳에 있는가? 가사 속에 바람을 간직하는 곳이 있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허공에서 난다면 네 가사가 펄럭이지 않을 것이니, 바람이 나지 않는가? 허공의 성품은 항상 머물러 있어서 바람이 항상 나와야 할 것이며, 만일 바람이 없을 때에는 허공이 마땅히 멸하리라. 바람이 멸하는 것은 볼 수 있지만 허공이 멸하는 것은 어떠한 모양인가? 만일 생멸이 있으면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라고 한다면 어찌 바람을 내겠는가? 만일 바람이 저절로 펄럭임을 입은 얼굴에서 난다면 저 얼굴에서 났으므로 마땅히 너를 흔들어 떨쳐야 하는데 스스로 네가 옷을 정돈하니, 어찌 거꾸로 바람이 불겠는가? 네가 자세히 관찰하라. 옷을 정돈하는 것은 네게 있고, 얼굴은 저 사람에게 속하고 허공은 고요하여 흘러 동하지 않으니, 바람이 어느 방에서 불어 이곳으로 왔는가? 바람과 허공은 성품이 막혀서 섞인 것도 아니고 합한 것도 아니며, 바람의 성품이 불어온 곳이 없이 스스로 생기지도 않으리라. 네가 완전히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에 성품이 바람인 진공과 성품이 공인 진풍眞風이 청정본연淸淨本然하여 법계에 두루하여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양에 응하느니라.

아난아, 너 한 사람이 입은 옷을 조금 움직이면 적은 바람이 나고, 두루 법계에 의복을 펄럭이면 국토에 가득하게 바람이 나서 세간에 두루하거니, 어찌 방소가 따로 있겠는가? 업을 따라 생기는 것이어서 세간이 알지 못하여 인연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나니, 다 이 식심으로 망령되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모두 말뿐이고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허공의 성품(空性)은 얼굴이 없어 형색으로 인하여 나타나나니 저 실라벌성의 항하수에서 먼 곳에 있는 모든 찰제리 씨족과 바라문종과 비사(상공업인)와 수타(수타라, 천민)와 파라타와 전다라 등이 새로이 집을 짓고, 샘을 파 물을 구할 때 땅을 파서 흙이 한 자가 나오면 허공이 한 자나 생기고, 흙을 한 길 파내면 허공도 한 길을 얻나니라. 허공의 깊고 얕음이 흙을 파내는 다소를 따라 나타나니, 이 허공은 마땅히 땅으로 인하여 나느냐? 파는 것으로 인하여 나느냐? 원인이 없이 저절로 나느냐?

아난아, 만일 다시 허공이 원인이 없이 저절로 생긴다면, 땅을 파기 전에는 어찌 꽉 막혀서 오직 큰 땅만 보이고 멀리 통달하지 못하느냐? 만일 흙으로 인하여 난다면 흙이 나올 때에 마땅히 허공이 들어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흙이 먼저 나오고 허공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찌 허공이 흙으로 인하여 나온다고 하겠는가? 만일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없다면 허공과 흙은 원래 다른 원인이 없는 것이니, 다르지 않으면 같은 것이니라. 그러면 흙이 나올 때에 허공은 어찌 나오지 않느냐? 만일 파는 것으로 인하여 나온다면 파서 허공이 나오는 것이므로 마땅히 흙이 나오는 것이 아니니라. 파는 것으로 인하여 나오지 않으면 파서 저절로 흙이 나온 것인데, 어찌 허공을 보겠는가? 네가 다시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관하라. 파는 괭이는 사람의 손으로 방향을 따라 운전하고, 흙은 땅으로 인하여 옮기니, 이와 같이 허공은 무엇으로 인하여 나는가? 파는 것은 참(實)이고, 허공은 빈 것이어서 서로 작용하지 못하여 화합이 아니며, 마땅히 허공이 오는 데 없이 저절로 나지도 않으리라. 만일 허공의 성품이 뚜렷하고 두루 편만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현전의 지수화풍과 합하여 오대五大가 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다 여래장이므로 본래 생멸이 없느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혼미하여 사대가 원래 여래장임을 깨닫지 못하나니, 마땅히 허공을 관하라. 나오는 것이냐? 들어가는 것이냐? 출입이 없는 것이냐? 네가 온전히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가운데는 성품이 깨친 진공眞空과 성품이 공한 진각眞覺이 청정본연하며,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양에 응하느니라.

아난아, 한 우물이 공하면 허공이 한 우물만치 나는 것과 같아서 시방 허공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시방에 원만하나 어찌 방소가 따로 있겠느냐? 업을 따라 생기는 것이어서 세간이 알지 못하고 인연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나니, 다 식심으로 망령되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말만 있을 뿐 전혀 실다운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보아 깨침이 앎이 없어 형상과 허공으로 인하여 있느니라. 네가 이제 기타림에 있을 때 아침은 밝고 저녁은 어두우며, 설사 밤중에 있더라도 선보름에는 광채가 있고 후보름에는 어둡나니, 곧 밝고 어두운 등이 보는 것으로 인하여 쪼개지느니라. 이 보는 것이 밝고 어두운 것과 (용성연의 형상과 아울러) 태허공太虛空과 함께 동일한 몸이 되느냐? 한 몸이 아니냐? 혹 같되 같지 아니하며, 혹 다르되 다르지 않은 것이냐?

아난아, 이 보는 것이 만일 다시 밝은 것과 어두운 것과 태허공과 일체가 된다면 명암의 체가 서로 없어 어두울 때에는 밝음이 없고, 밝을 때에는 어둠이 없으리라. 만일 어둠과 하나라면 밝을 때에는 견이 없을 것이며, 밝은 것과 하나라면 어두울 때에는 반드시 멸하리니, 멸하면 어찌 밝은 것을 보며 어두운 것을 보겠는가? 만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다르더라도 보는 것이 생멸이 없다면 어찌 하나라는 것이 이루어지겠는가?

만일 이 견정見精이 어두운 것과 밝은 것과 함께 일체가 아니라면, 네가 명암과 허공으로 더불어 보는 근원을 분석하여 내어라. 무슨 형상을 지었느냐? 밝고 어두운 것을 여의고 허공을 여의면, 이 보는 것은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과 같으리라. 명과 암, 허공의 이 세 가지가 다르다면 무엇으로부터 보는 것이 이루어지겠는가? 밝고 어두운 것은 서로 등지는 것인데, 어찌 ‘같다’고 하며, 셋을 여의면 원래로 없는 것인데, 어찌 ‘다르다’고 하며, 허공을 나누며 견을 나누려 하나 본래 경계선이 없는 것인데, 어찌 ‘한가지라’고 하며, 어둠을 보고 밝음을 보고도 성품이 변하여 고쳐지지 않는데, 어찌 ‘다르지 않다’고 하겠는가?

네가 다시 자세히 살피며 미세하게 살피고 미세하게 관하라. 밝은 것은 태양을 좇고, 어두운 것은 흑월黑月(그믐)을 좇고, 통한 것은 허공에 속하고, 막힌 것은 대지로 돌아가니, 이와 같은 견정이 무엇으로 인하여 나느냐? 보는 것은 깨닫는 것이고, 허공은 아득한 것이어서 화합한 것이 아니니, 견정이 의지하는 데 없이 저절로 나지도 아니하리라. 만일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두루 편만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끝이 없고 동하지 않는 허공과 요동하는 지수화풍과 합하여 육대六大가 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다 여래장이어서 본래 생멸이 없느니라.

아난아, 네 성품이 침윤沈淪하여 너의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네가 마땅히 견문각지를 관하라. 생멸이 있느냐? 같고 다름이 있느냐? 생멸이 아니냐? 같고 다름이 아니냐? 네가 일찍이 알지 못하는도다. 여래장 중에 성품이 보는 광명(覺明)과 깨달음이 정밀하게 보는 것(覺精)이 청정본연하며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의 마음을 따라 아는 양에 응하느니라. 저 견근見根의 보는 것이 법계에 두루하여 듣는 것과 냄새와 맛보는 것과 닿는 것과 닿는 것을 깨닫는 것과 깨달아 아는 것에 묘한 덕이 빛나서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 허공에 뚜렷이 가득하나니, 어찌 방소가 따로 있겠는가? 업을 따라 생기는 것이어서 세간이 알지 못하고 인연성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나니, 다 식심으로 망령되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 도무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아난아, 아는 성품이 근원이 없어 여섯 가지의 근진根塵으로 인하여 망령되이 나느니라. 네가 이제 두루 이 성품을 볼 때에 눈으로 차례차례 둘러보나니, 그 눈은 두루 보지만 거울과 같아서 따로 분별함이 없는데, 너의 아는 것이 차례로 지목하여 가리키되, ‘이것은 문수며, 이것은 부루나며, 이것은 목련이며, 이것은 수보리며, 이것은 사리불이라’고 하느니라. 이 식으로 아는 것이 보는 데서 나는 것이냐? 모양에서 나는 것이냐? 허공에서 나는 것이냐? 인함이 없이 돌연이 나는 것이냐?

아난아, 너의 아는 성품이 보는 가운데서 난다면 밝고 어두운 것과, 형색과 공한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네 가지가 반드시 없으면 원래 너의 보는 것이 없으리라. 보는 성품도 오히려 없을 것이니, 무엇으로부터 아는 것이 생기느냐? 만일 너의 아는 성품이 형상에서 난다면 견으로부터 생하는 것이 아니니,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며, 밝고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하면 색과 공이 없으리니, 저 상相도 오히려 없을 것인데, 식이 무엇으로부터 발하겠는가? 만일 허공에서 난다면 상相과 견見이 아니니라. 견이 아니면 분별할 수 없어 스스로 명암색공明暗色空을 알지 못할 것이며, 상相이 아니면 연緣이 멸하여 견문각지가 설 곳이 없으리라. 이 둘에 처한 것이 아니라면 공하면 없는 것과 같고, 있다고 물건이 아니니, 비록 너의 앎을 발한들 무엇을 분별하겠는가?

만일 인한 바가 없이 돌연히 생긴다면, 어찌 낮에는 밝은 달을 알지 못하는가? 네가 자세히 살피고 미세하게 살펴라. 보는 것은 너의 눈동자를 의탁하고, 형상은 앞 경계에 속하니, 형상은 있는 것을 이루고, 형상 아닌 것은 없는 것을 이루나니, 이와 같이 아는 인연이 무엇으로 인하여 나는가? 식은 요동하고 견은 맑아서 화합이 아니니, 듣고 깨달아 아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아는 인연이 의지함이 없이 스스로 나지는 아니하리라. 만일 이 아는 마음이 본래 의지하는 바가 없다면 마땅히 알아라.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원만하고 맑아 성性이 의지하는 바가 아니니라. 허공과 지수화풍과 견과 아는 것이 함께 칠대七大가 되니, 성품이 참되고 원융하여 다 여래장이어서 본래 생멸이 없느니라.

아난아, 너의 마음이 거칠고 들떠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이 본래 여래장임을 알지 못하나니, 네가 이 여섯 곳(六處)의 아는 마음(識心)을 관하라. 같음이 되느냐? 다름이 되느냐? 공함이냐? 있음이냐? 같고 다른 것이 아니냐? 공空과 유有가 아니냐? 네가 원래 알지 못하는구나. 여래장 중에 성품이 아는 밝게 아는 것과 각覺이 밝은 참 아는 것(眞識)과 묘각妙覺이 맑아서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 허공을 삼켰다 뱉었다 하나니, 어찌 방소方所가 있겠는가? 업을 따라 생기는 것이어서 세간이 알지 못하고 인연성과 자연성이라고 의심하나니, 다 식심으로 망령되이 분별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다만 말만 있을 뿐 도무지 진실한 뜻이 없느니라.”

이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이 여래께서 미묘하게 열어 보이심을 받잡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걸림이 없어져 모든 대중이 각각 마음이 시방에 두루함을 알았고, 시방 허공을 보되 손에 가진 한 잎사귀의 물건을 보듯이 하며, 일체 세간에 있는 물건이 그대로 보리의 묘명원심妙明元心임을 알았다. 마음의 정밀함이 두루 원만하여 시방을 머금었으며, 부모가 낳아 준 몸을 돌아보니 오히려 시방 허공 중에 한 미진을 불어 날리어 있는 듯 없는 듯하며, 맑고 큰 바다에 흐르는 하나의 뜬 물거품의 흐르는 것이 생겼다 사라짐이 의지함이 없는 듯하며, 분명하게 본래 묘한 마음이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아니함을 얻은 줄을 스스로 깨달았다. 부처님께 합장하며 ‘미증유를 얻었다’고 하고, 여래 앞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기를, ‘묘하고 맑은 진제반야眞諦般若 덕존德尊이시여! 만겁을 다 가지신 해탈덕존解脫德尊이시여!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에 동요하지 아니하신 법신法身덕존이시여! 구경에 견고하신 수능엄왕이시여! 참 세상에 희유하시나이다. 저희들이 억겁에 전도한 생각을 녹이시어 무수겁을 지내지 않고도 법신을 얻게 하심이로다. 원하옵건대 이제 과果를 얻어 보왕을 이루어 이와 같은 항하수와 같은 대중을 제도하오리다. 깊은 마음을 가져 미진수와 같은 세계의 부처님을 받드는 것이 곧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라 합니다. 엎드려 청하오니 세존께서는 증명하소서. 오탁악세에 맹세코 먼저 들어가 저 한 중생이라도 성불하지 못하면 마침내 니원泥洹을 취하지 아니하리다. 대웅대력대자대비大雄大力大慈大悲하신 세존이시여! 희유하시다. 우리의 불성을 깨친 뒤에도 미세하고 지극히 미세한 의혹을 다시 살피어 제거하게 하사 저로 하여금 일찍이 무상각에 올라 시방세계의 도량에 앉게 하소서. 공한 성품은 가히 녹이려니와 저의 견고한 마음은 움직임이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수능엄경 넷째 권

31)

이때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합장공경하며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대위덕세존이시여! 중생을 잘 위하사 여래의 제일의제를 연설하시나이다. 세존께서 항상 칭찬하시되, ‘설법하는 사람 가운데 제가 제일이라’고 하시었으나, 이제 여래의 미묘하신 법을 듣사오니 마치 귀가 어두운 사람이 백 보 밖에서 모기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아서 본래 보지도 못하는데, 어찌 하물며 얻어들으오리까? 부처님께서 밝히시어 비록 저의 의혹을 제거하게 하시나 아직도 이 뜻을 자세하게 알지 못하여 끝내 의혹이 없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난의 무리는 비록 깨쳤으나 습기習氣의 번뇌를 다 제거하지 못하였고, 저희들은 모인 중에서도 지혜에 오른 자들이어서 비록 모든 번뇌가 다하였으나 이제 여래께서 설하신 법음法音을 듣고 오히려 의심과 뉘우침에 얽매여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세간에 있는 일체 육근과 육진과 오음과 십이처와 십팔계 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본연淸淨本然하다면, (용성연의 청정하니 모든 상相이 없을 것이며, 본연本然하니 마땅히 흘러 천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산하대지와 모든 유위有爲의 형상이 홀연히 나왔으며, 차례로 천류遷流하여 마치고 또다시 비롯하나이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지수화풍의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 가득하여 담연히 항상 머무른다’고 하셨으니, 세존이시여! 만일 땅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어찌 물을 용납할 것이며, 물의 성품이 두루하다면 불이 나지 못할 것인데 어찌 물과 불 두 가지 성품이 함께 허공에 두루하여 서로 능멸하지 아니함을 밝히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땅의 성품은 걸리고 허공의 성품은 비어서 통하거니 어찌 이 두 가지가 함께 ‘법계에 두루한다’고 하시나이까? 제가 이 뜻의 귀추를 알지 못하오니 오직 원컨대 여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희미한 구름(迷雲)을 열어 주소서.”라고 하고는 모든 대중과 이 말을 마치고 오체를 땅에 던지어 여래께서 위없는 자비로 깨우쳐 주심을 흠앙欽仰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부루나와 모든 회중에 있는 번뇌가 다하여 배울 것이 없는 모든 아라한에게 고하시되, “여래가 금일에 널리 모든 대중을 위하여 수승한 뜻 가운데 참으로 수승한 뜻을 펴서 너희 회중에 있는 정성성문定性聲聞과, 아我와 법法의 이 두 가지가 빈 것을 아직 얻지 못한 모든 사람과, 상승上乘으로 회향하는 아라한阿羅漢 등으로 하여금 다 일승의 적멸도량에 참으로 고요히 바로 닦아 가는 곳을 얻게 하리니, 너희는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희를 위하여 설하리라.”라고 하시었다. 부루나 등이 부처님의 무루 법음을 흠앙欽仰하여 잠잠히 받들어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부루나야 네 말과 같아서 ‘청정본연하거늘 어찌 산하대지를 생하느냐?’고 하니, 너는 항상 듣지 못하였느냐? 여래께서 말씀하시되, ‘성품깨달음(性覺)은 묘하게 밝고, 묘하게 비추며, 본각성품은 밝아 묘하다’고 함을 듣지 못하였느냐?”

부루나가 말하되,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항상 부처님께서 이 뜻을 말씀하심을 들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성각性覺과 본각本覺이 묘하게 밝고 밝아서 묘한 것을 일컬어 각覺이라고 하는가? 각은 본래 밝지 않은데, 마음으로 깨친 것을 명각明覺(밝혀야 할 각)이라고 하는가?”

부루나가 말하되, “만일 이 밝지 않은 것을 각이라고 한다면 곧 밝은 것이 없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밝은 것을 세워 성품의 참 깨침을 삼으나 이것은 참 각이 아니니, (용성연의 비유컨대 머리 위에다가 군머리를 두는 것과 같고, 병이 없는 사람에게 혹을 붙이는 것과 같아서 본래 밝은 성품은 밝은 것을 두어서 밝은 것이 아니고, 참 깨친 각은 본래 깨침을 두어서 깨치는 것이 아니니, 밝은 경계를 세우지 않으면) 밝음을 세우는 망령된 깨침도 없으리라. 밝은 경계가 있으면 본래 성품깨달음(性覺)이 묘하게 밝으며, (용성연의 본각성품이 밝고 묘하여 능소가 끊어진 참 깨침이 아니니라. 밝은 것을 세운 바가 없으면 밝은 것이 없는 경계를 세워도 본성의 밝은 것이 아니니, 우리의 본연각성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므로 근본 밝지 못한 무명이 있으면 본래 청정한 각성의 밝음이 아니니라. 너의 본래 참 깨달은 성품이 뒤집혀 무명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본성의 각이 반드시 본래 밝음을 갖추어 있는 것을 네가 무단히 눈을 비벼서 공화空華를 내는 것과 같으니라.) 본각의 밝음을 세워 망령되이 깨쳐서 근본 무명이 되었으니, 모든 망이 이로부터 비롯한 것이니라. (용성연의 이것이 세계와 중생의 업과의 뿌리니라.) 성각은 본래 소명所明의 경계가 아닌데, 망령되이 밝은 것으로 인하여 밝은 것이 서니, 진과 망이 각립各立된 것이다. 경계가 이미 섰으므로 너의 능망能妄을 내느니라. (용성연의 성각의 체는 본래 능소能所가 없으며 또한 같고 다름이 없으나 무명으로 인하여 한 생각이 망령되이 동하여 밝은 것을 내고 경계가 건립되는 것으로 인하여 능과 소가 함께 섰으므로 같고 다른 것이 있느니라. 소所는 밝은 것으로 인함이니 너의 능망으로 인함이니라. 소망所妄이 있으면) 같고 다름이 없는 가운데 치연히 다름을 이루느니라. 저 경계가 다름에 따라 이 다른 것으로 인하여 같음이 서는 것이고, 이 같고 다른 것이 발명되어 다시 같음이 없고 다름이 없는 것이 섰느니라. (용성연의 앞에서 업상業相과 전상轉相과 현상現相의 세 가지 미세한 것으로 인하여 이와 같이 요란한 것이니, 일념이 망동妄動하여 참된 성품이 요란한 것은 업상이 되고, 능망소망能妄所妄이 서로 상대하여 피로함을 생각하니, 능能은 전상이 되고, 소所는 현상이 되고, 피로함은 지상智相이 되고, 상속상相續相이 되는 것이니라. 피로한 것이 오래되어 티끌을 발하는 것은 지상과 상속상으로 인하여 집취執取를 발기하며 명자상名字相을 헤아리느니라. 스스로 혼탁한 것은 지상과 상속상과 집취상과 계명자상計名字相의 네 가지가 참된 성품을 혼잡하게 하여서 혼탁한 것이니, 삼세三細로 네 가지 추麁를 끌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니라.

위에서는 한 생각 어둡게 동함이 삼세상三細相이 됨을 밝힌 것이니라. 일어난 즉 동하고, 동한 즉 다른 것을 이루나니, 동하는 것은 세계가 되고, 다른 것은 계체界體가 되는 것이어서 세계가 동하는 것과 다른 것으로 인하여 이룬 것이니라. 고요한 것은 같은 모양이고 허공의 체가 됨이니라. 허공은 일체 형질이 생하기 전에 동한 것을 대하여 고요한 것이 성립된 것이니라. 허공은 한 모양이고 세계는 차별이어서 저 같고 다른 것을 대하여 같고 다름이 없음을 세우니, 참 유위법(眞有爲法)이며 곧 중생이니라. 대개 마음 안에서 일념이 처음 동하여 삼세상이 되는 그곳에는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이니, 이 삼세상이 굴러 같고 다른 것도 분명히 휘어낸(범위 안으로 우겨냄) 까닭에 이 같고 다름없는 것이 참 유위법이 되는 근본이니, 이것이 ‘청정본연한데 어찌 산하대지를 내는가?’라고 묻는 것에 대답하신 말씀이니라.)

각覺의 명明과 공空의 매昧가 서로 상대相對하여 흔들림이 생기나니 그러므로 풍륜風輪이 세계를 가지느니라. 공을 인하여 요동함이 생기고, 밝음을 굳혀서 걸림이 되나니, 저 금보金寶는 명각이 굳어 걸림이 된 것이니라. 그런 까닭에 금륜金輪이 국토를 안보安保하여 가지느니라. 견각堅覺이 보배를 이루고, 요명搖明이 바람을 내어 바람과 금金이 서로 마찰하므로 불광명(火光)이 변화하는 성품이 되느니라.

보명寶明은 윤택함을 생하고, 화광火光은 위로 오르므로 수륜水輪이 시방세계를 머금었느니라. 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가 서로 사귐을 발하여 굳음이 서나니, 젖은 것은 큰 바다가 되고 마른 것은 물의 언덕이 되느니라. 이런 까닭에 큰 바다는 화광이 항상 일어나고, 저 주단洲潬(섬)에는 강하江河가 항상 흐르느니라. 수세水勢가 불보다 적으면 맺어서 높은 산이 되나니, 이런 까닭에 산 돌이 서로 마주치면 불꽃이 나고, 녹이면 물을 이루느니라. 토세土勢가 물보다 적으면 초목이 되나니, 이런 까닭에 수풀이 불을 만나면 타서 흙을 이루고, 매우 짜면 물을 이루느니라. 서로 사귀어 망령되이 발생하면서 번갈아 서로 종자가 되나니, 이 인연으로 세계가 상속하느니라.

(용성연의 위에서는 한 생각 미혹함으로 산하대지가 홀연히 일어나는 것을 밝히고, 이곳에서는 상속한 것을 밝히니, 본래 밝고 어두운 것 없는 본각에서 망령되이 일어남에 이것을 따라 진공眞空에서 매기昧氣(어두운 기운)가 생하느니라. 이 완공체頑空體는 온전히 어두운 매체昧體가 되므로 밝은 기운과 어두운 매昧가 서로 대충對衝(충돌)해서 바람이 나는 것이니, 이 명明과 매昧와 동動하는 것과 고요한 바탕이 서로 충돌하여 쉬지 아니하니라. 안으로는 마음의 생멸이 되고 밖으로는 바람을 성취하는 까닭에 말씀하시되, ‘풍륜이 세계를 가졌다’고 하니라. 위에서 하신 말씀과 같이 명과 매가 서로 충돌하여 동하는 까닭에 각명을 견집堅執해서 드디어 질애質碍를 이루나니, 안인즉 명을 견집하고, 밖인즉 금륜을 이루는 것이니라. 대지의 가장 아래는 금륜을 의지하여 있으므로 금륜이 국토를 가졌다고 하느니라.

이 화대火大는 풍대風大와 지대地大가 서로 만족하여 발생한 것이니, 안으로 마음을 잡아 말한다면 생멸심生滅心이 머물지 않아서 굳건히 집착함을 버리지 아니한 것이고, 밖으로는 요동하여 쉬지 아니하며 견강堅强하여 파괴하기 어려워 서로 마촉摩觸하여 불이 나는 것이니라. 불은 능히 만물을 성숙하는 공능이 있는 까닭에 변화성變化性이라 하느니라. 물은 금과 불 두 가지로 인하여 나는 것이니, 안으로는 각명을 굳게 집착하고 건조乾燥한 마음이 치성하여 번뇌가 되는 것이며, 밖으로는 물은 윤택하고 불은 찌는 고로 물이 나서 시방세계를 머금고 있느니라. 흙은 금을 의지하고, 금은 물을 의지하고, 물은 바람을 의지하고, 바람은 허공을 의지하고, 허공은 무명을 의지하고, 무명은 불각심不覺心을 의지하나니, 만법이 다 마음으로부터 나느니라. 불과 물이 서로 사귀어 그 세력이 상적相敵한 까닭에 젖으면 바다가 되어 물의 자체를 건립하고, 마른 것은 섬이 되나니, 이런 까닭에 수화水火의 기분氣分을 밝힌 것이니라. 바다에 불광명이 나는 것은 불의 어머니의 기분을 밝힌 것이고, 섬에서 강한 물이 흐르는 것은 물의 아버지의 기분을 밝힌 것이니라. 물은 불을 이기는 것이니, 만일 물이 온전한 세력을 얻으면 불이 용납할 곳이 없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물의 세력이 불보다 좀 하열하면 맺히어 산이 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산 돌이 마주 부딪치면 불이 나고 녹으면 물이 되느니라. 초목은 원래 수토기분水土氣分을 받았으므로 불을 만나 타면 재가 되어 필경 흙이 되고 매우 짜면 물이 되느니라.)

다시 부루나야, 밝은 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각명이 허물이 되는 것이니, 소망所妄이 서면 밝은 이치가 넘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인연으로 듣는 것은 소리를 벗어나지 못하며, 보는 것은 색을 뛰어 넘지 못하여 색성향미촉법 여섯의 망령된 것이 성취되나니, 이로 인하여 보고 깨치고 듣고 앎을 나누어 같은 업은 서로 얽히고, 합하고 떠난 것은 화생火生을 이루느니라. 밝은 데를 보아 빛이 나타나고 밝게 보아 생각을 이루나니, 달리 보는 것은 미워함을 이루고 같은 생각은 사랑을 이루느니라. 사랑함을 흘려 종자가 되며, 생각을 받아들여 태胎가 되어 서로 어울려서 생겨날 적에는 동업을 흡인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갈라람羯羅藍갈라람은 태와 난을 나누지 못하여 엉키어 미끄러움이니 태에 처음 들어가는 모양과 갈포담羯蒲曇잉태한 지 이칠일이 된 모양 등이 생기느니라. 태란습화胎卵濕化가 그 응한 바를 따라 난생卵生은 오직 생각으로 나고, 태생胎生은 정애로 인하여 나고, 습생濕生은 화합으로써 감득感得하고, 화생火生은 여의어서 생기느니라. 사랑하는 정情과 생각(想)과 합한 것(合)과 여읜 것(離)이 서로서로 변역變易하여 받는 바 업보가 날거나 잠김을 따르나니, 이 인연으로 중생이 상속하느니라.

부루나야, 생각과 애정이 함께 맺어져 사랑을 능히 여의지 못하면 곧 모든 세간의 부모와 자손이 서로 끊이지 않나니, 이것은 욕탐欲貪으로써 근본이 되느니라. 탐욕과 사랑이 함께 불어나서 탐심을 능히 끊지 못하면 곧 모든 세간의 난생과 화생과 습생과 태생이 힘의 강하고 약함을 따라 서로서로 잡아먹나니, 이것은 곧 살탐殺貪으로써 근본이 되느니라. 사람이 염소를 먹으면 염소는 죽어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 염소가 되어서 이와 같이 십류군생十類群生이 죽고 죽고 나고 나면서 서로서로 잡아먹되 악업으로 함께 나고 미래제가 다하나니, 이것은 도탐盜貪으로써 근본이 되느니라. 너는 나의 목숨의 빚을 지었고, 나는 네게 빚을 갚아서 이런 인연으로 백천 겁을 지내면서 항상 생사에 있느니라. 네가 나의 마음을 사랑하며, 내가 너의 색을 어여뻐 하므로 이와 같은 인연으로 백천 겁을 지내면서 항상 서로 얽어매여 있느니라. 오직 살도음殺盜婬이 근본이 되는 것이니, 이 인연으로 업과業果가 상속하느니라.

부루나야, 이와 같은 세 가지가 전도 상속하는 것은 다 각명의 밝혀 아는 성품이 요별함으로 인하여 형상을 내어서 망견을 따라 생기는 것이니, 산하대지 모든 유위상이 차례로 천류遷流하되 이 허망함으로 인하여 마치고 다시 비롯하느니라.”

부루나가 사뢰어 말하되, “만일 이 묘각과 본묘本妙한 각명覺明이 여래의 마음과 같이 증감이 없거늘 까닭 없이 홀연히 산하대지의 모든 유위상을 낸다면 여래께서는 이제 묘하게 허하고 밝게 깨침(妙空明覺)을 얻으셨으니, 산하대지의 유위인 습루習漏가 언제 다시 생기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고하시되, “비유하건대 어리석은 사람이 어떤 취락에서 남쪽을 잘못알고 북쪽이라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미한 것은 다시 미함을 인하여 있느냐? 깨달음을 인하여 나는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되,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또한 미를 인한 것도 아니며 깨달음을 인한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 미한 것은 본래 근본이 없는데 어찌 미한 것을 인하였으며, 깨달음이 미함을 내는 것이 아닌데 어찌 깨달음으로 인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저 미한 사람이 아주 미하였을 때 어떤 깨친 사람이 가리켜 보여 깨닫게 한다면, 부루나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비록 미하지만 이 취락에서 다시 미함이 생기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루나야, 시방의 여래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시니라. 이 미한 것은 본래 없어서 성품이 필경 공하니, 옛적에는 본래 미함이 없었지만 미함과 깨침이 있는 듯하나 미함을 깨달아 멸하면 깨침에는 다시 미가 생기지 아니하느니라. 또 눈병이 있는 사람이 허공에서 꽃을 보다가도 눈에 병이 만일 없어지면 꽃이 허공에서 없어지는 것과 같이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 꽃이 없어진 곳에서 꽃이 다시 나기를 기다리면 너는 이 사람을 보아라. 어리석으냐? 지혜가 있느냐?”

부루나가 말하되,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사온데 망령되이 꽃을 보나니 꽃이 허공에서 멸함을 보는 것도 이미 전도한 것인데, 다시 나기를 기다린다면 이것은 진실로 어리석고 미친 것입니다. 어찌 다시 이와 같은 사람을 ‘어리석다’, ‘지혜가 있다’고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아는 바가 이와 같다면 어찌 묻기를, ‘제불여래의 묘각명공妙覺明空에서 언제 다시 산하대지를 내는가?’라고 하는가? 또 광석鑛石에 순금이 섞인 것과 같이 그 금이 한번 순일해지면 다시 잡됨을 이루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리라. 또 나무가 재가 되면 다시 나무가 되지 않는 것과 같아서 제불여래의 보리와 열반도 이와 같으니라.

부루나야 또 네가 묻되,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두루하다면 물과 불의 성품이 서로 능멸하지 아니하는가?’라고 의심하며 또 묻되, ‘허공과 모든 대지가 다 법계에 두루하다면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부루나야, 비유컨대 허공의 체가 여러 가지 모양은 아니지만 저 모든 모양이 발휘發揮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째서인가?

부루나야, 저 태허공이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둡고, 바람이 불면 동하고, 비가 개면 청명하고, 기운이 엉기면 탁하고, 토기가 쌓이면 흙비가 되고, 물이 맑으면 비치느니라. 무슨 뜻인가? 이와 같은 여러 방면의 모든 유위상이 저것들로 인하여 나느냐? 허공에 있느냐?

만일 저것들에서 난다면 부루나야, 또한 해가 비칠 때에는 이미 날이 밝은 것이므로 시방세계가 한가지로 햇빛이 될 것인데, 어찌 허공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느냐? 만일 허공이 밝다면 허공이 스스로 비칠 것인데, 어찌 밤중에 운무가 끼었을 때에는 광명이 빛나지 않느냐? 마땅히 알아라. 이 밝은 것은 해도 아니며, 허공도 아니며, 허공과 해와 다른 것도 아니로다. 형상으로 보면 원래 망령되어 가리켜 진술할 것이 없나니, 마치 허공 꽃이 허공 과실果實을 맺는 것과 같으니, 어찌 서로 능멸한다고 하는 뜻을 따지겠는가? 성품으로 보면 원래 참된 것이어서 오직 묘각명妙覺明뿐이니, 묘각명심이 본래 수화水火가 아닌데, 어찌 다시 서로 용납지 못함을 묻겠는가? 참 묘각의 밝음도 이와 같으니, 네가 허공으로 밝히면 허공이 나타나고, 지수화풍으로 각각 발명하면 각각 나타나고, 만일 한꺼번에 발명하면 곧 한꺼번에 나타나느니라. 어찌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인가?

부루나야, 한 물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두 사람이 함께 물속의 해를 보다가 동서로 각기 가면 곧 해도 두 사람을 따라가 하나는 동으로 가고 하나는 서로 가서 원래부터 표준이 없었으니, 따지면서 말하되, ‘이 해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각기 행하며, 각각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를 나타내느냐?’고 하지 않으리니 매우 허망하여 빙거憑據(사실의 증명이 될 만한 근거)할 수 없느니라.

부루나야, 네가 색과 공으로써 여래장에서 서로 당기고 서로 밀치므로 여래장이 색과 공을 따라 법계에 두루하나니, 그러므로 저 가운데서 바람이 동하고, 허공은 맑으며, 해는 밝고, 구름은 어둡나니, 중생이 미하여 각覺을 등지고 번뇌(塵)에 합하므로 진로塵勞(번뇌)를 발하여 세간상世間相이 있느니라.

내가 묘명妙明한 생멸이 아닌 성품으로 여래장에 합하나니, 여래장은 오직 묘각의 밝음이어서 뚜렷이 법계에 비추므로, 저 가운데에 하나가 무량이 되고 무량이 하나가 되며, 적은 가운데에 큰 것을 나투고 큰 가운데에 적은 것을 나투어 도량에서 동하지 않고 시방세계에 두루하며, 몸이 시방의 무진 허공을 머금어 한 터럭 끝에서 보왕찰寶王刹을 나투며, 미진 속에 앉아서 대법륜을 굴리나니, 진塵을 멸하고 각覺에 합하므로 진여의 묘각명성妙覺明性을 발하느니라. 여래장의 본묘원심本妙圓心은 마음과 공이 아니며, 지수화풍도 아니며, 안이비설신의가 아니고, 색성향미촉법도 아니며, 안식계眼識界가 아니고 내지 의식계意識界도 아니니라. 밝고 어둠도 아니고, 밝고 어두움이 다한 것도 아니며, 내지 늙고 죽는 것이 아니며, 늙고 죽는 것이 다함도 아니며, 고집멸도도 아니며, 지혜도 아니며, 얻는 것도 아니니라.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바라밀도 아니며,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아니며, 대열반도 아니며, 상락아정常樂我淨도 아니니, 그러므로 모두 세간과 출세간이 아닌 까닭이니라.

곧 여래장의 원래 밝고 묘한 마음은 곧 마음이며, 곧 공이며, 곧 지수화풍이며, 곧 안이비설신의이며, 곧 색성향미촉법이며, 곧 안식계니 이와 같이 내지 곧 의식계니라. 곧 명明과 무명無明이며, 곧 명과 무명이 다함이며, 내지 노사老死와 노사가 다함이며, 곧 고집멸도이며, 곧 지혜이며, 곧 얻음이니라. 곧 육바라밀이며, 곧 달달아갈恒闥阿竭과 아라하阿羅詞와 삼먁삼보리이며, 곧 대열반이며, 곧 상락아정이니, 이로서 모두가 곧 세간과 출세간이므로 곧 여래장의 묘하게 밝은 마음의 근원이 여읜 데 즉하여 여읜 것이 아니며, 옳은 데 즉하고 그른 데 즉하나니, 어찌 세간의 삼유三有중생과 출세간의 성문과 연각의 아는 마음으로 여래의 위없는 보리를 헤아려 세간의 말로써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어가겠는가?

비유컨대 거문고와 피리와 비파가 비록 묘한 소리가 있으나 만일 묘한 손가락이 없으면 마침내 발할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너와 중생도 그러하여 보각寶覺인 진심眞心이 각각 원만하건만 내가 손가락으로 누르면 해인의 광명이 발하는 것과 같거늘, 네가 잠깐만 마음을 두어도 번뇌가 먼저 일어나니, 부지런히 위없는 깨닫는 도를 구하지 않고 소승에 애착하여 적은 것을 얻어 족함을 삼은 때문이니라.”

부루나가 말하되, “저와 여래는 보각寶覺이 뚜렷이 밝아 참 묘하고 깨끗한 마음이 원만하여 둘이 없건마는, 저는 예로부터 끝이 없는 망상을 만나 오랫동안 윤회하는 데 있었으므로 지금 성승聖乘을 얻었으나 오히려 구경치 못하옵고, 세존께서는 모든 망상이 모두 멸하시어 홀로 묘하고 참 떳떳하시나이다. 감히 여쭙니다. 일체중생은 무엇으로 인하여 망령됨이 있어서 스스로 묘명妙明을 가리우고 이 고해에 빠짐을 받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고하시되, “네가 비록 의심은 제거하였으나 나머지 의혹이 다하지 않았으니, 내가 세간에 지금 있는 모든 일을 이제 다시 네게 묻노라. 너는 어찌 듣지 못하였느냐? 실라벌성의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문득 아침에 거울로 얼굴을 보다가 거울 속에 나타난 머리에 눈썹과 눈이 가히 볼만함을 사랑하고, 자기의 머리에는 얼굴과 눈도 보지 못함을 성내고 꾸짖어 말하되, ‘이미 망령이라’고 여겨서 미쳐 달아났다 하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무엇으로 인하여 까닭 없이 미쳐서 달아났는가?”

부루나가 말하되, “이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이지 다른 까닭이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묘각명원妙覺明圓이 본래 뚜렷이 밝아 묘하니, 이미 일컫기를 ‘망령된 것이라’고 하였는데, 무슨 인이 있으며, 만일 인한 바가 있다면 어찌 망이라 하겠느냐? 스스로의 모든 망상이 전전展轉히 서로 인하여 미迷함으로부터 미함을 쌓아서 진겁塵劫을 지냈으므로 비록 부처님이 나타내 보여도 오히려 돌이키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은 미한 인因은 미한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있는 것이니, 미함이 인이 없음을 알면 망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오히려 나는 것도 없을 것인데, 무엇을 멸하고자 하겠는가? 보리를 얻은 자는 잠을 깬 사람이 꿈속의 일을 말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은 비록 매우 깨끗하고 밝지만 무슨 인연으로 꿈속의 물건을 취하고자 하겠는가? 하물며 인이 없는데 본래 없음을 알까 보냐? 저 성중의 연야달다가 무슨 인연이 있어서 자신의 머리를 겁내 달아났겠는가? 홀연히 미친 마음만 쉬면 머리를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며, 설사 미친 마음을 쉬지 아니한들 어찌 머리를 유실하였겠는가?

부루나야, 망령된 성품도 이와 같으니 무엇으로 인하여 있겠는가? 네가 다만 세간世間과 업과業果와 중생衆生의 세 가지가 상속함을 분별하여 따르지 않으면 세 가지 연이 끊어지므로 세 가지 인이 나지 아니하리니, 곧 너의 마음에 있는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스스로 쉬리라. 쉬면 곧 보리의 수승하고 깨끗한 밝은 마음(勝淨明心)이 본래 법계에 두루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닌데, 어찌 그렇게 수고로이 닦아 증득하려 하느냐?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옷 속에 여의주를 매어 두고는 스스로 알지 못하고 타방으로 곤궁하게 걸식하며 다니는 것과 같아서 비록 빈궁하지만 구슬은 일찍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라. 문득 지혜 있는 자가 구슬을 가리켜 주면 소원이 마음대로 되어서 크게 살림이 넉넉해지리니, 바야흐로 여의주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달으리라.”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사뢰되, “‘세존이시여, 살도음殺盜婬의 삼업三業이 끊어지므로 삼인三因이 생기지 않아서 심중心中에 있는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이 스스로 쉬면 곧 보리菩提이니, 다른 이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니라’고 하시면, 인연이 명백하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버리라 하시나이까? 저도 인연을 따라 마음이 깨침을 얻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뜻이 어찌 저희들 연소年少한 유학有學성문뿐이오리까. 이제 이 회중會中에 있는 대목건련과 사리불과 수보리 등이 외도 범지梵志로부터 부처님의 인연을 듣고 발심 개오하여 무루無漏를 이루었사온데, 이제 ‘보리는 인연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시오면, 왕사성의 외도 구사리 등이 말하는 자연이 제일의第一義를 이룰 것이니, 오직 대비를 드리우사 어리석은 자들을 개발開發케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저 성중에 있는 연야달다의 미친 성품인 인연이 없어지면 곧 미치지 아니한 성품이 자연히 나오는 것과 같아서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이에 다하느니라.

아난아, 연야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이라면 인연을 빌린 것이 아니라 본래 스스로 그러하여 자연 아닌 것이 없는데, 무슨 인연으로 혹 미치고 미치지 아니하는데 그러할 바가 없어 자연이 아니리니, 어찌 거울 인연을 가자한 연후에 머리를 겁내어 미쳐 달아났겠느냐? 그런고로 자연이 아니니라. 만일 본래 미치지 않은 것을 인연을 빌려 미쳤다면, 곧 본래 스스로 잃지 않은 것을 인연을 가자했기 때문에 잃은 것이니, 본 머리는 잃지 않았는데, 미쳐서 겁이 나 망령되이 달아났다면, 조금도 달라짐이 없을 텐데 어찌 인연을 말미암았다 하겠는가? 본래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 본래 미친 공포가 있다 하겠지만 그러면 미치기 전에는 미친 것이 어느 곳에 숨어 있는가? 미치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본래 망령된 것이 아닌데, 어찌 미쳐서 달아났는가? 만일 본래 머리를 깨달아 미쳐서 달아났음을 알면 인연이다, 자연이다 하는 것이 모두 희론이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되, ‘세 가지 인연이 끊어지므로 곧 보리심이라’고 하노라. 보리심이 생하고 생멸심이 멸한다면 이것도 다만 생멸뿐이니라. 생멸이 모두 다하여 공용功用이 없는데, 자연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자연심이 생하고 생멸심이 멸하는 것이니, 이것도 또한 생멸이니라. 생멸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한다면 마치 세간에서 모든 상이 섞여서 화하여 일체를 이룬 것을 화합성和合性이라 하고, 화합하지 아니한 것을 본연성本然性이라 일컫는 것과 같아서 본연과 본연 아님과, 화합과 화합 아님과, 합한 것과 본연本然을 함께 여의고, 여의고 합한 것도 모두 아닌 것이라야 이것을 비로소 희론법戱論法이 없다고 하느니라. 보리와 열반이 오히려 요원한데 네가 억겁을 드나들면서 닦아 증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록 시방 여래의 십이부경十二部經의 청정하고 묘한 이치를 기억하여 가지기를 항하사와 같이 하더라도 다만 희론만 더할 뿐이니라.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을 결정코 분명하게 말하여 사람들이 ‘네가 다문多聞이 제일이라’고 일컬으나, 이렇게 억겁 동안 많이 듣고 훈습하였어도 능히 마등가의 난을 면하지 못하고 모름지기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를 의지하고서야 마등가의 마음속 음욕의 불이 한꺼번에 쉬어지니, 아나함阿那含을 얻어서 나의 법 가운데서 정진의 수풀을 이루어 사랑의 하수河水가 고갈하여 너로 하여금 해탈케 하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비록 여러 겁을 지내며 여래의 비밀하고 묘엄妙嚴함을 기억하여 가져도 하루 동안 무루업無漏業을 닦아 세간의 미워하고 사랑하는 두 가지 고를 멀리 여읜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마등가는 숙세宿世에 음녀지만 신주력神呪力으로 말미암아 그 애욕이 녹아서 법 중에서 이제 이름이 성비구니性比丘尼이니,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소다라와 함께 숙인宿因을 깨달아 억겁을 지내 온 인이 탐애로 고가 됨을 알아 한 생각에 무루선無漏善을 훈습하고 닦아 혹은 얽힌 데서 벗어나며 혹은 수기授記를 받았는데, 어찌 너는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관하고 듣는 데 머무는가?”

아난과 모든 대중이 부처님께서 깨우쳐 보이심을 듣고는 의혹이 제거되고, 실상實相을 깨달아 몸과 생각이 가볍고 편안하여 미증유함을 얻었느니라. 그리고는 거듭 다시 슬피 울면서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꿇어 앉아 합장하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위없는 대비청정하신 보왕寶王이시여, 저의 마음을 잘 열어 주시오며, 이와 같은 가지가지 인연과 방편으로 이끌어 주시고, 모든 어두운 데 빠진 이들을 꺼내어 고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록 이와 같은 법음法音을 듣고 여래장인 묘각의 밝은 마음이 시방세계에 두루하여 여래의 시방 국토에 있는 청정한 보배로 장엄한 묘각왕찰妙覺王刹을 포함하고 있는 줄 알았사오나 여래께서 다시 책망하시되, ‘많이 듣는 것은 공이 없어 닦아 익힘만 못하다’고 하시니, 제가 이제 여관에 숙박한 사람과 같아서 문득 천왕이 화옥華玉을 하사해 준 것을 받은 것 같나이다. 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사오니, 오직 필경에 여래께서는 대비를 버리지 마시고 이 회중會中에 있는 모든 어두운 자들에게 보이시어 소승을 버리고 여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인 본래 발심하셨던 길을 얻게 하소서. 유학자有學者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옛적에 반연한 바를 조복 받아 다라니陀羅尼를 얻고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게 되나이까?”

이 말을 마치고 오체를 던져 일심으로 부처님의 자비하신 말씀을 듣기 원하였다. 이때에 세존께서 회중에 있는 연각과 성문 중 보리심에 자재하지 못한 자들을 애민히 여기시며, 또 미래에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 말법末法 중생 중 보리심을 발하려는 자들을 위하여 무상승無上乘의 묘한 수행의 길을 열으사 아난과 모든 대중에게 보이시되, “너희들이 결정코 보리심을 발하여 여래의 묘한 삼마제三摩提에 고달프고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으려면, 마땅히 먼저 깨달을 마음을 내는 초심에 두 가지 결정한 뜻을 밝혀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초심初心의 두 가지 결정한 뜻이라고 하는가?

아난아, 제일의第一義는 너희들이 만일 성문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 불지견佛知見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마땅히 인지因地에서 발심한 것이 과지果地에서 깨달은 것과 같은지 다른지를 자세히 살피어 관할지니라.

아난아, 만일 인지에서 생멸심으로써 본래 닦는 인을 삼아 불승佛乘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옳지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너는 모든 기세간器世間의 만들어진 법을 비추어 살펴보아라. 모두 변멸變滅함을 따르느니라.

아난아, 너는 세간의 만들어진 법을 관하라. 어느 것이 무너지지 아니하는가? 그러나 허공이 썩어서 무너짐을 마침내 듣지는 못하였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허공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끝까지 무너져 멸함이 없느니라. 너의 몸 가운데에 굳은 모양은 땅이 되고, 젖는 것은 물이 되고, 더운 것은 불이 되고, 요동하는 것은 바람이 되나니, 이 네 가지 얽힘으로 말미암아 너의 맑고 둥근 묘각의 밝은 마음을 나누어서 보고 듣고 깨닫고 살핌이 되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갈래(五疊)로 혼탁하니라. 어떤 것이 탁함이 되는가?

아난아, 비유컨대 맑은 물은 본래부터 청결하고, 티끌과 흙과 재와 모래의 종류는 본질이 걸리는 것이니, 두 가지의 법이 본래부터 그러하니라. 성품이 서로 따르지 아니하지만 세간 사람이 저 흙과 티끌을 가져다가 맑은 물에 던지면 흙은 걸리는 성품을 잃고, 물은 청결함이 없어져서 저 형용이 흐림으로 탁이라고 하나니, 너의 다섯 겹으로 흐린 것(五濁)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 네가 허공이 시방세계에 두루함을 볼 때에 공空과 견見이 구분되지 아니하여 허공은 있으나 체가 없으며, 견은 있으나 깨침이 없어 견과 허공이 서로 얽히어 망령됨을 이루나니, 이것이 첫 번째 겁탁劫濁이니라. 네 몸이 사대로 뭉쳐 체가 되어 보고 듣고 깨치고 아는 것을 각기 막아서 걸리게 하며, 수화풍토가 돌아가며 깨달아 알게 되는데, 서로 얽히어 망을 이루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탁見濁이니라. 또 너의 마음 가운데에 생각하고(憶), 알며(識), 외우며 익혀서(誦習) 성품은 지견을 발하고, 얼굴은 육진을 나타내나니, 진을 여의면 형상이 없고 깨침을 여의면 성품이 없는데, 서로 얽히어 망을 이루나니, 이것이 세 번째 번뇌탁煩惱濁이 되느니라. 또 네가 조석으로 생멸이 머물지 아니하여 지견은 매번 세간에 머물고자 하고, 업의 운행은 매번 국토에 옮아가고자 하는데, 서로 얽히어 망을 이루나니, 이것이 네 번째 중생탁衆生濁이 되느니라. 너의 보고 듣는 것이 원래 다른 성품이 없거늘 여러 티끌들이 사이를 막고 뛰어넘어 까닭 없이 다른 것을 내느니라. 성품 중에는 서로 아나, 작용 중에는 서로 등져서 같고 다름이 표준을 잃었는데, 서로 얽히어 망을 이루나니, 이것이 다섯 번째 명탁命濁32) 이 되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것으로 멀리 여래의 상락아정에 계합契合하고자 한다면, 먼저 생사의 근본을 가리고 불생멸不生滅하는 뚜렷하고 맑은 성품을 의지하여야 하리니, 맑음으로써 그 허망한 생멸을 돌이켜 조복하여 원래 각(元覺)으로 돌리고, 원래 밝은 각(明覺)인 생멸이 없는 성품을 얻어 인지因地의 마음을 삼은 연후에야 과지果地의 닦고 증득한 것을 뚜렷이 이루리라. 탁한 물을 맑힘에 그 그릇에 담아 고요히 하여서 고요함이 지극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모래와 흙이 저절로 가라앉아 맑은 물이 나타나리니, 이것이 처음으로 객진客塵번뇌를 조복調伏하는 것이니라. 또 진흙을 다 버리고 순수한 맑은 물만 있으면, 이것은 영원히 근본 무명을 끊는 것이니라. 밝은 형상이 정명精明하고 순일하면 일체가 변현變現하더라도 번뇌가 되지 않고 다 열반의 청정한 묘한 덕에 합하리라. 둘째 뜻은 너희들이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저 보살심에 큰 용맹을 내어서 결정코 모든 유위상有爲相을 버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번뇌의 근본을 자세히 살피되, ‘이것이 예로부터 업을 발하며 생生을 불어나게 하니, 누가 지으며 누가 받는가?’라고 하라.

아난아, 네가 보리를 닦되, 만일 번뇌의 근본을 살피어 관하지 않으면 곧 허망한 근진根塵이 어느 곳에서 전도하는지를 알지 못하리니, 그곳도 오히려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항복을 받아 여래의 자리를 취하겠는가?

아난아, 너는 세간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보아라. 맺힌 곳을 보지 못하는데 어찌 풀 줄을 알겠는가? 허공이 너에게서 무너지고 찢어짐을 당했다고 함을 듣지 못하였도다. 어째서인가? 허공은 형상이 없어 맺힌 곳과 푸는 곳이 없는 까닭이니라. 곧 너의 현전의 눈·귀·코·혀와 몸과 알음의 이 여섯이 도적의 중매가 되어서 자기 집 안의 보배를 겁탈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비롯함이 없는 중생세계에 얽어매어서 태어나는 까닭에 기세간器世間에서 능히 초월하지 못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중생세계가 되느냐? 세世는 천류遷流함이 되고 계界는 방위가 되리니,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라. 동서남북과 동남·서남과 동북·서북과 상하는 계界가 되고, 과거·미래·현재는 세世가 되나니, 방위는 열이 있고 천류하는 수는 셋이 있느니라. 일체중생이 망령됨을 얽어서 서로 이루고 몸 가운데에서 천류하여 세계와 서로 간섭이 되느니라. 이 계界의 성품이 비록 열 방위이지만, 일정한 방위 중 분명한 것으로 세간에서는 다만 동서남북만 지목하고, 상하는 정한 자리가 없으며, 가운데는 정한 방위가 없느니라. 사방四方이 분명하여 세간과 서로 간섭하되, 삼사三四와 사삼四三이 완전히 굴러서 열둘이 되고, 흘러 변함이 세 번 거듭하여 일·십·백·천이 되나니, 처음과 끝을 총괄하여 육근 가운데에 각각 공덕이 일천이백이 있느니라.

아난아, 네가 다시 이 가운데에서 우열을 정하여 보아라. 눈은 보지만 뒤는 어둡고 앞은 밝으니, 전방前方은 아주 밝고, 후방後方은 아주 어둡고, 좌우 곁으로 보는 것은 삼분三分의 이二가 되니, 통틀어 말하자면 공덕이 온전하지 못하여 삼분三分으로 공을 말하건대 일분一分은 덕이 없으니, 마땅히 알아라. 안근眼根은 오직 팔백 공덕이니라. 귀는 두루 들어 시방에 유실함이 없어서 떠드는 것은 가깝고 먼 것이 있는 듯하지만 고요함은 끝이 없나니, 마땅히 알아라. 이근耳根은 일천이백 공덕이 원만하나니라. 코는 냄새를 맡되 출입식出入息을 통하여 들고 남이 있지만 중간의 교차는 궐闕하니, 비근鼻根을 증험하건대 삼분의 일이 빠지므로 마땅히 알라. 코는 오직 팔백 공덕이니라. 혀로 펴서 드날리되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를 다하나니, 말은 방위와 구분이 있으나 이치는 다함이 없으므로 마땅히 알아라. 설근舌根은 일천이백 공덕이 원만하나니라. 몸으로 닿음을 깨치되 어기고 순함을 알아 합할 때는 알고 여의면 알지 못하나니, 여의면 하나이고 합하면 둘이므로 신근身根을 증험하건대 삼분의 일이 빠지므로 마땅히 알아라. 신근은 오직 팔백 공덕이니라. 뜻은 묵묵히 시방 삼세의 일체 세간과 출세간법을 용납하여 범부와 성현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어서 그 끝을 다하므로 마땅히 알아라. 의근意根은 일천이백 공덕33) 이 원만하나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생사의 욕류欲流를 거슬러서 흐르는 근원으로 돌아가 불생멸에 이르고자 한다면, 이 여섯 가지 수용하는 육근六根이 ‘어느 것은 합하며, 어느 것은 여의며, 어느 것은 깊고, 어느 것은 얕으며, 어느 것은 원통하고, 어느 것은 원만하지 못한가를 증험해야 하리니, 만일 여기에서 원통한 뿌리를 깨쳐서 저 비롯함이 없는 망령됨에 얽힌 업의 흐름을 거슬러서 원통함을 따르면 원만치 못한 뿌리와는 날과 겁으로 서로 배倍가 되리라. 내가 이제 여섯 가지의 맑고 밝은 본래의 공덕수량이 이와 같음을 드러내었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선택하라. 그 가히 들어갈 자를 내가 마땅히 밝히어 너희들로 하여금 나아가게 하리라. 시방 여래가 저 십팔계에서 낱낱이 수행하여 무상보리를 원만히 얻으시어 그 중간에 우열이 없지만, 다만 너희들이 하열하여 그 가운데서 자재한 지혜를 원만히 얻지 못했으므로, 내가 이제 선양宣揚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다만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노니, 하나에 들어가 망령됨이 없으면 저 여섯 가지 아는 뿌리(知根) 가 일시에 청정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되, “세존이시여, 어떻게 흐름을 거슬러 깊이 한 문에 들어가 능히 육근으로 하여금 일시에 청정하게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이제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어서 이미 삼계의 중생 세간이 견見에 혹한 바를 끊었으나, 오히려 근根 가운데에 쌓여 오는 비롯함이 없는 헛된 습기를 알지 못하나니, 저 습기는 닦음으로 인하여 끊게 되는 것인데, 어찌 하물며 이 가운데에 있는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분제分齊와 수효일까 보냐? 이제 너는 또한 보아라. 현전의 육근은 하나이냐? 여럿이냐?

아난아, 만일 하나라 한다면 귀는 어찌 보지 못하며, 눈은 어찌 듣지 못하며, 머리는 어찌 밟지 못하며, 발은 어찌 말하지 못하느냐? 만일 이 육근이 결정코 여섯을 이루었다면 내가 회중에서 너희들과 미묘한 법문을 선양宣揚하는데, 너의 육근 중 어느 것이 와서 받느냐(領受)?”

아난이 말하되, “제가 귀로 듣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의 귀가 스스로 듣는다면, 몸과 입이 무슨 관계가 있어서 입으로는 뜻을 묻고, 몸은 일어나서 공경하는가?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알아라. 하나가 아니라 마침내 여섯이며, 여섯이 아니라 마침내 하나이니, 너의 근根은 원래 하나도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라. 이 근은 하나도 여섯도 아닌데, 무시이래로 전도함으로 말미암아서 빠져들고 다른 것으로 바뀌는 까닭에 뚜렷이 맑은 데서 하나와 여섯의 뜻이 생기느니라. 너의 수다원이 비록 육근이 녹아 없어짐으로 얻었으나 오히려 하나를 잊어버리지 못하였느니라. 저 태허공太虛空을 여러 그릇에 담으면 그릇의 형상이 다름을 따라 허공이 다르다고 말하고, 그릇을 치우고 허공을 보고는 허공은 하나라고 하거니와 저 태허공이 어찌하여 너를 위하여 같고 같지 아니함을 이루겠는가? 어찌 하물며 다시 ‘하나다,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겠는가? 곧 네가 요별하여 아는 여섯 가지 수용하는 뿌리도 이와 같으니라.

밝고 어두운 두 가지가 서로 형상으로 인하여 묘하게 둥근 가운데서 맑은 식에 붙어서 보는 것을 일으키나니, 견정見精이 색에 비치어 색을 맺어 뿌리를 이루므로 뿌리의 근원은 청정한 사대四大라 하고, 인하여 눈의 체體라고 하니, 포도알과 같은 뜬 뿌리(浮根)의 네 티끌(四塵)이어서 흘러서 색으로 달아나느니라.

떠들고 고요한 등 두 가지가 서로 부딪쳐서 묘하게 둥근 가운데서 맑은 것에 붙어서 듣는 것을 일으키나니, 듣는 정신이 소리에 비치어 소리를 말아서 뿌리를 이루므로 뿌리의 근원을 지목하여 청정한 지수화풍 사대라 하고, 인하여 귀의 체라고 하니, 그 형상이 마치 새로운 나무 잎사귀를 말아 놓은 것 같아서 뜬 뿌리의 네 티끌(四塵)이어서 흘러나와 소리를 따라가느니라.

통하고 막힌 등 두 가지가 서로 발해서 묘하고 둥근 가운데에 맑은 것에 붙어서 냄새를 일으키나니, 맡는 정기가 냄새에 비치어 냄새를 끌어들여 근을 이루므로 근의 근원을 청정한 사대라 제목하고, 인하여 코의 체라고 하니, 두 손톱을 드리워 놓은 것 같은 뜬 뿌리의 네 티끌이어서 흘러나와 냄새를 따라가느니라.

고요하고 변하는 두 가지가 서로 참예하여 묘하고 둥근 가운데서 맑은 것에 붙어서 맛을 일으키나니, 맛보는 정신이 맛에 비추어 맛을 쥐어짜 뿌리를 이루므로 뿌리의 근원은 청정한 사대라 하고, 인하여 혀의 체라고 하니, 초승의 반달과 같은 뜬 뿌리의 네 티끌이어서 흘러나와 맛을 따라가느니라.

여의고 합하는 두 가지가 서로 마찰해서 묘하고 뚜렷한 가운데서 맑은 것에 붙어서 깨침을 일으키나니, 깨친 정신이 닿음(觸)을 비추어 닿음을 뭉쳐 뿌리를 이루나니, 뿌리의 근원은 청정한 사대라 제목하고, 인하여 몸의 체라 하나니, 마치 장구통 같은 뜬 뿌리에 네 티끌이어서 흘러나와 촉觸을 따라가느니라.

생멸 두 가지가 서로 상속해서 묘하고 둥근 가운데서 맑은 것에 붙어 앎을 일으키나니, 아는 정신이 법에 비추어 법을 잡아 근을 이루므로 이 근의 근원을 청정한 사대라 지목하고, 인하여 뜻생각(意思)이라고 하나니, 깊은 집에서 보는 것과 같은 뜬 뿌리에 네 티끌이어서 흘러나와 법을 따라가느니라.

아난아, 이 같은 육근은 각명覺明에 밝히려는 명각明覺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 정료精了함을 잃어버리고 망령된 곳에 붙어서 빛을 발하나니라. 이런 까닭에 네가 이제 밝고 어둠을 여의면 보는 체가 없으며, 동정動靜을 여의면 원래 듣는 성질이 없으며, 통하고 막힘이 없으면 맡는 성품이 나지 아니하며, 변하고 고요함이 아니면 맛이 나올 수가 없으며, 여의고 합함이 아니면 닿음을 깨달음이 없으며, 멸하고 남이 없으면 요별하여 아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네가 다만 동정과, 합하고 여의는 것과, 고요하고 변하는 것과, 통하고 막히는 것과, 나고 멸하는 것 이와 같은 열두 가지 모든 유위상有爲相을 따르지 아니하고 어느 한 뿌리를 마음대로 빼내어 붙은 것을 벗기고 안으로 조복을 받아서 원래로 참된 곳으로 돌아가 본래의 밝고 빛남을 발하리니, 빛난 성품이 밝아지면 모든 나머지 다섯 군데(五根)의 붙음이 마땅히 벗어나리라. 앞 티끌에서 일어난 지견知見을 말미암지 아니하여 밝음이 근을 따르지 아니하고, 근에 의지하여 발명하면 이로 인하여 육근이 서로 작용하게 되느니라.

아난아, 너는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 회중의 아나율阿那律은 눈이 없지만 보며, 반난타용은 귀가 없지만 들으며, 긍가신녀殑伽神女는 코가 아니고도 향기를 맡으며, 교범바제는 다른 혀로 맛을 알며, 순약다신은 몸이 없지만 닿음을 깨닫나니, 여래의 광명에 비치어 잠깐 나타나나 이미 바람으로 바탕이 되었으므로 그 몸이 원래 없고 모든 멸진정滅盡定에서 고요함을 얻은 성문으로서 이 회중의 마하가섭摩訶迦葉 같은 이는 오래전에 뜻 뿌리(意根)가 멸하였지만 뚜렷이 밝아 분명히 아는 것을 마음과 생각으로 인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난아, 네가 이제 모든 근根을 완전히 뽑아 버리고 안으로 환하게 광명을 발하면, 이와 같은 뜬 티끌과 기세간器世間의 모든 변화상이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하여 생각을 따라서 위없는 지각知覺을 이루게 되리라.

아난아, 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을 눈에 모았다가 만일 급하게 눈을 감으면 어두운 것이 나타나 육근이 어두워져서 머리와 발이 같겠지만, 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따라 두루 만지면 스스로는 비록 보지 못하지만 머리와 발을 낱낱이 분별하여 아느니라. 보는 것을 반연함은 밝은 것으로 인하나 어두운 것을 이루면 보지 못하거니와 밝지 못하나 깨달음이 스스로 생기면 곧 모든 어두운 것이 오랫동안 어둡게 하지는 못하리니, 근진이 이미 녹았다면 어찌 각명覺明이 둥글고 묘한 것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아서 ‘인지의 깨친 마음으로 상주과常主果를 구하고자 한다면 과위果位의 명목名目과 서로 응하여야 한다’고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과위 가운데 보리와 열반과 진여와 불성과 암마라식과 공여래장과 대원경지의 이 일곱 가지가 이름은 비록 다르나 청정 원만하며 체성이 견고하여 금강金剛이 항상 머물러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으니, 만일 보고 듣는 것이 밝고 어두운 것과, 움직이고 고요한 것과, 통하고 막힘을 여의면 필경에 체가 없는 것이 마치 생각하는 마음이 앞 티끌을 여의면 본래 없는 것과 같으니, 어찌 장차 필경에 단멸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인을 삼아 여래의 칠상주과七常主果를 얻고자 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명암明暗을 여의고 견見이 필경에 공하다면, 마치 앞 티끌이 없어서 생각하는 자성이 없어진 것과 같겠나이다. 진퇴순환進退循環하여 미세하게 추구하여 보아도 본래 저의 마음과 저의 심소心所가 없으니, 무엇으로 인을 세워 위없는 각을 구하겠나이까? 여래께서 먼저 말씀하시되, ‘정묘히 맑음이 뚜렷하고 떳떳함이라’고 하시더니, 진실한 말을 어기어 마침내 희론을 이루시니, 어찌 여래께서 ‘진실한 말씀을 하는 분이라’고 하오리까? 오직 큰 자비를 베푸사 저의 몽매함을 열어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다문多聞만 배우고 모든 번뇌를 다하지 못하여 마음 가운데 전도한 인因을 알면서도 참으로 전도함이 현전하는데도 진실로 알지 못하나니, 네가 성심으로 오히려 믿어 조복 받지 못할까 염려하여, 내가 이제 시험하여 티끌 세속의 모든 일을 가지고 마땅히 너의 의심을 없애리라.”

이때에 여래께서 라후라羅睺羅에게 일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어 말씀하시되 “네가 이제 듣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말하되, “저희들이 듣나이다.”

종이 쉬어 소리가 없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어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제 듣느냐?”

아난과 대중이 말하되 “듣지 못하나이다.”

라후라가 또 한 번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시되, “너희가 듣느냐?”

아난과 대중이 또 말하되, “듣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시되, “네가 어찌 듣는다고 하며, 어찌 듣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종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가 듣고, 소리가 녹아서 음향이 끊어지면 곧 듣지 못하나이다.”

여래께서 또 라후라에게 일러서 종을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어 말씀하시되, “소리가 나느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말하되, “소리가 나나이다.”

조금 있다가 소리가 사라지거늘 부처님께서 또 물으시되, “너희들은 이제 소리를 듣느냐?”

아난과 대중이 대답하되, “소리가 없나이다.”

조금 있다가 라후라가 다시 와서 종을 치니 부처님께서 또 물으시되, “너희들은 이제 소리가 나느냐?”

아난과 대중이 말하되 “소리가 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시되, “어찌 소리가 있으며, 어찌 소리가 없느냐?”

아난과 대중이 사뢰어 말하되, “종을 치면 소리가 있고, 종을 친 지 오래되면 소리가 사라져 음향이 쌍으로 끊어지면 곧 소리가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어찌하여 말이 이랬다저랬다 하는가?”

대중과 아난이 함께 부처님께 여쭙되, “저희들이 어찌하여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들에게 ‘듣느냐?’고 물었거늘 너희들이 곧 듣는다 말하고, 또 너희들에게 ‘소리가 나느냐?’고 물었거늘 너희들이 곧 ‘소리가 난다’고 말하니, 오직 듣는 것과 소리 나는 것에 대답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은데, 어찌 이것이 교란하지 않은 것이냐?

아난아, 네가 소리가 없어지고 메아리가 없어진 것을 들음이 없다고 하니, 만일 진실로 들음이 없다면 듣는 성품이 이미 멸하여 고목과 같으리니, 종을 다시 친들 네가 어찌 소리가 있고 없음을 알겠는가? 스스로 이 소리의 티끌이 있다 없다 할지언정 어찌 저 듣는 성품이 있다 없다 하겠는가? 듣는 것이 진실로 없다면 무엇이 없는 것을 알겠는가?

이런 까닭에 아난아, 소리는 듣는 가운데에서 스스로 생멸이 있을지언정 너의 들음이 소리에서 나고 소리에서 멸하여도 너의 듣는 성품으로 있음이 되고 없음이 되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오히려 전도하여 소리를 의혹하여 들음을 삼나니, 어찌하여 괴이하게 혼미하여 항상하는 듣는 성품을 단멸한다고 여기느냐? 마침내 마땅히 모든 움직이고 고요한 것과 닫아 막히는 것과 열어 통하는 것을 여의고는 듣는 성품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지니라. 마치 저 곤히 자는 사람이 평상에서 잠이 깊어 갈 때, 그 집의 사람들이 다듬이질을 하거나 쌀을 찧으면 그 사람이 꿈속에서 쌀을 찧고 다듬이질 하는 소리를 듣고는 다른 소리로 생각하여 혹 북을 친다거나 혹 종을 친다고 여겨 곧 저 꿈속에서 스스로 그 종을 괴히 여겨 나무와 돌의 메아리로 삼다가 홀연히 잠을 깨어서는 분명히 다듬이 소리로 알고는 곧 집안사람들에게 고하되, ‘내가 정히 꿈속에서 다듬이와 쌀 찧는 소리들에 혹하여 북소리로 여겼노라’고 하리라.

아난아, 이 사람이 몽중에서 어찌 고요하고 시끄럽고, 열고 닫고, 통하고 막힘을 기억했겠느냐마는 그 형상은 비록 잠을 자나 듣는 성품은 어둡지 아니하니라. 비록 네가 몸이 죽어서 목숨이 바뀌어 떨어져 나간들 이 성품이야 어찌 없어지겠느냐? 이 모든 중생이 끝없는 옛적부터 모든 색과 소리를 따르면서 허망하게 유전하고, 성품이 청정하여 묘하고 항상한 줄을 깨닫지 못하여 항상한 것을 따르지 않고 모든 생멸을 좇아다니므로 이로 인하여 세세생생에 물들어 유전하나니, 만일 생멸을 여의고 진상眞常을 지키면 항상한 광명이 현전하여 근根·진塵·식識·심心이 즉시에 녹아지리라. 생각은 티끌이 되고, 식정識情은 때가 되는 것이니, 이 둘을 함께 멀리 여의면 곧 너의 법안法眼이 청명하리니, 어찌 무상지각無上知覺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수능엄경 다섯째 권

34)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비록 제이의문第二義門을 설하시나, 세간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보니 만일 그 맺힌 근원을 보지 못하면 저는 이 사람은 마침내 풀지 못할 것이라 믿나이다. 세존이시여, 저와 회중의 유학有學인 성문도 또한 그러하여 무시제無始際로부터 모든 무명과 함께 멸하고 함께 나나니, 비록 이와 같은 많이 들은(多聞) 선근을 얻어 출가하였다 하나 하루거리 학질과 같사오니, 오직 원컨대 크신 자비로 무명과 생사에 빠진 중생을 불쌍히 여기소서. 금일의 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맺힌 것이며, 어떻게 풀어야 하오리까? 또한 미래의 고난 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를 면하고 삼유三有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이 말을 마치고 널리 대중과 더불어 오체를 땅에 던져 지성으로 부처님의 위없는 도를 열어 보이시기를 기다렸다. 이때에 세존께서 아난과 회중의 모든 유학을 불쌍히 여기시고, 또한 미래의 일체중생을 위하여 출세할 인연을 지으며, 장래의 눈을 지으려 하사 염부단의 자금강 같은 손으로 아난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니, 즉시에 시방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그 세계에 계시는 미진 같은 여래께서 각각 보배 광명을 그 이마로부터 내시며, 그 광명이 동시에 저 세계로부터 기타림으로 와서 여래의 이마에 대시니 모든 대중들이 미증유를 얻었다.

이때에 아난과 모든 대중이 함께 들으니 시방의 미진수 여래께서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아난에게 고하여 말씀하시되, “착하도다. 아난아, 네가 구생혹俱生惑 무명이 너로 하여금 유전케 하는 생사의 맺힌 뿌리를 알고자 한다면 오직 너의 육근일 뿐 다시 다른 물건이 아니며, 다시 위없는 보리가 너로 하여금 속히 증득케 하여 안락安樂·해탈解脫·적정寂靜·묘상妙常을 얻고자 한다면 또한 너의 육근일 뿐 다시 다른 물건이 아니니라.”라고 하시었다.

아난이 비록 이와 같은 법음을 들었으나 마음이 오히려 밝지 못하여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어찌 저로 하여금 생사에 윤회케 하며, 안락하여 묘하게 떳떳한 것이 모두 육근이며 다시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근根과 진塵이 같은 근원이며, 속박과 해탈解脫이 둘이 아니며, 인식하는 성품이 허망하여 마치 허공의 꽃과 같으니라.

아난아, 진塵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을 발하며, 육근으로 인하여 형상이 있나니, 형상과 보는 것이 성품이 없어 갈대가 서로 의지함과 같으니, 이런 까닭에 네가 정지견正知見에 망령되이 앎을 세우면 곧 무명의 근본이요, 지견知見에 망견妄見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의 번뇌가 없는 참되고 맑은 것이니, 어찌 이 가운데에 다른 물건을 용납하겠는가?”

이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고자 하시어 게송을 설하셨다.

“진성에는 유위有爲가 공하건만
인연으로 나는 고로 환과 같으니,
함이 없으면 기멸起滅이 없어서
진실치 못한 것이 허공 꽃과 같으니라.
망령된 것을 말하여서 모든 참된 것을 드러내면
진眞과 망妄이 모두 망령된 것이니
오히려 진眞과 진眞 아닌 것도 아니거니
어찌 견見과 소견所見이 있으리오.
중간에는 실다운 성품이 없는 까닭에
갈대를 사귀어 놓은 것 같으니라.
맺음과 풀음이 인한 바가 같아서
성인과 범부가 두 길이 없으니
네가 사귀는 가운데 성품을 보라.
공空과 유有가 둘이 다 아니니라.
미하여 어두우면 곧 무명이요
발명하면 문득 해탈이니라.
맺힌 것을 푸는 것은 차례를 인함이니
여섯 맺힘을 풀면 하나도 또한 없으리니
육근에서 골라서 원통을 가리면
성인 무리에 들어가 정각을 이루리라.
타나陀那의 미세한 식識은
습기가 폭포의 흐름을 이루나니
진眞과 비진非眞을 미할까 두려워하여
내가 항상 열어 연설하지 아니하노라.
자기 마음에서 자기 마음을 취하면
환幻(요술) 아닌 것이 환법幻法을 이루나니
취하지 아니하면 환 아닌 것도 없으리니
환 아닌 것도 오히려 나지 않는데
환법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이름이 묘련화妙蓮華며
금강왕 보각이며
여환삼마제如幻三摩提라 하니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무학에 뛰어 오르리라.
이 아비달마阿毘達磨는
시방 바가범薄伽梵의 한길 열반문이니라.”

이에 아난과 모든 대중이 여래의 위없는 자비로운 가르침에 기야祇夜와 가타伽陀가 섞이어 정밀하게 빛나 묘한 이치가 맑게 사무침을 듣고는 마음의 눈이 밝게 열리어 미증유를 찬탄하면서 아난이 부처님께 고하되, “제가 이제 부처님의 막힘이 없는 큰 자비로 성품이 청정하고 묘하고 항상한 진실한 법의 글귀를 들었사오나 마음에 오히려 여섯을 풀면 하나마저도 없어지는 차례를 알지 못하오니, 오직 큰 자비를 드리우사 거듭 이 회중會衆과 장래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법음法音을 베풀어 때를 씻게 하소서.”

그때 여래께서 사자좌에서 열반승涅槃僧35) 을 단정히 하시고, 승가리僧伽梨를 여미시고는 칠보 책상을 끌어당기어 겁바라천劫波羅天이 바친 수건을 취하시어 대중 앞에서 한 매듭을 맺으시어 아난에게 보이시면서 물으시되, “이것이 무엇이냐?”

아난과 대중이 함께 사뢰되, “그것은 매듭입니다.”

또 한 매듭을 맺으시고 거듭 물으시되, “이것이 무엇이냐?”

아난과 대중이 사뢰어 말하되, “그것도 또한 매듭입니다.”

이와 같이 여섯 매듭을 맺으시고 낱낱이 물으시되, “이것의 이름은 무엇이냐?”라고 하시니, 아난과 대중이 대답하되 “그것의 이름은 매듭입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내가 처음에 수건을 맺었거늘 네가 매듭이라고 하였다. 이 수건은 실로 한 가닥인데, 제이와 제삼에 어찌하여 너희 무리가 매듭이라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고하되, “세존이시여, 이 보배 수건은 짜서 수건을 이룬 것이니, 비록 본래 한 체(一體)나 저의 생각에는 여래께서 한 번 맺으시면 한 매듭이라 하옵고, 백 번 맺으시면 백 매듭이 될 것이온데, 어찌 하물며 이 수건이 다만 여섯 매듭만 있사오리까? 마침내 일곱 매듭에만 이를 것도 아니며 또한 다섯에만 그칠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다만 처음 매듭만 허락하시고 제이와 제삼을 매듭이라고 하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이 보배 수건을 네가 원래 한 가닥임을 알았거늘 내가 여섯 번 맬 때에 여섯 매듭이라 한 것이니, 너는 자세히 관찰하라. 이 수건의 체는 본래 하나이지만 맺음으로 인하여 다름이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느냐? 처음 맺은 것은 첫 매듭이고, 이와 같이 여섯 매듭이 되나니, 내가 이제 여섯 번째 매듭을 가지고 첫 매듭이라고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섯 매듭이 있으면 이것을 제 여섯 매듭이라 할 것이니, 마침내 첫 매듭은 아니옵니다. 비록 제가 여러 생을 지내며 밝게 가리더라도 어떻게 이 여섯 매듭의 이름을 어지럽게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으니라. 여섯 매듭이 같지 않지만 본래의 원인을 추구해 보면 한 수건으로 지은 것이지만 그 매듭으로 하여금 섞이게 함은 마침내 이루지 못하리니, 곧 너의 육근도 이와 같아서 필경 동일한 가운데서 다름을 내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네가 반드시 여섯 매듭을 이루지 못함을 의심하여 하나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얻겠느냐?”

아난이 말하되, “이 매듭이 만일 남아 있다면 시비가 벌같이 일어나 스스로 이 매듭은 저것이 아니며, 저 매듭은 이것이 아니라 하리니, 여래께서 금일에 모두 풀어서 매듭이 없으면 오히려 하나도 이루지 못할 것인데, 여섯을 어찌 이루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여섯을 풀면 하나마저도 없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라. 네가 무시로 심성이 미치고 어지러워서 지견知見이 망령되이 발하여 쉬지 아니함에 견見이 피로해져서 티끌을 발함이 마치 눈동자를 피로하게 하여 미친 꽃이 맑고 정미롭고 밝은 데서 까닭 없이 어지러이 일어나는 것처럼 일체 세간의 산하대지와 생사열반이 다 미치고 피로하여 생긴 전도된 헛꽃의 모습이니라.”

아난이 말하되, “이 피로하여진 것이 매듭과 같다면 어떻게 풀어야 하겠나이까?”

여래께서 손으로 맺은 수건을 가지고 그 왼편을 당기시며 아난에게 물으시되, “이와 같이 하면 풀어지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다시 손으로 오른쪽을 끌어당기시고 또 아난에게 물으시되, “이와 같이 하면 풀리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내가 이제 손으로 좌우로 당기다가 마침내 풀지 못하니, 네가 방편을 내어라. 어떻게 풀겠는가?”

아난이 사뢰어 말하되, “마땅히 맺힌 중심을 풀면 곧 풀리겠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되, “그와 같고 그와 같으니라. 만일 매듭을 풀고자 한다면 맺은 중심에서 풀어야 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불법이 인연으로부터 난다고 한 것은 세간의 사대로 화합한 거친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니라. 여래는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밝히어 그 본래의 원인이 반연한 바를 따라서 나는 것을 알며, 이와 같이 항하사 세계 안의 한 방울의 비라도 또한 그 수효를 알고, 현전에 있는 가지가지 소나무는 곧고, 가시는 굽으며, 따오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 것을 다 원유元由를 아나니라.

이런 까닭에 아난아, 너의 마음을 따라 육근을 선택하여 보아라. 뿌리의 맺힌 곳이 만일 풀어지면 티끌은 저절로 사라질 것인데, 모든 허망한 것이 사라지면 어찌하여 참되지 않겠느냐?

아난아,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라. 이 겁파라수건(劫波羅巾)의 여섯 매듭이 현전하니 동시에 매듭을 풀려고 하면 일시에 되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매듭은 본래 차례로 맺어 생긴 것이니 금일에도 마땅히 차례로 풀어야 하나이다. 여섯 매듭은 같은 체이나 매듭은 동시로 된 것이 아니니, 곧 매듭을 풀 때에 어떻게 한꺼번에 풀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육근을 풀어 버리는 것도 또한 그러하니라. 이 뿌리에 맺힌 것이 처음에 풀리면 먼저 나라는 것이 공함(人空)을 얻고, 빈 성품(空性)이 뚜렷이 밝아 법을 해탈(法解脫)하게 되나니, 법을 해탈하여 마치고서 모두 공하였다는 것(俱空)까지도 나지 않아야 ‘보살이 삼마지三摩地로부터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고 하느니라.”

아난과 모든 대중이 부처님의 개시開示함을 입고, 혜각慧覺이 원통圓通하여 의혹이 없어지고는 일시에 합장하여 두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저희들이 금일에 몸과 마음이 밝아 걸림이 없음을 얻었나이다. 비록 다시 하나와 여섯이 없는 뜻을 깨쳤으나 아직도 근본을 원통하지 못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여러 곳으로 헤매면서 여러 겁을 외롭게 지내다가 무슨 마음과 무슨 생각으로 부처님의 천륜에 참여하였나이까? 마치 젖 먹는 아이가 홀연히 자모慈母를 만난 것과 같나이다. 만일 다시 이 기회로 인하여 도를 이루면 얻은바 은밀한 말이 도리어 본래 깨침과 같겠사오나 지금은 곧 듣지 못함과 차별이 없으니, 오직 큰 자비를 드리우사 저희들에게 비밀함을 베푸시어 여래의 최후의 가르침을 성취하게 하소서.”

이 말을 마치고 오체를 땅에 던지고 물러가 은밀한 기틀을 간직하고는 부처님의 그윽한 가르치심을 바라니, 이때에 세존께서 널리 대중 가운데의 모든 큰 보살과 모든 무루대아라한無漏大阿羅漢에게 고하시되, “너희들 보살과 아라한이 나의 법 가운데 나서 무학無學을 이루었나니, 내가 이제 너에게 묻노라. 최초에 발심하여 십팔계十八界를 깨달을 적에 어느 것이 원통이 되며, 어느 방편으로 삼마지三摩地에 들어갔느냐?”

교진나憍陳那 등 다섯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고하되, “제가 녹야원鹿野苑과 계원雞園에서 여래께서 최초에 성도하심을 뵈옵고, 부처님의 음성에서 사제법四諦法을 밝게 깨쳤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물으시거늘, 제가 처음으로 ‘알았나이다’라고 하오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되, ‘아야다阿若多’라고 하시므로 묘한 음성이 은밀하고 뚜렷하사 저는 음성으로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음성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우바리사타優波尼沙陀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고하되, “저도 또한 부처님께서 최초에 성도하심을 뵈옵고 부정한 상(不淨相)을 관하다가 크게 싫어하여 여일 생각을 내고 모든 색의 성질을 깨치니,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백골과 작은 티끌까지 필경에는 허공으로 돌아가고 공과 색이 둘이 없어져서 무학도無學道를 이루었나이다.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사 ‘니사타尼沙陀’라고 하시니, 색과 티끌이 이미 다하고 묘한 빛이 은밀하고 둥글거늘 저는 색상으로 아라한을 얻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색인色因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향엄동자香嚴童子가 사뢰어 말하되, “여래께서 저를 가르치시기를 ‘자세히 모든 유위상有爲相을 관하라’고 하시거늘, 제가 부처님을 하직하고 조용한 방에 편히 앉아 있다가 모든 비구가 침수향沈水香을 불태우는 것을 보니 향기가 고요히 코에 들어오더이다. 제가 이 기운은 나무도 아니며 허공도 아니며 연기도 아니며 불도 아니어서 가도 닿는 곳이 없고 와도 좇은 곳이 없음을 관하고 뜻이 공하여 무루無漏를 발명하였나이다.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되 ‘향엄香嚴’이라고 하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향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약왕藥王과 약상藥上 두 법왕자法王子와 모임 가운데 있던 오백의 범천梵天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무시 겁으로 세상의 좋은 의원이 되어 입으로 사바세계의 풀과 나무와 쇠와 돌을 맛보아 팔만사천 가지에 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쓰고 시고 짜고 달고 매운 등의 맛을 다 알며 아울러 모든 화합된 맛과 본래의 맛과 변한 맛과 차고 덥고 독이 있고 독이 없는 것을 모두 능히 두루 알았사온데, 여래를 섬기면서 맛의 성품은 공한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에 즉卽한 것도 아니며, 몸과 마음을 여읜 것도 아님을 분명히 알고 맛의 원인을 분별하다가 이로부터 깨달았나이다. 여래께서 저의 형제를 인가하시어 ‘약왕보살藥王菩薩과 약상보살藥上菩薩’의 이름을 주시어 지금 이 모임 가운데 법왕자法王子가 되었으며 맛으로 인하여 깨달음이 밝아 지위가 보살에 오르게 되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맛의 원인을 닦는 것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발타바라跋陀婆羅와 그의 동반인 열여섯 선배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고 사뢰어 말하되, “저희들이 먼저 위음왕불威音王佛께 법을 듣고 출가하여 스님들이 목욕할 때에 차례를 따라 욕실에 들어갔다가 홀연히 물의 인을 깨치니, 티끌을 씻는 것도 아니며, 체體를 씻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서 편안하여 만법은 다 공하여서 있는 바가 없음을 얻었사오나 습기習氣가 없어지지 아니하다가 오늘에 이르러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이제 무학無學을 얻었나이다. 이에 부처님께서 저를 ‘발타바라跋陀婆羅’라고 하시니, 묘하게 닿음이 선명하여 불자주佛子住가 되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닿는 인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자금광비구니紫金光比丘尼 등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지난 겁에 이 세계에 있을 적에 그때에 부처님은 일월등日月登이셨으니, 제가 법을 듣고 배웠사온데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후에 사리에 공양하고 등불을 켜서 밝게 하였으며, 좋은 금으로 부처님의 형상에 도금塗金을 하였나이다. 이로부터 세세생생 몸에 항상 자금광취紫金光聚가 원만하였사오며, 이 자금광비구니들은 곧 저의 권속으로 동시에 발심하였나이다. 저는 세간의 육진六塵이 변하여 무너짐을 관하고 오직 공적空寂으로 멸진정滅盡定을 닦아 백천 겁을 지내도 손가락 튕기는 시간과 같아서 제가 공한 법으로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제가 증득한 바로는 법의 인因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아나율타阿那律陀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저는 잠자기를 즐거워하였사온데 여래께서 저를 꾸짖으시기를, ‘애닲고 애닲다. 어찌 잠만 자느냐? 고동과 조개류와 같구나. 한번 잠에 천 년이 지나도 부처님 명자를 듣지 못함이라’고 하시거늘, 제가 울면서 스스로 자책하여 칠 일을 졸지 아니하여 두 눈을 잃었나이다. 세존께서 저에게 보는 것을 즐거워하여 만법에 보는 성품을 밝게 비추는 금강삼매金剛三昧를 보이시거늘, 제가 눈을 뜨지 않고도 시방세계를 보되 손바닥 위의 열매를 보듯이 하니, 여래께서 저를 인가하시되 ‘아라한을 이루었다’고 하셨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보는 것을 돌이켜 근원을 따르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고 부처님께 말하되, “저는 외워 지니질 못하여 많이 듣는 성품이 없었사온데 최초에 부처님을 만나서 법을 듣고 출가하여 여래의 한 구절의 가타伽陀를 기억하여 지니었사오나 백 일 동안 앞의 말을 외우면 뒤의 말을 잊어버리고, 뒤의 말을 외우면 앞의 말을 잊어버렸나이다. 부처님께서 저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로 하여금 안거安居하면서 들고 나는 숨을 고르게 하라 하시거늘, 제가 그때에 숨을 관하여 미세하게 나고 머물고 달라지고 없어지는 모든 행(諸行, 변천하는 모든 법)이 찰나임을 궁구하여 다하고는 마음이 환해져서 크게 걸림이 없음을 얻었으며 내지 번뇌가 다하여 아라한을 이루고, 부처님의 자리 아래 머무르며 무학無學이 되었다고 인가하시었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증득한 바로는 숨을 돌려 공을 따르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교범바제憍梵鉢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구업口業이 있으니, 과거에 한 사문이 부처님의 신주를 외우는 것을 보고는 마치 소가 여물을 먹는 것과 같다고 하였더니, 도인을 비방한 업보로 제가 세세생생에 소가 여물을 먹는 것과 같은 입을 놀리는 병이 있었나이다. 여래께서 저에게 한 맛의 청정한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보이시거늘 제가 마음을 없애고 삼매에 들어가 맛이 있는 것은 체가 아니며 물건이 아님을 관하여 세간의 모든 번뇌에서 뛰어나 안으로는 몸과 마음을 해탈하고, 밖으로는 세계가 공하여 멀리 삼유三有를 여의는 것이 새장에서 나온 새와 같아서 법안法眼이 청정하여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제가 증득한 바로는 맛을 아는 것을 돌이키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필능가바차畢陵伽婆蹉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여래께서 말씀하신 세간이 무상하여 즐거워할 것이 없음을 듣고는 성중에서 걸식할 때 법문을 생각하다가 길 가운데서 독한 가시에 찔리어 발이 상하여 온몸이 아팠나이다. 제가 생각하되, ‘앎이 있으므로 이 깊이 아픈 것을 느끼는 것이다 하여, 이 아픈 것을 깨달은 자는 누구인가?’라고 생각하다가 홀연히 ‘청정한 마음에는 아프고 아픔을 깨치는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나이다. 제가 또 생각하니, ‘어찌 한 몸에 깨닫는 것이 둘이 있겠는가?’라고 하여 생각을 거두어서 오래지 아니하여 몸과 마음이 홀연히 공해지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서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제가 증득한 바로는 깨침이 순일하여 몸과 닿음을 다 잊어버리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에 걸림이 없어져서 생을 받음이 항하수와 같음을 생각해 보니, 처음에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곧 공적空寂함을 깨쳤나이다. 이와 같이 시방세계가 공하며, 또 중생으로 하여금 공한 성품을 증득하게 하였는데, 여래께서 성각진공性覺眞空을 발명하심을 입고는 공한 성품이 뚜렷이 밝아 아라한을 이루고, 문득 여래의 보명공해寶明公海에 들어가 부처님의 지견知見과 같사오며, 제가 증득한 바로는 모든 상이 아님에 들어가고, 아님과 아닌 바가 다하여 법을 돌이켜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사리불舍利弗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오랜 겁으로부터 마음을 봄이 청정하여 이와 같이 생을 받는 것이 항하수와 같으니, 세간과 출세간에 가지가지 변화함을 한번 보면 곧 통달하여 무장애無障碍를 얻었나이다. 제가 길을 가던 도중에 가섭파迦葉波 형제가 함께 다니면서 인연법을 설함을 만나 마음이 끝없음을 깨치어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깨치니, 뚜렷이 밝아 크게 두려움이 없음을 얻어 아라한을 이루었으며, 제가 증득한 바로는 마음이 광명을 발하여 광명이 지극한 지견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이미 항하사여래의 법왕자가 되었으니, 시방 여래께서 보현행을 닦으라 하시는 까닭에 제가 마음으로 들음을 써서 중생의 지견을 분별하여 타방他方의 항사세계 밖에 한 중생이라도 보현의 행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제가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코끼리를 타고 백천으로 분신하여 그곳에 이르오니, 저의 본래의 인행因行을 말씀드린다면 마음으로 들음을 발명하여 자재하게 분별하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손타라난타孫陀羅難陀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세존께서 ‘코끝의 흰 것을 관하라’고 하시거늘, 제가 자세히 관하여 삼칠일을 지나서 코 가운데 기운을 보니 출입하는 것이 연기와 같아서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 세계가 뚜렷이 통하여 두루 비고 깨끗한 것이 마치 유리와 같아서 연기의 형상이 점점 녹아지고 비식鼻識이 결백함을 이루었나이다. 마음이 열리어 번뇌가 다하여 모든 출입식出入息이 광명으로 화하여 시방세계에 비추어 아라한을 얻으니, 제가 호흡식呼吸息을 녹이어 뚜렷이 밝아 번뇌가 멸하는 것을 제일로 삼았나이다.”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가 사뢰어 말하되, “저는 오랜 겁으로부터 변재辯才가 걸림이 없어 고苦가 공함을 설하되 깊이 실상을 통달하니, 이와 같이 항하사여래의 비밀법문을 제가 대중 가운데서 미묘하게 열어 보이되 두려워함이 없었나이다. 세존께서 저를 인가하시되, ‘설법이 제일이라’고 하시니, 제가 법음法音으로서 마군을 항복 받아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우바리優波離가 말하되, “제가 친히 부처님을 따라서 성을 넘어 출가하여 여래께서 육 년 동안 고행을 수행하심을 보았으며, 여래께서 모든 마군을 항복 받는 것을 친히 보았으며, 모든 외도를 제어하시며, 세간의 탐욕과 모든 번뇌를 해탈하심을 뵈었나이다. 부처님의 교계敎戒를 받아 이와 같이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의 미세한 행과 성업性業과 차업遮業을 다 청정히 하여 신심이 적멸하여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저는 몸을 단속하여 자재함을 얻고, 마음을 단속하여 통달함을 얻은 연후에야 몸과 마음이 일체를 통하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대목건련大目犍連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제가 길에서 걸식을 하다가 우루빈라와 가야와 나제와 삼가섭파가 여래의 인연 깊은 뜻을 설함을 만나서 제가 마음을 발하여 크게 통달함을 얻었나이다. 여래께서 저에게 은혜를 주시니, 가사가 몸에 입히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졌나이다. 제가 시방에 노닐면서 걸림이 없음을 얻었으며, 신통이 밝게 발하여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부처님과 시방의 여래께서 ‘저의 신력神力이 뚜렷이 밝아 청정하며 자재하여 두려움이 없다’고 하시나이다. 제가 맑은 식識을 돌이켜 마음의 광명이 발하는 것이 탁한 물이 맑아짐에 맑게 비춤을 이룬 것 같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오추슬마烏芻瑟摩가 말하되, “저는 구원겁전久遠劫前에 탐욕이 많았는데, 공왕여래空王如來의 법을 듣사오니 ‘음욕이 많은 자는 맹렬한 불을 이루니라’라고 하시어 저를 가르치시기를, ‘백 가지 뼈마디에 모든 차고 더운 기운을 관하라’고 하시거늘, 신기로운 광명이 안으로 열리어 음심淫心을 변화하여 지혜의 불을 이루었나이다. 모든 부처님이 저를 ‘화두火頭’라고 하시니, 제가 화광삼매火光三昧를 쓰므로 아라한을 이루었나이다. 제가 몸과 마음에 따뜻한 것이 걸림이 없이 통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고 화광삼매를 얻어 무상각無上覺에 올랐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지지보살持地菩薩이 말하되, “제가 보광여래普光如來의 처소에서 비구가 되어 일체 요긴한 길과 나루의 어구와 길이 험악한 곳을 다 길을 닦으며, 다리도 놓고 혹 모래와 흙도 짊어져서 이와 같이 애를 써서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지나가시도록 하였으며, 혹 물건을 져다 주되 높은 삯을 취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런데 비사부불毘舍浮佛 때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제가 짐 지는 사람이 되어 원근遠近을 묻지 않고 오직 돈 일 전만을 받았으며, 혹 손수레가 진흙에 빠지면 제가 그 바퀴를 밀어 곤란에서 구출하였나이다. 그때에 국왕이 부처님을 맞이하여 재齋를 설하거늘, 제가 그때에 길을 평탄히 닦고 부처님을 기다렸나이다. 비사부여래毘舍浮如來께서 저의 이마를 만져 말씀하시되, ‘마땅히 마음을 평탄히 하면 세계 일체가 다 평등하니라’라고 하시거늘, 제가 곧 마음이 열려 몸의 미진微塵이 세계에 있는 미진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보았으며, 미진의 자성이 서로 저촉되지 아니하며, 내지 도병刀兵이라도 또한 저촉한 바가 없었으며, 저는 무생인無生忍을 깨달아 아라한을 이루고 마음을 돌이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갔나이다. 제가 자세히 몸과 계界 두 티끌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으며, 본래 여래장으로서 허망하게 진盡이 생긴 줄을 관하여 티끌이 녹고 지혜가 뚜렷하여 무상도無上道를 이루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월광동자月光童子가 사뢰어 말하되, “항사겁 전에 수천의 부처님께서 모든 보살을 가르치사 수관水觀을 닦아 삼마지에 들어가게 하되, 몸 안에 있는 물의 성품이 서로 침탈侵奪함이 없음을 관하니, 처음에는 가래침으로부터 진액津液과 정혈精血과 대소변리大小便利까지도 다 궁구하니 몸 안에 돌아다니는 물의 성품이 동일하여 몸 안의 물이나 세계의 모든 향수해香水海바다나 모두가 청정하여 차별이 없음을 관했나이다. 제가 처음에 이 물을 관함에 내외內外가 온전히 물임을 보았으나 몸은 없어지지 아니하였으며, 집 가운데서 물을 관하니 저의 몸까지 전체가 화하여 청정한 물이 되었나이다. 저의 제자가 창틈으로 엿보니 집 안에 맑은 물이 가득하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거늘 자갈돌 하나를 취하여 물 안에 던져 물에 소리를 내게 하고 돌아보며 가거늘, 제가 정定에서 나온 뒤에 가슴이 아팠으므로 생각하기를, ‘이제 아라한 도를 얻어 일체의 병을 다 여의었거늘, 어찌하여 금일에 가슴이 홀연히 아픈가?’라고 하였나이다. 그때에 동자가 와서 자신이 돌을 던진 일을 모두 말하거늘, 제가 곧 말하되, ‘네가 다시 물을 보거든 곧 문을 열고 이 물속에 들어와 돌을 건져라’라고 하니, 동자가 그와 같이 돌을 집어내어 버림에 저의 몸이 옛적과 같았나이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부처님을 만나 산해자재통왕여래山海自在通王如來께 이르러서 바야흐로 몸을 얻고 시방세계 향수해바다와 더불어 성품이 진공眞空에 합하여 둘도 없고 다름이 없어 이제 동진童眞이라는 이름을 얻었나이다. 저는 물의 성품이 한결같이 흐름을 관하여 무생인無生忍을 얻어서 보리를 원만히 하는 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유리광법왕자琉璃光法王子가 사뢰어 말하되, “저는 바람이 의지한 바 없음을 관찰하여 보리심을 깨쳐 삼마지에 들어가 시방 부처님의 뜻에 합하여 묘한 마음을 얻었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이 사뢰어 말하되, “저는 허공이 끝없음을 관찰하여 삼마지에 들어가 묘한 힘이 뚜렷이 밝았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사뢰어 말하되, “저는 삼계가 오직 마음인 것으로 관찰하여 식심識心이 원성실성圓成實性에 들어가 멀리 의타기성依他起性과 변계소집성徧計所執性을 여의어 무생인無生忍을 얻었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대세지법왕자大勢至法王子가 사뢰어 말하되 “저는 아무것도 선택함이 없고 육근을 모두 섭수하여 지녀서 청정한 생각이 서로 이어져 삼마지를 얻었사오니, 이것이 제일이 되겠나이다.”

수능엄경 여섯째 권

36)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되, “수없는 항하사겁 전에 관음여래觀音如來가 출현하시니, 저는 그 부처님에게서 보리심을 발하였나이다. 그 부처님께서 저를 가르치시되, ‘듣고 생각하고 닦는 것(聞思修)으로 삼마지에 들어가라’고 하시었나이다. 처음에 듣는 가운데서 듣는 바를 돌이켜 반조하여 소리 티끌이 흐르는 데 따르지 않고 저 업의 흐름을 거슬러 듣는 바가 경계를 잊어버리고, 들어간 바가 이미 고요하여 동하고 고요한 두 가지 모양이 요연히 나지 아니하며, 이와 같이 점점 증진하여 능히 들음(聞)과 듣는 바(所聞)가 다하여 다한 데도 머물지 아니하며, 능히 깨친 바가 공하여 깨침(覺)과 깨친 바(所覺)가 공하며, 공과 각이 극히 원만하여 공함(空)과 공한 바(所空)가 멸하여지고, 나고 멸함이 이미 멸하니 적멸이 현전하더이다. 홀연히 세간과 출세간에 뛰어나 시방에 뚜렷이 밝아 두 가지 수승함을 얻으니, 하나는 위로 시방제불의 본각묘심本覺妙心과 합하여 여래로 더불어 자비의 힘이 동일함이요, 둘째는 아래로 시방의 육도 중생과 합하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슬피 우러러 사모함이 같아졌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관음여래에게 공양하고, 그 여래께서 환幻과 같은 들음을 훈습하여 들음을 닦는 금강삼매金剛三昧를 일러 주심을 입어서 부처님과 자비의 힘이 같아진 까닭에 제 몸이 삼십이응신三十二應身을 이루어 모든 국토에 들어가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보살들이 삼마지에 들어가 무루無漏를 닦아 뛰어난 알음알이(勝解)가 나타나면 제가 부처님의 몸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며, 만일 모든 유학有學들이 고요하고 묘하게 밝아서 뛰어나고 묘한 것이 뚜렷이 나타나면, 제가 그 앞에서 독각신獨覺身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며, 만일 모든 유학들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을 끊고 수승한 성품이 뚜렷이 나타나면, 제가 그 앞에서 연각신緣覺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며, 만일 모든 유학들이 사제四諦가 공함을 얻어 도를 닦아 열반에 들려 할 적에 수승한 성품이 뚜렷이 나타나면 제가 성문신聲聞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나이다.

만일 모든 중생이 음욕심을 밝게 깨닫고 음욕의 티끌을 범치 아니하여 욕심이 청정하면 제가 범왕신梵王身을 나투어 설법하여 해탈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천주天主가 되어 제천諸天을 거느리고자 하면 제가 제석신帝釋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성취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몸이 자재하여 시방에 놀고자 하면 제가 자재천신自在天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성취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몸이 자재하여 허공에 날고자 하면 대자재천신大自在天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성취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귀신을 거느려 국토를 구호救護하고자 하면 천대장군신天大將軍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성취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세계를 거느려 중생을 보호코자 하면 사천왕신四天王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성취하게 하며, 천궁天宮에 나기를 사랑하여 귀신을 부리고자 하면 사천왕국의 태자신太子身을 나투옵나이다.

만일 세간의 왕이 되고자 하면 제가 세간의 왕이 되기를 좋아하면 인왕신人王身을 나투며, 족성族姓의 주인이 되어 세간에서 받들어 주길 좋아하면 장자신長者身을 나투며, 유명한 말을 하여 청정하게 스스로 살기를 좋아하면 제가 거사신居士身을 나투어 성취케 하며, 국토를 다스리기를 사랑하면 제가 재관신宰官身을 나투며, 모든 술수術數를 사랑하면 제가 바라문신婆羅門身을 나투옵나이다.

만일 배우기를 좋아하여 출가하여서 모든 계를 가지거든 비구신比丘身37) 을 나투며, 여인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출가하여 모든 계를 가지고자 하면 비구니신比丘尼身38) 을 나투며, 남자가 오계五戒 가지기를 즐거워하면 우바새신優婆塞身을 나투며, 여자가 오계 가지기를 좋아하면 제가 우바이신優婆夷身을 나투어 이와 같은 사람에게 즐거워하는 바를 따라 다 성취하게 하나이다.

만일 여인이 집안 살림하는 몸이 되어 가정과 나라를 다스리려 하면 제가 황후의 몸과 왕비의 몸을 나투며, 만일 중생이 남근男根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하면 동남신童男身을 나투며, 만일 처녀가 처녀의 몸을 사랑하려 하면 동녀신童女身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나이다.

만일 천왕팔부天王八部 내지 인비인人非人 등이 다 해탈하기를 구하면 법을 설하여 다 성취하게 하며, 만일 모든 중생이 사람을 즐거워하여 인륜人倫을 닦으면 제가 사람의 몸을 나투며, 만일 비인非人과 형상이 있는 것과 형상이 없는 것과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들이 다 그 무리를 제도하기 즐거워하면 제가 다 그 몸을 나투어 법을 설하여 다 성취하게 하나이다. 이것이 삼십이응三十二應으로 국토에 들어가는 몸이니, 다 삼매에 들어 훈습한 것과 들음을 닦는 것과 지음이 없는 묘한 힘으로 자재하게 성취함이라 하옵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문사수금강삼매무작묘력聞思修金剛三昧無作妙力으로써 십사무외十四無畏와 내지 팔만사천 삭가라八萬四千爍迦羅 머리와 팔만사천 손과 팔만사천 청정한 눈을 나투어 혹은 자비하고 혹은 위엄스럽고 혹은 정定과 혹은 지혜로써 중생을 구원하여 크게 자재함을 얻게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원통을 물으시니, 제가 이문耳門으로 뚜렷이 비추는 삼매를 반연하는 마음이 자재하여 삼매를 얻어 보리를 성취하는 것, 이것이 제일이라 하겠나이다.”

이때에 세존께서 사자좌에서 오체五體로부터 보배 광명을 놓아 멀리 시방의 미진수 여래와 법왕자 모든 보살의 이마에 대셨는데, 저 모든 여래께서도 오체에서 함께 보배 광명을 놓으사 여래의 이마에 대시며 회중의 모든 보살과 아라한에게 대시었다. 수풀과 못이 다 법의 소리를 내며 광명이 서로 얽히어 보배 그물 같거늘 이 모든 중생이 미증유를 얻어 일체가 두루 금강삼매를 얻으니, 즉시에 하늘에서 일백의 보배 연꽃을 내리니 청황적백靑黃赤白이 섞여서 어지러이 내려오며 시방 허공이 칠보색을 이루었다. 이 사바세계가 한꺼번에 나타나지 아니함이 없고, 시방의 미진국토가 합하여 하나의 세계가 되며, 범패와 가영歌詠이 자연히 연주되었다.

이때에 여래께서 문수文殊에게 명령하사 “이십오二十五 무학인 모든 큰 보살과 아라한들을 보아라. 어떠한 방편문이라야 쉽게 성취되겠는가?”라고 하시니, 문수법왕자文殊法王子가 게를 설하여 답하였다.

“각해覺海의 성품 맑고 둥글어
뚜렷이 맑은 깨친 성품이 원래 묘하도다.
본래 밝은 성품이 비쳐 뚜렷한데
미함으로 인하여 무명이 일어나 경계를 생하고
경계가 서니 본래 밝게 비추는 성품이 없어지는도다.
매우 미한 망령됨으로 허공이 있었거늘
허공을 의지하여 세계가 성립되는도다.
망상이 일어나 무정한 국토를 이루고
번거로이 깨쳐 아는 것은 이에 중생이 되었도다.
허공이 대각大覺 성품 가운데 나는 것이
바다에 한 물거품 발한 것과 같도다.
유루有漏의 미진수 나라가 다 허공을 의지하여 생긴 바니
허공 거품이 멸하면 허공도 본래 없거니
어찌 다시 모든 삼유三有가 있겠는가?
근원에 돌아가면 성품이 둘이 없건마는
방편에는 문이 많도다.
성인의 성품에는 통하지 아니함이 없는지라
순順하고 역逆하는 것이 다 방편이로다.
초심의 삼매에 들고자 하면
더디고 빠름이 같지 아니하니라.
색色과 생각이 맺어지어 티끌을 이루어
정밀히 요별하려면 밝음이 능히 사무치지 못하나니
어찌 명철明徹치 못함으로 원통을 얻겠는가?
음성은 잡된 언어라
다만 이름과 글귀와 의미뿐이니
하나의 말이 일체를 머금지 못하거니
어찌 원통을 얻겠는가?
향은 합함으로써 알고
여의면 없어 항상 깨닫는 바가 아니며,
맛은 본연本然이 아니라
먹을 때에 있어 깨침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촉觸은 경계가 닿음을 인하여 밝게 나타나고
경계가 없으면 촉이 없어
합하고 여의는 것이 일정치 못하며,
법은 뜻의 티끌이니
티끌을 의지하면 반드시 소所가 있으리니
능소能所는 두루 간섭함이 아니며,
보는 성품은 앞은 밝고 뒤는 어두워
사방에서 하나를 섭하며,
코의 숨은 출입을 통하되
현전에 교차하는 기운이 없으니
여의면 간섭하여 들어가지 못하며,
혀는 맛으로 인하여 깨달음이 나나니
맛이 없으면 깨침도 없으며,
몸은 닿는 바와 같아서
각각 뚜렷이 깨침이 아니니
경계선을 알 수 없으며,
의근意根은 어지럽게 생각하는 것이며
맑음을 마침내 봄이 없어
생각을 해탈하지 못하며,
식견識見은 근根과 경境과 식識이 화합된 것이니
근본을 따지면 자체를 정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들음이 훤출히 시방에 확연함은
큰 인력因力에서 나는 것이니
초심이 능히 들어갈 바가 아니며,
코끝에 흰 것을 생각하는 것은 본래가 방편이라
다만 마음을 거두어서 머물게 한 것이며,
법을 설하여 소리와 글을 희롱하는 것은
깨친 자의 함이요
또 이름과 글귀는 무루無漏가 아니며,
가지고 범하는 것은 다만 몸만을 구속하는 것이라
몸이 없으면 구속할 바 없으니
원래 일체에 두루함이 아니며,
신통은 본래 숙인宿因을 말미암은 것이니
법에 관계가 없으며,
땅의 성품은 굳건히 걸리어 통달한 것이 아니며,
물의 성품은 생각이 진실하지 않은 것이며
여여如如는 각관覺觀이 아니며,
불의 성품은 있는 것을 싫어함이
참 여읜 것이 아니라 초심의 방편이 아니며,
바람의 성품은 동하고 고요한 것이 대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상대하는 것은 무상각無上覺이 아니며,
허공은 혼돈한지라 깨침이 아니며,
식성識性으로써 관한다면
식에 항상 머문 것이 아니며,
모든 행은 이 떳떳함이 없으며
생각하는 성품이 원래 생멸이므로
인과가 달리 감득하나니 다 원통이 아니나이다.
제가 이제 세존께 사뢰오니
사바세계에 참으로 가르칠 것은
청정함이 소리를 들음에 있으니
삼마지를 취하고자 한다면
듣는 성품을 돌이키는 것이
가장 제일이 되겠나이다.
고를 여의어 해탈을 얻게 하니
착하신 관세음이여!
항사의 겁 가운데 미진수의 불국토에 들어가
대자력을 얻어 무외無畏로 중생에게 베푸노니
묘한 음성과 세상을 관하는 음성과
범음성梵音聲과 해조음海潮音으로
세간을 구원하여 다 편안하게 하며
세간에 나서 항상 머무름을 얻게 하나이다.
보고 듣는 것이 환으로 가린 것 같고
삼계가 공화空華와 같으니
듣는 것을 돌이키면 가린 근根이 없어지고
진塵이 녹아지면 각覺이 뚜렷이 깨끗하리라.
깨끗함이 극하면 광명이 통달하여
고요히 비추어 허공을 삼키는도다.
돌아와 세간을 관찰하니
마치 꿈 가운데 일과 같도다.
마등가가 몽환이거니
누가 능히 너의 얼굴을 걸리게 하리오.
아난과 대중이여,
듣는 경계를 좇아가지 말고
너의 듣는 것을 돌이켜
도리어 너의 듣는 자성을 들으면
성품이 위없는 도를 이루리라.
원통圓通이 진실로 이와 같으니
미진의 부처님의 한길로 나아가는 열반문이니
삼세三世의 모든 불보살도
이제 각각 뚜렷이 밝은 데를 들어갔으며
미래에 배우는 사람도 이 같은 법을 의지할지니
나도 또한 이 가운데서 증득한 것이니
오직 관세음만이 아니니라.”

이때에 아난이 세 가지 청정한 뜻을 여쭈니,
“이른바 마음을 단속함이 계가 되고, 계를 인하여 정定이 나고, 정으로 인하여 혜가 나나니, 이것이 삼무루학三無漏學이 되나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마음 단속함을 계라 하느냐? 육도六道 중생이 음탕하지 아니하면 생사가 상속함을 따르지 아니하리라. 너희들이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번뇌煩惱에서 나오고자 함이거늘, 음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해탈하지 못할 것이니라. 비록 지혜가 많아서 선정이 앞에 나타나도 음婬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魔의 길에 떨어져서 상품은 마왕이 되고, 중품은 마의 백성이 되고, 하품은 마녀가 될지니, 저 모든 마군이도 제자의 무리가 많아 각각 저희들이 위없는 도를 이루었다 하나니라.

만일 음을 끊지 않고 선정을 닦는 자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백천 겁이라도 다만 ‘뜨거운 모래’라고 할지니, 어찌 밥이 되겠는가? 음심으로써 불과佛果를 구한다면 비록 묘함을 깨쳤다 할지라도 다 음근陰根이니라. 삼도三塗에 윤회하여 반드시 해탈하지 못하리니 어느 길에서 여래의 열반을 증득하겠는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이며, 달리 말하는 것은 파순波旬의 말이니라. 그 마음이 살생하지 않으면 곧 생사의 상속함을 따르지 않으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塵勞에서 나고자 함이거늘 죽일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비록 지혜가 많아 선정이 현전하여도 살생을 끊지 아니하면 반드시 귀도鬼道에 떨어져서 상품은 대력귀大力鬼가 되고, 중품은 비행야차飛行夜叉와 못된 귀신의 장수가 되고, 하품은 지행나찰地行羅刹이 되리니, 저 귀신도 각각 도제徒弟가 많아 각각 무상도를 이루었다 하니라.

내가 열반한 말법 가운데에 이들이 세상에 치성熾盛하여 스스로 말하되, ‘고기를 먹고 보리를 이루었다’고 하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고기 먹는 사람은 비록 마음이 열려 삼마지를 얻은 듯하지만 다 큰 나찰 귀신이어서 명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생사의 고통바다에 빠지리니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서로 죽이며 서로 고기를 먹어 그치지 아니할지니 이와 같은 사람이 어찌 삼계에서 벗어나겠는가?

모든 비구가 명주 비단과 가죽신과 털옷을 입지 아니하며 젖과 제호를 먹지 아니하면 이 비구는 저 세상에 참으로 해탈하여 오래 묵은 빚을 받지 아니하여 삼계에 놀지 아니하리라. 어찌함인가? 그 몸에 입으면 다 저에게 인연됨을 여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땅의 둔탁한 정기로 난 백곡百穀을 먹으면 몸이 무거워 날지 못하여 땅을 여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저 모든 중생들의 몸과 몸의 일부분을 삼생에 짐승의 가죽과 고기와 제호 등을 먹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묵은 빚을 받을 인연이 다 끊어진 것이니 참으로 해탈할 것이니라.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달리 말하는 것은 파순의 말이니라.

또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 생사에 상속함을 따르지 아니하리라. 네가 삼매를 닦는 것은 본래 진로塵勞에서 나고자 함이거늘 도적질할 마음을 없애지 아니하면 진로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니, 비록 지혜가 많아 선정이 나타나더라도 반드시 사도에 떨어지리라. 상품은 정령精靈이 되고, 중품은 요매妖魅가 되고, 하품은 삿된 사람이 되어 모든 귀매鬼魅에 붙은 바가 되리니 저 모든 삿된 무리들도 제자가 많아 각각 무상도를 이루었다 하나니라.

내가 멸도한 뒤 말법 가운데에 요사가 많이 세상에 치성하여 선지식이라 일컬어 각각 스스로 도를 얻었다 하며, 미혹한 중생을 의혹하게 하여 마음을 잃게 하여서 지나는 곳마다 그 집의 재물이 없어지게 하느니라. 어찌하여 도적질한 사람이 나의 법복을 빌어 입고 부처님을 팔아 가지가지 악을 짓느냐? 내가 멸도한 뒤에 비구가 마음을 발하여 결정코 삼마지를 닦는다면 능히 여래의 형상 앞에서 지성으로 참회하여 속세의 업장을 녹이고 소신연비燒身燃臂하면, 이 사람은 비롯함이 없는 숙세의 빚을 일시에 받아 마치고 해탈하느니라.

만일 도적질을 끊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지 않는 자는 깨진 그릇에 물을 담는 것과 같아서 물이 채워지기를 구하여도 마침내 얻지 못하리라. 만일 모든 비구는 의발衣鉢 외에 매우 사소한 것이라도 축적하지 말며, 걸식하되 그 남은 음식을 아귀에게 베풀어 주며, 어떤 사람이 때리고 꾸짖어도 찬탄함을 받은 것과 같이 하여 진심을 내지 아니하면, 이와 같은 것은 부처님 말씀이며, 달리 말하는 것은 파순의 말이니라.”

수능엄경 일곱째 권

39)

“아난아, 네가 마음 단속함을 물으니, 내가 이제 먼저 삼마지에 들어가는 학문을 설하겠노라. 보살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네 가지 율의律儀를 가지되 얼음과 서리같이 할지니라. 스스로 능히 일체의 지엽支葉을 내지 않으면 마음의 탐진치와 입의 네 가지 허물이 반드시 인因이 없으리라.

아난아, 이와 같은 네 가지를 유실하지 않으면, 마음이 오히려 색성향미촉에 반연하지도 않을 것인데, 일체의 마군이가 어찌 발생하겠는가? 만일 숙습宿習을 능히 멸하지 못한다면, 네가 이 사람을 가르쳐 일심으로 불정광명佛頂光明 마하실달다반달라摩訶悉怛多般怛羅 무상신주無上神呪를 외우게 하라. 이것은 여래의 무견정상無見頂相 무위심불無爲心佛이 이마로부터 비추어 보련화에 앉아 설하신 신주神呪니라. 또한 네가 숙세에 마등가摩登伽와 억겁의 인연이 있으므로 은애恩愛와 습기習氣가 한 생이 아니며 한 겁이 아니건만 내가 한번 신주神呪를 설함에 사랑하는 마음이 영원히 없어지고 아라한을 이루니, 그녀는 음녀淫女여서 수행할 마음이 없지만 신력이 도와 속히 무학을 증득하였느니라. 어찌 너희들 성문들이 최상승을 구함일까 보냐? 결정코 성불하리라. 비유컨대 티끌이 바람을 따라 날리는 것과 같으니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만일 말세에 도량에 앉고자 한다면, 먼저 비구의 청정한 계를 가지되 마땅히 계를 가진 청정한 사문 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을지니, 만일 참으로 청정한 스님을 만나지 못하면 너의 계율을 반드시 성취하지 못하리라. 계율이 이미 성취한 뒤에는 새 옷을 입고 향을 사르고 한가히 거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신주를 외우되 일백팔 편을 외운 연후에 단을 맺어 도량을 건설하고 저 시방의 현재에 머무시는 국토의 무상여래無上如來께서 대비 광명을 놓으사 그 이마에 대기를 구할지니라.

아난아 말세의 청정한 비구거나 비구니거나 백의단월白衣檀越이 음탐심이 멸하고 청정한 계행을 가지어 도량 가운데에서 보살의 원을 말하며, 출입에 목욕하고 여섯 때(六時)로 도를 행하여 이와 같이 잠자지 아니하기를 삼칠일을 지나면, 내가 몸을 나투어 그 사람 앞에 가서 이마를 어루만지고 위로하여 깨닫게 하리라.”

아난이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제가 여래의 위없는 대비로 깨우침을 입어서 마음을 이미 깨달아 스스로 무학도無學道를 이루었나이다. 말법에 수행하여 도량을 건립한다면 어떻게 결계結界하여야 세존의 청정한 궤칙軌則에 합당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고하시되, “말세에 도량을 건립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설산에서 비니향초肥膩香草를 먹은 대력백우大力白牛를 구할지니라. 이 소는 오직 설산에서 청정한 물을 마셨으므로 그 똥이 미세하니, 가히 그 똥을 취하여 전단향과 화합하여 그 단에 바를지니라. 만일 설산의 대력백우가 아니면 그 소의 똥이 더럽고 추하여 단에 바르지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따로 평탄한 언덕에 다섯 자 이하의 흙을 파내고 깨끗한 황토를 취하여 전단향과 침수향과 소합향과 훈육향과 울금향과 백교향과 청목향과 영능향과 감송향과 계설향을 섞어서 이 열 가지로 미세하게 가루를 만들어 흙에 이겨서 도량에 발라야 하느니라.

방원方圓이 한 발 여섯 자의 팔각 단을 만들고, 단의 중심에는 황금, 은, 구리나 나무로 만든 연꽃을 두고, 꽃 가운데는 발우를 두고, 발우 가운데는 팔월에 내린 이슬 물을 담고, 물 가운데는 꽃 잎사귀를 두고, 둥근 거울 여덟 개를 취하여 팔방에 두어 꽃 발우를 두루고, 거울 밖에는 연꽃 열여섯 개를 세우고, 향로 열여섯 개를 꽃 사이마다 놓아 향로에 장엄하고, 순전히 침수향만을 사르되 불은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니라.

흰 소의 젖을 취하여 그릇 열여섯 개에 두고, 젖으로 떡을 지지되 모든 사탕과 유병油餠과 유미乳糜와 소합蘇合과 밀강密薑과 순전한 꿀을 연꽃 밖에 각각 열여섯 그릇을 둘러놓아 제불보살에게 받들 때나 매양 밥 먹을 때나 한밤중이나 꿀 반 되와 젖 서 홉을 단 앞에 따로 작은 화로를 두고, 도루바향兜樓婆香으로 달여 향물을 취하여 그 숯으로 목욕하되 태워서 불이 맹렬히 타게 하고, 이 젖과 꿀을 더운 화로 안에 던져서 타서 연기가 다하게 하여 불보살께 공양하라.

그 사방 밖에 두루 번幡과 꽃을 달고 단의 중심과 사면의 벽에 시방의 여래와 모든 보살의 형상을 부설하되 마땅히 노사나불과 석가와 미륵과 아촉과 아미타불을 달고, 모든 크게 변화하는 관음상과 금강장의 형상을 좌우에 두고, 제석과 법왕과 오추슬마와 람지가와 모든 군다리와 비구니와 사천왕 등과 빈나야가를 문 옆에 좌우로 두고, 거울 열여덟을 취하여 허공의 위를 덮고 옆으로 달아 단 가운데에 두었던 거울의 방면方面이 서로 대하여 그 형상과 그림자로 하여금 겹겹으로 서로 비치게 하느니라.

초칠일 가운데에 지성으로 시방 여래와 모든 대보살과 아라한에게 정례하며, 항상 육시에 주를 외우고, 단을 둘러 지극한 마음으로 경행徑行하면서 한 시간에 백팔 편씩 외울지니, 이칠일 가운데에 온전한 마음으로 보살의 원을 발하되 간단이 없이 하여 나의 비나야毘奈耶에 먼저 원과 가르침을 둘지니라.

삼칠일 중에는 십이시十二時에 실달다반달라주를 가지면 제7일에 이르러 시방 여래가 일시에 나타나 거울의 광명이 서로 어우러진 곳에 부처님이 마정수기摩頂授記함을 받아 도량에서 삼마지를 닦아 능히 말세에 수학하는 사람이 몸과 마음이 유리와 같이 명정明淨하리라.

만일 비구가 본래 계를 받았거나 열 사람 비구 중에 하나만이라도 청정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성취되지 아니하리라. 삼칠일을 지낸 후에 백 일을 안거하면 영리한 근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을 것이며, 몸과 마음이 성과聖果를 이루지 못하여도 결정코 성불함을 알 것이니, 도량을 건립하는 법이 이와 같으니라.”

이때에 세존께서 육계肉髻 가운데로 백 가지 보배 광명을 놓으시니, 광명 가운데서 천 잎사귀 보련화가 솟아나거늘 화현한 여래가 보배 꽃 가운데 앉으시어 이마에서 열 가닥의 백 가지 광명을 놓으시니, 낱낱의 광명에서 열 항하사 금강밀적이 산을 받들고 금강저를 가져 허공계에 가득하거늘 대중이 우러러보고 두려워하고 사랑함을 품어서 부처님께 애호하기를 구하여 일심으로 무견정상無見頂上에서 광명을 놓으시는 신주 설하기를 듣더라.

(능엄주 지송 법식)

나무석가모니불 (삼 편)

나무시방불
나무시방법
나무시방승 (각 삼 편)

나무만허공변법계 호불법승현중 (삼 편)

나무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 만행수능엄신주

다야타 옴(一)아나레(二)비사제(三)비라발사라다리(四)반다반다니(五)발사라박니반(六)호홈도롱반(七)사바하(八)

(이 주문이 대단히 많아 후래의 중생이 지송하기가 어려울 듯하여 이 주문에 극히 요긴한 신주만 번역한다. 다야타는 인도의 말인데 우리말로 하면 ‘곧 주문을 설하여 가로되’라는 말이며, ‘옴’자부터 ‘사바하’까지는 정당한 신주이다. 이 신주만 항상 지성으로 간단없이 하면 단을 차리지 아니하여도 성취하는 것이니, 만일 단법대로 단을 차리고 이 신주를 외우면 속히 성취하는 법이나 계행이 청정한 법사를 열 사람을 얻기가 어렵고, 또 그 단법을 차리기가 어려우므로 말세 중생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아난아, 이 불정광취 실달다반달라 비밀가타 미묘장구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출생하나니, 시방 여래가 이 주를 인하시어 위없는 정변지각正徧知覺을 이루었으며, 시방 여래가 이 주를 가지시어 모든 마군이와 외도를 항복 받으시며, 보련화에 앉으시어 미진국토에 응하시며, 이 주를 머금으시어 미진 국에 대법륜을 굴리시며, 이 주를 가지시어 능히 시방에서 마정수기하시며, 과果를 성취하지 못하여도 시방의 부처님의 수기를 받으며, 이 주를 의지하시어 능히 시방에 여러 가지 괴로움을 빼어 주시니 지옥과 아귀와 축생과 눈먼 사람과 귀먹은 사람과 벙어리와 원수와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을 이별함과 구하여도 얻지 못함과 오음五陰이 치성함과 크고 작은 모든 횡액을 동시에 해탈하며, 도적의 난과 병난과 왕난과 옥난과 풍화수난과 기갈빈궁이 생각을 응하여 흩어지느니라.

시방 여래가 이 주심呪心를 따라 능히 시방의 선지식을 섬기시어 네 가지 위의 가운데에 뜻대로 공양하시어 항상 여래의 회중에 법왕자가 되며, 이 주심을 행하시어 능히 시방의 인연이 있는 자를 섭수하시어 모든 소승으로 하여금 비밀장秘密藏을 듣고 공포심을 내지 않게 하시며, 이 주심을 외우시어 무상각을 이루어 보리수에 앉으시어 대열반에 들어가시며, 시방 여래가 이 주를 전하고 멸도한 뒤에 불법의 일을 부촉하시어 끝까지 주지住持하시어 계율이 엄정하여 다 청정함을 얻게 하느니라.

만일 내가 이 불정광취반다라주佛頂光聚般多羅呪의 공덕을 설한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성이 서로 이어져 글귀가 또한 거듭되지 아니하면서 항상 겁을 지내도 능히 다하지 못하리라. 또한 이 주는 여래정如來頂40) 이라고도 하니, 너희 유학들이 지성한 마음을 발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41) 를 취한다고 한다면 이 주를 가지지 않고 도량에 앉아 멀리 모든 마군이를 여의지 못하니라.

아난아, 만일 모든 세계에 있는 국토를 따라 중생들이 그 나라에서 나는 나무껍질이나 패엽貝葉이나 종이나 흰 비단에 이 주문을 써서 향낭에 담을지니, 이 사람이 마음이 어두워 능히 외우지 못하면 혹 몸 위에 지니거나 집 가운데에 써서 두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명이 마치도록 일체의 독기가 그를 해롭게 하지 못하리라.

아난아,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다시 설하리라. 이 주문은 세간을 구호하여 크게 두려워함이 없음을 얻으며 중생의 출세간 지혜를 출생하나니, 내가 멸도한 뒤 말세 중생이 외우거나 다른 이를 가르쳐 외우게 하면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이 외워 가지는 중생은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며, 물이 능히 빠지게 못하며, 크고 작은 독이 능히 해롭게 못하리니 이와 같이 내지 천룡귀신과 정기마매精氣魔魅의 악한 주문이 다 능히 붙지 못하고, 마음에 일정함을 얻어 일체의 주저呪詛와 고독蠱毒과 독한 약과 금은의 독기와 초목벌레와 뱀, 만물의 독기가 이 사람의 입에 들어오면 감로의 맛을 이룰 것이며, 일체의 악한 별들과 모든 귀신의 독기가 이 사람을 능히 해롭게 못할 것이며, 이 같은 사람에게 악한 마음을 내지도 못할 것이며, 빈나야가頻那夜迦와 모든 악한 귀왕과 아울러 그 권속이 다 깊은 은혜를 감득하여 항상 수호하리라.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주문은 팔만사천 나유타 항하사 구지俱胝의 금강장왕보살金剛藏王菩薩 종족이 낱낱이 다 금강중金剛衆이 있어 권속을 삼아 주야로 따라 모시리라. 설사 중생이 산란심을 가져도 이 금강왕이 저 선남자를 따라 항상 수호하리니, 어찌 하물며 결정코 보리심을 발한 자일까 보냐? 이 모든 금강장왕보살들의 정밀한 마음이 신속하여 그의 심식을 발하게 하여 능히 팔만사천 항하사겁을 기억하여 두루 알게 하여 의혹이 없게 하리라.

제일겁으로부터 최후신最後身에 이르도록 세세생생에 야차와 나찰과 부단나와 가타부단나와 구반다와 비사차등과 모든 아귀와 형상이 있고 없는 것과 생각이 있고 없는 이와 같은 악한 곳에 나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야, 만일 독송서사讀誦書寫하며 몸에 차던지 집에 간직하여 모든 것으로 공양하면 겁겁에 빈궁한 곳에 나지 아니하리라. 이 모든 중생이 비록 자신의 복업을 짓지 못하였더라도 시방 여래께서 공덕을 다 이 사람에게 주리라. 항하사 아승지 불가설 불가설겁에 항상 모든 부처님과 한곳에 나서 한량없는 공덕이 악차취惡叉聚와 같아서 같은 곳에서 훈습해 닦아 영원히 흩어짐이 없으리라.

능히 파계한 사람으로 계근戒根이 청정하게 하며, 계를 얻지 못한 자로 하여금 계를 얻게 하며, 정진을 얻지 못한 자로 하여금 정진을 얻게 하며, 지혜가 없는 자로 하여금 지혜를 얻게 하며, 청정하지 못한 자에게 청정을 얻게 하며, 재계齋戒를 못한 자에게 재계를 이루게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선남자가 주를 가질 때에 설사 금한 계를 받지 못한 때에 범함이 있더라도 주문을 가진 후에는 계를 파한 죄가 경중을 묻지 않고 일시에 소멸하리니, 비록 술을 마시든지 오신채五辛菜와 가지가지 부정한 물건을 먹었더라도 일체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금강과 하늘과 신선과 귀신이 허물을 삼지 아니하며이 주문을 가지기 전에 일체 범죄는 의론치 아니함. 설사 부정한 옷과 해진 의복을 입어도 다 한가지로 청정할 것이며, 비록 단을 짓지 아니하며 도량에 들어가 행도行道하지 아니하고 이 주문을 가져도 도리어 단에 들어가 행도하는 공덕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리라.

만일 오역중죄五逆重罪와 모든 비구·비구니의 사기죄四棄罪(살생, 투도, 사음, 망어)와 팔기죄八棄罪(팔바라이, 비구니의 중죄)를 지었더라도 이 주문을 외우면 이 같은 중업重業이 사나운 바람이 모래를 불어 흩어 버린 것과 같이 다시 터럭만큼도 없으리라.

아난아, 만일 어떤 중생이 무수겁래에 일체 가볍고 무거운 죄업을 전 세상으로부터 오면서 참회하지 않았어도 이 주문을 읽고 외우며 베껴 써서 몸에 가지거나 거주하는 곳에 머물러 두면, 이와 같은 업이 끓는 물에 눈 녹듯 하여 오래지 못하여 무생인을 깨치리라. 만일 어떤 여인이 남녀 잉태하기를 구하여 지심으로 이 주를 생각하거나 몸에 가지면 문득 복과 지혜가 있는 남녀를 낳으리라. 장수를 구하는 자는 장수함을 얻으며, 과보가 속히 원만함을 구하는 자는 원만함을 얻으리니, 신명색력身命色力도 또한 그러하니라. 명을 마친 후에 원을 따라 시방 국토에 왕생하여 변방과 빈천한 데에 나지 아니하리라.

아난아, 만일 모든 국토에 기근과 전염병이 있든지 혹 도병刀兵과 도적과 전쟁과 일체의 액난이 있는 땅에 이 주문을 써서 성의 대문 위에와 모든 탑과 집집마다 문 위에 두며, 그 국토에 있는 중생들이 이 주문을 맞이하여 공경 예배하여 일심으로 공양하며, 그 인민으로 하여금 각각 몸에 가지며, 주택에 봉안하여 두면 일체의 재앙이 다 소멸하리라.

아난아, 있는 곳마다 이 주문이 있음에 따라 천룡이 환희하여 바람이 순하게 불고 고루 와서 오곡이 풍성하며, 서민이 안락하며, 또 일체의 악한 별의 변괴와 재앙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횡사와 요사夭死가 없으며, 일체의 형벌의 도구가 그 몸에 붙지 아니하여 주야에 편안히 잠을 자서 악한 꿈이 없으리라.

아난아, 이 사바세계에 팔만사천 악한 별이 있되 이십팔대악성二十八大惡星이 으뜸이 되며, 다시 팔대악성八大惡星이 있어 주장하니 가지가지 형상을 지어 나타날 때에 능히 중생의 가지가지 재앙을 내나니 이 주문이 있는 땅에는 다 소멸하여 12유순由旬이 결계結界의 땅을 이루어 모든 악한 재앙이 영원히 들어오지 아니하리라. 이런 까닭에 여래께서 이 주문을 보이시어 미래세에 모든 초학을 닦는 자를 보호하며 삼마지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안온함을 얻게 하며, 일체의 제마귀신諸魔鬼神과 무시겁의 모든 원결과 묵은 빚으로 서로 와서 해롭게 함이 없게 하노니, 너희 중에 모든 배우는 사람과 미래의 모든 수행하는 자가 나의 단법壇法에 의지하여 여법한 계를 가지되 계를 주는 선생을 청정한 스님으로 정할 것이며, 이 주를 가지되 의심하고 뉘우치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선남자가 부모가 낳아 준 몸으로 마음이 통함을 얻지 못하면 시방 여래가 문득 거짓말함이 되리라.”

이 말을 설함에 한량없는 백천 금강신들이 일시에 부처님께 예하고 사뢰어 말하되, “저희들이 마땅히 지성심으로 보리를 닦는 자를 수호하겠나이다.”라고 하나니라. 이와 같이 범왕 제석과 사천대왕四天大王과 야차대장과 모든 나찰왕과 부단나왕과 구반다왕과 비사차왕과 빈나야가와 모든 대귀왕과 모든 귀신의 장수와 무량한 일월천자와 풍사우사風師雨師와 운사뢰사雲師雷師와 아울러 전백電佰 등과 연세순관年歲巡官과 제성숙諸星宿과 한량없는 산신과 일체의 토지신과 수륙공행水陸空行하는 만물의 정령精靈과 아울러 풍신왕風神王과 무색계천 등이 여래 앞에 예배하고 사뢰어 말하되, “저희들이 이 주문을 가져 수행하는 자를 보호하여 보리를 이루어 영원히 마사魔邪가 없게 하겠나이다.”라고 하나니라.

이때에 팔만사천 나유타 구지 금강장왕보살이 부처님께 예배하고 사뢰어 말하되, “세존이시여, 저희들 무리가 닦은 공업으로 보리를 성취하였건만 열반을 취하지 아니하고 항상 이 주를 수호하며 말세에 삼마지 닦는 자를 수호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이같이 마음을 닦아 정정正定을 구하는 사람이 만일 도량에 있거나 나머지 경행經行에 있거나 내지 산심散心으로 취락에 유희하여도 우리들이 항상 이 사람을 수호하여 비록 마왕과 대자재천이 그 방편을 구하여도 가히 얻지 못할 것이며, 작은 귀신들은 10유순 밖으로 내어 몰되 마음을 발하여 선정을 닦는 자는 제외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악마의 권속이 침노코자 하면 제가 금강보저金剛寶杵로써 그 머리를 부수어 미진微塵과 같이 하며, 항상 사람으로 하여금 짓는 바가 원함과 같이 하겠나이다.”

(오권五券 이하로는 그 요점만 들어 번역하고 그 번거한 것은 삭제하여 번역하지 아니하였으니 보는 사람은 그 같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람)

불기 2954년 음력 12월 13일 오후 2시에 마침
『백용성대종사총서』 조선어 능엄경(ABC, MBC0001_0021_0001 v1, p.88a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