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이해

1. 경전의 의미
2. 경전의 성립
3. 경전의 구성과 조직
4. 경전의 어계
5. 경전의 분류

1.경전의 의미

경전이란 부처의 설법을 담은 불교 경을 가리키는 말로 ‘법화경’ ‘화엄경’ 등과 같이 경(經)자가 붙은 경장에 들어 있는 모든 경을 말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의미가 점점 확대되어 경장의 경전뿐 아니라 율장에 속하는 율서와 논장에 속하는 논서, 그 외에 후대 불교도의 저술, 불교의 역사, 전기서, 기타 불교에 관계있는 일체의 저술 즉, 불교사상이 담긴 책들 모두를 경전이라 부릅니다.

1) 삼장

경(經)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수트라(sutra)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불교 이전의 바라문교와 자이나교, 그 이후에 일어난 인도의 모든 철학파에서 수트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원래 수트라(sutra)는 ‘실, 끈’이라는 뜻이다. 원래 수트라는 한 가닥의 실로 온갖 아름다운 꽃을 엮어서 화환을 만들어 머리를 장식했던 것이다. 이것에 착안하여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훌륭한 짧은 문구를 어느 정도 나란히 모아서 엮은 것을 수트라라고 했다. 따라서 수트라의 본래 의미는 산문으로 된 짤막한 금언이나 격언을 모은 것이며, 거기에는 운문으로 이루어진 시구나 게송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이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의 바라문교에서 사용했던 수트라의 형식이다. 이러한 바라문교의 수트라 양식이 불교에도 채용되어 산문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경(經)만을 가리켰다. 그러나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붓다의 설법을 모두 경(經)이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경전을 삼장(三藏, Tri-pitaka)이라고 칭한다. 이는 불교 경전의 전부를 개괄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범어의 pitaka 라는 말은 군(群), 분류 또는 포함의 뜻으로 장(藏)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불교도들이 그 경전을 편찬하여 이것을 세 종류로 분류하였기 때문에 삼장(三藏) 즉 Tri-pitaka라고 한 것이다. 삼장(三藏)은 경장(經藏, sutra-pitaka), 율장(律藏, vinaya-pitaka), 논장(論藏, abhidharma-pitaka)을 말한다.

경장(經藏)은 붓다의 설법을 모은 것을 말하고, 율장(律藏)은 교단생활의 규칙과 계율을 말하고, 논장(論藏)은 경전을 연구하면서 조직적으로 정리한 것을 말한다.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은 주로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을 모은 것에 비해 논장(論藏)은 붓다가 열반에 든 후 붓다의 교설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작성한 것으로 불교교단이 부파로 나누어지면서 성립해서 경장(經藏)이나 율장(律藏)보다 그 성립 시기가 늦다. 이 삼장(三藏) 가운데 경장(經藏)의 경전을 일반적으로 경 또는 경전이라고 한다.

2) 대장경

불교의 경전이나 논서를 집합한 총서를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하며, 또는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총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총서는 <팔리어 삼장(三藏)>이다. 이것은 초기불교의 성전인데, 붓다가 설한 가르침인 경장(經藏)과 계율과 교단의 규칙인 율장(律藏)과 제자들이 교법을 연구한 논장(論藏)을 포함하고 있다. <팔리어 삼장>은 대승경전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두번째로 들 수 있는 총서가 <티베트대장경>인데, 이는 티베트어로 번역된 일체경(一切經)이라는 말이다. 7세기 경부터 번역이 시작되어 9세기에는 대부분의 완성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번역되어 <티베트대장경>이 성립되었다. 불교가 인도에서는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후기 인도불교의 경론은 티베트역으로 남아있는 것이 많다. 티베트대장경은 13세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복판에 의해 출판되었다.

대장경이라고 하면 우리는 <한역대장경>을 연상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이나 논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 불교학자들의 저작도 포함하여 편집한 것으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경(經), 율(律), 논(論)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그 분량이 가장 많다. <한역대장경>은 번역이 시작된 2세기부터 1000년에 걸쳐 진행된 번역이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팔리삼장

팔리어로 씌어진 불교 성전의 총칭이다. 삼장(三藏)이란 경(經), 율(律), 논(論)의 셋을 잘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라는 의미이다. 붓다가 입멸한 지 100년 내지 200년이 지나자 불교 교단은 여러 부파로 분열한다. 각 부파는 옛 전승을 내세워 그들 부파만의 삼장을 갖게 된다. 성전의 용어도 일치하지 않아 팔리어, 각종 속어,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전해져 왔다. 팔리어는 원래 서인도의 언어였던 것이 붓다의 입멸 후 초기교단이 서인도로 확대됨에 따라 성전의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 시대에 마힌다(Mahinda)에 의해 불교가 현재의 스리랑카로 전해졌다. 이 때 스리랑카는 팔리어를 불교용어로 사용하였는데 이후 이 전통은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의 동남 아시아에 확산되어 남방불교권이 형성되었다.

팔리삼장의 조직은 다음과 같다. 율장(律藏)은 경분별부(經分別部), 건도부, 부수(附隨:부록)로 되어있다. 경분별부는 계율의 본문을 분별하여 해설한 것으로 대분별(大分別)과 비구니분별(比丘尼分別)로 나뉜다. 건도부는 교단의 제도와 규정에 대한 것으로 대품(大品)과 소품(小品)으로 나뉜다. 경장(經藏)은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로 나뉜다. 장부는 붓다와 제자들의 언행을 모은 긴 경전이며, 중부는 중간 정도로 긴 경전이며, 상응부는 짧은 경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모은 것이며, 증지부는 짧은 경은 교법의 수에 따라 1법에서 11법으로 모은 것이며, 소부는 앞의 4부에서 빠진 것을 모은 것이다. 논장(論藏)에는 <법집론(法集論)>, <분별론(分別論)>, <계설론(界說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론(論事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이 있다.

이외에 교리강요서, 성전주석서, 사서 등이 있는데 이들을 일괄하여 장외(藏外)라고 통칭한다. 부파불교의 교단 내에서 삼장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팔리어 삼장뿐이다.

팔리삼장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의 연구와 출판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리스 데이비즈(Rhys Davids)가 영국 런던에서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이래 팔리 삼장의 원전 및 영역본은 유명 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출판되었다. 현재 삼장은 출판이 완료되었고, 장외(藏外)의 문헌도 다수 간행되었다. 일본에서는 장외(藏外)의 문헌까지 약간 포함하여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으로 번역 출판하였다.

티베트대장경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의 집성을 <서장(西藏)대장경> 또는 <티베트대장경>이라고 한다. 내용은 크게 칸규르와 텐규르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의 것이 불설부(佛說部), 뒤의 것이 논소부(論疏部)이다. 율장(律藏)에 해당되는 전적은 불설(佛說)로서 칸규르에 들어가 있으나 그에 대한 주석은 텐규르에 소속되어 있다.

각 부의 세부적인 배열 순서는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칸규르를 율(律), 반야(般若), 화엄(華嚴), 보적(寶積), 제경(諸經), 비밀(秘密)의 6부로 분류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경(諸經)으로부터 열반부(涅槃部)를 독립시킨다. 텐규르는 찬송(讚頌), 비밀(秘密), 반야(般若), 중관(中觀), 경소(經疏), 유식(唯識), 구사(俱舍), 율(律), 불전(佛傳), 서한(書翰), 인명(因明), 성명(聲明), 의명(醫明), 공교명(工巧明), 잡다한 제부(諸部)로 분류한다.

7세기 초에 고유의 문자를 제정했던 티베트에서는 779년부터 역경사업을 착수하였는데, 824년에는 티베트 불전 목록으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덴카르마 목록>이 작성되었다. 여기서는 당시까지 번역되었거나 번역 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하였다. 티베트에서는 843년에 시작된 왕조의 분열에 의해 역경이 중단되었으나 11세기 이후 밀교 관계의 경전과 논서들이 번역되면서 적어도 네 차례의 대장경의 간행이 있었다.

13세기 경에는 처음으로 대장경이 목판에 의해 인쇄되었다. 이것을 나르탕 고판(古版)이라고 한다. 이후 나르탕 판은 1410년과 1602년에도 다시 새겨졌으나 1730년에는 달라이 라마 7세의 명에 의해 대규모로 개정되었다. 이것은 나르탕 신판(新版)이라고 하는데, 이후의 정본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리탕판 및 그 밖의 판본을 근거로 하여 델게 판이 개판(開版)되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이래로 티베트와의 교섭이 있었는데 8-9세기에는 상당수의 한역 경전들이 티베트로 전해져 번역되었다.

한역대장경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의 총칭으로서 넓은 뜻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인들의 저술도 포함한다. 처음에 불교의 경전은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으로 분류되었으나 나중에 대승 경전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삼장(三藏)이라는 분류가 적당하지 않게 되었다. 중국에서 경전이 번역됨에 따라 중국인의 저서도 경전 속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중국에서는 대장경(大藏經)이라는 새로운 말이 조성되었다. 즉 전체의 불교 경전을 대장경(大藏經)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는 총칭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경전을 번역한 사람은 안식국의 안세고(安世高)인데 그는 주로 소승 경전을 번역했다. 이어서 월지국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이 주로 대승 경전을 번역했다. 그 후 점차 번역 사업이 성행하면서 번역 경전들을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였다. 최초의 유명한 목록은 전진(前秦)의 도안(道安)이 작성한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 1권인데 소실되었다. 여기서는 전체 경전을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 886권을 수록하였다고 한다. 그 후 많은 경록(經錄)이 작성되었는데 유명한 것은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 <법경록(法慶錄)>, 비장방(費長房)의 <역대삼보기>, 도선(道宣)의 <대당내전록>,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 등이다.

이처럼 많은 경록(經錄)들이 발간되면서 점차 불교 경전의 분류도 일정하게 되었는데 특히 <개원석교록(開元石敎錄)>의 입장록(入藏錄)이라는 분류가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개원석교록>에서는 일체경(一切經) 1076부 5048권을 대승경(大乘經), 대승율(大乘律), 소승경(小乘經), 소승율(小乘律), 소승논(小乘論), 현성집(賢聖集)의 7부로 나누고 현성집의 108부 541권 중에 인도 논사들의 전기류나 중국인의 저작을 포함시키고 있다.

처음에 대장경은 대개 필사(筆寫)에 의해 전래되었으나 송나라 시대 이후 목판 인쇄에 의해 간행되었다. 송판(宋版)의 제1회 간행본인 촉판(蜀版) 대장경은 5000여 권을 담았는데 그 후 수 차례 송대(宋代)에 간행되었다. 아울러 계단판(契丹版), 고려대장경 같은 대장경이 중국 밖에서 간행되었다. 이어서 원나라 시대의 원판(元版)이 있고, 명대(明代)에서도 두 차례 간행되었다.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감(校勘)을 거친 것이다. 고려대장경은 고려에서 간행된 것으로 초조(初雕) 대장경, 속장경(續藏經), 재조(再雕) 대장경이 있다.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1010-1031)때에 간행되었고, 속장경은 대각국사 의천이 간행하였고, 재조대장경은 고종(1214-1259)때에 간행한 것으로 현재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이다. 고려대장경은 현재 학계에서 널리 이용하고 있는 일본의 활자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저본이 되었다.

대정신수대장경은 19세기 말에 일본에서 활자화된 것으로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분류로써 경전을 분류하였다. 그리고 송(宋), 원(元), 명(明)의 대장경을 대교(對校)하고 정창원(正倉院)에서 소장된 7세기의 천평사경(天平寫經) 및 6-8세기의 수(隨), 당(唐) 사경(寫經)과 대교(對校)하였으며, 돈황사본으로부터 많은 경전을 선택하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을 다수 증보하여 현재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하다. 모두 100권인데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1-55), 일본 찬술부가 29권(56-84), 돈황사본 1권(85),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의 55권은 대개 지금까지 전해져 온 대장경의 내용에 상당한다. 여기에는 2265부 9041부가 실려있다. 제85권인 돈황본은 고일부(古逸部)와 의사부(疑似部)로 나뉜다. 다음의 도상부(圖像部) 12권은 불교미술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수록한 것이다. 목록 3권은 각종 대장경의 목록을 시작으로 하여 온갖 종류의 목록을 망라한 것인데, 이를 통해 대장경의 내용과 유명 사원들이 소장한 일체경(一切經)의 내용 등을 알 수 있다.

3) 위경

불교에서 경전이라 하면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직접 설파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의 행적을 다루는 문헌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나 다름 없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헌도 한문으로 번역된 경우일 경우에는 경이라 불러왔습니다.

위경(僞經)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위조된 경전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반드시 그러한 원칙에 의해 위경(僞經)과 진경(眞經)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경전을 편찬하는 풍습이 성행함으로써 부처님이 설한 순수한 교리와 혼동되는 예가 적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예가 대승경전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따라서 위경이란 중국 등지에서 새로 제작된 경문만을 이르고, 인도나 티벳에서 전래된 것들은 모두 진경이라 간주되어 삼장 속에 편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티벳에서도 명백한 위경들이 상당히 제작되었습니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진경과 위경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산스크리트 원본 등으로부터 번역된 경전을 진경 또는 정경이라 칭하고, 그로부터 번역된 경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것들을 위경 또는 의경이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경(僞疑經)이라는 호칭도 사용되는데,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 목록, 즉 경록(經錄)에 의하여, 의경과 위경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역된 경전이라 보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전을 의경이라 하고, 위조된 것임이 확실한 경전을 위경이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경과 위경을 가리는 기준은 원전이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 제작되었느냐의 여부와, 그 원전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인가 아닌가의 여부에 있습니다. 빨리어의 경우엔 그로부터 한역된 예가 매우 드물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위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서는 여러 종의 경록들이 편찬되었습니다.

남북조 시대엔 46부 56권, 수나라 시대엔 209부 490권, 당나라 초기엔 406부 1074권의 위경들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개원석교록’이라는 유명한 경록이 대장경에 편입된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 문헌의 수가 1076부 5048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위경들이 유행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의 완성기라고 하는 수(隨)와 당(唐)의 시대는 위경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위경들은 난해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불교를 근거로 삼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대장경에서는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위경들이 진경과 마찬가지로 신봉되어 남몰래 서사(書寫)되고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행했던 위경들도 송나라시대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그 편린이나 이름만이 남아 있다가, 근래에 돈황에서 발견된 문헌들을 통해 적지 않은 위경들의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국의 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 ‘인왕반야경’은 잘 알려진 위경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계위를 논하였던 ‘범망경法網經’(초기경전 중의 범망경과는 다르다)은 남북조시대에 있어서 통치자의 비법과 승려의 비행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들과 연관있는 유명한 경전으로서 ‘보살영락본업경보살영락본업경’도 위경이라 간주됩니다. 위경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선입과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위경인 줄 모르고 불교의진면목인 양 신봉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위경이 큰 영향을 끼친 예로서는 중국의 삼계교삼계교가 있다. 말법시대의 중생구제를 위한 강력한 실천을 내세웠던 삼계교는 ‘상법결의경’이라는 위경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경전은 6세기후반의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교계의 타락과 헛된 신행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혁을 강조하였습니다. 위경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불교적 요소의 삽입입니다. 이 경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위경이 많습니다. ‘점찰 선악업보경’이라는 위경에서 설명하는 점찰법이란 나무 바퀴를 가지고 과거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길흉 등을 점치고, 흉사가 나타나면 지장보살을 예참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의 본래 입장이 아닐뿐 더러 결코 바람직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신행이 혹시 과거에 유행했던 위경에 의한 그릇된 것이 아닌지를 항상 점검해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경전의 성립

보통 불교경전이라 하면 한역 대장경을 많이 연상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처음부터 어렵고 복잡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신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데, 이것은 우수한 외래 문화의 도입과정에서 비롯된 오해에 불과합니다.

처음부터 경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부처님 스스로는 당신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저서나 기록 또는 어떤 방법으로도 보관하거나 전승시키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나 신도들이 머리 속에 기억하여 정리하고 보존, 전달해 왔을 따름입니다. 수백년 동안은 글자로 베껴 쓰는 일도 없었는데, 이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전통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설법 내용을 제자나 신도의 기억에 의존하여 구술로 전달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내용을 한 마디도 어긋나지 않게 기억 속에 간직하기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다만 설법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줄거리만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 내용의 파악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같은 설법을 듣고도 듣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나자, 사소했던 이러한 견해 차이가 보다 심각한 상황을 야기할 우려가 발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부처님의 것인 양 주장하는 사태도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그 분의 실제 가르침을 확인하고 정리해 둘 필요성이 제기되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청취한 제자들이 전체 회의라 할 수 있는 모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인 불제자들의 회합을 ‘결집’이라 하는데, 비록 이 모임의 결과가 문자화되지는 않았지만, 이 모임에서 결정된 내용들이 후대에 소위 경전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부가 있지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당시의 상황과 이에 관한 이야기의 전통을 고려할 때, 이 회합을 일단 사실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입니다.

모든 경전은 첫머리에 여섯 가지의 필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육성취(六成就)라고 하여

석존의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성취(信成就 : 여시如是)와

내가 직접 들었다는 문성취(聞成就 : 아문我聞),

설법의 때를 명시하는 시성취(時成就 ; 일시一時),

설법을 한 것이 붓다였다는 주성취(主成就 : 불佛),

설법한 장소를 밝히는 처성취(處成就 : 재사위국在舍衛國),

어떤 사람이 들었는가를 밝히는 중성취(衆成就 : 여대비구與大比丘) 입니다.

그래서 모든 경전이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여대비구~"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3.경전의 결집

결집(結集)이란 말은 합송(合誦)의 의미를 지닌 Sankiti의 한역이다. 불교 역사상 4회의 결집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에 대해서 학자에 따라 다른 견해를 제기하기도 한다.

제1결집

붓다의 장례가 일단락되었을 무렵에 마하카사파가 제자들과 상의해서 법(法)과 율(律)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였다. 5백 명의 비구가 이를 위하여 왕사성(王舍城)의 칠엽굴(七葉窟)에 모였을 때 교법에 대해서는 아난다(Ananda)가 기억을 더듬어 가며 붓다가 설한대로 낭독했다. 아난다는 붓다의 시자(侍者)로서 오랫동안 붓다 곁에서 설법을 들은 사람이다. 그는 “나는 이와 같이 들었나니(如是我聞)”라는 말을 서두로 낭독했다고 한다. 참가한 사람들은 이렇게 제출된 교법을 정정하여 확인한 후 모두 함께 합송했다. 율(律)의 결집도 마찬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율은 우팔리(Upali)가 암송해 낸 것을 참가자 전원이 합송했다. 이것은 곧 교법과 율의 편찬 및 확인으로서 앞에서 이야기했던 결집인 것이다.

불교 역사상 최초로 행해진 이 제1결집에서 어떠한 교법이 결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러 문헌에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후에 구분경(九分經)이나 오부(五部)로 경전이 정리되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제2결집

교법(敎法)에 관한 한 비구들은 제1차 결집 때의 결과에 의존하면서 스스로의 수행에 의한 종교적 경지의 깊이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법을 가르치고 전해나갔다. 따라서 붓다의 유계(遺戒)였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전통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갔다.

생활 행위의 규범 즉 율(律)에 있어서 교법과 마찬가지로 그 기본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각 지방과 각 시대의 형편에 따라 조금씩 수정을 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표면에 나타나는 비구의 생활에 관해서는 각자의 상황에 따른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당연히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붓다가 입멸한 지100년 경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율에 철저한 야사(Yasa)라는 비구는 동인도의 바이샬리(Vesali) 거리에서 비구들이 신자로부터 금은을 받아서 분배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그에게도 분배를 받으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이것을 불법(不法)이라고 비난했다. 바이샬리의 비구들은 승가(僧伽)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것이 무엄한 행위라고 하여 오히려 야사를 힐난했다고 한다.

야사는 중부 인도와 서인도의 유력한 비구들에게 이 사정을 호소했다. 그리하여 바이샬리 거리에는 동인도와 서인도 등지로부터 700명의 비구들이 모여들어 율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고 경전을 편찬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제2차 결집이라고 한다. 제2차 결집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불전에 따라 여러 자료에 차이점이 있지만 율의 해석을 둘러싼 대립으로 인해 논쟁이 일어난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로 금은의 수수뿐만 아니라 동인도의 비구가 관행으로 행하던 행위 중에서 십사(十事)를 놓고 동서에서 선정되어 모인 장로들이 열띤 논의를 벌인 끝에 결국에는 이들을 모두 불법(不法)으로 단정했다.

결국 동인도의 진보적인 비구들은 이들을 불법이라고 단정지은데 불만을 품게 되는데 이로부터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가 분열하게 된다.

*십사(十事)란?

1.뿔로 만든 용기에 소금을 넣어 갖고 있다가 음식물에 넣어 먹는 것이 합법인가.

2.수행자는 정오를 넘으면 식사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정오가 지나서 태양의 그림자가 손가락 두 마디만큼 지난 시각까지 식사 시간을 연장하는 것은 합법인가.

3.한 번 탁발해서 충분한 식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마을에 들어가 식사대접을 받는 것은 합법인가.

4.동일 지역내에서 포살을 따로 행하는 것은 합법인가.

5.승가의 여러 사항을 결정하는데 우연히 비구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을 때 참석한 성원만으로 먼저 결정을 한 다음에 나중에 온 비구에게는 사후 승낙을 구하는 것은 합법인가.

6.붓다나 아사리가 관행으로 행하고 있던 것을 자기도 행하는 것은 합법인가.

7.우유를 충분히 마시고서도 또 다시 마시는 것은 합법인가.

8.수액을 발효시켜 아직 알코올 성분이 나오지 않은 음료를 마시는 것은 합법인가.

9. 테두리가 없는 헝겊을 좌구(坐具)로 쓰는 것은 합법인가.

10.금이나 은을 신자로부터 받는 것은 합법인가.

제3결집

불교를 독실하게 믿게 된 아쇼카왕은 절과 탑을 많이 세우고 많은 승려를 공양함으로서 그 수가 증가하여 수도 파탈리푸트라(Pataliputra)의 계원사(鷄園寺)에는 6만 명의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외도(外道)들이 승려고 가장하고 승려들 사이에 끼어들어 교단의 화합을 깨뜨려 왕은 그들을 정리하기 위해 당시의 고승인 목갈리풋타 티사(Moggaliputra-Tissa)에게 교설의 확정과 승가의 화합을 도모하도록 위촉하였다. 이에 목갈리풋타는 왕명을 받들어 천 명의 승려를 선출하여 스스로 상수(上首)가 되어 결집을 행하였는데, 아쇼카왕 즉위 18년에 시작하여 9개월간 소요되었다고 한다. 이 결집을 화씨성결집(華氏城結集), 또는 일천결집(一千結集)이라고 한다. 한편 그때까지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약 200년동안 구전(口傳)되어 오던 경전은 이 제3회 결집 때에 비로소 문자화되었다고 전한다. 1,2회 결집 때는 경(經)과 율(律)만 결집되었지만 이 때는 논(論)도 결집되었다고 한다.

제4결집

인도를 통일한 쿠샤나 왕조의 호불왕인 카니시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경론의 교설이 같지 않음을 보고 협존자(脇尊者) 파르스바(Parsva)에게 문의한 결과 불교 교단 내에 여러 부파가 있고 각 부파마다 그 교의를 달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파르스바와 상의하여 이설(異說)을 통일하고자 카슈미르의 환림사(環林寺)에서 결집을 행하였다. 세우(世友)를 상수(上首)로 하여 경장(經藏)의 주석인 우파데샤(Upadesa) 십만송을 결집한 후 율장(律藏)의 주석인 비나야비바샤(Vinaya-vibhasa) 십만송과 논장(論藏)의 주석인 아비달마 비바샤(Abhidarma-vibhasa) 십만송을 완성했다. 이 제4결집은 삼장(三藏)에 관한 결집이 아니라 주석에 관한 결집이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불설 편찬 범주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4.경전의 구성과 조직

12분교

12분교(十二分敎)는 불멸 직후 열린 제1결집 후에 분류된 것으로 문체, 문장 및 기술의 형식과 내용 등을 기준으로 경전을 12가지로 분류한 것을 말하는데 12부경, 12분성교, 12분경이라고도 합니다. 또한 12분교에서 인연과 비유, 논의 등 세가지를 뺀 아홉가지를 9분교라 부르기도 합니다.

1) 경(經)은 범어 sutra를 번역한 말인데 수다라(修多羅)라 음역하며, 이는 사상적으로 그 뜻을 완전히 갖춘 경문을 말합니다. 즉 단순한 이야기, 또는 비유만의 서술이 아니라 예컨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과 같은 사상을 완전히 표현한 경문을 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고기송(고기송)은 범어 gatha 의 번역으로, 게송 또는 송이란 뜻입니다. 가타(伽陀) 게타(偈陀), 또는 게(偈)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운을 부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운문으로서 술한 경문을 말하는데, 산문체로 된 경전의 1절 또는 총결한 끝에 아름다운 귀절로서 묘한 뜻을 읊어 놓은 운문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본문의 내용을 거듭 읊은 중송이 있기도 하지만, 고기송이라 번역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본문과는 관계없이 노래한 운문을 말합니다.

3) 중송(重頌)은 범어 geya 를 번역한 말인데, ‘기야(祈夜)’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앞의 고기송과는 대조적으로 운(韻)을 부치지 아니한 시체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체이나 운을 안부치고 그 앞의 산문으로 된 본문의 뜻을 거듭 설명하는 부분을 가리킵니다.

4) 무문자설(無問自說)은 범어 udana의 번역으로 감흥어(感興語)라 번역되기도 하며 우타나(優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종교적 체험을 감격한 그대로 말하는 부분인데, 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제자나 신도의 질문에 의해 설교하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누구의 질문에 의하지 아니하고 설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을 udana, 즉 무문자설이라 하는 것입니다.

5) 미증유법(未曾有法)은 범어 abhuttadharma 를 번역한 말로 희법(稀法)이라고도 하며 아부다달마(阿浮多達磨)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경 가운데 불가사의한 일을 말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범부(凡夫)는 경험하지 못하는 성자 특유한 심경(心境), 또는 정신적 기적 같은 것을 설한 부분입니다.

6) 여시어(如是語)는 범어 iti vuttaka 를 번역한 말로 이제불다가(伊帝弗多迦)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전 첫 머리에 보면 ‘여시아문(evam maya-srutam) 즉 ‘이와같이 나는 들었노라’라는 말은 곧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설하셨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 말 속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치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7) 인연(因緣)은 범어로 nidana를 번역한 말로 니타나(尼陀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경전을 설하게 된 사정이나 동기 등을 서술한 부분을 말합니다.

8) 비유(비유, avadana )를 번역한 말로 아파타나(아파타나)라 음역되기도 하며, 이는 경 가운데서 비유나 우언(寓言)으로써 교리를 설명, 해석한 부분을 말합니다. 불교 경전에는 이 비유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며, 경에 따라서는 이 비유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된 경전도 있습니다.

9) 본생(本生) 범어 jataka 를 번역한 말로 자다가 또는 자타가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전생의 이야기를 적은 경문으로, 부처님이 전생에 하신 육바라밀의 행업 등을 말한 부분이다. 파알리어 삼장에는 550종의 본생이 기록되어 있고, 한역 대장경에는 생경이라던가 육도집경 또는 불본행집경 등의 경이 모두 이 본생을 담은 경전들입니다.

10) 수기(授記, vyakarana) 를 번역한 말로, 화가라나(和伽羅那)라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음 세상에서 성불하리라는 것을 낱낱이 예언하는 경문의 부분인데, 보통 문답식으로 의론을 전개하다가 최후에 부처님이 인가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1) 논의(論議)는 범어로 upadesa를 번역한 말로 달리 축분별소설(逐分別所說)이라고도 한역되며, 우파제사(優波提舍)라 음역합니다. 이는 해석, 논술로써 연구 논문 형식의 경문을 말하는데, 부처님이 논의하고 문답하여 온갖 법의 내용을 명백히 말한 부분을 가리킵니다.

방광(方廣)은 vaipulya 를 번역한 말로 방등(方等)이라고도 번역되며, 비부략(毗浮略), 비불략(毗佛略) 또는 비부라(毘富羅) 등으로 음역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처님의 설교가 문답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면서 논리적으로 깊고 넓게 의미를 확대하고 심화(深化)하여 철학적 내용이 성격을 띤 경문을 말합니다.

서(序), 정종(正宗), 유통(流通)의 삼분(三分)

중국에서 경전을 서지학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불교학자인 동진의 도안은 한 경전의 조직을 보면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3단으로 되어 있다고 갈파하였는데, 이 3단번은 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그 후의 학자들은 모두 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서분은 경문의 첫 머리에 ‘여시아문’ 이하 그 경을 설한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 등 일체의 사정을 서술한 부분이고, 정종분은 석존의 설법을 서술한 경의 본체이며, 유통분은 경문의 마지막에 그 설법을 들은 대중의 감격이라던가 계발의 정도, 그리고 장래에 이 경을 읽는 사람의 이익이나 공덕, 또는 그 경의 이름 등을 기록한 부분입니다.

이와같은 삼분을 염두에 두고 경전들을 살펴보면 단편의 경전은 정종분만 있는 것도 있고 또 서분과 유통분이 극히 간단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편의 경전은 반드시 이 삼분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서분과 유통분만 아니라 전후의 이분이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서분과 유통분과는 석존이 설법한 언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석존의 설법을 들은 사람의 말이거나 쓴 사람의 기술이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 경전이라는 것은 석존의 설법만을 문자화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불교학자들은 서분의 기술 여하에 의해서 그 경전의 사상이라던가 내용의 심천 등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정종분도 또한 오로지 석존의 설법만이 아니고 제자들의 문답 왕복과 제천(諸天)의 말, 시방세계(十方世界) 보살들의 말 등이 석존의 말씀보다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경전이 적지 않습니다. 유명한 ‘화엄경’과 같은 80권이나 되는 장편의 경전도 석존의 말씀은 겨우 2,3장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석존 이외의 사람의 말이 기록되어 있고, 그 짧막한 말도 간단한 설명 또는 회화가 아니라 시가(시가), 운문, 비유, 논설 등 이른바 십이분교의 제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5.경전의 어계

부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무지한 하층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민중어로 가르침을 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의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불교 경전이 각 지방의 민중어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불교가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에서는 더 이상 일반 민중이 이해할 수 없는 타국어가 되어버려 불교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 부처님의 참뜻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경전은 여러 가지 언어로 쓰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경전의 어계라 할 수 있습니다.

 

범어

범어(梵語) 범어는 고대 인도에 있어서 바라문교의 거룩한 성전어(聖典語)이었으므로 인도의 다양한 언어 중 표준어라고 할만한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가 불교의 성전어가 된 것은 대월지국의 카니슈카왕 때에 카슈밀에서 개최되었던 제4결집시에 범어를 불교의 성전어로 한다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그 후 불교경전은 범어로써 표기되어 범어 경전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은 불교의 전파와 더불어 중앙 및 동북 아세아로 전하여져서 중국어, 서장어로 번역되어 소위 북방불교경전의 원서(原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어경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세기에 네팔의 승원(僧阮) 고탑(古塔) 속에서 발견된 이후의 일입니다. 그 뒤로 여러 곳에서 범어경전이 발견되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아서 삼장을 통하여 약40부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발견된 범어경전은 거의가 대승경전이고 소승경전은 극히 적은 편이나, 다른 경전들과 같이 질서 정연한 체계는 엿보이지 않으며 그 종류는 다양합니다.

이러한 범어경전이 산발적으로 네팔 등의 고탑 또는 고사원(古寺院) 에서, 또는 서역지방의 모래 속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회교도의 침입으로 법난(法難)을 맞은 인도의 불교도들이 법보(法寶)의 보호처로 히말라야산의 변방을 택하거나, 그렇게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지하에 은닉처를 구하였음을 알려 주는 것으로 법보를 소멸시킬 수 없다는 그들의 호법(護法) 의지를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범어 경전의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는데, 특히 영국의 네팔 주재원이었던 훗지손에 의해 수집된 경전들은 유럽 학계에 소개되어 인도불교 연구에 신기원(新紀元)을 열었으며, 영국의 바우워 대위는 중국 신강성의 차고에서 ‘공작왕주경(孔雀王呪經)’을 입수하였고, 그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의 탐색대가 신강과 돈황에서 범어 고사본을 발견하였으며, 1930년에는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안(bamian)에서 상당한 분량의 사본 단편을 발견하였고, 1931년 카슈밀의 길기트(gilgit)에서는 다량의 범본 사경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범어경전은 불교경전의 전체 분량에 비하면 매우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각 시대를 통하여 대, 소승의 경전이 있는 관계로 경전의 원어로서는 범어가 파알리어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존의 범어 경전들은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어 영, 불의 학회나, 러시아의 학사원, 또는 인도의 서점이나 일본 등에서 출판되었읍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범어경전의 종합적인 출판은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팔알리어

파알리어(巴利語) 고대 인도 남방의 언어는 파알리어로 지방어였지만, 이 지역에 유포된 경전은 자연히 파알리어로 표기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남단의 세이론(ceylon)에 불교가 전해졌을 때에는 지형적인 관계로 파알리어 경전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 시기는 대략 서력기원을 전후한 때로 현재 스리랑카에는 삼장의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있는 파알리어 성전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파알리어경전은 버어마, 타일랜드 등에도 원전 그대로 전하여져서 현재 소위 남방불교도는 모두 이 파알리어 원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경전은 현존하는 여러 불교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원초적인 형태와 내용을 정직하게 담고 있어서 원시불교 연구에 있어서는 더 없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파알리어 성전은 경, 율, 논, 삼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장은 교법에 관한 것의 집성으로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의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5부 중에서 장부, 중부, 상응부 및 증지부의 4부는 내용이 한역의 아함과 비슷하며, 소부는 한역의 아함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부에는 법구경, 경집, 본생경 등 유명한 경전들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율장은 경분별(經分別), 건도부(건度部), 부수(付隨) 등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분별은 비구, 비구니의 250계와 350계의 각 조문을 주석하고 설명한 것이고, 건도부는 출가승단의 행사작업 등을 해설한 것이며, 부수는 보유적(補遺的)인 것입니다.

그리고, 논장은 석존 교설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법취론(法聚論), 분별론(分別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論事), 계설론(界說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 등의 7론이 유명합니다.

파알리어성전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에서 로마자본(字本)으로 완질(完帙)을 간행하여 유럽 학계의 원시불교(原始佛敎)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남전대장경’이란 이름으로 1935년~1941년에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바가 있습니다.  

중국어

범어의 원전은 서력기원을 전후한 시대에 서역지방 즉 중앙아세아의 여러 나라에 전하여졌는데, 이것은 다시 점차로 중국 본토로 전하여져서 한역되게 되었습니다.

이 경전의 한역은 서기2세기로부터 10세기에 이르는 동안 각 왕조를 통하여 주로 국가적인 뒷바침에 의해 행하여져서 인도에서 성립된 대부분의 경전이 번역되었는바, 이것은 대부분이 현존하여 있습니다.

이 한역 경전은 그 종류와 분량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언어의 경전보다도 가장 완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는 일본 등 제국에서 발달된 대승불교의 근본 성전이 되어 있습니다.  

서장어

티벳트에는 티벳 역사상 영주로 추앙되는 손첸 감포왕 때에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래 티벳에는 민족종교로서 샤마니즘적인 주술을 중시하는 본교가 있었는데, 이 본교와 새로 전래된 불교가 습합하여 소위 라마교라고 하는 티벳의 독특한 불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7세기 전반 손첸 감포왕이 티벳의 전국토를 장악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의 문물이나 풍속 등이 티벳으로 전하여진 계기가 되었고, 중국이나 인도의 불교가 전래하게 된 단서가 되었습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문성공주가 중국에서 법사들을 모셔와 사원을 건립하도록 하고, 유학생들을 파견하여 왕래가 활발해짐으로써 범어 경전이 티벳으로 전래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톤미 삼보타를 인도로 파견하여 범어를 연구토록 하여 티벳 외의 문자와 문법을 창안하여, 범어경전이 티벳어로 번역되어 됩니다.

이리하여 티벳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은 라마교의 경전으로써 오늘날까지 남아 있게 되는데, 그 이후 티벳에서는 10세기 이후 네 차례의 대장경 간행이 있었고, 중국에서도 명, 청대에 세 차례의 간행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서장대장경 또는 번본대장경(番本大藏經)이라고 합니다.

서장역(西藏譯) 경전은 문화사상적 가치면에선 한역에 뒤떨어지진 면이 좀 있지만, 그 종류와 분량이 한역 다음으로 풍부하고, 한역에 없는 것이 서장대장경에 있어, 또 언어의 성질상 범어를 모방하여 서장어(西藏語)를 만들었기 때문에, 서장어 경전을 범어 경전으로 복번(複飜)할 수 있어서 범어경전이 적은 오늘날에 있어서 서장어 경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서장대장경은 같은 라마교권인 몽고 등에도 영향을 끼쳐 1310년에는 30여 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서장어을 몽고어로 번역 간행한 바가 있고, 또한 1772년부터는 약 20년간에 걸쳐 만주어로도 번역되어 완간된 바도 있습니다.

구미어

서양에서 인도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18세기부터 입니다.

그 이유는 서양인(특히 영국인)이 동양(특히 동남아)에 와서 정치, 군사적으로 지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상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나 기독교 전파를 위해서 반드시 인도인의 생활을 알고, 그 사상이나 종교를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서는 선교사들 중에 저명한 동양학작가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만든 옥스퍼드 대학의 윌리암스와 벨지움의 뿌생, 불전을 지어 유명한 독일의 올렌베르그, 뮌헨서 불교잡지를 낸 파알리어 학자 가이게르, 영국의 동양 연구 개척자인 막스뮬러, 파알리어 불전연구 개척자인 리스 레이비즈 부부, 카아펜터, 빈테르닛트츠, 하이델베르크에 불교학 연구회를 설립한 독일의 발레세르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현존하는 범어 및 파알리어 경전의 사본은 대부분 영어, 독일어, 불어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그들의 뒤를 이어 서양에서는 서장어 경전도 점차 번역되고 또 한역경전도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파알리어성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파알리어 성전의 출판과 그의 영역 사업, 그리고 막스 뮬러가 동양 종교의 성전을 처음으로 영역 집대성한 ‘동방성서’ 50권의 출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일본불교가 고래로 한역경전을 그대로 사용해왔던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일본어역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쓰고 있다. 그들은 번역에 많은 학자가 동원되어, 학술적 연구의 견지에서 범어 원전을 참조하여 한역의 사정을 밝히기도 하고 혹은 파알리어 경전을 직접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하여 경전의 번역 외에 경전 연구에 있어서도 상당히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어로 번역된 경전을 보면, 각 종파에서 자기 종파의 소의경전을 번역한다던가 또는 학자들에 의해 단일 경전들이 번역된 것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니 전 경전을 완역한 것으로는 국역대장경, 국역일체경, 남전대장경 등이 유명하다.

경전의 분류

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 세가지(삼장三藏)로 분류하지만, 그것을 시대적이며 사상적으로 구분하여 분류할 경우는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경전을 원시 경전, 최고(最古) 불전인 숫타니파아타, 아함경, 열반경, 범망경, 법구경, 자타카, 백유경, 유교경, 밀린다왕문경 등을 묶어 소승경전, 그리고 대품반야경,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무량의경, 유마경, 화엄경, 무량수경, 아미타경, 능가경 등을 묶어 대승경전이라 합니다.

이렇게 경전을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으로 이분하는 것은 인도로부터 내려오는 습관으로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일반에 통용되는 것이나 엄밀하게 말하면 경전 중에는 대, 소승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소승경전은 아함경에 한하지만 대승경전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어 이 분류법은 정밀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가장 유행한 분류는 천태종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교상판석(敎相判釋)할 때 쓴 것으로 화엄경류, 아함경류, 방등경류, 반야경류, 법화경류로 나누는 오분법(五分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족한 점이 많아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에서는 아함부(阿含部), 본연부(本緣部), 반야부(般若部), 법화부(法華部), 화엄부(華嚴部), 보적부(寶積部), 열반부(涅槃部), 대집부(大集部), 경집부(經集部), 밀교부(密敎部)의 10류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현재 가장 합리적인분류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1) 아함부

아함이란 팔리어 Agama로 표기하며 뜻은 전해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모아서 완성했다는 의미의 성전입니다 ¨ 아함경 - 모든 소승경전을 총칭하는 말로서 주로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등 불교의 기본사상에 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장아함경 - 비교적 긴 내용만을 추려서 엮은 경
*중아함경 - 중간정도의 길이 경을 모아 엮은 경
*증일아함경 - 법수에 따라 설한 경.
*잡아함경 - 짧은 내용을 모아 엮은 경

2) 본연부

본연은 본생 또는 본기라고도 하는데, 주로 부처님이 아득한 과거세의 영겁다생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자아의 완성을 위한 보살행을 한 일종의 고사, 전생설화 등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전이 자타카, 즉 본생경입니다. 이 경이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생경, 현우경, 잡보장경, 육도집경, 보살본연경, 보살본행경, 보살본생만론 등에 실려 있습니다.

3) 반야부

대승불교 초기의 경전으로 공사상을 설한 경전으로 금강경과 반야심경이 들어 있습니다.

4) 법화부

법화경은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경이며 "무량의경", "관보현경"과 더불어 법화삼부경이라고 합니다. 법화경 이전에 설한 삼승(三乘 : 성문, 연각, 보살)은 참다운 진리에 이르는 방편이었음을 밝히고(會三歸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설한 경입니다.

5) 화엄부 대방광불화엄경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의 내용은 대승보살도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부처의 성도와 과덕, 그 경계를 장엄하게 문학적으로 기술하면서 실천하는 과정에서 52위의 보살계통이 있음을 교리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대승보리심을 일으킨 뒤 52명의 선지식(先智識: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갖춘 이)을 찾아 불법을 묻고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해탈경계를 성취하는 입법계품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6) 보적부 대보적경

보살이 수행하는 법과 장차 미래세에 부처가 되어 중생을 어떻게 제도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받는 수기성불 등에 관한 경전을 말합니다.

7) 열반부

열반경은 석존께서 입멸하기 직전 라자가하에서 입멸하신 구시나가라까지 가는 동안의 행적과 설법내용, 그리고 입멸 후의 다비, 사리의 분배, 봉안 등이 자세히 설해진 경으로 나라를 지키는 7가지 법, 교단이 번영하는 7가지 법, 유명한 자등명(自燈明). 자귀의(自歸依)의 설법, 순타의 최후의 공양 발병, 최후의 유훈(遺訓) 등이 실려 있습니다.

8) 대집부 대방등대집경

대집부에 해당하는 모든 경을 다 모았다는 뜻으로 이 경전은 13종의 독립적인 대승경전들을 분 또는 품이라는 단위로 분류하여 하나의 경전처럼 엮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보살이 닦아야 할 불도를 반야경의 공사상에 근거하여 설교한 것입니다. ¨ 대승대집지장십륜경 - 줄여서 ‘지장십륜경’이라고 하는데, 내용은 지장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부처님이 10종의 불륜(佛輪)을 설한 것입니다.

9) 경집부

인왕경, 유마경, 입능가경, 약사경, 미륵삼부경, 부모은중경, 우란분경, 원각경, 능엄경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10) 밀교부

밀교는 다신교적, 힌두교적인 요소가 불교에 유입되면서 대승불교 발전사에서 마지막에 나타난 사상으로, 진언과 다라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대일경은 당 선무외삼장이 번역했으며 구체적인 경명은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이라 합니다. 전경이 7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경의 본문은 6권이고 공양하는 순서와 방법에 대한 의식1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대일여래가 불사의한 위신력으로 스스로 증득한 법신 자체의 경지를 말씀하신 경전입니다. 금강정경은 불공삼장의 역본이 유통되고 있으며,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대교왕경이 있습니다. 천수경은 신앙적 측면에서 널리 독송되는 경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천수경은 그 자체로는 찾을 수 없고 여러 밀교적 관음신앙 경전들을 의례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