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十二 일입도품(壹入道品)

一.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입(一入)의 도가 있어서 중생을 깨끗이 하고 근심을 없애며 온갖 번뇌가 없고 큰 지혜를 얻어 열반의 결과를 성취한다. 즉 다섯 가지 덮개[五蘊]를 없애고 네 가지 뜻 그침[四意止]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일입인가. 이른바 마음을 온전히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입이라 한다. 어떤 것이 도인가. 이른바 성현의 여덟 가지 도이니 첫째는 바른 소견이요, 둘째는 바른 다스림이요, 셋째는 바른 행위요, 넷째는 바른 생활이요, 다섯째는 바른 방편이요, 여섯째는 바른 말이요, 일곱째는 바른 생각이요, 여덟째는 바른 선정이다. 이것을 도라 하며 이것을 일입도(一入道)라 하느니라.

어떤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야 하는가. 이른바 탐욕 덮개, 성냄 덮개, 들뜸 덮개, 잠 덮개, 의심 덮개이니 이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야 한다. 어떻게 네 가지 뜻 그침을 생각하는가. 비구로서 안으로 제 몸을 관(觀)하여 나쁜 생각을 버리고 근심이 없게 하며, 밖으로 제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없애고 근심을 없게 하며, 안팎으로 제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없애고 근심이 없게 한다.

안으로 느낌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고, 밖으로 느낌을 관하고 안팎으로 느낌을 관한다. 안으로 마음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고 밖으로 마음을 관하고 안팎으로 마음을 관한다. 안으로 법을 관하고 밖으로 법을 관하며 안팎으로 법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한다.

어떻게 비구는 안으로 몸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는가. 비구는 그 몸을 관하되 그 성행(性行)을 따라 머리에서 발까지 발에서 머리까지 그 몸은 모두 더러워 탐낼 것이 없다고 관한다. 다시 그 몸을 관하되 털, 손발톱, 이, 가죽, 살, 힘줄, 골수, 뇌, 기름 덩이, 창자, 밥통, 심장, 간, 지라, 콩팥 따위를 모두 관해 알고, 또 똥, 오줌, 소장, 대장, 눈물, 침, 콧물, 혈맥, 기름, 쓸개 따위를 다 관해 탐낼 것이 없는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해 스스로 즐겨 하며 나쁜 생각을 버리고 근심을 없애야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그 몸을 돌이켜 관하되 '흙의 요소가 있는가, 물, 불, 바람의 요소가 있는가'고. 이와 같이 그 몸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그 몸을 관하여 모든 한계를 분별한다. '이 몸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마치 능숙한 백정이나 그 제자가 소를 다룰 때 뼈마디를 갈라 스스로 관하기를 '이것은 다리, 이것은 내장, 이것은 뼈, 이것은 머리라'고 보는 것처럼, 비구는 그 한계를 분별하여 그 몸을 관찰하되 '몸에는 흙의 요소와 물, 불,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이와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그 몸을 관하되 '이 몸에는 여러 구멍이 있어서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온다'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대밭이나 갈대 덤불을 보는 것처럼, 비구는 그 몸을 관하되 '이 몸에는 여러 구멍이 있어서 온갖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온다'고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죽은 송장을 관하되 '죽은지 하루, 혹은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가 되어 몸이 부어 터지고 냄새 나는 더러운 것이라'고 관한다. 그리고 제 몸도 저것과 다름이 없어 '내 몸도 저렇게 될 걱정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관한다.

다시 비구는 송장이나 까마귀나 까치, 독수리들에게 먹히며 혹은 호랑이, 이리, 개,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관하고 또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내 몸도 저렇게 될 근심을 면하지 못하리라'고 관한다. 이것을 일러 '비구가 제 몸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송장이 반은 먹히고 반은 땅에 흩어져 있어 냄새 나는 더러운 것이라고 관하고, 또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내 몸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한다'고 관한다. 다시 송장이 살은 다 없어져 뼈만 남고 피가 묻어 있는 것을 관하고 또 '이 몸도 저 몸과 다름이 없다'고 관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송장의 힘줄이 나무에 걸린 것을 관하고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다고 관한다. 비구는 이와 같이 그 몸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송장 뼈가 여러 곳에 흩어 있되 손뼈, 다리뼈가 각기 딴 곳에 있으며, 혹은 장딴지뼈, 허리뼈, 엉덩이뼈, 팔뼈, 어깨뼈, 옆구리벼, 등뼈, 이마뼈, 해골들이 흩어진 것을 관하고, 또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나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하고 내 몸도 무너져 없어질 것이다'고 관한다. 비구는 이와 같이 그 몸을 관하기를 스스로 즐겨 한다.

다시 비구는 송장의 흰빛과 흰 구슬 빛이 된 것을 관하고 제 몸도 그것과 다름이 없어 '나도 저런 법을 면하지 못한다'고 관한다. 이것을 일러 '비구가 제 몸을 관하는 것'이라 한다. 다시 비구는 송장 뼈가 푸르뎅뎅하여 탐낼 것이 없고 혹은 재나 흙과 빛깔이 같아서 분별할 수 없는 것을 본다.

이과 같이 비구는 그 몸을 관하여 나쁜 생각을 버리고 근심이 없다. 이 몸은 덧없어 흩어지는 법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그 몸을 관하고 밖으로 그 몸을 관하고 안팎으로 그 몸을 관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아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안으로 느낌을 관하는가. 비구가 즐거움을 느낄 때는 곧 스스로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깨달아 안다.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는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지 않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지 않는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먹지 않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곧 '나는 먹지 않는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비구는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을 스스로 관한다.

또 다시 비구는 즐거움을 느낄 때에는 괴로움을 느끼지 않고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괴로움을 느낄 때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않고 '나는 괴로움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는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어 '나는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낀다'고 스스로 깨달아 안다.

그는 나[生]는 법을 관하여 스스로 즐거워하고 다시 사라지는 법을 관하며 또 나서는 사라지는 법을 관한다. 혹은 느낌이 있어 현재에 앞에 있을 때에 그것을 알고 볼 수 있으며 그 근본을 생각하여 의지하는 데 없이 스스로 즐거워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거기서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에 곧 열반을 얻어,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참답게 아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느낌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어 근심이 없고, 밖으로 느낌을 관하고 안팎으로 느낌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어 근심이 없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팎으로 느낌을 관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마음과 마음 법을 관하여 스스로 즐거워하는가. 이에 비구는 애욕의 마음이 있으면 곧 애욕의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애욕의 마음이 없으면 곧 애욕의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성내는 마음이 있으면 곧 성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면 곧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어리석은 마음이 있으면 곧 어리석은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어리석은 마음이 없으면 곧 어리석은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곧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으면 곧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으면 곧 받아들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어지러운 마음이 있으면 곧 어지러운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어지러운 마음이 없으면 곧 어지러운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흩어진 마음이 있으면 곧 흩어진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알고 흩어진 마음이 없으면 곧 흩어진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두루 미치는 마음이 있으면 곧 두루 미치는 마음이 있는 줄을 깨달아 알고, 두루 미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루 미치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큰마음이 있으면 곧 큰마음이 있는 줄을 깨달아 알고, 큰마음이 없으면 곧 큰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한량없는 마음이 있으면 곧 한량없는 마음이 있는 줄을 깨달아 알고, 한량없는 마음이 없으면 곧 한량없는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고요한 마음이 있으면 곧 고요한 마음이 있는 줄을 깨달아 알고 고요한 마음이 없으면 곧 고요한 마음이 없는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면 곧 해탈하지 못한 마음인 줄을 깨달아 알고, 해탈한 마음이면 곧 해탈한 마음인 줄을 스스로 깨달아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과 마음 모양에서 그 뜻이 그쳐짐을 관한다.

나[生]는 법과 사라지는 법을 관하고 나서는 사라지는 법을 아울러 관하며, 생각하는 법을 관하기를 스스로 즐거워한다. 알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없는 것에 의지함이 없이,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므로 남음[餘=번뇌]이 없으며, 남음이 없으므로 곧 열반에 이르러,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참답게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으로 마음과 마음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없애어 근심이 없고, 밖으로 마음을 관하고 안팎으로 마음과 마음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과 마음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하느니라.

어떻게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하는가. 이에 비구는 생각의 깨달음 갈래[念覺支]를 닦되 관(觀)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고, 모두 사라짐[滅盡]을 의지하여 모든 나쁜 법을 버린다. 법 가림의 깨달음 갈래[擇法覺支], 노력의 깨달음 갈래[精進覺支], 생각의 깨달음 갈래[念覺支], 편안함의 깨달음 갈래, 삼매의 깨달음 갈래[三昧覺支], 보호의 깨달음 갈래[護覺支]를 닦되, 관과 욕심 없음과 모두 사라짐을 의지하여 모든 나쁜 법을 버린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애욕에서 벗어나 악해서 착하지 않은 법을 버리고, 머트러운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이 있고 안온한 생각이 있어 첫째 선정에 들기를 스스로 즐겨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머트러운 생각과 세밀한 생각을 버리고, 안으로 기쁨을 내어 알뜰한 마음으로 머트러운 생각도 세밀한 생각도 없이 마음이 기쁘고 안온하여 둘째 선정에 들어가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생각을 버리어 보호하기를 닦아 항상 스스로 깨달아 알고, 여러 성현들의 구하는 바를 즐겨 하면,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한 셋째 선정에 들어간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한다.

다시 비구는 괴롭고 즐거운 마음을 버리어 근심도 기쁨도 없으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어 보호하는 생각이 청정한 넷째 선정을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법과 법 모양에서 그 뜻의 그쳐짐을 관한다.

그는 나는 법과 사라지는 법과 나고 사라지는 법을 관하여 스스로 즐겨 하며, 곧 법에서 생각이 그치게 되어 현재에 앞에 있어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있어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의지하는 데가 없어 세상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므로 나고 죽음은 곧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참답게 안다.

비구들이여, 일입(一入)의 도에 의하여 중생들은 청정을 얻고, 근심을 멀리 떠나며, 다시는 기뻐하는 생각이 없고, 곧 지혜를 얻어 열반을 증득한다. 이것이 이른바 다섯 가지 덮개를 없애고 네 가지 뜻의 그침을 닦는 것이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二.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가운데서 범행을 닦는 이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처럼 빨리 망하는 법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자비와 인욕[忍]을 닦아 몸과 입과 뜻의 자비를 행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三.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는 모든 하늘이나 사람, 악마, 하늘, 사문, 바라문 중에서 가장 높고 으뜸 되는 이로서 그와 견줄 이가 없고 제일 가는 복밭으로서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하니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인가. 이른바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시다. 이것을 일러 '한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면, 그는 모든 하늘이나 사람, 아수라, 악마 및 악마 하늘, 사문, 바라문 중에서 가장 높고 으뜸 가는 이로서 견줄 이가 없고, 제일 가는 복밭으로서 섬길 만하고 공경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항상 여래께 공양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四.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병자를 돌보아 주는 이는 곧 나(부처님)를 돌보는 것이요, 병자를 간호하는 이는 곧 나를 간호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지금 몸소 병자를 간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어떤 사람이나 하늘, 세상, 사문, 바라문의 보시 중에서도 이 보시보다 가장 훌륭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 보시를 행하여야 그것은 바로서 참다운 보시가 되어 큰 과보와 공덕을 얻어 좋은 이름이 두루 퍼지고 단 이슬의 법맛을 얻게 될 것이다. 이른바 이른바 여래, 아라한, 다 옳게 깨달은 이시다.

모든 보시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이 보시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 알고 이 보시를 행하면 그것은 곧 참다운 보시가 되어 큰 과보와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즉 '병자를 돌보아 주는 이는 곧 나를 돌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그래서 너희들은 언제나 큰복을 얻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라냐[阿蘭若]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아라냐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아라냐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걸식을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걸식을 칭찬하기 때문이요, 걸식을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홀로 앉은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홀로 앉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홀로 앉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한 번 앉고 한 번 먹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한 번 앉고 한 번 먹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한 번 앉고 한 번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나무 밑에 앉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나무 밑에 앉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다. 그 나무 밑에 앉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한데[露] 앉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한데 앉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한데 앉은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비고 한적한 곳에 사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누더기옷 입은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다섯 가지 누더기 옷 입은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다섯 가지 누더기 옷 입은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세 가지 옷 갖는 이를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세 가지 옷 갖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세 가지 옷 갖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무덤 사이에 앉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무덤 사이에 앉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무덤 사이에 앉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하루 한끼 먹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한 끼 먹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하루 한 끼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한낮에만 먹는 이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한낮에만 먹는 이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한낮에만 먹는 이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여러 두타(頭陀) 행자(行者)를 칭찬하는 것은 곧 나를 칭찬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나는 항상 두타 행자를 칭찬하기 때문이요, 두타 행자를 비방하는 것은 곧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비구들에게 분부하나니 너희들은 마하아 카아샤파처럼 행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라. 왜 그러냐 하면 마하아 카아샤파는 이런 모든 행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은 항상 마하아 카아샤파처럼 행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六.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카란다 대나무 동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에게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마하아 카아샤파는 아라냐에 살면서 때가 되어 걸식할 적에는 빈, 부를 가리지 않으며 한 곳에 한 번 앉으면 끝내 옮기지 않고 나무 밑이나 한데나 비고 한적한 곳에 앉으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과 세 가지 옷을 갖고 무덤 사이에 있으며 혹은 하루 한 끼먹고 한 낮에만 먹으며 두타를 행하는데 나이는 가장 많았다.

때에 존자 마하아 카아샤파는 식후에 곧 어떤 나무 밑으로 가서 좌선하였다. 좌선에서 다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세존에게로 나아갔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카아샤파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말씀하셨다.

"잘 오라, 카아샤파야."

카아샤파는 세존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 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카아샤파야, 그대는 나이 많고 노쇠하여 기력이 없다. 그대는 지금부터 걸식과 온갖 두타행을 그만두고 또 여러 장자의 공양과 그들이 주는 옷을 받도록 하라."

카아샤파는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분부를 다르지 못하겠나이다. 왜 그런가 하오면 만일 여래께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지 못하셨다면 저는 벽지불이 되겠나이다. 그런데 그 벽지불은 모두 아라냐행을 행하여 때가 되어 걸식할 적에는 빈, 부를 가리지 않고 한 곳에 한 번 앉으면 끝내 옮기지 않았으며 나무 밑이나 한데나 비고 한적한 곳에 앉으며, 다섯 가지 누더기 옷과 세 가지 옷을 갖고 무덤 사이에 있으며, 끼니는 하루 한 번 먹고 그리고 한 낮에만 먹으며, 그리고 두타행을 행하나이다. 지금에 감히 본래 익힌 것을 버릴 수 없사오며, 다시 다른 행을 배우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카아샤파야. 그대는 많은 이익을 주어 한량없는 사람을 건지고 널리 모든 천상과 인간을 제도 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만일 카아샤파의 그 두타행이 이 세상에 있으면 내 법도 이 세상에 오래 있겠기 때문이다. 만일 법이 세상에 있으면 하늘 길은 더욱 늘고 세 가지 나쁜 길은 곧 줄 것이요, 또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의 삼승(三乘)의 도를 성취하여 모두 세상에 있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배울 바는 카아샤파가 익히는 것과 같이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七.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끗[利養]은 매우 무거워 사람을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 그러냐 하면, 비구들이여, 저 어리석은 데바닷타는 저 왕자 바라류지(婆羅留支)의 五백 가마솥의 밥을 받아 공양하였다. 만일 그가 주지 않았더라면 어리석은 데바닷타는 끝내 그런 악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바라류지 왕자는 날마다 五백 가마솥의 밥을 가지고 가서 공양하였기 때문에 데바닷타는 다섯 가지 큰 죄를 짓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큰 아비 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로 이끗은 매우 무거워 사람을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이르지 못하게 함을 알 수 있다. 이끗을 탐내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거든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겼거든 곧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八.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아자그리하의 깃자쿠우타 산에서 五백의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데바닷타는 승단(僧團)을 어지럽게 하고 여래발을 다치게 하고 아자아타샤트루를 시켜 그 부왕(父王)을 죽이게 하고 다시 아라한인 비구니를 죽이고는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다.

"악은 어디 있으며, 악은 어디서 생기는가. 누가 그 악을 짓고 그 갚음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어떠한 악을 짓고도 그 갚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여러 비구들은 라아자그리하에 가서 걸식하다가 어리석은 데바닷타가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한다는 말을 들었다. 즉 '악은 어디 있으며 악은 어디서 생기는가. 누가 그 악을 지어 그 갚음을 받는가'고. 그 때에 여러 비구들은 공양을 마친 뒤 가사와 바루를 챙기고 니쉬이다나를 오른 어깨에 걸치고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사뢰었다.

"저 어리석은 데바닷타는 대중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나이다. '어떤 악을 지어도 재앙이 없고, 복을 지어도 갚음이 없다. 선, 악의 갚음을 받는 일은 없다'고 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악도 있고 죄도 있으며 선, 악의 행에는 다 그 갚음이 있다. 만일 저 어리석은 데바닷타가 선, 악의 갚음이 있는 줄을 안다면 언짢고 초조하고 근심스러워 끓는 피가 여러 얼굴 구멍에서 나올 것이다. 저 데바닷타는 선, 악의 갚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 '선, 악의 갚음은 없다, 악을 행해도 재앙이 없고 선을 행하여도 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 스스로 밝은 듯

악을 행해도 복 있다 하네

그러나 나는 이제 미리 아나니

선과 악에는 그 갚음 있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마땅히 악을 멀리 하고 복 짓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九.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끗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하고 쉽지 않은 것이어서 사람을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 그러냐 하면, 이끗의 갚음은 사람의 가죽을 끊어 들고, 가죽을 끊으면 살을 끊고, 살을 끊으면 뼈를 끊고, 뼈를 끊으면 골수를 끊는다. 비구들이여, 이로써 이끗은 매우 무거운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이끗을 탐내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거든 생기지 못하게 하고 생겼거든 곧 없애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十.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슈라아바스티이의 제타숲 <외로운 이 돕는 동산>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의 이끗을 받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사람을 함이 없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왜 그러냐 하면 만일 저 사리라(師利羅) 비구가 이끗을 탐내지 않았더라면 그처럼 한량없는 살생을 함으로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남에게 무거운 이끗을 받으면

그 맑고 깨끗한 행이 무너지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그 마음 제어하여

그 맛을 탐하여 집착 말지니.

저 사리라 비구는 선정을 닦아

제석천궁에 태어났지만

갑자기 그 신통에서 물러나

백정 노릇으로 타락하였네.

"비구들이여, 이로써 사람의 이끗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줄을 알아야 한다. 비구들은 이와 같이 배워 이끗을 탐내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거든 곧 생기지 못하게 하고 그 마음이 생겼거든 방편을 구해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그 때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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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三오왕품(五王品)

三十四등견품(等見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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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十九목우품(牧牛品)

五十   예삼보품(禮三寶品)

五十一 비상품(非常品)

五十二大愛道般涅槃品